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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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차면 누구나 육의 죽음을 맞이한다. 또한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혹시 다시 살아난다 하여도 그것은 오직 순간이니 잠시 후에 결국 또다시 죽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진리를 전하실 때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요 죽어도 살 것이니 자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산다는 약속을 주셨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거듭난 후 첫사랑을 잃은 영혼들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자신이 살면서 보고 들은 경험으로 인해 그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믿지는 못한다. 그리고 마음이 믿지 못하니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둔 자들은 그가 거듭남이 있든 없든 자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과 죽어도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사는 것을 준비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은 분주하니 육적인 일이나 돈과 관계된 세상일은 밤을 새면서도 잘 준비한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작 자신의 죽음은 부인한다. 하지만 질병의 고통이 시작된 자는 고통 없이 빨리 죽기를 바라고 죽음에 가까이 이른 자는 그저 힘없이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다 자신도 갑자기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 생명을 십자가로 전해주신 그리스도를 입술로만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계속 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씀에 부활이 기록되어 있어도 믿지 못하여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영으로 주신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죽지 않을 것이요 죽어도 영원히 산다는 그 약속은 2천년 전에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을 전하셨으니 우선 자신의 전에 아버지와 동행하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정결함에 이른 영혼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갔다. 또한 죽어도 살 것이라는 약속도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전에 선지자들은 아버지께로 의로운 살과 피를 드리므로 죽음을 맞이한 후 낙원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죽지 않은 자와 죽어도 사는 자가 영원히 산다는 약속을 지키시되 오직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으나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혀서 부활시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받은 권위로써 법의 심판대에 앉아 자신의 전에 죽지 않고 낙원에 올라온 영혼들과 죽고 올라온 영혼들에게 생명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부활 후에 자신의 뜻을 이룬 모든 영혼들에게도 멜기세덱의 제사 후에 그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아들과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그들의 정결함과 거룩함에 맞게 입혀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의 안에 거하며 피로 정결함을 이룬 영혼은 죽지 않고 거룩한 몸을 입고 거룩에 이른 후 의로운 살과 피를 아버지께로 드린 영혼은 죽음을 본 후에 그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즉 요한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전에 이 세상에서 낙원으로 올라갔던 그 영혼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들을 보고 죽은 자들이라고 기록했으며 자신에게 계시를 주신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영혼이 죽음을 보지 않고 낙원으로 올라가며 죽어도 사는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전에 있던 자들만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당시와 그 후 일곱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마지막 때에는 다음과 같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

우선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는 신랑을 예비하고자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은혜만을 고백하며 자신의 정결함에 애쓰는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어린 양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그들을 심판하여 자신의 신령한 신부로서 맞이하실 것이니 그들은 대환난이나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들림을 받아 생명의 심판을 받은 후에 그 성전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정결함에 맞는 신령한 몸을 입은 바로 그 영혼들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그 약속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한편 거룩한 자들 가운데 이 땅에 남아 대환난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에 목베임으로 살과 피를 드리고 낙원으로 올라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죽기까지 따르며 이룬 그 거룩에 맞는 거룩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죽어도 살아서 영원히 산다는 그 영생의 약속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거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오는 이 부활의 약속은 아버지의 뜻을 이룬 성도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말씀에 불순종한 모든 악한 자에게도 공평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에 죄를 품고 사막을 즐긴 자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있는 상태로 땅속으로 내려간 후 사망의 심판을 받고 무저갱에 갇힌다. 그러다 천년왕국의 끝에 땅 위로 올라오지만 그것은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자신의 썩어질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이용해 다른 영혼들을 육과 세상으로 인도한 자들은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복음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끝까지 회개치 않고 오히려 복음을 방해한 자들은 그 다음 뜨거운 곳으로 이방인은 제일 밖으로 들어가되 원수에게 더러운 육을 받아 그 뜨거운 형벌에 거한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때가 되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다시 산다 해도 그것은 오직 순간이요 잠시 후 또다시 죽음을 당하니 사람들은 죽음을 당연히 여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009 12 27

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20일 충성된 증인

한 왕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자기의 아들에게 전해주고는 그것을 모든 종들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이에 그 아들은 왕궁의 안과 밖에 거하는 모든 종들에게 그 왕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고 돌아왔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모든 종들은 왕의 뜻을 깨닫고는 왕이 원하는 그 계획을 바르게 이루어 갈 수 있었다. 이에 그 왕은 참으로 충성스럽게 자기의 말을 전한 그 아들을 기뻐하며 사랑했다. 잠시 후 그 왕은 자기의 종들만이 아니요 이제는 온 백성들에게도 자기의 그 뜻과 계획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왕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 가운데서 세 명을 뽑아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가서 나의 백성들에게 포도나무를 가꾸라고 하여라. 그러면 내가 7년 후에 찾아가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자에게는 큰 상급을 내릴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심판 받아 나에게서 멀리 가거나 쫓겨날 것이니라. 이것이 왕의 뜻이니 너희는 가서 이 말을 충성스럽게 전하여라.” 이제 그 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백성들은 참으로 인삼을 좋아하여 인삼만을 열심히 가꾸고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충성된 자요 왕의 뜻을 깨달은 자이니 백성들에게 말을 이렇게 했다. “여러분! 왕께서는 우리가 포도나무를 가꾸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왕의 아들이 7년 후에 찾아와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사람에게는 큰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의 말을 듣자 백성들은 다른 말들은 다 좋은데 심판 받는 다는 말은 듣기 싫어했다. 그러자 왕의 뜻을 깨닫지 못한 두 번째 사람은 이것이 왕의 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왕의 아들이 다시 왔을 때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인삼을 너무 좋아하니 무슨 말을 들어도 오직 인삼 가꾸기에 정신이 다 팔려있었다. 그런데 왕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도 전해야 하는 것은 세 번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게 왕의 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여러분 우리의 왕은 포도나무 열매를 좋아하지만 우리가 인삼도 많이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왕의 뜻에 따라 포도나무든 인삼이든 열심히 기르십시오.” 결국 백성들은 이 세 사람가운데 자기의 귀가 듣고 싶어하는 자의 말을 듣고 따르며 세 갈래로 갈리기 시작했으니 어떤 사람들은 인삼 밭을 갈아엎고 포도나무를 가꾸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길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직 인삼만을 끝까지 열심히 길렀다. 그러므로 그 왕의 아들은 7년 후에 돌아와 약속대로 그들이 행한 대로 상급과 심판을 주었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을 기쁘게 맞이하며 너는 나의 말을 충성스럽게 전했으니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충성스럽게 증거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바꾸지도 않고 그대로 전하는 자가 충성된 증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증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오직 아버지의 뜻과 말씀만을 이 세상에 선포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충성된 증인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먼저 충성된 증인이 되신 이유가 있으시니 그것은 곧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제자들도 자기와 같은 그 충성된 증인들이 되도록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후의 교회시대에 이 땅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충성된 증인을 알며 따른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본을 따라 자신도 죽기까지 충성스럽게 아버지의 뜻만을 증거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기쁨이요 사랑을 받은 그들이 부활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이 충성스럽게 증인이 된 그분과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을 알아도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충성스럽게 전하는 자가 있으니 그것은 그가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요 그리하여 그분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깨닫지 못하는 충성으로 인하여 지금도 그 마음을 포기한 많은 자들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지는 않고 온갖 행위를 열심히 드리며 또한 전통이 정한 그 법들도 열심히 지키면서 나는 아버지께로 가까이 거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어떤 자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세상에 들어가 열심히 육을 거두라고 충성스럽게 말하니 그것은 자신의 육의 유익을 위함이요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거짓된 충성으로 또한 자신의 마음도 육과 세상을 원하니 이 마지막 때에도 많은 자들이 아버지께로 나와 온갖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구하여 바친 후 나는 아버지께로 많은 상급을 받으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그 불충한 증인들과 그들을 따른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멀리 거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원치 않은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그 어두운 곳에 영원히 거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을 거부하므로 거듭남이 없는 자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3일 그 보좌 앞에 일곱 영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MS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한글

