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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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MS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한글

12월 18일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아버지의 입장에서 유대인은 아들이요 이방인은 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맏아들이시니 유대인들 가운데 뿌리가 되지 않겠는가?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1일 내가 크게 울었더니

사도요한이 울었던 이유는 참으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아들딸이 많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요 또한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다.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4일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에 대하여 말하는 기준은 둘째 하늘에서이니 둘째 하늘에서 볼 때 하늘에 있는 것은 셋째 하늘이고 땅은 둘째 하늘이고 땅 아래는 첫째 하늘이다. 한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는 이유는 오직 이긴 자가 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7일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힘 있는 종들은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이다. 한편 미가엘은 정의의 천사들 중 천사장이니 120종에 속한 자다. 그러므로 미가엘 위로도 종들이 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0일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먼저 유대인의 풍습을 알아야 깨달을 수 있다. 일곱 인이란 신랑이 자기와 자기의 여자가 거할 처소를 준비를 다 마치는 시기를 말한다.일곱 째 나팔은 그가 자기의 여자를 데리러 출발과 또한 도착하는 시기를 말한다. 또한 일곱 대접은 그 자기의 여자의 도착하였을 때 일곱 가지의 물건을 여자의 어미와 아비와 그 집의 먼저 베푼다. 그런 후 자기의 여자를 그들이 거할 처소로 간다.

이와 같이 일곱 나팔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를 말하되 일곱 대접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쯤 일곱 가지 이 셋째 별에 그리스도께서 허용하시는 은혜들이 있다. 그것은 믿음이 약한 자는 이미 그가 육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또한 그를 배반할 자들은 배반하지 않도록 이미 사망에 넣으셔서 그를 구원코자 함이다. 또한 그런 것을 보며 돌이키기를 원하는 은혜도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대접이 다 채워지면 일곱 번째가 마지막으로 일으키는 전쟁을 뜻한바 이요 그 안에 믿음이 약한 자와 또한 배반할 자들을 미리 사망에 넣어 그 영혼을 구원시키시려 함이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타나시겠고 그 이후에는 이 땅으로 내려와 이 땅을 다시 한번 아버지께로 회복시키어 모든 자들이 그 처음에 아버지와 아들이 계획한 아름다움을 보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가 편히 쉴 것이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3일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보좌에 앉으신 이는 아버지이시며 일곱 봉인은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이 아버지의 명령대로 만들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6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모든 피조물들이 그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사람들을 구원시키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칭을 얻기 위해 그날을 기다리며 또한 그들 가운데서도 구원받는 자들이 있기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은 것은 죽은 것이되 살아있는 동물들과 식물들 가운데 깨끗한 것들은 셋째 하늘로 올리신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30일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영광 존귀 감사는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만물에 생명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것이며 두 번째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의 신부와 아버지의 아들딸들과 또한 생명이 있는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때 아버지의 능력과 아들의 능력에 네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라 한다.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3일 영광과 존귀와 감사

영광 존귀 감사는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만물에 생명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것이며 두 번째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의 신부와 아버지의 아들딸들과 또한 생명이 있는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때 아버지의 능력과 아들의 능력에 네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라 한다.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16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거룩하다 세 번은 아버지와 아들과 또한 거룩하신 영을 의미해 세 번 한다. 두 번째 아버지도 거룩을 세 번 부르며 아들도 거룩을 세 번 거룩하신 영께서도 거룩을 세 번 부르는 것은 완전한 거룩을 말한다. 또한 그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세 번하고 또다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세 번 한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9일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에스겔과 요한이 본 것이 둘 다 옳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오직 아버지의 옆에 있는 네 생물을 본 것이요 요한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을 때 그 네 생물을 본 것이니 그들이 본 것은 옳다. 즉 에스겔이 본 것은 아버지가 홀로 계심을 보고 그 네 생물을 보고 또한 아들이 아직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 달리지 아니하였기에 아들도 오직 아버지를 섬겼기에 에스겔이 본 것은 아버지가 홀로 계심을 보고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을 본 것이요 요한이 본 것은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아버지께 돌아가시므로써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을 요한이 본 것이다.

또한 크신 은혜를 받은 자들도 원할 때 아버지께 마음을 드리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신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일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사자는 들짐승가운데 아버지께서 가장 완벽하게 창조한 짐승이기에 아버지가 들짐승들의 창조자라는 의미로 네 생물가운데 한 얼굴을 두셨다. 송아지는 유대인들의 제사의 짐승으로 상징을 하신 것이다. 사람과 같은 것은 아들의 모습이기에 아들이 십자가의 흘린 것을 통해 사람들이 의롭게 됨을 상징한다. 독수리는 하늘에 있는 짐승들의 왕이기에 아버지께서 그 위에 계시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25일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요한이 말한 것은 이것이니 네 생물이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아무리 거룩하다 하는 자를 보고 의롭다 하는 자를 보아도 아버지의 눈꼽만큼도 의로운 자를 찾지 못하여 거룩한 자를 찾지 못해 세상을 늘 바라보되 아버지의 거룩함을 나타낸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한눈으로 볼 수 없기에 수많은 눈으로 보아도 다 보지 못한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18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상징으로서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이 되겠고 이방인에게로는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혈을 의미한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1일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등불 켠 것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등불을 켜려면 기름이 필요하다. 그 기름은 각 시대의 교회가 기도하는 기도로 그 등불을 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나에게 건강을 주소서 어떤 이는 부흥케 하소서 어떤 이는 나의 자손을 살피소서 라고 하는 기도는 등불의 기름이 되지 못하며 등불의 기름이 되는 기도는 거룩케 하소서 깨끗케 하소서 구원케 하소서 라는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그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가를 보게 되리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4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로부터 나오는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과 그리스도의 몸이 아버지의 영광을 보며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음성은 셋째 하늘에 울릴 것이며 성밖에 있는 자들도 모든 것을 멈추며 그 음성을 들으며 예루살렘을 향해 바라보게 된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8일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24장로에는 큰 비밀이 있다. 그러나 때가 아니기에 말씀을 안 하시되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매우 거룩한 곳에 들어가 아들과 딸을 위해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또한 백성을 위해 늘 그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도록 하는 자들이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1일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무지개는 노아시대에 주신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셋째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노아의 때에 그 심판의 약속으로써 이 첫째하늘로 내려놓으셨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물이 아닌 불로 심판을 마치신 후에는 그 무지개를 다시금 셋째하늘로 올리실 것이다.

빨간색과 주황색과 남색과 보라색은 사철을 의미한다. 또한 노란색과 초록색과 그것은 땅을 의미한다. 또한 하늘색은 아버지의 말씀의 약속을 뜻한다. 그리하여 어느 때든지 이 땅에 물로는 다시 심판을 안 하시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의 언약을 상징하며 또한 셋째하늘에서 이와 같이 그들은 늘 평화를 누리며 또한 아버지의 심판이 끝났으므로 더욱더 진리 안에 자유를 얻는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14일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벽옥과 홍보석 같은 것은 요한이 말할 수 없어 육신의 표현을 한 것이기에 너무나도 밝고 아름다운 것을 그 상징으로 표현하였으되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창조물 중에 무엇을 기뻐하리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그 아들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시겠는가? 또한 장차 곧 아들딸 될 그 영혼들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시고 계시겠는가?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7일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MS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한글

7월 31일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아버지의 보좌는 저 거룩한 곳에 깊숙이 있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 얇은 벽이 있고 아들이 아버지와 똑같은 보좌에 계신다.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거룩은 똑같아도 아무나 보고 싶은 자는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내 옆에 앉으라 하신 것은 누군가 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옆에 앉혀놓고 보게 하신다. 또한 아버지께서 나의 오른편이라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오른손으로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를 손으로 가리우신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아버지께서 가리시되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타나기 싫어서가 아니요 보는 자가 보고 불에 타 멸망할까 그가 막으시는 것이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24일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요한에게 올라오라 한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다. 구원받을 후사들을 섬기는 종과 주님을 섬기는 종의 차이는 예를 들어 만약 그리스도께서 종 하나가 그리스도를 섬긴다면 그리스도의 똑같은 아들딸들은 아버지께서 열을 주신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신부를 맞이했기에 신부의 종들도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처음에는 하나요 마지막에는 신부의 종까지 합치면 백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적은 수의 종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섬기되 후에는 더 많은 종들이 그를 따르며 섬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7일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의 가로막고 있는 문을 여시고 아들에게 시간이 다됐다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몸으로 들어오시고 아들은 그의 종들을 데리고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의 문을 열고 내려오신다. 그러므로 아들은 자기의 신부들을 부르며 종들은 그 신부들을 이 땅에서 데리고 올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아들이 신부를 맞이하여 기뻐하고 종들도 기뻐한다. 또한 아버지께서도 아들 안에 계시니 아버지도 그 신부를 보고 매우 만족하신다. 그런 후 잔치가 벌려지며 아버지와 아들이 정 가운데 앉아있고 신부들은 그를 둘러쌀 것이며 그 후 종들이 둘러싸고 모든 시중을 들리니 그 잔치에 기쁨이 충만하게 임하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0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이 일 후라는 것이 7교회시대가 끝난 후의 시점을 뜻하니 믿는 자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환난의 기간에는 교회시대가 아니요 그때는 오직 적그리스도의 움직임의 시대이니 교회는 있되 그들이 무능력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에 라오디게아교회가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부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니 원수는 더욱 그때를 악하게 하여 참으로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며 자신을 보게 하려 한다. 그러므로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3일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어떤 왕이 자기의 나라를 공의와 사랑으로 평화롭게 다스리고 있었으나 악한 자들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칼로 찌르며 용광로에 빠뜨려 죽이기 시작했다. 이에 왕은 자기 혼자 전쟁터로 나가 용감하게 싸워서 그들의 칼과 용광로를 다 쳐부순 후에 악한 왕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큰 영광을 가지고 다스렸다. 그러자 백성들은 자기의 왕이 홀로 싸우는 모습은 눈물을 흘리며 승리한 후 큰 영광을 얻어서 다스리는 모습은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왕은 눈물 흘리며 자신을 우러러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나와 같이 승리를 할 것이니 내가 그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니라. 또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는 나와 같은 자가 될 것이니 그는 나처럼 큰 영광을 얻어 나의 왕좌에 함께 앉겠노라.” 왕의 말을 듣자 14명이 왕의 앞으로 나와 이러한 말로 약속했다. “제가 어찌 편히 누워서 영광 받기를 바라겠나이까? 다른 사람이 어찌하든지 저는 왕의 군사가 되겠으며 제가 승리하기까지 왕께서 싸우신 것을 보고 그대로 싸우겠습니다. 영광을 위해 저의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이다. 왕의 용사된 제게 왕의 일을 맡기소서.” 왕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사들이 자기처럼 용감하고 힘있게 끝까지 싸워 승리하길 원했다. 그러므로 전쟁터로 나가기 전날 밤 군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지혜와 힘을 내는 음식들을 많이 베풀었다. 또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밤이 되자 왕의 군사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드디어 싸움터로 나갔으며 왕은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이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악한 자들과 싸울 때 약속대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쟁터에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조금도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하여 왕을 따르며 왕의 말을 들은 군사들은 악한 나라와의 싸움에서 모두다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승리한 왕의 군사들은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백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새벽에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왕은 어떤 군사는 자기 오른쪽에 앉는 영광을 주고 어떤 군사는 자기 왼쪽에 앉는 영광을 주며 너희는 나와 같은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왕과 함께 앉은 군사들은 자신의 왕과 함께 큰 영광을 가지고 기쁨을 누리며 왕의 온 나라를 함께 다스렸다.

이처럼 이기는 자는 자신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와 이 세상을 이기는 자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것들을 이길 수 있으리요?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을 실제로 입고 가장 먼저 그것들을 이긴 분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시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기신 그리스도예수께서 자신을 따라오는 자와 함께하며 도왔기에 그도 역시 육체가운데서 죽음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이기고 죽은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히고 부활시키시어 지성소에 있는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함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자신의 보좌가 아닌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앉히시므로 그를 모든 만물가운데서 매우 높여주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믿고 따르며 이긴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셨으니 거룩한 육체를 입은 24장로와 장자들과 자녀들도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동등함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되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낙원이 있는 둘째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셨을 때 이 땅을 태초에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되었던 에덴동산처럼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낙원의 북방 가장 높은 산에 새 예루살렘성전이 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 성안에서 정가운데 앉으신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으로는 남았던 유대인을 왼쪽으로는 이겼던 이방인을 앉히신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자녀들이 다 그리스도와 같이 이긴 자가 되므로 그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의 나라를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긴 자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니 천국의 끝에 이 첫째하늘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고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심판을 마치셨으니 장로와 장자와 자녀와 신령한 교회와 백성들을 이끌고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본향으로 올라가신다. 그러며 셋째하늘의 시온산에도 역시 새 예루살렘성전이 있으니 이긴 자들은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우편과 좌편에 앉아 함께 기쁨을 누리며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영광스런 빛을 비추고 자랑하고 다니며 시간과 공간의 끝이 없는 셋째하늘을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26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여자는 그 남자와 혼인을 약속하며 정절을 지키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혼인예식과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떠났다. 그러자 여자는 그때부터 남자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며 기다리는 동안 남자 없는 연약한 여자로서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랬다. 또한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어디든지 남자와 함께 다니며 늘 기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게 간절한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오직 남자가 돌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남자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돌아오며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 매우 기뻐하며 집에서 뛰어나와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다리며 당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키느라 수고했소. 순결한 당신을 위해 영광스런 결혼식과 성대한 혼인잔치를 준비했소. 그러니 우리 함께 한 몸을 이루어 기쁘게 먹고 마시며 편안하고 즐겁게 삽시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 여자는 혼인예식과 혼인잔치에 참여해 신랑과 함께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도 늘 남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거하며 함께 다니며 기쁨과 안식을 누렸다. 그리하여 순결을 지킨 그 여자는 자신이 간직했던 간절한 마음과 소망들을 다 이루었다.