12월 6일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교회를 이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경륜의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 핍박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 첫 교회가 안디옥에 세워졌으니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울은 그곳에서 그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바울만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요 다른 자들도 계시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런데 계시를 받고 전하는 것과 계시 없이 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그러므로 계시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경륜을 이루고자 거룩만을 전했다.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계시가 없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몰랐으니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이 세상에는 자신들이 교회라고 하는 곳이 모두 1243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에도 모두 12곳이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께 계시를 받은 후 그 말씀을 오직 일곱 교회에만 보냈다. 그러므로 그때 계시록을 받은 교회의 수는 전체 교회의 수에 비교할 때 많지 않았다. 당시 마지막 때의 말씀을 받은 교회들과 받지 못한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택함 받은 교회와 전통에 속한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 포도원주인이 두 종에게 포도나무를 한 그루씩 주면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나는 오직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원하는 도다. 그런데 열매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나무를 가꿀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 또한 다른 자들도 땀 흘리는 너희를 보고 따라 행할 것이니 깨끗한 열매가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니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를 가꾸느라 온 마음을 다했으니 그의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깨끗하고 튼튼하게 자라갔다. 그리하여 그 종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도 깨끗했으며 점점 더 풍성해져 갔다. 그러나 두 번째 종은 땅을 넓혀서 포도나무를 많이 심으면 열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넓히며 나무를 많이 심는데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면서 이것이 바로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나무와 열매는 썩어가되 그의 땅은 점점 더 넓어져갔다. 이것을 보자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크고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 좋았으니 두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그런데 첫 번째 종과 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포도원을 떠나기도 하고 두 번째 종에게 옮겨가기도 했다. 반대로 처음에는 두 번째 종에게 갔다 첫 번째 종에게 옮겨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크고 근사한 것보다는 깨끗한 열매를 풍성히 맺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추수 때가 되자 그 주인이 돌아와 열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종과 그를 따라 일한 자들은 모두다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갖다 바쳤다. 그러나 두 번째 종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주인에게 신 포도를 갖다 바치면서 자기들이 넓힌 땅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이에 그 주인은 자기의 말에 순종한 자들은 가까이 그 불순종한 자들 가운데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끗한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자들은 멀리 두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는 초대교회든 이방인의 교회든 마음을 다해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갔다.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아들은 알지만 거룩을 깨닫지 못하니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가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진리를 깨닫지 못해 행위를 이루어가는 전통에 속한 교회들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들이 있다.

 

우선 은혜를 받은 교회에 모인 영혼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거룩의 믿음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될 것을 믿고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해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교회는 그 마음을 포기했으니 거룩을 이루기보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열심히 행하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기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은혜를 받은 교회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들 가운데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따르며 남편의 말에 마음을 다해 순종한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는 입을 열지 아니한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에서는 이러한 순종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러한 것은 초대교회에만 그런 것이지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말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의와 셋째 하늘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직 자신이 의롭게 되기만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한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만을 소망하니 자신이 나온 이 세상에는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몸은 예배 드리는 곳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늘 육과 세상에 있다.

 

네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깨닫지 못했으면 자기의 입을 열지 아니한다. 오직 그 깨달음을 아버지께로 구하며 겸손히 엎드린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깨닫지 못해도 입을 벌려 전하다 모르는 것을 질문 받으면 그냥 믿어라 기도해보자 구원과 관계가 없는 것은 몰라도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도자도 따르는 자도 둘 다 함께 구덩이에 빠져있다.

 

다섯 번째로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그 선악에 이끌리며 선악에 눌려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서는 기쁨과 평화를 이미 빼앗겼다. 그러나 택하신 교회의 지체들은 그 선악을 뽑아냈으며 어떤 자들은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는 늘 기쁨과 평화가 변치 아니하며 오히려 더해간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9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사람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가장 높은 산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매우 높고 험한 그 산을 오른 후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지도에다 그렸다. 그런데 그가 가만히 보니 어떤 두 사람이 그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지도를 두 사람에게 똑같이 하나씩 주면서 ‘이 지도를 보고 따라 산을 올라가면 복이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에 둘 중 한 사람은 지도를 준 그 사람의 말을 믿었으며 그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지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험한 산길을 올라가며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산의 중간 정도에 오르자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마음에 기쁨을 얻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많은 세상을 내려다 보며 참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쁨과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금 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보며 계속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그 지도에 나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갔다.그러므로 그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산들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온 세상을 한눈에 다 내려다 볼 수 있었으니 그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했다. 한편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산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으며 온 세상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다고 믿었으며 기대도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그 지도는 참으로 복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난 받은 후에 얻는 그 성취감을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이 지도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는 자와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가 복된 자가 아니다. 그 복된 것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복이 있을 것은 알지만 가만히 있는 자도 복된 자가 아니다. 오직 그 복된 지도를 따라가는 자가 복된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예언들과 초대교회와 일곱 교회시대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계시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앞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알고 있다고 복이 있는 게 아니다. 말씀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어도 복된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내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는 영혼과 첫사랑을 잃지 않는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순종하기 원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 자신의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두 사람과 두 가지를 동시에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므로 자신을 따르지 아니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이 세상을 따르지도 아니한다. 오히려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나온다.

     물론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기쁨으로 예비하신 아버지와 그 길을 평화로 내신 아들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걷는 영혼에게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에서는 육과 세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마음의 복을 누린다. 게다가 그 승리의 길은 그 선악의 죄를 이기는 길이니 그는 그 길에서 죄와 허물의 사함을 얻는다. 그리하여 죄의 가리우심을 받은 그가 마지막에는 목 베임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 후에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 그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는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얻은 자는 아버지께로는 거룩한 자녀요 그리스도와는 형제자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이 되어 공의와 사랑으로 천국을 다스리는 약속을 그 성취한다. 그리고 그 영광과 권세의 복이 셋째 하늘에서도 영원토록 그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 복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진리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거나 진리를 가지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그 약속을 믿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지켰기 때문이요 의롭지 못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고난스런 십자가 길을 끝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2일 반드시 속히 될 일