이와 같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다시 오셨을 때에 실제로 있을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의미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과 함께 첫째 하늘로 내려오시기 전에 먼저 과정에 있던 그 영혼들이 혼인잔치준비를 공중에다 다 차린다. 그런 후 아들의 종들이 내려와서 잔치가 빠짐없이 준비되었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다시 아들에게 가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때가 되었도다. 너의 신부를 맞이하라.’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비로서 문을 열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신다.

바로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종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지킨 신부를 이미 다 찾아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개 영혼아 오너라.’하시면 그 영혼이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알고 나온다. 그러면 종들은 그 영혼을 데리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운 자를 먼저 맞이하여 그를 껴안고 ‘수고하였도다. 아름다운 나의 몸이 되어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 영혼도 똑같이 맞이하시니 이렇게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다. 그리고 나서 신랑과 신부가 한자리에 앉아서 함께 잔치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기쁨을 누리되 이제는 떨어지지 아니하고 슬픈 것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신랑과 함께하며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정결한 영혼들이 실제로 그 혼인잔치에 참여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정결한 한 영혼을 부르시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영혼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하되 오직 부름을 받은 영혼들은 신랑의 그 음성을 듣고 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음성을 들을 때에는 그 영혼이 매우 기뻐하며 그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잊고 오히려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얻으며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 밖에 서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의 무엇을 두드리시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마지막 교회시대의 끝인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가까이 오셨나? 먼저 두드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의 문을 열고 오직 자신에게 마음 문을 드린 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영혼의 속에 들어가고 그는 자신의 속에 들어와 자신의 신부가 되리라는 약속이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현재 얼마나 가까이 오셨는가 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문을 여시고자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셨다. 그러므로 어느 때든지 그가 열고 나오실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져 먹고 마시고 있으니 신랑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9일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초대교회 당시 이방지역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지체들과 이 마지막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께로 이 책망과 징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이키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그리고 거룩을 이루었으니 거룩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먹고 마시는 그 약속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깨닫는 영혼도 환난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왜 책망과 징계를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자신을 돌이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내면 그도 그 약속에 참예할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작은 진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주는 크기는 비록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진주는 아무리 높은 사람도 가질 수 없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받을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이렇게 소중한 진주를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값없이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것을 작은 상자에다 넣고 하얀 종이로 포장했다. 한편 어떤 한 여자가 자신이 아끼는 바보상자를 가지고 그 남자의 옆에 있었다. 그 바보상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앉아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컸다. 그런데 그 여자도 자신이 아끼는 여자에게 그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택배박스로 포장을 하고 나니 상자가 엄청나게 컸다. 이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각각 작은 선물과 큰 선물을 들고 자기가 아는 여자를 찾아가서 자기가 준비한 상자를 주며 이것은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다. 이에 여자는 남자의 선물은 크기가 작은 것을 보고 실망하며 풀어보지 않았으나 그 여자의 선물이 큰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기대에 부풀어 뜯어보았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모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즐기며 허송세월 했다. 그러나 남자가 준 작은 상자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다. 눈과 귀가 텔레비전에 빠져 끝까지 뜯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을 풀어보고 그 안의 내용을 보아야 그가 기뻐할 터인데 그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장 작은 박스를 보고는 실망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주장으로 말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듣는 자들도 그 말이 그 말이라며 자신의 믿음을 쌓아 올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판단한다.

게다가 갈급한 마음이 없는 그들은 가장 큰 박스를 보고는 기뻐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원하면 많은 돈이 나오길 바라며 오직 큰 건물로 들어가기 원한다. 그리하여 거룩한 공동체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들어와도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는 한 상관없다. 오직 사람의 수가 많으면 그저 좋다. 그 물질을 내는 자가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아도 혹은 그것이 어떤 물질이라도 많이 내면 무조건 좋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건물들이 땅속으로 내려가도 또한 눈앞으로 다가온 한민족의 환난에서 큰 도시들의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내려도 상관없다. 오직 무너지게 될 그 건물들을 크고 아름답게 짓되 이것이 교회요 성전이니 그 일에 복이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생명 없는 곳으로 열심히 이끌고 있다. 전쟁의 전날까지 그럴 것이요 전쟁이 끝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하니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어찌 아버지와 아들께 책망과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훈계를 허락하시지 아니하신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장에서도 누구나 다 책망과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요 행여 그것을 받았다 하여도 다 돌이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참 아들이며 누가 사생자인가? 즉 아버지께서는 씨로 거듭난 자들 가운데 누구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어 빛을 보게 하시고 그 길에서 책망과 징계를 베푸시며 누구에게는 은혜를 거두시니 책망과 징계는커녕 거듭나고도 그 빛을 보지 못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아비가 두 아들을 데리고 있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오직 일만 열심히 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바깥에 나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밭을 가꾸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일은 열심히 많이 오래하되 늘 아버지가 원치 않는 엉뚱한 일들을 벌였다. 반면 둘째 아이는 늘 아비의 품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거하는 시간이 많기에 자연히 책망을 많이 듣고 훈계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둘째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오직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다. 그리하여 아비의 마음도 늘 둘째에게 있었다. 결국 그 아비는 첫째가 일을 하고 들어오면 그에게 잘했다고 칭찬한 후 그가 일한 만큼에 맞는 상급을 주었다. 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선 꾸지람을 주었다. 그러나 늘 아비의 품에서 아비의 마음을 알고 행한 둘째는 나중에 오직 칭찬과 상급만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돌이키고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와 자신의 거룩한 품 안에 거하는 영혼을 사랑하시며 그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기 원하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아들의 한 몸 안에 거하는 영혼에게 빛을 보여주신 후 그가 의롭고 거룩하게 되도록 비로소 책망과 훈계를 주시되 그것은 마음을 찌르는 것이요 채찍질같이 아프다. 그런데 부모에게 매를 맞을 때 잘못했다고 빌며 그 사랑의 품에 안기는 자식이 있다. 그러므로 책망과 훈계를 받는 영혼은 사랑을 받는 영혼이니 그는 공동체 안에서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거룩을 이룬 자들이 거룩한 육체를 입은 아버지의 거룩한 빛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형제자매로서 주님의 품에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영광의 자유를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 동일하게 매를 맞아도 부모를 원망하며 그 품에서 도망가는 자식도 있다. 즉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영혼과 육이 좋아 세상에 거하는 영혼은 책망과 훈계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책망과 훈계가 없으니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자녀 됨의 그 약속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그가 아무리 크고 많은 일들을 이루었어도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칭찬대신 오히려 책망을 받고 아버지와 아들께로 멀리 거한다. 거룩을 거부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위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2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어떤 사람이 포도나무장사에게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얻어서 심었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깨끗한 물을 주었다. 또한 땀을 흘리며 웃자란 가지를 쳐내고 나쁜 벌레들도 잡아냈다. 그렇게 정성껏 가꾸며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그 작던 나무는 이제 깨끗한 포도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었다. 그러므로 그는 포도를 따서 먹으며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것들을 다 잊었으며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또한 포도열매를 원하는 일곱 사람이 찾아와 포도나무 가꾸는 법을 배웠다. 한편 다른 한 사람도 똑같이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포도나무장사에게 얻어서 심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포도나무가 작은 것을 보고 소홀히 여기며 땀을 흘리거나 정성을 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포도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는 열심히 손바닥을 비볐다. 또한 다른 사람의 포도원을 부럽게 바라보기도하며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땅속에서 매우 큰 포도나무가 올라오더니 다른 종류의 포도가 주렁주렁 맺힌 후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 먹고 또한 그것으로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포도나무 가꾸는 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다 두 번째 사람을 보고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축복을 받았다고 했으나 첫 번째 사람을 향해서는 어리석다고 하며 두 번째 사람에게 가서 포도나무 가꾸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 이에 두 사람에게 포도나무를 준 장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람의 두 눈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장사는 그에게 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눈이 반 정도 감겨있는 사람은 포도나무장사가 시키는 대로 눈약을 사서 발랐으니 반 정도 감겼던 자신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이때 포도나무장사는 완전히 눈을 뜬 사람에게 포도나무를 가꾼 그 두 사람을 다시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이 각각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결과를 이루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눈을 뜬 후에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즉 첫 번째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한 길을 걸었으나 두 번째 사람은 게으르고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깨닫고 첫 번째 사람을 따라다니며 포도나무 가꾸는 법을 배웠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으며 귀도 반 정도 막혀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십자가로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의 상태를 보고 듣되 그 상태에까지 이른 과정은 보고 듣지 않고 오직 그 결과만을 보고 듣는다. 그러니 많은 자들이 어떻게 하든 짧은 시간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셋째 하늘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기 위하여 평생에 가야 할 길을 그리스도로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오직 12명을 데리고 목회하셨으며 그 중에 한 명은 마지막에 배신했고 나머지는 그저 군중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그 길의 끝에서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거룩을 다 이루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시므로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되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함이 없는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생명의 길을 보지 못한다. 혹 그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그의 눈과 귀는 반쯤 감겼기에 십자가의 길과 진리가 참으로 어리석게 보이며 들린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그 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 그들을 어리석고 잘못된 자들로 여긴다. 반면 사람의 길과 세상의 길은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된 길로 보이며 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당신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루아침에 성공했도다.” “폭발적인 부흥이로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도다.” “뜨겁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도다.” 많은 자들이 영혼을 인도하며 혹은 영혼의 목자들을 따라가며 바로 이러한 모습을 보고 싶어하며 또한 이런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와 세상으로 인하여 눈이 반 정도 감기고 귀가 반 정도 닫힌 자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그 거짓된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옳고 거룩한 길을 따르기 원하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의 끝에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입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어 아버지의 가까이에 앉아 영원히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 그러므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놓은 그 고난과 영광의 길을 보도록 하심이다. 즉 그들이 썩어질 육의 부요와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의 영광스런 길을 보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길을 보고 따라오라는 의미로서 그들에게 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진 영혼들에게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사 그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얻은 그리스도를 보고 듣게 하시되 인자가 어떠한 길을 걸어 그 영광과 권세에 이르렀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면 하늘의 영광을 원하는 자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세상의 길도 보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만을 본다. 또한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듣는다. 그러므로 그 옳은 생명의 길을 보고 진리를 들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그 길을 따라가며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5일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들이 가르치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갈 때마다 그 무엇보다 먼저 돈을 챙겼다. 또한 천국은 힘과 능력으로 못 들어간다고 가르쳤으나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또한 행위나 노력으로도 못 간다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일성수를 잘하고 찬양과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떤 꼬마아이가 그의 말과 행위가 가르침과 다른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돈에 있어요? 또 힘과 능력으로 행위와 노력으로도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얻기 원하면서도 주일에는 마음 없이 하나님의 앞에 나와서 찬양과 기도를 하세요? 차라리 교회를 나오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요?” 꼬마의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으니까 돈이나 힘과 능력이나 행위와 노력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으로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란다.” 그러나 그 꼬마는 선생님의 마음이 세상에 있음을 알았기에 그것이 거짓말임을 눈치챘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님께 대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전부다 그의 가르침이 좋다며 따랐다. 그러므로 그 교사를 따라간 아이들도 다 그와 같이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 교사가 목자가 되어 어른들의 앞에 서서 옷을 다 벗고 이런 찬양을 인도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한편 성가대도 옷을 다 벗고 일어나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라는 찬양을 했다. 이제 설교시간이 되자 그 목자는 자기처럼 벌거벗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물질이 있어야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세상의 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빠지지 말고 하세요. 물질을 자녀들에게 남겨두지 말고 천국에다 심으세요.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 상급을 받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고 교회의 모든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세요. 또한 세상에 들어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세요. 그러면 여러분과 자녀들에게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어떤 여자가 그의 가르침들이 찬양과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또한 그 목자와 교인들의 벗은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신랑이 다시 올 때 정결한 신부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세상과 마음 없는 행위에서 돌이켜 두렵고 떨림으로 옷을 빨아야 하지 않나요?” 벌거벗은 그 목자는 여자의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강대상에서 내려와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흰옷을 입고 있으니 이제는 구원받은 증거로서 또한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행위와 열심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물질과 세상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 거룩한 자녀들의 권세를 누리며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벌거벗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여자는 그 목자의 마음이 어두운 세상에 있음을 알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 오직 흰옷을 입고 자기의 신랑을 맞이하고자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이 입은 옷을 열심히 빨았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은 그 목자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따라갔으니 그 목자도 또한 그를 따른 모든 양들도 홀딱 벗고 신랑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자신의 부끄럼을 깨닫고 스스로 뒤로 물러갔으나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상급을 달라며 혼인잔치까지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신랑은 벌거벗은 자들을 그 혼인잔치에서 다 쫓아냈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돈으로도 못 가요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하며 노래를 가르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오직 돈으로만 갈 수 있어요 하나님나라 오직 열심히 하는 자만 갈 수 있어요 하며 가르친다. 그러므로 전통에 묶인 영혼들은 거룩을 포기하고 오직 돈을 내어 놓고 있으며 돈이 없는 자들은 대신 마음 없는 행위와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없는 것은 더러운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곳에는 거하시지 아니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은 것들을 다 버리시고 오직 그 사람의 거룩함을 보시고 거룩한 옷을 입히신다.