어떤 선한 사람이 실제로 일어날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종에게 주면서 자기의 동생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이에 그 종은 그 선한 사람의 동생에게 가서 그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순교였으며 모두 네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 장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질병들이 온 세상을 돌고 있었으며 모든 나라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악한 자가 사람들이 두려움가운데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기뻐했으니 그는 그 질병과 전쟁의 환난을 일으킨 자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난리가운데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오히려 기쁨과 소망과 평안함 가운데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가운데 반은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따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자신이 일으킨 환난으로도 그들을 죽이지 못한 것을 참으로 원통해했다. 두 번째 장면은 이제 전쟁이 끝나자 그 악한 자가 나와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한 나라로 만들었으니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더 돈을 사랑했으며 더욱더 음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세상을 보며 즐기며 이것이 참된 자유가 아니겠냐고 하면서 좋아했다. 세 번째 장면은 포도나무를 가꾸던 자들 가운데 남아있던 반이 그 하나된 나라의 왕이 인류의 역사에서 행했던 모든 악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또한 그가 잠시 후 온갖 자연재해로 큰 환난을 일으켜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끌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불의와 죄에서 돌이키는 사람은 마지막에 선한 사람이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심판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이에 그 악한 왕은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이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정의를 행한다고 하면서 한 명씩 죽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장면은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사람들의 말대로 이 땅에는 지진과 해일과 화산과 우박 같은 것으로 큰 환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선한 사람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자들과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자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며 그 악한 자가 일으킨 모든 환난을 멈추게 했다. 또한 그 악한 자가 더럽힌 이 세상을 낙원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회복시킨 후 참된 공의와 사랑의 나라를 이루었다. 그 선한 사람의 동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의 친구들에게 자기가 본 영화를 그대로 전해주었으니 그의 친구들도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실제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그 선한 사람의 동생과 그의 친구들은 모두다 그 왕에게 잡혔다.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할 말을 다 전하고 담대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그 계시를 요한에게 주신 목적이 있으니 교회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과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라 하는 자들도 깨닫고 그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면 유익이 있을 것이니 그 유익은 자신의 생명이요 가족의 생명이요 자신과 함께하는 자들의 생명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참으로 각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고 또한 알려주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것을 보고 듣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자신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영혼들이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도록 인도했다. 또한 아시아에 거하는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전했으니 그들도 역시 거룩을 이루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요한도 다른 교회의 인도자들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 마지막 교회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통해 참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보여주셨으며 또한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고 들은 자들과 믿은 자들도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다 마지막에는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리므로 아버지께로 그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5일 예수그리스도의 종 요한

사람은 마음에 있는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누구나 불의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그 내용이 누구나 다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롭게 고치려는 마음은 가지지 않고 그 상태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대하여 올바른 것을 요구하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바 외식하는 자의 태도와 같은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를 참으로 어리석게 보신다.

 

게다가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고 가는 원수도 이렇게 어리석은 자를 자신이 심은 그 죄로 더욱더 강하게 묶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도 의롭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말과 행위를 하면할수록 더욱더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친다. 또한 자신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낸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는 더 깊은 사망의 죄와 불의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의로우심과 온전하심에 이르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진리를 따르는 자도 그 의와 거룩에 이르도록 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신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공평하게 그 사망의 줄을 풀 수 있는 생명의 길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의 의는 베드로와 그 내용은 같았지만 더 강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의롭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켰으며 자신의 그 옳지 못한 강한 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와 거룩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구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이라면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품은 그 생명나무의 마음을 늘 기뻐 받으셨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을 원한 것은 요한만이 아니요 다른 열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모든 제자들도 다 그 마음을 가졌기에 진리를 원했으며 또한 그 진리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자 하는 원함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항상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제자를 하겠다고 그리스도의 앞으로 나온 제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불의했으나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진리를 요구하는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은 말과 행위를 했다. 게다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을 그의 마음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고도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교회의 인도자들이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유다와 같은 마음을 품고 말과 행위를 하는 옳은 것이요 아님 다른 열한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요? 만약 후자를 원하는 목자의 영혼이 있다면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받으며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랐던 사도 요한에게 배울 것이 세가지가 있다.

 

첫째 요한은 마음이 순수하여 오직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되 아무런 행위를 그리스도의 앞에서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가서 자신이 말씀대로 행한 것과 또한 그로 인하여 나타난 것을 늘 자랑했다.

 

둘째 그는 마음이 강하여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실 때 항상 그의 오른편에서 걸어갔다. 그것은 그가 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거하며 그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혹이나 다른 제자가 그 옆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가 달려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그리스도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한 제자의 경우는 진리를 구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자신의 생각이 강하여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제일 멀리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안에 거하지 않은 그의 마음에는 세상의 말이 그에게 틈타 그가 범죄했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그 마음에서 그를 끌어 내려놓았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을 사랑하셨던 것은 이것이니 그는 썩어질 육이 아닌 오직 영에만 소망이 있었고 또한 욕심이 있었다.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더욱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8일 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전에는 오로지 한 영혼이 한 만군의 여호와를 통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 계시의 내용은 오직 아버지의 계획과 아버지의 심판과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것이었으니 선지자가 먼저 그것들을 알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그것들을 알고 믿도록 전해주었다. 이때 그 말씀을 듣고 믿은 자들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순종한 자들은 멸망과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오히려 그 생명에 이르렀다.

 

한편 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후에는 아버지의 말씀의 비밀들을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함께 듣고 본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의 뜻과 때와 맞게 그대로 전해주어 믿는 자들이 그 길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앞을 향해 나가게 한다. 그러므로 진리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 마지막 때에도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 가운데서 정결한 신부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들림을 받고 또한 환난으로 들어간 자들이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므로 그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를 받을 때 이렇게 받는 자가 따로 있고 선포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은 초대교회도 교회시대의 모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한 자가 받고 같은 자가 선포하게 되면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오히려 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듣고 또한 비밀을 깨닫고 선포하며 이것이 진리이다 할 때는 오히려 다른 지체들도 의심이 없이 그 진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의심이 끝까지 생기는 자들은 그들과 함께 거하지 못하여 떠나간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의 바울은 처음에는 안디옥교회에서 그 지체들 가운데 함께 하는 자들과 함께 들었으며 두 번째로는 디모데와 함께 하였다가 그 후로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자들과 함께 들었다. 또한 요한도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있었으니 그 제자와 함께 듣고 함께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 자들을 가리우시는 것은 사람이 가리워지고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찾도록 그렇게 행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자신과 아들의 그 소원대로 계시를 주실 때 그리스도의 전이든 교회시대든 기준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오로지 연약하고 지혜도 없고 오직 한 길로만 가는 자를 택하시니 그 자가 들을 것이요 선포하는 자도 지혜도 없고 또한 말도 더듬거리되 오로지 진리만을 믿고 그 길로만 걸어가는 자를 택하시어 선포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섭리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때에도 또한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또한 세상의 끝날까지 이루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만일 그렇지 아니한 자를 택하신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거나 사람의 말을 들으리니 그가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리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를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요 아님 그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리요?

 

하지만 그리스도께 은혜를 얻은 요한은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도 없고 말도 더듬거렸으나 거룩하신 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그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자신이 본 환상과 들은 음성을 즉 마지막 날에 실제로 있을 일들의 비유를 이방의 교회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신령한 교회들로 하여금 그 날을 끝까지 기다리며 또한 소망하게 했다.