그런데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아버지께로 가증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지키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는 참으로 흰옷을 아버지께서는 아주 싸게 거룩을 조금 유지한 자들에게도 다 입히시되 거룩을 유지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아주 안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이르는 자들이 적은 것은 마지막 때에는 모든 자들이 세상에 빠져있으니 아버지와 아들께는 마음과 믿음을 조금만 드리는 그것조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9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한 나라의 왕이 어떤 보석가게의 주인에게 말하길 금반지를 만들어서 자기에게 바치면 큰 상급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가게의 주인에게는 금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게 앞에다 왕을 위한 질 좋은 금이 필요하다는 알림판을 붙여놓았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가게로 들어와 아주 작은 금을 내밀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작다고 돌려보내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보았다. 그랬더니 여자가 내놓은 금은 크기는 비록 작지만 순금반지 한 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여자를 반갑게 맞이해 자리에 앉히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금을 녹여서 금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반지를 다 만든 후 여자에게 금반지를 건네주며 왕에게 가서 황금빛이 나는 이 금반지를 바치면 왕이 큰 상급을 내릴 거라고 말했다. 이에 작지만 무거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가서 그 순금반지를 바쳤다. 그러므로 왕은 금반지를 받아서 자세히 살펴본 후 여자에게 공주가 입는 옷을 입히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한 여자가 이번에는 아주 큰 금을 가지고 가게로 자랑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자기의 금을 보여주며 가게주인과 왕이 자신을 매우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크다고 좋아하거나 곧바로 금반지를 만들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렸다. 그랬더니 그 금은 크기는 비록 크지만 녹였을 때 실 반지 하나는커녕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금반지를 만들려면 금의 크기에 상관없이 무거워야 하는데 당신의 금은 가벼워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며 돌려보냈다. 그러자 여자는 큰 금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주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보석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때마침 그 보석가게의 뒤에 있는 다른 보석가게의 주인이 그 여자가 가진 큰 금을 보더니 자신의 가게로 들어오라며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여자가 들어오자 싱글벙글하며 여자의 금을 저울에 달아보지도 않고 왕은 당신의 금을 참 좋아할 거라며 곧바로 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의 금은 크기만 컸지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으니 실 반지 하나도 만들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거기다 쇠를 녹여서 넣고 노란 물을 부어 금반지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에게 주며 그 앞에 있던 주인과 동일한 말을 했다. 이에 크지만 가벼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나아가 가짜 반지를 바쳤다. 하지만 왕은 반지가 녹슨 것을 보고는 여자를 왕궁에서 쫓아내고 가짜 보석가게의 주인은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충성스런 보석가게의 주인은 왕궁으로 불러서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 공주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속의 내용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눈에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사람들은 네가 크니 내가 크니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재보기도 한다. 그러나 금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금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한다. 금은 크기에는 상관이 없고 그 금의 무게에 값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요 거룩의 믿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목자들은 불로 연단한 금을 보지 못하며 원치도 않는다. 오직 한 영혼 한 영혼을 이용해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원하되 그의 뜻과 계획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그 건물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이 충만한 양들은 원치 아니하고 오직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한 영혼을 바라볼 때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상대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계산하며 오직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또한 그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 지를 유심히 본다. 그러므로 이렇게 육과 세상의 부요를 구하는 목자들과 양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리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일곱 교회의 목자들은 큰 것을 바라거나 혹은 큰 것을 보고 좌우되지 아니한다. 오직 그 사람의 속이 금으로 가득 찬 조그만 것을 얻고자 사모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영혼이 세상의 어떤 재물을 가지고 오건 혹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건 혹은 빈손으로 오건 그의 외모에 치우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할 때는 누구든지 반가이 맞이한다. 공동체가 거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불로 연단한 금처럼 변치 않는 그 마음과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2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어떤 사람이 작지만 평안한 집에 살다 집을 더 크고 높게 넓히고 싶었으니 가게를 열어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가게를 차리려면 천 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했으나 없으니 그저 고민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때 어떤 자가 그에게 제안하길 내게 집을 맡기면 천 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은 염려스럽지만 기뻐하며 자기집을 그의 이름에 올려놓고 작은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되어 가게가 일억짜리가 되었다. 하지만 가게를 팔아 다른 것들을 다 제하고 빚을 갚으면 오직 원래 자기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즉 그는 돈 벌며 좋은 것을 얻었으나 몸은 지치고 마음은 바빠지되 처음과 똑같이 작은 집 한 채만이 자기의 것이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자는 그에게 말하길 너도 이제 부자라고 했고 자신도 일억짜리 가게를 이루었으니 스스로 일억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여전히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욕심이 더 생겨 더 큰 가게를 열고 싶었으니 이제는 가게도 맡기고 더 큰 돈을 빌려 더 큰 가게를 열되 처음처럼 염려스런 마음은 없고 오직 긍정적인 착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 가게도 잘되어 십억짜리가 되었으나 역시 모든 것을 제하고 빚을 갚으면 여전히 원래 있던 자기의 작은 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느니 그는 긴 세월 많은 일들을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늘 작은 집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었던 자는 그에게 너는 이제 더 큰 부자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고 자신도 스스로 큰 가게를 일구어 가지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신의 재산이 십억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는 큰 가게와 십억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또한 평안한 집에 살 때보다 모든 것이 실제로 더 풍성하고 부유해졌으니 그는 자기가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부유하게 여겼으며 자신은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마음이 아닌 육이 부유하게 지내던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 언제까지 주기로 약속했던 돈을 주지 못했으며 그런 경우가 몇 번 계속되다 결국 큰 가게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았으되 처음에 자기에게 있었던 그 작은 집만 똑같이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스스로 부유하게 여기며 또한 자신은 모자란 것이 없다고 여겼던 그의 모든 수고와 애씀은 참으로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나중에는 원래 있던 작은 집마저 빼앗길 형편에 처했다.

이처럼 다른 시대와 달리 마지막 교회시대에는 원수가 믿는 자들의 마음에 특별히 이용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니 자신이 조그만 것을 누구에게 맡기고 맡긴 만큼의 지불을 받아 더 큰 것을 행한다. 그리고 큰 것이 완성되면 그것을 누구에게 또 맡기고 더 큰 것을 벌인다. 그러므로 겉의 껍데기가 계속 불어나니 사람의 눈으로는 부유하고 모자랄 것이 없이 보이되 그 속에는 처음 조그만 것과 똑같이 있으니 허무하고 허무하다. 구체적으로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아버지의 뜻에 마음과 믿음을 두고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자신의 생각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사람도 많이 모이고 돈도 많아지고 건물도 아름다워진다. 또한 때로는 사람의 칭찬도 얻고 썩어질 육도 부유해지므로 그들은 부유함과 영광으로 인하여 마음 없는 그 행위들에서 돌이키지를 못하고 있다.

원수는 이렇게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오로지 겉의 것을 계속적으로 늘려가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육의 부요는 늘 늘어나되 그들의 영은 늘 가난함으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육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좋아하니 육적으로 더 신경을 쓰며 좇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되 자기의 영이 가난한 것을 보고 ‘나는 복된 사람이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죄 가운데 있는 자가 를 애통하거나 이기려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는 나의 친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런 자들의 영혼은 거룩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처음에 거듭난 그대로 있으리니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헛된 것을 따르며 헛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으니 영을 먹일 수 있는 진리를 얻지 못했고 그리하여 그들의 영혼은 부유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요 오히려 늘 배고픔 가운데 있었다. 즉 영혼이 의와 거룩의 옷을 입지 못하여 늘 벌거벗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오직 거듭남 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니 의롭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거듭난 후 회개하고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어가는 자신을 보아서가 아니요 오직 자기에게 있는 육의 풍성함과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것과 높아진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영혼의 배고픔 가운데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부자라 했던 것이니 마지막 때 믿는 자들이 이와 같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

5월 15일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어떤 사람이 하늘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때에 땅을 갈라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단 한 번에 심판하겠노라.하지만 악한 자는 나의 심판 전에 처처에 전쟁과 재해를 일으켜 자신과 같은 자들을 추수할 것이니라.” 그 사람은 하늘의 말을 듣고 난 후 의로운 자도 불의한 자와 함께 심판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늘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내가 다 구원하겠노라. 그러니 너는 비행기를 만들고 그 안에 먹을 양식과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라. 또한 내가 시키는 대로 만들면 그 비행기는 항상 안전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며 악한 자가 일으키는 환난과 내가 마지막에 내리는 심판을 피할 수 있겠노라.” 그는 하늘이 시키는 대로 비행기를 완성했다. 그리고 큰 건물에서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봉사와 선교를 열심히 행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당신들이 만일 하늘의 뜻을 거역하며 그런 행위들을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곧 전쟁과 재해가 다가올 것이되 이 비행기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늘이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구원하실 것입니다.그러므로 모든 행위들을 멈추고 거기서 나와 이 비행기안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가십시오.” 그는 하늘의 말을 전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서 가족들을 이끌고 비행기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반은 건물에서는 그 행위를 계속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자신의 욕심과 돈만을 위해 살며 술과 담배와 음란과 거짓을 행했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그 행위들을 했다. 한편 나머지 반은 건물 안에서 그 행위를 열심히 행하며 세상을 즐기는 그들을 부러워했으나 세상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의 말대로 이곳 저곳에 전쟁과 재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는 하늘을 날며 아무런 피해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또한 사다리를 내려주며 사람들을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이 어려움만 지나면 내가 하던 일들을 다시 하겠노라 마음먹었다.그러므로 한 사람도 그 사다리를 잡지 않았다. 결국 악한 자의 환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늘의 심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며 처음과 동일한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오직 한 명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전과 같았으니 말과 행위도 전과 동일했다. 이제 그가 전할 말을 다 알리자 이번에도 비행기는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므로 하늘의 말대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다리를 붙들지 않았다. 결국 건물 안에서 열심히 행하던 자들은 육신의 죽음 후에 창조자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상급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그들의 마음을 찢고 보니 더러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고 어두운 곳에 가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면 내가 받아주겠노라고 말했다. 한편 건물 안에서는 그 행위를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이방인들과 동일한 삶을 반복한 자들은 심판대에서 나는 믿음이 있으니 좋은 곳에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라며 그들을 쫓아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입에서 토하여 내신다는 심판은 은혜를 받은 후 세상을 사랑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물러간 자들 가운데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즉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 아니요 오직 믿는 자들 가운데서 미지근한 자들이 받을 심판이다. 그러므로 유황불 못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는 거짓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라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거짓된 양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다 다시 토하여 내침을 받은 이 심판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있었으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그들의 행위로 나오고 말로 나온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그들의 마음이 더러운 것을 보신다. 하지만 그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기에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고 온전케 되는 과정에 들여보내신다. 그러면 거기서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은혜시대라 불리는 교회시대에 이러한 자들이 많이 있다.

둘째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마음은 육과 세상에 두고 오직 입술로만 믿는다며 아버지의 앞에 나와 여러 가지 거룩한 말과 행위를 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배를 마친 후 세상에 들어갔을 때는 이방인과 똑같은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 그리하여 그들과 이방인의 차이는 오직 한 가지니 일주일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에 큰 건물로 들어갔다 끝나면 다시 나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움으로 가득한 자들이 단지 주여 주여 불렀다하여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나라에 거하겠는가?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나라에 거하지 못하는 자들을 그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미지근함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토하여 내침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그들과 한 몸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몸과 통한 몸을 얻어 주님과 영원히 거한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8일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이 말씀을 보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고 기록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의미를 알고자 어떤 목자를 찾아갔다. 이에 그 목자는 이것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며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사막의 한가운데로 군인들이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세워져 있었고 그 그림 뒤로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좁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나 그 길을 따라 기쁨과 소망과 겸손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좁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낙원과 같이 좋은 곳이 펼쳐져 있었다. 반면 왼쪽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멋진 자동차와 좋은 집과 놀이동산과 나이트클럽과 술집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창녀들이 슬픔과 낙심과 교만과 억압과 두려움을 주는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넓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살아있을 때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속이고 헐뜯고 싸우고 죽인 자들이 함께 모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여자군인이 자기의 가족들과 함께 사막 길을 걷다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자 모든 푯말을 읽더니 자기의 가족들을 이끌고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 여자와 가족들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다 마지막에는 그 넓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한 다른 여자군인들도 계속해서 왼쪽 길로만 들어섰다. 그러나 어떤 남자군인은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해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남자의 아내는 그 좁은 문 뒤에 있는 낙원같이 좋은 곳에 가고는 싶었으나 다리가 약해서 잘 걷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아내를 부축하고 자녀들을 이끌고 그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와 가족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다 마지막에는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낙원에서 모든 것을 즐기며 안식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군인도 자기의 아내와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왼쪽 길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또한 오른쪽 길로 가려다가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 그냥 주저앉았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을 다 죽이기 위해 날카롭고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좁은 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에는 그 악한 자가 가지고 있는 칼보다 더 날카롭고 큰 칼을 가진 사람이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그 좁은 문을 나오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좁은 길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결국 그 악한 자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넓은 문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그 길에 있는 창녀들의 옷을 벗겨 차례차례 칼로 베어 죽이며 갈림길에 앉아있는 그 가족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살륙을 위해 날카롭게 마광된 그 칼을 보고 무서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가려다 멈추고 갈림길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가만히 서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맞아 죽음을 당했다. 이제 영화가 끝난 후 목자를 찾아갔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사막과 갈림길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길로 가려다 멈추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았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가족도 그곳에 가만히 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죽음을 당했다.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은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가고 싶어도 스스로 멈추었다. 또한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처럼 그의 살과 피를 드리라 하면 죽음이 두려워 그것도 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세상도 좇지 못하며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도 하지 못하여 그저 그 가운데 그대로 주저앉아있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시대가운데 마지막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믿는다고 말하면서 한 발은 그리스도께 두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는 자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첫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즉 주님과 세상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그 뜻과 거룩한 육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대해 마음이 뜨거운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 그 좁은 문 앞에서 그들은 이렇게 행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있을 앞날의 일이니 그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십자가 군사들이 그 마지막 영적전쟁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외침이니 그들은 바로 이 말을 하며 피를 흘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그 뜨거운 피가 자기의 말한 것들을 정확히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일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하신 나라인 셋째 하늘도 또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올라가신 그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도 또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원수가 갇혀있는 이 첫째 하늘도 또한 그 세 하늘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말씀에 순종해 창조한 종들도 모두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셨으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창조를 계획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그런데 거룩하신 영께서는 창조의 근본이라는 말을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며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을 향하여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하셨는지 그 호칭을 통해 알 수 있다. 한 가지 비유로서 마지막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집에 생명이 있는 나무가 있었고 또한 그 옆에는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나무는 그 생명이 유지되려면 또한 나중에 많은 열매를 얻으려면 늘 물을 주어야 하며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야 하며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나무에는 많은 땀과 애씀이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옆에 생명이 없는 나무는 물이 필요 없고 가지를 자를 필요가 없고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죽은 나무에는 땀과 애씀이 필요 없되 나중에 당연히 열매도 없다. 그런데 그 집에 거하는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오히려 생명 없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그 집의 사람들은 생명 없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그것을 위해 땀 흘리며 애를 썼으되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열매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수고는 아무런 소용없는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한편 그들의 옆집에도 역시 생명이 있는 나무와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생명 있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수고하며 애쓴 그 집 사람들은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것을 함께 먹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니 생명을 좇아간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고자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생명이 있는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한 마지막 날에는 그 생명을 다 거두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고 또한 자신의 그 거룩한 피로 자신과 같은 생명이 있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생명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들이 생명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땀 흘리며 애쓰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통해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이제는 썩어질 것을 내려놓고 사망으로 들어가는 세상에서 나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땀 흘리며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생명이 있는 것은 버리고 오히려 생명이 없는 것을 더욱 사랑하고 생명 없는 것을 더 취한다. 이방인들만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생명 있는 것은 버리고 생명 없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이렇게 행하고 있다.

 

우선 목자는 불신자들에게는 회개와 거듭남의 은혜를 전하고 거듭난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인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사람이 많이 모이며 건물을 크게 넓히는 것으로 가득하되 만일 회개와 고난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자들은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해도 무엇을 해도 오직 그 목적을 마음에 두고 행한다. 심지어 주님이 곧 오실 때가 되었으니 신령한 신부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으는 자들도 있다. 목자들이 이러하니 그들의 밑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양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는다며 육의 필요와 욕심을 얻고자 또한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깊은 바다로 들어가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둔 자들이 말씀을 듣고도 그 마음을 돌이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또한 마음과 육에도 기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가서 각각 자신이 원하는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되 다시는 그들의 예물과 우상들로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과 장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즉 주님과 세상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아버지께로 나와 예물을 드리며 행위를 드리며 그 대가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우상을 달라고 구하고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하니 믿는 자들이 생명 있는 아버지의 일을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하며 또한 그들의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은 오히려 세상의 물결에 타 손을 내밀어 봉투만 내밀고 건물만 짓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교회시대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아셨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누가 수고를 하겠는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창조의 근본이라며 말씀을 시작하신 것이요 또한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진리를 배설물처럼 여기는 마지막 교회시대라 하여도 이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택하신 교회는 그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소망하며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아버지의 일에 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자들과 갈급한 자들은 어디에 거한다 하여도 택하신 교회를 통해 말씀을 허락하시니 신령한 교회도 그들과 함께 생명 있는 일에 땀 흘리며 애를 쓰게 된다. 이러하니 주님께서는 생명 있는 나무에 가지로서 붙어있는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시므로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중에 거룩한 열매를 맺은 만큼의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 생명나무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24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어떤 왕이 자기가 낳은 자녀들에게 끝없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여행시켜줄 멋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들을 위하여 높은 산에다 아름다운 왕궁을 지었다. 그런데 그 산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곧 왕의 자녀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고요하고 별들은 반짝이고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고 땅은 묵묵히 기다렸다. 또한 새들은 지저귀고 백성들은 그 산과 왕궁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러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왕의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쌍둥이 두 명과 여자쌍둥이 두 명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그 순간에 왕의 자녀들이 태어나길 기다리던 그 산 주위의 모든 만물들은 다 함께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이제 왕은 자기이름의 성을 따서 첫째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의 아기들은 그 첫째 아들 이름의 성을 따서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왕의 눈에는 새로 태어난 그 아기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귀여웠으니 그 다섯이 다섯 명으로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한 명으로만 보였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다섯 명을 한꺼번에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지어서 그들에게 붙여주었다. 또한 아기들이 거하는 왕궁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러다 어느덧 그 아기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왕은 그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계획했던 대로 신나는 우주여행을 시켜주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둘째 하늘과 함께 이 첫째 하늘로 내려와 택하신 자들과 정결한 자들을 자신의 거룩한 한 몸을 부르신다.그러므로 그때가 바로 모든 만물이 고대하던 때이니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들이 나타나는 때요 또한 우주적인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품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미리 지어놓았던 이름을 붙여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도 새롭게 태어나는 그 우주적인 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여주신다. 또한 새 예루살렘성에서는 아들딸들이 모였기에 자녀들이 모인 그 새로운 장소에도 역시 이름을 주신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한 사람에게 이름을 주시면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적인 새 한 사람과 아버지의 자녀들을 이끌고 시온산에 있는 새 예루살렘성의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께로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우주적인 새 한 사람이 모였을 때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아버지의 자녀들만 모였어도 그들에게 영광을 받으신다.

그렇다면 우주적인 새 한 사람과 아버지의 자녀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주적인 새 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모든 자들을 의미하니 유대인의 장자들과 유대인의 그리스도의 몸과 더불어 이방인의 장자들과 이방인의 그리스도의 몸을 뜻한다. 한편 아버지의 자녀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같은 장자들만을 뜻하니 유대인의 아들들과 이방인의 딸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새 한 사람은 백성을 빼놓은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로서 자신을 말씀과 십자가의 피로 낳으신 생명의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한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신다.

이처럼 우주적인 새 한 사람과 또한 아버지의 아들딸이 아버지 앞에 나갔을 때는 참으로 아버지의 그 얼굴과 영광을 가까이서 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그 영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 있을 때 흑암에 거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안에 거하므로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을 이루었기 때문이요 또한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셋째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자들 외에 백성들은 지성소와 성소로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백성들은 그 우주적인 새 한 사람의 얼굴과 영광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아버지의 아들딸들과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갈 때 아버지의 그 영광이 어떠한가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7일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한 나라의 왕이 자기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의 중턱에다 대궐 같은 집 한 채를 지었다. 그리고 그 집의 바로 옆에다 그와 같은 집을 또 한 채 짓고 계속 지어갔다. 그랬더니 대궐 같은 집들이 둘러싼 그 산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멀리서 볼 때는 거대한 성으로 보였다. 그 왕은 또한 그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궁궐 같은 집들을 지었으며 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의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친 자들에게는 저 산의 중턱에 있는 대궐가운데 하나를 주겠노라. 그리고 나의 아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노라.” 왕의 말을 들은 후 왕에게 은혜를 받은 여섯 명이 그 왕의 아들에게 나와 자신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며 왕과 약속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그들에게 전투기를 조종하며 적군과 용감하게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기간 동안 그들과 또한 그들의 가족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대주었다. 하지만 그 여섯 명은 모든 것을 다 배운 후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걸었으니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다 사람들을 많이 태우고 멋진 여행지로 날아다니는 비행기회사로 옮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곳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며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네 번째 사람은 다른 일을 하겠다며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다섯 번째 사람은 용감히 싸우다 죽었다. 또한 다른 비행기회사로 떠났던 세 사람 가운데 첫 번째 사람도 전쟁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싸우다 죽었다. 그리하여 죽기까지 싸워 이긴 첫 번째 사람과 다섯 번째 사람은 자신이 처음에 왕과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떠났던 사람 중 두 번째 사람과 세 번째 사람은 다시 돌아오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한편 여섯 번째 사람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는 싶었으나 공중에서 싸우다 죽는 것이 매우 두려웠다. 이에 그 왕의 아들은 그에게 그 일을 강제로 시키지 않고 그대신 비행기의 안과 밖을 깨끗하게 닦으라고 명했다. 이제 전쟁이 다 끝나갈 때쯤이 되자 왕의 아들은 그곳을 떠나서 두려워하던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에게 둘 중에 오직 하나만 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은 어느 때는 여기서 일하고 어느 때는 저기서 일하다 결국 나라를 위해 싸우겠노라고 자신의 마음을 정했으나 두려웠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그에게 창고를 청소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곳에 들어간 것은 그 왕과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요 오직 돈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어느덧 모든 전쟁이 다 끝나자 그 왕은 약속을 지킨 자들에게는 대궐 같은 집들에서 살게 했고 약속을 지키고자 했으나 죽음이 두려워 비행기 닦는 일을 했던 자들에게는 궁궐 같은 집들을 주었고 뒤늦게 마음을 정하고 창고를 청소한 자들에게는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한 채씩 나눠줬다.

이와 같이 기둥이라는 것은 집의 기초이되 새 예루살렘성전의 기둥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아들들과 딸들이 거하는 처소를 뜻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처소들이 계속적으로 뭉쳐서 거룩한 새 예루살렘성을 이룬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전과 후에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선악의 죄와 또한 세상과 죽기까지 싸워 이기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들이 그 거룩한 성전의 기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대에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면 그때에는 자기의 생각이 없고 자기의 실수가 없고 자기의 죄악이 없다. 오직 의로운 생각만하며 완전하고 거룩한 말과 행위만을 한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로 올라갔을 때 그 안에 사는 자들 가운데는 아버지께로부터 쫓겨나는 자가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또한 자기가 받은 상급은 공의롭고 정직하게 은혜로 받은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아니하고 늘 자신을 낮추며 서로를 사랑한다.