 

이렇게 계시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과 또한 그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환난으로 다가가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켜 전통과 이 세상에서 나와 거룩에 애쓰며 오직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떠나가나 그곳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나오거나 거부할 수 없는 두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니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른 그들이 어찌 거룩을 이루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일 메시야(그리스도)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은 오직 이 땅에 와서 물의 침례를 받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태초에 아버지의 계획가운데서 아들은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으셨으며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모든 것을 다스리셨다. 그리하여 자신이 창조한 이 땅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과 같은 그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로서 내려와 그 거룩의 일을 다 이루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미와 그 사역이 무엇인지 또한 나의 생명과 그리스도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아들을 한 명만 낳아서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백성들 가운데서도 자기의 의로운 자녀들을 얻고 싶었다. 그러므로 어느 날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나는 왕궁밖에 있는 백성들 가운데 오직 너를 믿고 따라오는 자들을 나의 자녀들로서 또한 너의 형제자매로서 삼기를 원하는 도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도록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므로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가거라.” 이에 그 아들은 이러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이 질문에 그 왕은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너는 나의 아들이니 내 말의 뜻을 알고 있노라. 그러므로 내 말의 뜻을 알려주면 네가 나의 아들임을 그들이 믿을 것이니라. 또한 마지막에 나의 사랑의 징표를 높은 산에서 보여주면 알리라. 그래도 믿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새롭고 확실한 증거도 보여주거라. 그러면 그들이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너를 통해 입게 될 것임을 확실히 믿겠노라.” 이제 그 아들은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왕궁 밖으로 나가서 왕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고는 그것은 왕의 말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 사랑의 징표를 보고 믿었으며 어떤 자들은 새롭고 확실한 징표를 보고 알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과 징표를 보고 듣고 그것을 알게 된 20명은 그 왕의 아들을 따라가 모두다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입고 왕의 자녀들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동일한 것을 듣고도 보고도 또한 확실히 보고도 깨닫지 못했으니 그들은 의로운 왕자와 공주가 되어 왕궁에 거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즐기는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생명의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기름부음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그 이름을 받으신 그 인자가 바로 오직 한 분 신이시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은 오직 아들과 딸들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셨으며 또한 아들인 그리스도를 따라 그 길로 따라오는 자들에게도 아들이 입은 것과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주신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나 그 아들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거룩한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 주시되 그들이 아버지의 그 뜻대로 행한 대로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자신이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은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 생명과 또한 다른 상급들도 오직 그 아들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것을 얻으려면 육과 이 세상이 아니요 그 어떤 다른 사람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아들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자들이니 자신에게 그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려고 혹은 육적인 것을 얻으려고 인자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자 그를 따르며 그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또한 부활하신 후의 그 거룩한 육체를 통하여서는 확실히 믿었다. 그리고 믿음을 얻었으니 자신도 그 생명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은 안다 하면서도 육의 욕심과 필요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그가 아버지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고자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고자 그저 표적만을 구했다. 그러나 표적은 원수도 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고 군중으로서 따라다닌 거짓된 자들도 많았다. 또한 불의한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겼으니 알아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며 그 아들을 잡아서 죽인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진리를 따르지 않은 그들은 마지막에 모두다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에 있었던 이러한 일들은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의 마음을 가진 영혼들은 갈급함을 가지고 오직 말씀의 깨달음을 구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육체만을 바라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갈급한 자의 마음눈을 열어주시어 진리를 찾고 또한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오직 진리만을 믿고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음식을 찾아먹지 않는 것처럼 게으른 자는 전통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진리를 찾지 않는다. 깨끗한 음식은 버리고 더러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진리와 십자가가 밝히 보여도 마다하고 눈에 보이는 말과 귀에 들리는 말을 찾아 다니는 거짓된 자도 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알아도 따르지 않는 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꼬임을 받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그 꼬임이 강해서요 아님 자신이 후자의 마음을 가지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요?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5일 예수란 이름의 의미-3

한 나라의 모든 신하들이 자기의 왕 앞에 나갈 때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신하들은 자기의 몸만을 꿇고 숙이지 아니하고 마음도 그러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 왕이 의롭고 정직하고 깨끗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왕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비록 왕의 혈육이요 자신들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있었지만 자기의 형과 오빠가 가진 그 왕의 권위로 인하여 그의 앞으로 나갈 때는 역시 몸과 마음이 무릎을 꿇고 숙였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 하여도 자신과 한 피를 나눈 그 동생들을 늘 왕궁으로 불러 함께 만찬을 나누며 기뻐하며 즐거워했으며 또한 섬겼다. 이렇게 그 왕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비록 그 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하가 왕의 명을 가지고 오면 역시 그들의 몸과 마음도 왕이 거하는 왕궁이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이 악한 죄인은 이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범죄하고도 끝까지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죄를 더 지으려고 했다. 이에 그 왕의 신하들이 그를 결박하여 왕의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랬더니 그 죄인은 몸은 비록 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생각을 했다. “만일 저 왕의 의로운 다스림이 없었다면 나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내가 원하는 그 죄를 계속 범할 수 있었을 텐데. 저 왕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 자라면 나를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가까이에 두고 자기의 신하나 친구로 삼았을 턴데.” 그 죄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그 왕을 미워하고 저주했다. 그러므로 그 죄인은 왕의 앞에서 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불의하고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했다. 한편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 앞으로 나갈 때는 이러했다. 그러므로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들이 왕이라 할지라도 자기를 낳고 기른 자기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겼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태초에 아들에게 지어주신 그 귀한 이름의 세 번째 의미는 왕이니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왕의 의미를 그 이름에 넣어두셨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아들은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이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또한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그 아들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그 왕의 다스림을 받으니 그들은 마음에 변치 않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다 마지막에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모든 만물이 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순복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베푸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원치 않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불의와 죄의 기쁨을 놓지 못하여 그 은혜를 거부한 자들도 그 유황불 못에서 무릎을 꿇으며 그들의 영이 그것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타락한 천사들과 그의 대장도 그 뜨거운 곳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의 왕으로 인정하되 그들의 고통은 그대로 임한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자들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게 한번 심판하신 그것을 바꾸시거나 돌이키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된 모든 인격체들과 만물이 이렇게 그 이름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여도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으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왕의 이름을 가진 그 아들이 자신을 낳으시고 그 왕의 이름을 지으시어 자신에게 붙여주신 후 모든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두신 그 아버지께로 무릎을 꿇고 섬긴다. 그러므로 아버지 외에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게 되는 그 이름보다 더 의롭고 거룩하고 높은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이름으로 생명을 주시되 불의와 죄악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생명을 주는 이름으로서 계획하셨다. 그러나 만일 부활한 육에 질병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이별과 늙음과 죽음이 있거나 혹은 그 육에 한계가 있어서 어떠한 물질에 막히거나 하늘과 땅과 물로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거나 한다면 그것을 어찌 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세포처럼 작은 것들을 한눈에 보지 못하거나 또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그 안에다 넣어 거대한 도시와 같이 만들지 못하거나 태양의 빛보다 더 느리거나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의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무엇도 막지 못하는 그 자유로운 육체의 생명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긴 모든 자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생명을 얻은 것은 왕이요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섬기고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요 자신이 따른 그 분은 그 신의 생명을 줄 수 있는 그 생명의 이름을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께로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누구든지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자들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게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0월 18일 예수란 이름의 의미-2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그 아들의 이름 안에 세 가지의 의미를 넣어두셨으니 두 번째 의미는 온 세상이 똑같이 부르며 생명에 이르는 이름이다.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예수라는 이름의 그 두 번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자기의 백성들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왕은 아들을 낳고서 감히 백성들도 참으로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이제는 자기에게 사랑과 은혜와 훈계를 베푼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늘 부르는 그 이름에 담긴 뜻을 알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지어서 붙여준 아버지에게 자기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내가 가진 소중한 진주를 공평하고 의롭게 나누어주고 싶노라. 하지만 만일 남자에게만 진주를 주고 여자에게는 주지 않거나 돈이 많은 자에게는 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공평하다 하겠느뇨? 그러므로 지위가 낮고 배움이 없는 자들에게도 진주가 공평하게 허용되는 것이 옳도다. 또한 나의 말에 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와 불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 똑같이 진주를 준다면 그것을 어찌 의롭다 하겠느뇨? 만일 불순종하며 있는 자에게 똑같이 진주를 주는 게 의롭다고 한다면 과거에 불순종한 그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아도 오늘 진주를 주어야 하니 내가 어찌 나의 백성이 어제처럼 똑같이 내일도 불의하고 더러움을 행하도록 하겠느뇨? 하지만 그가 과거에 불순종했어도 오늘 마음을 다하여 뉘우치는 자에게 진주를 주어 내일의 기회와 소망을 얻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의로운 것이 되겠노라. 또한 나의 말에 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는 더욱더 큰 진주가 주어지는 것이 공평하노라.” 그 아들은 자기아버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자기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가서 이렇게 전했다. “누구든지 왕에게 진주를 받기 원하는 자는 나의 이름을 정직하게 부를 것이요 나의 이름을 더욱더 정직하게 부르는 자는 더 큰 진주를 얻겠노라.”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그 아들의 이름을 정직하게 부르며 왕의 말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 왕은 하나의 진주를 그들에게는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아들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는 진주를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의 진주를 얻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왕의 마음을 이해하고 왕의 뜻을 이루기 원했으니 그 아들의 이름을 계속해 부르며 왕의 말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큰 진주를 베풀었다. 하지만 진주를 얻은 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큰 진주를 주지 않았다. 한편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왕의 말에 불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품고 있는 것이 좋았으니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왕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그들에게는 진주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여 옥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원수가 심은 그 선악과로 인하여 또한 스스로가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품을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며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라는 그 이름을 가진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부를 수 있는 그 이름은 생명의 이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어제는 비록 죄악되고 불의했으나 그 아들의 이름은 누구든지 부를 수 있는 생명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가 오늘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 아버지께서는 예수라는 그 이름 하나로 그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베푸시니 그는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임하는 그 생명은 공평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주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자들과 귀히 여기지 않는 자들은 아버지의 앞에 나와 진주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히려 생명 없는 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진주를 내리시리요?