또한 아버지는 완전하시니 아들을 통하여 행하신 그 생명의 심판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한 번 새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온 자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되고 한 번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게 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 영원히 거하게 되고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거룩을 이룬 백성도 한 번 백성이 되면 영원히 백성으로서 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자기의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구하던 삯꾼목자들과 거짓선지자들도 한 번 어두운 곳과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면 그들도 거기서 원망과 고통가운데서 영원히 거하게 된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0일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어떤 왕이 달리기경주를 열고 그 길을 끝까지 달린 자에게 영광스런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 끝까지 달릴 수 있는지 또한 그 면류관이 얼마나 좋은지 백성들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그래서 그 아들은 달리려고 하는데 북쪽에서 불꽃을 파는 사람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게다가 이 길의 끝에서는 당신의 목숨을 잃어야 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절만하면 목숨을 잃지 않고도 이 불꽃들이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소!” 그러나 그 왕의 아들은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달려 왕의 말을 이루었다. 그것을 보자 자신도 달리겠다며 두 사람이 출발선으로 나왔다. 이에 왕의 아들은 너희가 만일 나와 똑같은 면류관을 쓰기원한다면 누구도 그것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경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인지 그 의미를 몰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 아들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희가 만일 이 경기에 마음을 다하며 또한 면류관을 마음에 잘 간직한다면 끝까지 달리겠으니 그것은 누구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한 것이요 반대의 경우라면 끝까지 달리지 못하겠으니 그것은 누군가가 그 면류관을 빼앗은 것이니라. 또한 달리는 중에는 비록 고난이 있으나 경기가 끝난 후에는 면류관을 쓰겠으니 큰 영광을 받게 됨을 잘 기억하여라.” 이제 경기가 시작되자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열심히 달리는 그들을 응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때 그 불꽃장사가 다시 북방에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오? 그러니 당신들은 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당신들은 지금 영광은커녕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니오. 또한 이 길의 끝에 목숨을 잃게 되니 어찌 그것을 보고 영광스럽다 하리요?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길을 걸으시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왕이 해준 말과 또한 왕의 아들이 보여준 것을 떠올리니 그 불꽃장사의 말이 거짓임을 깨달았다.그러므로 그는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 길을 달렸다. 그리고 그 왕과 아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거절하고 비웃고 조롱한다 해도 항상 그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그와 함께했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영광의 길을 달리고 있는 자는 영광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의 말이 옳게 들렸다. 그러므로 그는 그 불꽃장사에게 어떻게 해야 영광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을 밝히는 휘황찬란한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소? 그러므로 당신이 바로 그 불꽃처럼 된다는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만일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길에서 당신이 병에 걸려 눕는다 해도 내가 당신을 일으켜 그 길을 끝까지 걷게 해줄 것이요.” 그 불꽃장사의 말은 그에게 참 아름답게 들렸다. 그러므로 그는 그대로 했고 불꽃장사는 불꽃모양의 면류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의 말을 듣고 좋아하며 높여주며 그를 따랐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참 좋으니 경주하는 그 길을 벗어나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것을 쓰고 다녔다. 이제 경기가 끝나자 왕은 자기의 약속을 믿고 자기의 아들을 보고 끝까지 달린 첫 번째 사람에게는 자기의 아들과 같은 면류관을 씌워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항상 쓰고 다니니 수많은 백성들이 그 면류관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따랐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의 머리 위에 있던 면류관은 경기가 끝날 때가 되자 연기처럼 사라지다 시작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완전히 없어졌다.게다가 그 왕은 어두운 곳으로 그를 쫓아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대에서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신의 십자가로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셨으며 또한 믿는 자들도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십자가로 그 길을 내셨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고 소망하는 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오직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 구원의 길을 걸으며 거룩을 이룬 자들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에 기록된 면류관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머리에 쓰는 그런 면류관이 아니다. 또한 머리에 쓰는 것은 잠시뿐이되 아버지께서 씌워주시는 면류관은 영원히 벗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자녀가 되면 그들은 다 그리스도처럼 남성이 되었기에 남자의 표시가 곧 그의 영원한 면류관이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요 누구에게는 의의 면류관이되 그가 말씀을 따라 의롭게 된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을 자기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내어 놓은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아버지께서 주신다. 또한 그 면류관은 똑같은 것이니 누가 높고 누가 낮은 것이 없다. 그 이유는 높으신 분은 오직 한 분 아버지시오 아버지께로 면류관을 받아쓴 자들은 아버지의 동일한 자녀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믿음을 버리므로 그 면류관을 빼앗기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교회를 세우겠다 하되 교회의 뜻도 모르고 또한 교회의 비밀도 모른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삼 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려 하시되 그들은 오로지 베드로를 생각하며 모세를 생각하니 베드로처럼 예루살렘교회의 큰 무리 앞에서 설교하겠노라 모세같이 나의 민족을 이끌겠노라 꿈을 꾼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고 했으되 그들은 목숨을 숨기며 하니 어찌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는가?

이러하니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아버지를 높이기보다 세상의 영광을 꿈꾸며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는 그들과 과연 누가 함께 거하겠는가? 그러므로 원수는 그 어리석은 자들에게 들어가 세상과 교회는 합쳐야 사람이 더욱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장사를 하며 나는 이것을 주고 너는 이것을 내놓아라 건물을 크고 넓게 짓자 하고 있으니 그들이 이제는 자신만이 아니요 모이는 장소까지 참으로 세상 것으로 더럽히며 또한 참되지 아니한 복음을 서로 사고팔고 주고받으며 오직 돈으로 모든 일을 이루어가고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오직 애통뿐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자들에게 몰려드나. 그것은 원수가 사람들에게 이미 심어놓은 뿌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안전하고 쉽게 교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도움을 받기 원하는 자들이 원수가 세상의 위에다 올려놓은 목자들에게 몰려든다. 그리고 그의 세상적인 위치와 육적인 모습을 보고는 부러워하되 그 영혼의 썩어짐은 보지 못한다. 이러하니 고난은커녕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그들이 어찌 그 생명과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리요? 이렇게 말씀을 이용해 자기의 뜻과 영광을 구한 자들은 오히려 어두운 곳이나 멸망의 불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미 불꽃면류관을 쓰고 있는 자들도 또한 연기로 변할 그 면류관을 받아쓰기 위해 달리고 있는 자들도 또한 그들을 따르고 있는 양들도 그 길에서 속히 돌이킬 때 생명의 유익이 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3일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짐승보다 악한 자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 큰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고통과 두려움가운데서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왕은 의롭고 용감했으니 왕궁에서 나와 자기의 목숨을 걸고 가장 앞에서 용감히 싸워 그 악한 자를 물리쳤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성들이 기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하는도다. 하지만 그 일을 마친 후에는 너희들을 데리러 오겠으니 너희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있으라.” 백성들은 왕의 말을 듣자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고 그 왕은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는 큰 전쟁이 끝난 후 오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백성들은 저 악한 자는 얼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중간에 찾아와 자기가 왕처럼 행세하며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다. 이에 왕은 누구든 자기의 목숨을 바쳐 나를 사랑하는 자와 세상의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며 기다리는 자는 자기가 왕이라고 하는 자들이 나타나도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백성들은 왕의 말을 듣고 그것 말고 눈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므로 왕은 악한 자와 싸울 때 상처 난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떠났다. 이제 백성들은 다시 오는 왕을 맞이하고자 필요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힘들 때마다 자신이 받은 그 은혜를 기억하며 오래 참고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덧 6년이 마쳐질 때가 되자 어떤 악한 자가 백성들을 위해 길을 떠난 그 왕의 모습처럼 꾸미고 와서 말하길 저 불의한 자들을 신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며 날카롭지 않은 칼로 큰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때 왕을 사랑하며 기다리던 자들이 그를 가만히 보니 그는 큰 전쟁이 끝나고 오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큰 전쟁을 일으키되 그 칼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그 가짜 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 악한 자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너희의 왕은 큰 전쟁이 끝나면 오겠다고 했으나 전쟁이 끝났어도 오지 않고 있노라. 그러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는 너희들에게 거짓말한 것이니라. 하지만 나는 너희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내가 참된 왕이니라.” 하지만 왕을 사랑하며 기다리던 자들은 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 그가 가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악한 자는 자신을 가짜라고 밝히는 자들을 모두다 잡아서 잔인하게 피 흘려 죽였다. 그러나 남아있던 백성들은 죽음이 두려웠으니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왕을 목숨 바쳐 사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자기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악한 자가 이끌어가는 세상이 좋았으니 그들은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인 그 악한 자를 자기의 왕이라면서 받들어 섬겼다. 그러나 그 왕은 가짜였으니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 그 왕은 그로부터 1년 후 짐승같이 악한 자가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일으킨 큰 전쟁이 끝난 후에야 돌아와 자신이 떠날 때 한 약속들을 다 지켰다.

이와 같이 원수는 아버지의 택함 받은 자들도 미혹해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이끌고자 빌라델비아의 믿는 자들을 꼬였던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빌라델비아교회시대에 대환난을 일으킨 후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했던 그 일이다. 그리하여 당시 원수는 그 7년 대환난을 이용해 자신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들어가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칼로 목을 베며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두 쪽으로 나누며 또한 여자들을 불에 태우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바울과 그 이전의 택함 받은 교회들이 자신의 일생가운데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참고 기다리며 그 사명을 이루고자 애쓴 것처럼 빌라델비아의 택함 받은 교회들도 그와 같았다. 그러므로 원수가 비록 라오디게아교회의 전인 자신의 교회시대에 7년 대환난을 선포했으나 그들은 그것이 마지막 7년 대환난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아버지와 아들께 보이므로 그 생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시험을 이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원수는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것이 바로 7년 대환난이요 환난이 끝났는데도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며 어디 있기에 오지를 않느냐고 물었다. 즉 자신의 꼬임을 통해 재림을 가짜라고 증명하며 또한 참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리스도를 부인했으니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에서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배반했으며 또한 교회가 다른 신들과 합하며 또한 세상과 합하여 자신의 목숨을 건지려고 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이 마지막 때까지도 내려오고 있으니 그들은 그리스도는 이미 공중에 재림했다고 말하며 인내의 말씀을 지키지는 않고 오직 날짜만 계산하고 있으니 그들도 결국 전통과 동일한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원수는 마지막 때에도 동일한 꼬임을 준비했다. 그러므로 사데교회에서 씨앗을 받은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라오디게아교회를 준비하는 시기로서 그들의 사명들을 다 감당하고 십자가의 복음과 진리를 라오디게아교회로 전했다. 그러므로 빌라델비아교회에서 씨앗을 받은 교회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알고 깨어서 오직 깨끗한 신부로 다짐하며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정결한 그들이 주님의 공중재림 때 들림을 받아 시험의 때를 면하고 남는 자들은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살과 피를 드리고 올라가므로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에서도 빌라델비아교회의 씨앗을 받지 않은 교회들은 이미 세상과 타협했으며 또한 다른 종교와 타협한 종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계시록에 이미 원수의 그 꼬임을 알리셨어도 많은 자들이 가짜그리스도가 나오기 전에 올라와 예비하는 그 적그리스도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전쟁에서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그 후 짐승의 수를 받아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따르며 또한 썩어질 육과 원수가 이끄는 헛된 세상에 그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옳다는 자들과 세상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리시기 때문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7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유대인의 남자와 이방인의 여자 사이에서 나온 자들은 유대인이 아니되 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며 말과 행위를 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자칭유대인은 육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상징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하나님의 택한 민족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칭유대인이란 실제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민족과 사람이 아니되 스스로가 자신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민족과 사람으로 여기는 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대인과 동일한 말과 행위를 하되 그것은 오직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함이니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요 오로지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그 원수를 섬기는 자들이다.

 

자칭유대인은 빌라델비아 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나 이미 사데 교회와 초대교회에도 있었다. 또한 구약과 아브라함 때와 태초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많은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되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들어와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지는 않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그 가증한 우상을 얻기 위해 말하며 행하며 손을 벌려 구하므로 그곳을 더럽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이미 이루신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시고자 시대마다 자신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들을 택하신다. 그리고 사망을 향한 자칭유대인들 가운데 몇을 건져내시어 미리 남겨놓으신 그들에게 이끄신다.

 

그렇다면 시대마다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누가 어떻게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와 함께하게 되는가?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거룩에 애쓴 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가? 한 가지 비유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화려한 길을 걷다 늘 악한 자들의 창과 칼에 찔렸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받기 원했다. 또한 악한 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패와 이길 수 있는 칼을 얻고 싶었다. 한편 어떤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손을 벌렸으나 그 누구도 그를 불쌍히 여기거나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화려한 길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다 더 이상 그것을 먹고 싶지 않았다. 오직 깨끗한 음식을 얻어먹고 싶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세 번째로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밤에 늘 깨어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화려한 밤에 취해 잠자고 있었으니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밤에 깨어있는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세 사람은 십자모양의 불이 켜있는 건물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이 켜있는 건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에 그들은 저들도 나처럼 불쌍한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이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니 사람들이 흘리는 피를 닦아주거나 상처를 치료해주거나 방패와 칼을 주지는 않고 오히려 이것이 좋다며 그들을 더욱더 창과 칼로 찔렀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이 보니 그 일군들은 사람들에게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주지는 않고 오직 누룩을 넣어서 구운 빵만 주며 이것이 몸에 좋다고 했다. 또한 세 번째 사람이 보니 그곳 사람들은 밤이 되자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하게 잠을 자며 아무 일도 안 했다. 하지만 일군들은 그들을 깨우지 않고 오히려 밤에는 잘 자는 게 복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들의 말과 행위를 좋아했으며 사람들은 더 몰려들었다. 이에 그 세 사람은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자 흰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그들을 촛불이 켜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사람이 흘리는 피를 닦아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방패와 칼을 주었다. 두 번째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던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주었다. 세 번째 사람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늘 함께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모양의 불이 켜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촛불이 켜있는 곳의 사람들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세 사람도 또한 십자 불이 켜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도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확인하고자 하얀 책을 폈다. 그랬더니 세 사람은 십자 불이 켜있는 곳이 잘못되었고 촛불이 켜있는 곳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십자 불이 켜있는 건물에 거하는 사람들은 동일한 책을 보고도 그 반대로 깨달았다.

 

이와 같이 원수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세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자 하되 이 마지막 때에는 전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원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요하게 했으며 또한 자칭유대인들을 통해 육과 세상의 복음을 심어주므로 셋째 하늘의 소망을 그들의 마음에서 다 빼앗아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직 현재에 충실하되 그들 가운데서 살고자 하는 자와 갈급한 자와 깨어있는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참으로 복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다음과 같이 택하신 일곱 교회와 함께 하게하시니 그들이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므로 그 생명의 복에 이르기 때문이다.

 

우선 거짓된 교회에서는 항상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전통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날마다 바뀌며 전통은 한 시대마다 바뀐다. 그러므로 그들이 혼동되어 목자에게 가서 묻되 오늘은 이런 말 내일은 저런 말을 할 때 그들은 흩어진다. 그리고 말을 바꾸는 그 목자들을 믿지 못하니 또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니 참된 목자에게 간다. 이때 택함 받은 자들은 그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가르쳐주니 그들이 그 진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거짓교회는 늘 세상과 타협하기에 그들이 세상의 것들이 교회에 들어온 것을 보고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느 시점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되 그 목자들은 이것이 말씀이라고 하니 그들도 혼동되어 비 진리교회에서 나와 방황한다. 그러다 그들이 진리를 따르는 교회에 가서 그들이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 말씀에 순종하는 그 거룩한 모습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경우 그 시기는 언제인가? 큰 환난이 오기 전에 한민족에 환난이 오리니 남과 북이 전쟁을 일으키면 남쪽의 백성들은 남으로 행할 것이요 북쪽의 백성들은 북으로 간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아버지께서 이미 은혜를 베푸신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한곳으로 모인다. 이때 말씀을 전하는 자와 말씀의 기초가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전하니 은혜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것을 듣고 따른다. 그리하여 환난가운데서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큰 환난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입었으되 은혜를 벗는 자들은 거룩한 말씀과 행위를 듣고 보아도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갈 것이요 또한 다른 곳에서도 이미 은혜를 입은 자들은 진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0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어떤 왕자가 자신의 처소에서 늘 맛있고 좋은 잔치음식을 먹으며 기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왕궁 높은 곳에서 성밖에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니 백성들은 자신과는 달리 늘 맛없고 안 좋은 음식을 먹거나 굶고 있었다. 또한 마을을 불의하고 악하게 다스리는 자로 인하여 항상 고통을 받으며 두려움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에는 기쁨이나 평화가 없었다. 이에 그 왕자는 성밖으로 나가 불쌍하게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먹는 궁궐음식을 나눠주고 싶었다. 또한 불의하고 악한 왕과 싸워 이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왕자는 왕의 옷을 입은 채로는 백성들을 섬길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백성과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처럼 꾸민 후 왕궁을 나섰다. 왕자는 마을로 내려가 먼저 자신이 왕궁에서 가져온 그 맛있고 좋은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했으며 악한 자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 가운데 일곱 명이 왕자가 베푸는 은혜와 자비에 감사하며 그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그러므로 일곱 명은 늘 궁궐음식을 먹었으며 악한 자를 이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한 자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왕자를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자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일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가 백성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그 왕궁을 나온 목적은 오직 불쌍한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왕자는 악한 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과 일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갔다. 이에 악한 자는 그 왕자를 잡아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각목으로 때리기 시작했다.그러므로 왕자는 몸의 이곳 저곳이 찢겨져 피를 흘리다 결국에는 죽었다. 바로 그때 왕자를 따라다니던 일곱 명이 그 죽음을 보고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가 백성의 옷을 입고 그 좋은 왕궁에서 나온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여 자신들을 섬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왕을 통해 죽기까지 하는 겸손한 섬김을 받은 자신도 그와 같이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늘 왕이 준 그 음식을 나눠주었으며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또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고 왕자를 따르는 자들과 그의 피를 나눈 진실한 형제자매가 되었다.그러므로 왕자를 본받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 그들의 마음에는 늘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게 임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의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이전 교회인 사데교회로부터 배웠던 그 말씀과 십자가의 믿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또한 그들은 말씀의 기초를 통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달았으며 그것을 이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겨있는 비밀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자기를 낮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거룩을 이루도록 섬기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배웠던 그 말씀과 믿음으로 돌아가자고 단지 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요 자신도 어느 정도로 낮아져 다른 지체들을 섬겨야 할지를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보고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서로 그리스도안에서 진실한 형제자매가 되었으며 서로가 누가 높고 낮다며 다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는 다른 지체를 오직 그리스도를 대하듯 받들어 섬기므로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말과 행위를 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 가운데 비록 큰 표적이나 기적은 없었으나 오직 말씀 한 가지를 붙들고 의지하며 그 십자가의 마지막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본받아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낮추어 다른 자들을 섬기는 그들에게 자신이 약속하신 은혜와 평화를 늘 아들을 통해 내려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로 받은 말씀을 지킨 그들은 마음과 영혼에 참된 평안을 얻었으되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평안했다. 즉 그들은 환난의 끝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오히려 죽기까지 이기는 그 순간에도 평안했다. 그리하여 거룩한 육의 생명을 입고 부활한 그들이 지금도 지극히 높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평안하게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13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어떤 나라에 백성들이 많았기에 그 나라의 왕은 자기의 밑에 있는 6명의 신하를 통하여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또한 그 왕에게는 자신의 결혼식을 위한 예식장과 신하들이 함께 모여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궁이 있었으니 그 안에는 준비할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왕은 모든 일들을 빨리 마치고 싶었으나 예식장과 왕궁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백성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왕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왕은 문이 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이라도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으나 저 백성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노라.” 그러나 신하들은 백성들이 일할 도구와 재료들을 그 왕이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두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왕이 문을 열고 명령을 내리면 자신들이 왕의 뜻과 계획에 따라 백성들을 지휘할 것이요 백성들은 자신들의 명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백성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며 궁금해했다. 이에 왕은 신하들의 궁금함을 알고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저 백성들은 아직까지 혈기가 있노라. 그러므로 그들은 일하면서 자기의 뜻대로 안되면 자신과 함께 일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서로 싸울 것이니라. 또한 저들은 아직도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지 못했노라. 그러므로 그들은 나의 일을 하되 순수한 마음으로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애쓸 것이니라. 또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때는 억지로 나의 말에 따라 움직이겠으나 아무도 없을 때는 나의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할 것이니라. 저들은 또한 아직까지 의롭지 않노라.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나의 일을 불의하게 행할 것이요 일하면서 불의를 범할 것이니라. 그러나 나는 나의 모든 백성들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행하기 전에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래야 그들이 나의 일을 함께 이루어가며 서로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의로움을 유지할 것이니라.” 신하들은 왕의 말을 듣자 그것이 참으로 의로운 뜻과 계획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기다렸다. 그리하여 한 세월이 흐른 후 백성들은 드디어 왕의 일을 할 준비가 되었다. 이에 왕은 비로소 자신이 가진 열쇠로 예식장과 왕궁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떤 신하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데리고 예식장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일을 시키며 왕의 혼인예식과 혼인잔치를 준비했고 어떤 신하들은 왕의 입성과 또한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백성들을 왕궁으로 데리고 들어가 필요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왕을 위해 일하면서 조금도 화를 내거나 서로 싸우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하지도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주어지든 오직 서로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정의롭게 왕의 일을 이루어갔다. 그리하여 왕의 혼인예식과 혼인잔치와 왕궁에서의 다스림이 오직 왕의 의로운 뜻과 계획대로 차질 없이 준비되었다.

 

이처럼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그가 그곳의 주인이라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거룩을 다 이루고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을 두루 다니며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모든 하늘들의 주인이 되신다. 그리고 왕은 백성에게 주인은 종에게 형은 동생에게 자신의 일을 허락하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같은 거룩한 몸을 입은 자들에게 자신이 가진 그 셋째 하늘의 열쇠를 주신다.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두다 자신의 그 고난에 참예하므로 자신의 거룩한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낙원으로 올라가실 때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자 즉 공중혼인잔치와 천년왕국에서의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다스림을 위해 둘째 하늘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처럼 질서가운데 계시니 자신과 같은 영광을 입은 형제자매들과 자신의 신령한 몸을 통해 그것들을 준비하신다. 마찬가지로 장자와 교회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통해 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온전케 되는 과정가운데 있는 영혼들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 거룩을 이루면 비로소 셋째 하늘을 여는 열쇠를 자신의 몸을 이룬 자들에게 주신다. 그러면 그들은 과정가운데 있는 자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예비할 수 있도록 누구는 둘째 하늘에서 누구는 셋째 하늘에서 자신의 주인을 맞이하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다시 오실 때가 되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천국에서 다스릴 준비가 이미 다 마쳐진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이 땅에서 왕 노릇을 하신 후에 그 천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셋째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에도 이미 모든 것이 다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의 몸을 이룬 자들은 오직 다스릴 뿐이요 온전케 된 자들이 자신의 왕과 제사장들의 명에 따라 모든 것을 의롭고 거룩하게 준비하며 또한 온전케 된 백성으로서 자기의 왕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이 말씀을 일곱 교회가운데 오직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시대에 그 문을 열어서 모든 것을 의롭고 거룩하게 준비하도록 하시되 그 준비가 끝난 후에는 다시 닫으신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6일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MS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한글

2월 27일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A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건하고 엄숙하게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그 교회교인들의 마음은 오직 썩어질 육의 부요와 세상의 헛된 영광에 있었다. 그러므로 만찬이 끝나자마자 돈과 세상의 좋은 것들을 얻고자 흩어져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C교회는 지체들의 수가 몇 명 되지는 않아도 주님의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오직 아들의 십자가로 은혜를 베푸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순결한 마음으로 그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신 후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거룩에 애썼다. 한편 B교회는 직분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그가 돈이 얼마나 있나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나를 본 후 마지막으로 목회자의 방침을 따를 것인가를 확인했다. 그러나 살과 피를 더럽히지 않고 있던 C교회는 그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고 따르고 있는지 또한 가정을 자신의 의와 혈기로 이끄는지 아님 말씀으로 다스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세웠다. 한편 D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모여서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던 C교회는 모일 때마다 오직 자신과 지체들의 거룩을 이루고자 마음과 힘을 다해 구했다. 한편 E교회는 진리를 몰라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할 때 아무 곳에서나 아무에게나 전도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난 후에는 시상식을 해서 많이 전도한 자를 높여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은혜로 입은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는 C교회는 공동체가 하나되어 한 영혼을 위해 아버지께로 구한 뒤 진리를 배운 자들 가운데 은사 받은 자가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전했다. 그리고 추수 후에는 지체들이 다 함께 모여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감사의 시를 그 입술로 선포했다. 한편 F교회의 목자는 설교시간마다 교인들에게 육과 세상의 복 받은 자를 소개한 후 그가 어떻게 해서 그 복을 얻게 되었는지 알렸으며 또한 자신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전했다. 그러나 자신과 지체들을 더럽히지 않고 있는 C교회의 목자는 입을 열 때마다 진리와 십자가의 빛을 전하므로 양들을 오직 아버지의 뜻으로 인도했다. 한편 G교회는 각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니거나 노엽게 했고 가족들은 각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힘을 다했다. 그리고 아내들은 자신이 남편을 이리저리 이끌다 교회로 모였을 때도 입을 열었다. 그러나 C교회에 거하는 부모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아닌 생명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쳤고 온 가족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주님의 일을 했다. 그리고 아내들은 가정에서 남자에게 조용히 순종하며 배우다 공동체로 모였을 때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H교회에 다니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했으나 재산을 깊은 곳에 숨기고 대신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꼬박꼬박하며 그것이 더 늘어나길 원했다. 또한 늘 미소 지으며 입술로는 우리는 형제자매요 사랑한다고 말하되 속으로는 자신을 다른 자들보다 높였다. 그러나 C교회의 지체들은 썩어질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거룩하신 영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에 내어 놓고 교회에서 필요한 만큼만 얻어다 사용하므로 모두가 공평해졌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며 입술로만이 아니요 참으로 형제자매가 되어 서로 자신을 낮췄다. 그런데 어떤 두 사람이 A B D E F G H교회들을 두루 다니며 지켜보다 이것이 아니다 싶은 마음을 가지고 참된 목자와 참된 양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들은 드디어 C교회를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기뻐하며 C교회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했으니 자신도 가족도 점점 깨끗해졌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그들과 하나되려면 자신도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돌이키며 자신도 그들처럼 순종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함께하는 교회로 들어가지 못했다. 한편 A B D E F G H교회의 목자와 양들은 성경이 아닌 전통과 세상의 기준으로 교회를 판단했다. 그러므로 목자로서 학업이 아주 높은 자신은 그 도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되 C교회의 목자들은 학업이 낮으니 어떻게 도를 깨닫겠냐고 생각했다. 또한 말씀에는 하나되라고 하였으되 어찌하여 C교회는 분리되느냐고 따졌다. 또한 우리는 모든 것이 항상 풍성하여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 왔으되 저들은 부족하니 아버지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옷을 더럽힌 자들이 오히려 더럽히지 않고 있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했다.

     이와 같이 사데 교회시대의 몇 명은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키므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를 더럽히지 아니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께서 각 교회시대에 아들의 십자가와 피로 세우신 일곱 교회도 마찬가지이니 이 마지막 교회시대의 택함 받은 일곱 교회도 역시 그의 거룩한 것을 더럽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죄와 또한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켜 아들의 십자가 아래 모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 그들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께로 택함 받은 교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택하신 일곱 교회를 이 세상의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있다 해도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썩어질 헛된 것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마지막 순간에 그 자리를 피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원하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이끄시니 그들은 택함 받은 교회에서 주님을 위해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거듭날 때 은혜로 받은 그것을 끝까지 깨끗하게 지킨 그들에게 흰 옷을 지어 입히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옷을 입은 자들과 함께 천년왕국과 셋째 하늘을 두루 다니며 그들로 하여금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로 올라갔을 때는 새 예루살렘성안에서 입는 옷이 있고 아들과 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만찬을 할 때 입는 옷도 있다. 또한 예루살렘성의 밖으로 나갈 때 입는 옷이 있고 성소에서 아버지의 계명을 받을 때 입는 옷도 있다. 또한 자신의 거하는 처소에서 입는 옷이 있고 시온 산에 올라가 다른 곳으로 갈 때에 입는 옷도 있다.또한 모든 장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서 계신 그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때 입는 옷도 있다.