 

한편 그 공평한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한다. 즉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 자신은 참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의 생각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생명을 이룬 아들이 그에게 임하니 그를 사망으로 이끄는 그 선악의 죄는 그의 마음에서 떠난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정직하게 부른 그가 거룩에 이르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니 그가 큰 구원을 얻은 그것도 역시 공평한 은혜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은혜와 긍휼을 받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지식이 있다. 그러므로 이 깨달음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자기의 지혜나 경험으로 혹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지식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태초에 모든 계획을 의롭고 공평하게 세우신 아버지께서는 그 이름을 가진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권위를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그 말씀과 또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일만을 증거하여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공평하고 의로운 그 생명의 이름 안에는 아버지와 거룩하신 영께서 한 분으로 속하여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11일 예수란 이름의 의미-1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아들을 낳으시고 귀한 이름을 찾아 붙여주셨으니 태초에 태어난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예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그 안에 의미를 두고 또한 그 이름대로 되기를 원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도 그 이름의 안에 세 가지 의미를 두셨으니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 중에 첫 번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이 거하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깨끗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포도나무를 심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자기가 낳고 이름을 지어준 자기의 아들을 통해 이루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기의 마음을 알고 믿음직한 아들에게 포도원을 만들어서 가꾸라고 했다. 또한 포도원 만드는 일과 포도나무 가꾸는 일을 아주 잘하는 충성스런 친구를 붙여주었다. 이에 그 아들은 그 충성스런 친구와 함께 자기의 밑에 있는 다른 종들에게 명하여 포도원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다 많은 포도나무들을 심었다. 그리고 나서 그 아들과 그 친구는 날마다 땀을 흘리며 늘 깨끗한 물을 주고 때로는 가지를 치고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고 필요할 때 약도 주었다. 그렇게 한 3년이 지나자 자기의 온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한 그 수고의 보람으로 인하여 드디어 포도나무들이 좋은 열매를 조금씩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나무들은 신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그 왕은 일년을 더 기다리라고 했으니 그 아들과 충성스런 친구는 계속해 자기의 온 마음과 몸을 다하여 모든 포도나무들을 공평하게 가꾸었다. 그러나 일년이 더 지나자 이번에도 어떤 것은 좋은 열매를 맺고 어떤 것은 신 것을 맺었다. 이에 그 왕은 이번에도 일년을 더 기다려보라고 했으나 그렇게 7년이 되었을 때는 드디어 추수를 명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과 충성스런 친구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뽑아서 왕궁으로 가져가 아름다운 정원에다 옮겨 심었다. 그리고 그 좋은 열매들은 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신 열매만 맺은 나쁜 포도나무들은 모두다 뽑아서 아궁이에 넣고 불에 태웠다.

 

이와 같이 예수라는 그 이름 하나로 그 영원한 셋째 하늘과 거룩한 자들의 안식처가 있는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이 창조되었다. 또한 그 안의 모든 것들도 역시 그 이름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그 목적을 다 이루신 후에는 둘째 하늘과 원수를 가둔 이 첫째 하늘과 또한 그 이름으로 창조된 모든 것들이 역시 그 이름으로 다 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창조자의 이름을 아는 자는 태초에 그 아들을 낳으시고 이름을 지어주신 그 아버지도 당연히 알고 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에게로부터 나오신 그 거룩하신 영도 당연히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는 자는 아버지의 그 창조목적을 아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원수의 그 선악과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반대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버지도 모르고 거룩하신 영도 모르니 그들은 가장 먼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보면서도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을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한다. 또한 아버지께로 생명의 은혜를 받아 쉬지 않고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알고자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멀리 간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자신의 안에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거룩한 영이 있음을 모른척하며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을 즐기며 불의와 죄를 쌓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창조와 멸망의 이름을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오직 한 목적을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안다. 또한 그 목적을 다 이루신 후에는 창조하신 것들을 태양으로 다 넣으시고 그 이름을 가진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녀들과 교회와 백성들을 그 의롭고 거룩한 셋째 하늘로 데려가 그곳에서 영원토록 기쁨과 안식을 누린다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 이름의 첫 번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신 그 인생의 목적도 아니 이 마지막 때에도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4일 귀한 그 이름

남자는 아버지가 되기 전에 준비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부르기 위해 이름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자기자식을 낳기 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이것 저것을 뒤적이며 귀한 이름을 따서 지어놓았다가 태어나면 그 준비한 것을 붙여주고는 얼굴을 가까이하여 ‘아무개야’하며 기쁘게 부른다.

 

마찬가지로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태초에 자기의 자식을 낳으실 때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의 모든 곳을 다 뒤지시며 귀한 이름을 찾으셨으니 그 이름을 바로 예수라 지으시고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나서 그 이름을 주셨으니 그때에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그 아들에게 권위를 주시고 그 아들을 통하여 종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종들을 통하여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을 창조하셨으며 사람들도 창조하셨다. 즉 태초에 세우신 구원과 심판의 모든 계획과 그 뜻을 그 귀한 이름을 가진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사람은 또한 자기의 자식을 위하여 이름을 붙이되 그 아이가 자라나 나중에 그 이름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그 소원은 아이에 대한 소원만이 아니요 사실은 자신의 마음도 그것을 원한다. 즉 아비가 돈을 원하는 자는 자식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이름을 높은 자리를 원하는 자는 자식이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름을 명예를 원하는 자는 자식이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는 자식이 그것을 이루도록 자신을 희생해 밀어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불로 멸하시기 전에 이 세상을 구원코자 하신다. 그리고 그 귀한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 주시는 그 일을 자신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비록 누구나 죄와 허물이 있으나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이 마지막 때에도 거듭남의 은혜를 얻어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얻고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도 얻고 있다.