     하지만 흰 옷이라 하여도 모든 옷들의 그 흰 정도가 다 똑같지는 않다.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자신의 거룩을 완성한 만큼 그 옷이 희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흰 옷보다 더 하얀 옷은 없을 것이요 또한 그 흰 옷이 더럽혀지지도 아니할 것이니 바로 그 옷이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며 거할 수 있는 옷이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20일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사데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이 받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섬기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을 살펴보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아버지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유대인들에게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메시아가 와서 율법과 계명을 지킨 자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 다시 살리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율법과 계명의 여러 조항에 담긴 기본정신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며 또한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되 생명의 약속은 오직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믿은 선지자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자 거룩에 애썼으며 백성들에게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돌이켜 함께 모여 거룩에 애쓰라고 선포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피 흘려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그 정신과 약속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던 것은 성전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약속을 이루는데 있지 않고 오직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성전에서 제사 드리며 메시아를 선포했으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고자 애쓰지 않고 오직 마음 없는 행위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구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메시아가 왔을 때 약속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여호와를 믿는다며 자신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유전과 전통을 따른 그들은 죽음으로 그 정신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선지자들을 잡아 피 흘렸으며 나중에는 그리스도도 그와 같이 죽였다.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마음과 목숨을 다해야만 지킬 수 있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모세의 신령한 율법과 선지자들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이어져오다 중간에 마음 없이도 지킬 수 있는 유전과 전통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사데 교회시대 이전까지는 복음에는 오직 십자가복음만 있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복음을 따랐으되 고난과 핍박을 원치 않는 자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러다 사데 교회에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복음이 나타났으니 그때부터 많은 자들이 중간에 생긴 그 복음을 따라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사람은 고난보다는 편안을 원하고 심지어 고난 없는 영광도 원한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시대에 나타난 그 복음은 이후의 교회시대에도 많은 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는 복음이 사대교회 이후의 교회시대로 계속 내려오게 된 것이요 이 마지막 때에는 그 복음이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그 행위의 복음과 함께 전통의 중심에 서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이루신 뜻을 땅에서도 이루시니 아들의 십자가로 세우신 복음을 자신이 택하신 일곱 교회의 그 피를 통하여 이어가시고 계신다. 즉 평화와 영광의 복음은 아들처럼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드려 화평을 이루는 자들을 통하여 이어져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 복음을 따르는 영혼들은 믿는 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영광스런 구원에 이른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들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를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고 죽었는데 왜 믿는 자들도 고난과 핍박을 받고 죽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육체에 채우도록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남겨놓으셨음을 믿지 않고 거부한다. 그러나 복음과 약속은 절대로 끊어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때까지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

당시 두 복음은 둘 다 똑같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외쳤고 또한 모여서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행위들도 동일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복음은 내가 십자가 앞에서 죽음으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았도다 하는 신앙고백과 함께 자신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해 살았다. 즉 자신도 또한 다른 영혼들도 그 생명의 약속을 얻도록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이용해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거룩에 애썼다. 그러나 많은 수가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그 복음을 따라가며 믿음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믿는다 하되 그리스도와 달리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는 자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복음을 따르는 자가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어느 교회시대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환난이 임박한 마지막 때에도 많은 자들이 입술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또한 따른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신다 말하되 늘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생명은 마음과 목숨을 바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그들이 만일 원래의 복음으로 돌이키지 못하면 결국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그리스도처럼 아버지께로 택하심을 받아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을 사망으로 넘겨주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들이 사데 교회시대부터 이렇게 잘못된 곳으로 가는 것을 보셨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자기의 사람들을 데려가고자 이 땅에 다시 내려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직 시간이 아니기에 그것을 허락하시지 아니하셨다. 그대신 믿음을 잃기 시작한 그들 가운데 오직 깨어있는 영혼들에게는 선물을 허락하셨으니 그 선물이 바로 그들에게 꿈이 되며 환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피를 흘릴까를 생각하며 각 교회시대의 끝에 다가오는 그 환난의 날들을 준비하며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교회시대의 끝에도 마찬가지이니 아버지께서는 오직 피를 붙들고 깨어있는 영혼들에게 그 선물들을 허락하시며 또한 그것을 사모할 자들은 사모하게 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3일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어떤 왕이 산에다 금으로 아름다운 왕궁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을 하는 다섯 명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 건축가들은 나무와 돌로 만든 집은 본적이 있으나 기초부터 지붕까지 모든 재료를 순금으로 만든 집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으니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 왕궁에서 살고 싶었다. 이에 그 왕은 건축가들의 마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무로 지어진 집을 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만일 이 왕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너희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나와 이 산에 올라와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나무집을 지어라. 그러면 너희가 내 말을 믿고 땀 흘려 완성시킨 그 나무집을 보고 그에 맞는 왕궁을 한 채씩 주겠노라. 또한 내가 너희에게 한 약속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알려라.그러면 그들도 내 약속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오직 나무를 가지고 집을 지을 것이니 그들에게도 그들이 흘린 땀만큼의 왕궁이 한 채씩 주어지겠노라.” 왕의 말이 끝나자 네 명의 건축가가 약속을 믿고 가장 먼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오직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왕이 한 약속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은 사람들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올라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나무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들이 건축가들에게 말하길 자신은 왕의 약속을 믿고 싶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이에 네 명의 건축가들은 나무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나와 이 산에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야만 완성시킬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말을 듣고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다섯 번째 건축가는 왕의 약속을 믿고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겠다고는 했으나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집을 짓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자신이 포기하지 못한 것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가만히 보니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모아서 함께 일하면 왕이 좋아하리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왕은 오직 믿는 사람을 기뻐하시니 나무집은 이미 지어졌다는 믿음과 또한 왕궁을 얻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또한 충성을 원하시니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가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리고 산에 올라왔을 때는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자신이 원하는 재료로 자신이 원하는 집을 열심히 지으십시오.” 이러한 말을 듣자 근심하며 돌아갔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평안이 임했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그의 말대로 열심히 행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다섯 번째 건축가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따라갈 수 없으니 그러다 마지막에 둘 다 얻지 못하겠노라. 그러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은 사람은 세상을 따라가며 그것을 얻을 것이되 나와 맺은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이니 나의 왕궁은 얻지 못할 것이라. 마찬가지로 나의 왕궁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내가 상 줄 것을 믿고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나무집을 지을 것이니 그는 반드시 내가 준비한 왕궁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그 건축자와 따르는 자들은 오늘은 자신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얻다가 내일은 왕궁도 얻으려는 그 어리석은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왕의 약속을 믿는다며 마음은 다른 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나무집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리하여 결국 왕은 믿음을 가지고 나무집을 완성시킨 자들에게는 왕궁을 나눠주었으나 믿는다며 나무집을 짓지 못한 자들에게는 지금이라도 집을 지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따라 늦게라도 집을 지은 자들에게는 백성들이 사는 모래집을 주었다.

 

이와 같이 인격체이신 아버지께서 인격체인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과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이니 사람이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구원의 생명에 이르는 것은 오직 거룩의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행함을 통해서다. 하지만 만일 믿음은 있되 행함이 없거나 혹은 마음과 믿음 없이 행하는 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온전치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도 아들도 자신을 시험하는 자에게는 역사하시지 않으시니 그들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약속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런데 사데 교회시대에 이렇게 자신을 믿는 자라고하며 행함을 보이지 않는 온전치 못한 자들이 있었다. 즉 십자가에서 몸소 거룩을 다 이루고 부활의 약속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되 자신이 부활할 것도 믿되 자신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믿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른다며 세상을 따라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약속과 부르심이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나오며 또한 아버지의 뜻에 마음과 믿음이 없이 어떻게 거룩을 이루어 그 생명에 이르리요? 그러므로 나는 믿는 자이니 거룩의 행함이 없어도 영광스런 약속된 자녀의 생명에 이르리라고 생각하던 자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이며 살게 된 자가 아니요 죽게 된 자였다.

 

한편 당시 교회의 인도자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자는 많되 참으로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교회의 목자들은 주님을 시험하는 자들에게 살아있는 믿음과 온전한 복음을 가르치기보다 그저 더 많은 자들이 모이기만을 원했으니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며 이렇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이라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기록되길 십자가의 법은 오직 자유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도 상관이 없고 사람의 도덕법도 필요 없고 오직 십자가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법은 자유이니 자유롭게 생각하며 행위하며 말하되 십자가에서 자유를 주셨으니 십자가 앞에 나와 자유를 얻고 다시금 세상으로 나가서 열심히 사십시오.”

     당신은 이렇게 비인격적이고 온전치 못한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리라 생각하는가 아님 사랑받으리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사람은 고난을 싫어하되 영광만 원하고 또한 육과 영을 세상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을 둘 다 붙들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당시에 ‘오직 믿음’이라는 가르침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했으니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믿는 자들의 안에 마음 없는 예배가 있었고 또한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종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은 귀신의 믿음이 내려와 마지막 때인 지금은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들림 받는다고 믿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거듭난 자들 가운데 세상에서도 살고자 하며 하늘나라에서도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세상에서 살고자 하면 하늘나라에서 죽고자 하고 하늘나라에서 살고자 하면 세상에서 죽고자 하라.”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6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람들이 바닷물 속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닷물에는 더러운 독이 퍼져있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에 그 나라의 왕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이렇게 말했다. “나와 맺은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을 지어주겠노라. 그런데 그 집은 왕이 사는 집이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니 나와 약속을 지킨 사람은 영원히 왕자와 공주가 되겠노라.” 왕의 말을 듣고 난 후 사람들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왕과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더러운 물속에서 나와 저 높은 산에 올라가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곧고 큰 나무를 한 그루 베어서 가지를 치고 껍질을 다 벗겨놓으면 된다고 했다. 이에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더러운 물에서 나와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고 큰 나무를 베기 시작했으나 나무가 하도 커서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왕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몸을 다해 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큰 나무를 완전히 베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는 일도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왕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의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했다. 그는 왕과 맺은 약속을 지키고자 이렇게 매일매일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결국 왕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왕도 그가 약속을 지킨 것을 보고 자신이 그와 맺었던 약속을 지켰다. 한편 두 번째 사람도 역시 산으로 올라가 곧고 큰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힘도 많이 들고 바닷물 속에 들어가 놀고도 싶었다. 그러므로 나무를 베다 다시 바다로 내려가서 놀았다. 그러다 잠시 후 왕이 한 약속이 생각나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그러나 곧고 큰 나무를 베려니 힘들었다. 그러므로 죽어 쓰러진 나무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그 일을 대충하고 다시 물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꼭 산에 올라가서 마음 없이 그 일을 꼬박꼬박 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바다에서 건져준 왕의 은혜를 생각하며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고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을 얻을 거야! 또한 높은 자리에 앉는 왕자와 공주가 될 거야!” 그러다 나중에 그는 아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왕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보고 자신도 그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그 약속을 지켰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생명의 약속이 담긴 율법과 계명을 자신이 택하신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민족에게 주셨다. 그런데 율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야만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전의 율법시대에는 세상에서 나와 거룩에 애쓴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순종한 자들만이 그것을 지켰다. 그리고 지켰기에 아버지의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여 그 생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일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여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다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들은 그 생명의 약속을 얻지 못했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후로는 십자가로 율법과 계명을 이룬 아들의 그 은혜를 유대인만이 아니요 다른 모든 이방민족들에게도 주셨다. 그런데 은혜라는 것도 율법처럼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야만 유지되며 더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도 거듭난 후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이 은혜와 진리에 순종할 수 있다. 그리하여 흑암에서 나와 은혜 안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된 영혼들이 아버지의 약속대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듭나므로 비록 그 약속을 얻었다 할지라도 육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은혜와 진리를 따르지도 순종치도 못하니 첫사랑을 잃은 자들은 영광스런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이 없어도 심지어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도 말과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없이도 또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히려 육과 세상에 두고도 여러 가지 거룩한 행위들을 행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음은 세상에 있으나 주일이 되면 꼬박꼬박 아버지의 앞에 나와 십일조도하고 기도도하고 찬송도하며 예배를 드렸고 그들의 믿음은 이방인처럼 그저 육과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 없는 행위들이 지속되다 보니 그들은 그런 행위가 곧 율법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과 믿음은 그 속에 없으되 오직 행위로 거룩한 구원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이루어갔다.