 

이처럼 아버지의 아들은 처음부터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으며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권위를 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종들은 그때도 예수의 그 이름에는 순복했으며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그리하여 말씀에 순종한 종들은 그 의롭고 거룩한 셋째 하늘로 들어가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누린다.그러나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선악의 죄를 창조한 그 원수는 오히려 셋째 하늘에서도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났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2천년 전에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도 사람들이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그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붙이라고 그 육의 아비 될 영혼에게 종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 이름을 진실하게 부르는 자는 참으로 아버지의 종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그를 돕고 마지막 때는 그 귀한 이름을 가진 아들과 같은 생명을 얻어 영원한 셋째 하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 이름을 처음부터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귀에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부자 되고 병 고친다라는 거짓선지자들의 말들이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죄의 사함을 얻지 못한 그들이 어찌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는 거짓선지자를 따라 그 사망으로 들어가지 않으리요?

 

한편 처음 만날 때는 그 이름을 진실하게 부르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으나 중간에 첫사랑을 잃고 육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중간에 거짓과 행위로 돌아선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은혜를 받았으니 열심히 일해서 상급을 얻자는 삯꾼의 그 말이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므로 거룩을 이루지 못한 그들이 어찌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27일 은사자가 받는 심판과 상급

자신을 위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아이가 큰소리가 나는 마이크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그 마이크에다 대고 말을 하면 목소리가 아주 신기하고 아름답게 변해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이는 인기가 높아져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그 소리를 들었다. 또한 아이들이 많이 모여서 그 아이를 듣고 있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거짓말을 해도 무조건 좋다고 하며 들었으며 중요한 이야기를 해도 농담처럼 듣고는 웃어댔다. 이것을 보자 한 아이가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모아서 말해보았지만 자기에게는 아이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이에게 그거 어디서 났냐고 물었으며 그 아이는 자기의 아빠가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즉시 집으로 달려가 자기의 아빠에게 저거하고 같은 마이크를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마이크라는 것은 먼저 책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참된 마음을 가진 후에야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과 다른 아이들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된단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고도 오로지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마이크만 사달라고 밤낮으로 졸라댔다. 이에 아빠는 마이크를 사주었으며 그 아이는 아이들을 많이 모은 그 아이와 똑같은 말을 흉내내면서 다녔다. 그러자 아빠는 한 번 두 번 세 번 경고를 준 후 그래도 거짓말과 농담을 하자 혼을 내고는 아이가 더 이상 잘못되지 않도록 그것을 빼앗았다. 그 후 그 아이는 아빠에게 선물을 빼앗긴 후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보니 자기가 그 마이크를 잘못된 마음으로 구했으며 또한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알았다. 즉 책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도 없이 그저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서 인기를 끌어 아이들을 많이 모으려고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 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빠에게 책을 사달라고 했으며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빠는 흐뭇해하며 자신이 이미 계획한대로 가장 먼저 책을 통해 깨우침을 준 후 필요한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사주었다.

 

이처럼 은사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요 그것을 받는데 그 어떤 외모와 경험과 성별과 나이 등의 조건은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모하면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때에 따라 기초적인 선물부터 하나씩 하나씩 차례대로 허락하신다. 그리하여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사모한 그가 그 선물을 가지고 그 선악의 죄와 싸우므로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직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세상의 명예를 구하는 자는 무슨 말과 무슨 행위를 해도 그것은 오직 자기의 뜻과 계획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거짓말한 그 원수는 자기가 택한 자에게는 처음부터 자신의 은사를 허락한다. 그리하여 그가 그 선물로 더욱더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효과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원수가 주는 선물과 달리 처음에는 아버지께로 왔으나 중간에 원수의 선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한 영혼이 마음이 조용하고 바르게 되어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께서 그 영혼을 택하시어 병을 고치는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가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교만해지니 아버지께서는 그를 위하여 짧게 3년 이후에 그것을 거두신다. 이때 그는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서 선물을 거두신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되 아버지께서는 그가 그 교만함을 놓지 못하므로 아무런 답을 안 주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구하니 결국 원수에게 넘어가 원수의 힘으로 그 일을 행하며 아버지를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을 더욱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능력을 행하고 있는 많은 수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거룩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선물을 구하며 혹은 선물 없이도 행하며 혹은 선물과 다른 것을 행하기 원하며 혹은 다른 곳에서 온 것을 가지고 행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마음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그 선물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통해 오직 자신의 욕심을 이루며 또한 자신이 높이 올라가고자 함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아버지의 선물로 행한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심판하시되 그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행했는가를 보신다. 또한 이 마지막 때에 원수에게 받은 선물로 사람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거짓된 자들도 역시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그의 말과 행위와 함께 심판하신다. 그리하여 불법을 행한 그들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며 영으로 육의 이익을 끼친 거짓선지자들이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회개와 돌이킴도 원치 않는 영혼은 이 심판의 말씀이 보이지 아니하니 그는 선물로 행하면서 오히려 이 말씀은 내가 아니라 저들이 받을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선물을 행한 모든 자들은 자신 말하고 행한 것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를 마지막에 심판 받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살펴보고 가장 먼저 아버지의 뜻을 깨닫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옳다. 또한 자신과 공동체에 필요한 선물을 구하되 아버지께서는 때에 맞게 필요한 선물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20일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는 자기의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 그리고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서 집으로 갈 때 즐겁고 자식은 그 선물을 뜯어보고는 기뻐하며 가지고 놀면서도 기뻐한다. 그리고 부모는 그 기뻐하는 그 자식을 보며 자신도 기쁘고 흐뭇하니 그 선물로 인하여 부모와 자식이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자식이 선물을 준 부모는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선물만을 보고 좋아한다면 그러한 아이가 나중에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의 아비와 어미에게 어떻게 하는 자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니 오히려 그 선물보다는 선물을 들고 있는 아빠를 반기며 그 선물을 뜯어 들고는 아빠의 품에 안기어 감사하다고 하며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도 아빠가 오면 아빠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 옳다. 또한 자식은 그 선물을 보며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 선물을 준 사람과 자신이 어떠한 관계인지를 늘 마음에서 잊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이와 같으시니 아들인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은사를 내려주신 이유와 목적을 깨닫고 그것에 맞게 그 선물을 이용하기 원하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지해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의 그 마음에 늘 아버지와 아들을 품고 있기를 그리고 그 선물을 이용하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요 그것을 주신 분이 자신의 주님이라는 것도 늘 잊지 않기 원하신다.

     그러나 자기만의 욕심과 유익만을 품은 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어리석음을 취한다. 즉 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사랑과 은혜를 베푼 부모가 아닌 부모가 가진 것에 그의 마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을 주님으로 믿는다 하며 어리석음을 취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자기의 남편을 보고 말하길 당신은 저의 주인이라고 하며 그 남편의 아비를 보고는 자기의 아버지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을 보니 눈과 귀와 입과 몸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너무나 많았으니 거기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날마다 세상을 향하여 나갔으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 와서 다시금 말로 그것을 시인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저 두 사람이 당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맞냐고 물을 때도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 그렇다고 시인했다.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했으니 끝까지 세상을 향하여 나갔으며 게다가 세상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집에 와서 역시 말로 그것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이 물을 때도 시인했다. 그러나 그의 시아버지는 그 여자를 딸로 그의 남자는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그의 행위는 끝까지 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자들은 그 입이 주라 시인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인정을 안 하신다.

     그런데 이 입술의 시인과는 다른 그 마음과 몸의 행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자들은 그 시인을 하고 자신을 돌이켜 보았을 때 세상으로 나가는 자는 오로지 그 순간만을 넘기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 영혼은 아직 그 빛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라는 시인을 그의 영이 하는 자들은 그들도 역시 그 육의 입에서 주라 시인한 후에 그 육적인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모든 육을 내려놓는 자는 그 영혼이 살아있기에 그 빛이 그 마음과 또한 그 생각과 육을 지배하므로 거룩해진다.

     그런데 영의 시인과 동일한 그 마음과 몸의 행위를 통해 역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 입술의 시인은 그저 그 순간만을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과 은혜로 그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겠다는 시인과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만이 아버지와 아들의 그 신령한 생명과 그 거룩한 피를 얻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3일 은사에 대한 말씀을 주신 이유와 목적

거룩하신 영께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지체들에게 은사에 대한 말씀을 주셨지만 은사는 교회만이 아니요 거짓선지자들과 이방종교에 거하는 자들도 행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은사만을 가지고는 그들이 참된 자인지 거짓된 자인지 분별하지 못하며 모른다. 오히려 거짓된 자는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아무 때나 더 많이 행하니 은사로만 판단하면 거짓된 자를 참된 자로 보게 된다.

 

또한 거룩하신 영께서는 교회가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그것을 행할 때가 오게 됨을 아셨으니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들이 우선 은사 하나하나에 대하여 잘 깨닫기 원하셨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떠한 상황에서 선물을 주시는 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아버지께서 선물을 주신 목적에 맞게 그것들을 이용하길 바라셨다. 한가지 비유를 통하여 그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검은 수건을 가지고 비둘기를 감쌌다. 그리고 다시 그 수건을 들어올리니 분명히 그 안에 있던 비둘기가 없어졌다. 이것을 보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그 사람에게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번에는 그 검은 수건을 위로 던졌다. 그러자 그 수건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비둘기로 변했다. 이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신기해하면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술을 보여준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한 자신을 더욱더 자랑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보니 저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다. 그런데 저 능력은 분명히 신이 준 능력일거야. 그러니 내가 신과 함께하는 저 사람을 따라가면 영원히 살 수 있겠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어떤 사람이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법을 알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 마술사를 따라가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마술을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모아 영원히 사는 법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법은 알려주지 않고 늘 마술만을 익히며 마술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마술을 보는 것만 원했으며 그 사람도 오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만 원했다.

 

이와 같이 고린도 지역에는 많은 이방인의 신들이 있었으며 그 신을 좆는 자들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방 신에게 인도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타나는 능력을 보며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가졌다. 즉 능력 행하는 자를 신처럼 보며 그 이방신의 능력으로 인해 자기가 영원히 살 것 같이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안에는 진리가 없었으니 능력을 행하는 자는 오로지 능력만을 보였으며 사람들은 더욱더 능력만을 보기 원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방인들의 모습들을 고린도의 지체들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도 참된 능력을 나타내어 이방신의 인도자들과 동등하게 되고 싶었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더 으뜸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능력만을 구하기 시작했다. 즉 신령한 선물을 잘못 구하며 잘못 사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능력과 은사를 행하면서 자기에게서 아버지의 능력이 나오는 것같이 행했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과 은사들이 이방신보다 더 신령하다고 말하며 그것이 영원히 갈 것처럼 행했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으며 사람들을 더 쉽게 모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룩하신 영께서는 선물에 대한 말씀을 주시며 무엇을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만과 욕심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자들은 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끌고 있으니 그 마음을 가진 자들은 그대로 끌려가고 있다.

 

그러나 육과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에서 돌이킨 자들은 지금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선물로 서로가 거룩에 이르도록 섬기고 있다. 즉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로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6일 더욱 큰 은사

한 의로운 아버지가 아들과 딸을 낳고는 그 자식들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의롭고 깨끗하게 자라길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 아들이 자기의 말을 듣고 따르며 딸이 오빠의 말을 듣고 따르길 원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식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식들에게 이런 말 저런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으니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닫기까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순종치 않았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참을 기다리다 때가 되자 자기의 뜻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었다. 이때 그 아들은 깨달음을 얻고는 아버지의 말에 하나에서 열까지 순종했으며 죽기까지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며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을 기뻐하며 가까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딸도 마찬가지였으니 그 딸아이도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지 못할 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오빠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죽으면 죽었지 오빠를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때가 되자 그 딸도 오빠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하나씩 하나씩 깨닫자 그 딸도 역시 아들이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따르는 것처럼 오빠의 말을 듣고 따랐다. 그러므로 그 딸도 아버지에게 흘러나와 오빠에게 임한 그 사랑을 오빠를 통하여 넘치게 받았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흘러 넘치는 사랑을 받은 그 아들과 딸은 의롭고 깨끗하게 자라났으며 그 가정에는 늘 기쁨과 행복이 넘쳤다.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되 자기하기 나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버지께로 먼저 사랑을 받으려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은혜를 주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가 죽으리라고 생각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아들께서도 거룩하신 영께서도 그를 사랑하시며 귀히 여기신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가 하는 이 말씀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의 이끄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진리가 아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몸에 거하며 거룩에 애쓰는 지체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즉 아들의 머리와 몸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몸이 머리에게 순종할 때 머리로부터 사랑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머리는 마음에게 순종할 때 마음으로부터 머리로 사랑이 넘쳐흘러 몸도 사랑을 받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로 흘러 넘치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 이끄는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세우신 가정을 통해 그 머리와 몸의 관계를 또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통해 가정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더욱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부부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즐겨 읽는 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그 진리가운데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이 오래 참는다는 것은 신부가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며 신랑을 기다리듯 거룩에 애쓰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오래 참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은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큰 선물을 받지 못하면 즉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지 못하는 영혼은 그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전하는 자라 할지라도 자신부터 그리스도를 오래 참아 기다리지 못한다. 이때 따르는 자들도 그리스도를 오래 참아 기다리지 못함은 위로부터 내리는 그 사랑이 그들에게 흘러 넘치지 못하기 때문이요 이끄는 자들에게서 순종의 본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아버지께로 사랑의 선물을 받지 못하고 교회를 이끌고 있는 자는 그의 가정에서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오래 참아 기다리지 못하는 그 가장의 아내도 흘러 넘치는 사랑을 받지 못하니 그리스도를 오래 참아 기다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아버지께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모에게는 말씀의 본을 보지 못하니 그들도 역시 오래 참지 못한다. 하물며 그의 친척과 친구는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아버지께로 더욱 큰 은사를 받으면 오래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그 넘치는 사랑이 그의 공동체와 가정에 흘러 들어간다. 그리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그 한 영혼을 통해 그의 가정과 공동체가 다 함께 거룩에 애쓰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사람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에 죽도록 순종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이요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자녀들이 부모를 그리고 한 교회에서 따르는 자들이 이끄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따르는 그 힘은 어떠한가?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와 함께하는 가정과 공동체의 밖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하지도 보지도 못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30일 다스리는 자