사람은 또한 마음 없는 행위를 억지로 하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다 그곳을 떠난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함께 주신 율법과 새계명을 아예 없애는 운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어떤 자들은 믿음과 행위는 별도라며 또한 누구나 믿음으로 행하라며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또한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며 그들의 행위는 죄악으로 가게 두기도 했다. 또한 육체는 세상의 쾌락을 즐기되 입으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나는 지금 죄악에 있더라도 아버지나라의 아들딸이 되겠노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신 율법의 근본정신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는 것이요 또한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은혜와 함께 율법과 새계명을 받았으니 그가 만일 십자가로 율법과 계명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자신도 은혜와 진리를 따르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가 어찌 자신과 아버지와 다른 영혼들에게 범죄하리요? 그는 오직 거룩에 애쓰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세상을 이기게 된다. 그리고 이겼기에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30일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배를 타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자 밤에 항구를 떠났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라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 하나를 정해서 따라가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 사람들의 눈에 북쪽에 떠있는 한 별이 다른 별보다 유난히 더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그 별은 또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저 별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며 그 별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 별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사람들이 가야 할 반대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 별을 따라간 사람들은 마지막에 모두다 큰 소용돌이를 만나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것을 보자 남은 사람들 가운데 여덟 명은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별들 가운데 어떤 별이 자신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어떤 사람이 밤하늘에 나타나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희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는 해가 뜨는 아침이 되어야만 도착할 수 있노라. 하지만 아침이 다가오며 모든 별들이 빛을 잃지만 새벽에도 빛을 내는 별이 오직 하나가 있노라. 그러므로 밤하늘에 떠있는 저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오직 동쪽에 있는 별이 너희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겠노라.”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 후 왕들이 사용하는 빛나는 나무막대기로 동쪽에 있는 한 작은 별을 가리키며 저 별이 바로 그 별이라고 했다. 이에 그들이 동쪽하늘을 바라보니 그곳에 유난히 밝고 깨끗한 별 하나가 떠있었으나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 별이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의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말을 믿고 그 별을 따라갔다. 그러자 그 별은 그들이 탄 배를 잔잔한 곳으로 이끌다 끝에는 큰 폭풍과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곳을 지나가게 했으나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니 밤하늘에 떠있던 별들은 모두다 빛을 잃었으나 그 별은 계속 반짝반짝 거리며 그들을 동쪽으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그 별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안식할 수 있었다. 한편 남아있던 다른 사람들은 큰 소용돌이로 들어간 사람들과 그 여덟 명을 보더니 나는 절대로 저 북쪽에 있는 별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동쪽에 있는 그 별도 따라가지 않았으니 그것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어느 별을 따라갈까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 별이 밝고 아름답게 보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저 별이 그렇게 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별을 정해서 그것이 자신을 좋은 곳에 데려다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따라갔다. 그러나 작고 초라한 그 별 이외의 다른 모든 별들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며 빛을 잃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눈에 좋게 보이는 별을 따라간 자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 큰 폭풍과 거센 풍랑을 만나 물속으로 내려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침을 보지 못했다.

 

이와 같이 반짝이는 별로 인하여 밤에도 배가 자기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듯이 새벽 별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을 이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과 아버지의 영원하신 셋째 하늘로 인도하는 것이니 그것은 오직 진리요 또한 십자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따라가는 자는 거룩을 이루게 되니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의 나라를 진리로 다스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요 또한 이것이 메시아라고 하며 각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고 따른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진리요 메시아라며 따르고 어떤 사람은 철학과 과학을 그와 같이 따른다. 어떤 사람은 말은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통과 교단을 더 따른다. 그 무엇도 따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생각과 지식으로 말씀을 해석한 후 내가복음을 따르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을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으로 이끄는 그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따르는 자들도 아주 많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이것이 진리요 메시아라 주장하며 따르되 그들 가운데서 진리는 오직 하나요 메시아도 오직 한 분이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이 어두운 세상에다 늘 충만하게 비추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가 밝든지 어둡든지 그 빛은 항상 비취되 오직 밝은 자는 볼 것이요 어두운 자는 결코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듭난 영혼은 단 하나의 빛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빛을 자신의 영광스런 십자가와 또한 진리를 통하여 비추어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진리만을 전하는 자가 빛을 비추고 있는 자이되 거짓선지자와 전통의 목자도 이것이 진리요 메시아라며 전한다. 그러나 쉽게 분별할 수 있으니 하얀 종이에 찍혀있는 하얀 점을 찾으려면 그 하얀 점이 하얀 종이보다 더욱더 빛을 내야 되고 더 깨끗해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진리만을 말하되 그것을 전하는 자들과 따르는 자들이 거룩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빛을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의 의롭고 거룩한 말과 행실을 통하여 모든 자들에게 늘 공평하고 충만하게 비추신다.

 

그렇다면 충만하게 비취고 있는 그 공평한 빛을 볼 수 있는 밝은 자는 누구이며 빛이 늘 비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어두운 자는 누구인가? 다른 표현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의 영광스런 그 빛을 주시거나 주시지 않으시는 기준은 무엇인가?

 

기준은 이것이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살고자 하는 영혼과 갈급한 영혼에게 진리의 빛을 주신다. 그렇게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비유로서 흙탕물에 넘어져 온 몸이 더럽게 된 자신을 보고 엉엉 울고 있는 아이를 깨끗하게 씻겨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리요? 또한 육신의 부모는 배가 고파 울어대는 자기 자식의 앞에다 풍성한 상을 베푼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이기기 원하는 마음과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영혼이 그 빛의 비췸을 얻는다.

 

한편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눈이 밝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가 비추는 거룩한 빛을 보았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빛임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만일 믿고 싶어도 믿음이 부족한 영혼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믿음의 선물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눈이 밝은 자는 빛을 볼 것이요 믿는 자는 그 생명의 빛을 보고 따라가 결국 그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자는 하얀 점을 보지도 찾지도 못하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진리로 알고 따른다. 그 이유는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바라는 그의 마음으로 인하여 그의 안에 있는 죄가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23일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어떤 악하고 더러운 자가 검은 알갱이를 이용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그릇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매우 향기로운 연기를 담은 후 어떤 마을에 들어가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의 코를 향해서 입으로 후 불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그 향기를 한 번 맡아본 후 참 만족하며 코로 들이켰다. 그러자 그는 그 향기에 취한 후로는 오직 자기의 욕심과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말과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가 높아질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다했다. 또한 자신의 죄와 실수는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것을 보고 소리를 높이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 향기에 취한 그는 돈도 많이 벌고 또한 높은 자리에도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두 번째 사람은 그 악한 자에게 달려가서 그가 가진 그릇의 앞에다 자기의 코를 갖다 댔다. 그러므로 두 번째 사람도 그 향기에 취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얻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그 향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를 피해 산과 바다로 도망 다녔다. 하지만 그 악한 자가 그를 향해 불자 그 연기는 그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곳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러므로 세 번째 사람도 그 향기에 취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은밀히 얻었다.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은 그 악한 자가 들고 있는 그릇을 깨뜨리면 그 검은 연기가 바람에 흩어질 것이요 그러면 자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으로 그 그릇을 때려 부술까 고민하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을 듣고 다이아몬드로 몽둥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악한 자가 자기에게 다가오자 그 그릇을 내리쳤으나 오히려 다이아몬드 몽둥이가 힘없이 부러졌다. 그러자 그 악한 자는 그를 향해서도 불었다. 그러므로 네 번째 사람도 그 향이 너무 좋아 스스로 마시고 자신이 원치 않는 말과 일을 하며 돌아다녔다. 한편 다섯째 사람은 머리카락보다 얇지만 쇠보다 열 배가 강한 것을 이용하면 그 그릇을 깨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으로 몽둥이를 만들어 악한 자의 그릇을 내리쳤다. 그러나 그가 그것은 다이아몬드 몽둥이보다 더 쉽게 부서졌다. 그리하여 다섯 번째 사람도 자신이 원치 않는 말과 행위를 하며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반면 여섯 번째 사람은 악한 자의 그릇이 검은색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빛으로 막대기를 만들어 기다리다 그 악한 자가 자기에게 다가오자 빛 막대기로 내리쳤다. 그랬더니 그 그릇이 두 조각으로 깨지고 연기는 바람에 사라졌다. 그러자 악한 자는 그것을 풀로 다시 붙인 후 그 검은 연기를 불려고 다시 다가왔다. 이에 그는 빛 막대기로 다시 내리쳤고 그릇은 또다시 두 조각으로 깨졌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풀로 붙였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계속 악한 자의 도전을 받았으나 그 향기를 맡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여섯 번째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사람은 빛으로도 막대기를 만들고 또한 나무로도 막대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빛 막대기로 그 악한 자의 그릇을 내리치므로 그 향기를 맡지 않다 마지막에는 나무 막대기로 내리치니 그 그릇이 산산조각 났다. 이에 그 악한 자는 더 이상 자기의 그릇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포기했다. 그러므로 그 악하고 더러운 자를 이긴 일곱 번째 사람은 항상 의롭고 거룩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만을 취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자신의 손에 하나의 접시를 들고 있다 그 접시가 땅에 떨어졌을 때 두 개로 나누어진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내가 고칠 수 있겠다 생각하며 고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갖다 버리고 새것을 꺼내는 자가 있다. 그러나 만일 접시가 땅에 떨어졌을 때 여러 조각이 나버리면 고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버리고 새것을 꺼내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기는 자들은 마지막에 이길 때 넉넉히 이기며 또한 원수와 그의 사자들과 그 흑암의 세력들이 회복할 수 없게 이긴다.

     하지만 철장으로 죄와 세상을 깨뜨려 질그릇같이 부수고 가장 먼저 거룩한 육체를 입은 이가 있으시니 그가 바로 그리스도예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처럼 약하셨다. 그러나 거룩을 이루고자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다. 그리하여 자신의 그 거룩함을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해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 길로만 끝까지 나아가셨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의 길에서는 세상의 모든 시험과 핍박을 이겼으며 마지막에 십자가에서는 세상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죄와 세상을 이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나와 자신을 따라오는 자들에게는 아버지께로 받은 진리를 주신다. 또한 십자가에서 원수를 질그릇같이 깨뜨린 능력과 영광의 살과 피도 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난 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의 길을 걷는 자들도 영혼이 살아나 원수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 즉 원수가 창조한 와 이끄는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이기다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산 제사를 드리지만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하는 순종으로 이긴 그들에게 약속대로 그리스도와 같은 새로운 육체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원수는 자신을 이기고 부활한 그들을 더 이상 자신의 사망권세아래 두지 못하며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원수와 그의 사자들은 무저갱에 갇히되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의 끝에 셋째 하늘로 올라 갔을 때도 영원토록 불의와 죄가 없는 그 영광스런 기쁨을 누리며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니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로 이겼기 때문이다.

“이기는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16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 일을 지키는 그에게

어떤 왕이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한 여자와 혼인을 약속했다. 그리고 깨끗한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하자고 약속하며 하트모양의 반짝이는 부로찌를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여자와 함께 살 집과 성대한 혼인잔치를 준비하고자 먼 길을 떠났다. 그러자 여자는 그날부터 남자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늘 깨끗하게 가꾸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느라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늘 집안에만 있었으니 남자를 위한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이 없는 동안 어떤 한 남자가 멋지게 생긴 검은 모자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리고 여자에게 당신이 만일 이 모자를 쓰고 다니면 너무나 아름답고 자유롭게 보일 거라며 써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게 보이는 것은 나의 가슴에 이 부로찌를 달고 있을 때요. 그러나 그 모자는 보기에는 아름답고 자유롭게 보여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오. 그러니 당신의 모자를 안 쓰겠소.” 여자는 이렇게 단호히 거부하므로 자기의 남자에 대한 깨끗한 마음을 지켰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여자에게 검은 모자를 씌우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남자는 아주 큰 다이아몬드를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하길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사주겠으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나의 남자가 이미 다 주었소. 그리고 그 양식은 나의 몸과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의 다이아몬드는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니 받지 받겠소.”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그 남자를 따라가지 아니하므로 자기남자에 대한 정결한 마음을 지켰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에게 다이아몬드도 주지 못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찾아와 높은 구두를 많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구두를 신으면 당신의 키가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머리를 숙일 것이요.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골라보시오.” 그러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남자가 돌아오면 나를 꽃 가마에 태워 줄 것이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른 남자의 구두를 신고 내 남자의 꽃 가마를 타겠소? 그러므로 신지 않겠소.” 여자는 이렇게 자신의 순결한 마음을 끝까지 지켰다. 그러므로 남자는 허탕치고 돌아가며 저 여자를 어떻게 유혹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좋은 꾀를 생각했는지 검은 모자를 쓴 여자들과 다이아몬드를 가진 여자들과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들을 보내며 저 여자와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들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더럽혀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 남자가 준 것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자는 자기의 남자가 돌아왔을 때 자신의 깨끗한 마음과 몸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먼 곳에서 돌아온 그 왕은 여자를 보더니 자기를 위하여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고 몸을 깨끗이 가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여자와 함께 자신이 준비한 성대한 혼인잔치를 즐겼다. 또한 높은 꽃 가마에 태우고 자기 나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그러므로 그 왕의 나라에 거하는 백성들은 그 여자의 정결한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몸을 다 바쳐 교회를 사랑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십자가에서 그 거룩한 피를 흘리시므로 그 보혈로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이며 지키는 자는 누구겠는가? 그 어떠한 행위가 아니요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인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그 일이요 지키는 자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세우신 교회를 즉 자기 자신의 마음과 몸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도 죄와 세상을 이긴 그 왕과 제사장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과 또한 그 후에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갈 아버지의 그 영원한 셋째 하늘을 다스리는 그 권세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첫사랑을 잃은 양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일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알았으나 잊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더럽히는 그 선악의 죄를 회개치 못하고 또한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니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을 유지하지 못한다. 또한 거룩은 포기하고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목자들을 따라가며 그들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행하니 자신을 더 더럽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을 지키지 못한 그들이 어떻게 만국을 다스리는 신령한 교회가 될 수 있으리요?

 

이렇게 그리스도의 일을 잊고 행하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목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그 뜻과 소원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의 뜻과 소원이 아버지의 것이라며 그것을 열심히 이루어가고 있다. 즉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헛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여러 가지 행위와 방법에 빠져있다. 그러니 회개할 마음이 없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도 받아들여 교회를 더욱더 더럽힌다. 게다가 영혼들을 세상에서 이끌어내어 십자가아래서 거룩에 애쓰도록 인도하지 않고 오히려 양들을 곁길로 가게 하니 쉴 곳을 잊은 그들은 세상에게 삼킴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을 방해한 그들이 어떻게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이 될 수 있으리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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