거듭난 한 영혼이 말씀에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니 찾는 이가 적다는 말씀을 읽었다. 그런데 그는 언뜻 생각해보니 그 말씀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의 비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왜 적다고 했을까?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좁고 협착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인가?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 가는 게 그렇게 문이 좁고 협착한 길일까? 혹시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는 다른 어떤 길과 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 좁은 길과 넓은 길을 각각 누가 걷고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은혜 받은 그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참된 목자와 양은 그 좁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거짓된 목자와 양은 그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생명을 원하는 자이니 그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들에 대하여 들어본 적도 없고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힘으로 전국을 두루 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이에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 그를 이끌어 그들에게 허락하셨으니 그는 갈급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도의 초보를 배우게 되었다. 이제 말씀의 기초가 끝나자 그는 한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들 서너 가정이 모여 거룩한 만찬을 행하는 곳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교회를 다스린다는 자들이 그에게 그리스도도의 초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자 이것저것을 물었으며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그대로 대답했다. 그리하여 만찬에 참여를 허락 받은 그는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는 만찬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거룩하게 참여하며 조금씩 조금씩 세상으로부터 등을 지고 아버지와 아들께서 비취시는 그 빛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으며 또한 이제는 자신도 가족도 그 빛 된 생명을 위하여 주님께 헌신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역시 교회를 다스린다는 자들이 그의 마음과 행위가 온전한지를 확인했으며 또한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마음을 보인 후 그 의미를 그대로 대답했다. 그리하여 그는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예배에 참여를 허락 받은 첫날 역시 눈물을 흘리며 거룩하게 참여했다. 그리고 그 거룩한 모임 속에서는 참으로 아버지의 비밀들이 그를 깨우치게 했으니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더욱더 사랑하며 좇아갔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처음으로 한 지역에서 서너 가정이 함께 하는 그 거룩한 만찬에 참여하고자 한다. 이때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집사와 장로는 말씀의 깨달음이 있으니 교회의 다스리는 자들로서 그가 그리스도의 기초적인 말씀의 지식을 바르게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그 거룩한 만찬을 행할 때에 그가 그 살과 피를 더럽히지 아니하고 의미를 알고 거룩하게 먹고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집사와 장로는 이처럼 말씀의 기초가 없는 자들은 거룩한 공동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다스린다.

더불어 집사와 장로의 다스림이 한가지 더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는 그 지체들의 처소에 가서 그 지역에 속한 영혼들을 말씀으로 다스린다. 그래야 한 지역에 거하는 그 지체들이 그들의 그 거룩한 다스림을 받아 즉 영적인 인도를 받아 아버지의 그 뜻을 끝까지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감독은 집사와 장로가 하는 그 동일한 일을 모든 지역에 거하는 지체들이 다 함께 모였을 때 행한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헌신하기 원할 때 그 온전함을 확인하며 또한 주일예배의 의미를 묻는 것은 감독이 행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지체들이 다 함께 모여 거룩한 만찬과 부활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도 역시 모든 지체들이 거룩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이렇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 거룩을 늘 유지하도록 다스리되 더럽히려는 영혼에 대해서는 끊어내므로 다스리기도 한다.그러므로 말씀을 배워서 알면서도 자기의 욕심과 의를 위해 말씀을 따르지 않거나 혹은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는 그 죄를 끝까지 끊어내지 않으려는 자들을 끊어내는 일을 그 생명의 약속이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모든 지체들이 다 함께 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 행한다. 그리하여 목자장이 오실 때 잘 다스리고 잘 가르치므로 말씀의 본이 된 그들이 바로 그 영광을 쓰고 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므로 그리스도께로 진리의 기초를 얻지 못한 자들은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일 말씀을 모르면 과연 무엇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며 인도하리요? 그는 오직 깨닫지 못하는 그 말씀을 이용해 자기의 생각과 뜻과 의와 계획대로 다스린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런 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다른 자들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거룩한 교회에 세우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깨닫지 못하고도 다스리며 가르치는 그 위치에 앉아있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우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는 목사로서 다스리는 일도 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오로지 자기의 말을 잘 듣고 협력하는 자들만을 사랑하며 축복하며 높인다. 그러나 자기의 말에 복종치 않는 자들은 처음에는 피하고 두 번째로는 따돌리다 세 번째로는 저주를 내려 네 번째는 바다로 보낸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니 자신이 교회에서 가장 높이 있다는 것을 자신과 함께 하는 그 거짓된 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이루어질 그 심판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그 잘못된 전통의 길로 들어서서 잘못 가르치며 다스리고 있는 그 불쌍한 영혼들과 또한 잘못 가르침과 다스림을 받고 있는 그 불쌍한 영혼들이 과연 무엇을 행하여야 그 좁고 협착한 길로 들어서리요?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 것은 없되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이킨 후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밖에 없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를 생명의 길을 내어주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주신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3일 돕는 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에 거하는 자들이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도록 여러 가지의 선물과 직분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자신이 받은 그 직분에 앉아 자신이 받은 그 선물을 가지고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지 않고 오직 자신의 거룩과 또한 공동체에 함께 거하는 지체들의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런데 그 선물과 직분가운데 다른 영혼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도와주는 선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돕는 은사이다. 한가지 비유를 통해 누가 누구를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여자가 가만히 보니 마음이 더럽고 교만하고 땀이 없는 여자가 세상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잘난 체를 잘하며 게으른 여자가 인정받아 높아질 수 있나 궁금해서 보니 옷걸이가 좋았다. 반대로 어떤 여자는 마음이 착하고 겸손하고 성실해도 얼굴이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늘 낮은 곳에 있었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의 옷걸이도 좋은 편은 아니니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보기는 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한곳에 오래 붙어있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회사에서 사람들을 뽑는다며 이렇게 공고를 했다. 입사조건: 학력 능력 체력 불문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싶은 사람.연봉: 마음과 행실이 얼마나 올바르냐에 따라 10억에서 1000억까지. 보너스: 동일한 기준에 따라 계열사 사장에서 그룹 회장까지. 그 여자는 그 광고를 보더니 연봉과 보너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입사조건에는 마음이 한없이 끌렸다. 그러나 자신의 외모를 아니 정말 입사조건만 맞으면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면접시험을 보러 가서 자신의 마음을 밝히니 공고대로 합격해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처음이라 그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책을 한 권 주며 이것을 읽으면 사람이 어떻게 올바르게 되며 또한 어떻게 올바른 행실을 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 여자는 그것을 읽어도 도대체 뭐가 뭔지를 몰랐다.이에 그 여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윗사람에게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윗사람은 그 마음을 알고는 그 책의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으며 그 여자는 회사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이 이전에 있었던 직장들이나 예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다 잊어갔다. 그리하여 그 여자도 마음과 행실이 올바르게 되었을 때는 자기의 밑에 들어온 다른 여자를 역시 그 마음을 보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한 영혼은 교회를 통하여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의 기초를 배우며 아버지의 뜻과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그 믿음의 증거로서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이제는 그 깨달은 바를 실천하기 원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혹은 혼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때에 맞게 자신의 살과 피를 허락하신다. 그리고 공동체에 먼저 거하던 지체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새로 들어와 함께하는 영혼들에게 늘 말씀과 기도로 도움을 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만을 의지해 말씀에 순종하는 그가 다른 지체들의 도움을 받으며 또한 함께 거룩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오직 그 목적만을 품고 거룩한 자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마음에 그 첫사랑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오직 그 거룩한 공동체만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하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이루어간다.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의 안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거룩한 자(聖徒)와 집사의 직분을 가진 자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는 오직 성도와 집사만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 동일한 목적을 가진 영혼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더해지니 따르는 자들도 있다. 또한 사람이 처음부터 의롭고 거룩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거룩에 애쓰는 그 영혼들을 도와줄 자들이 필요하니 그들이 바로 거룩한 자와 집사이다.

이와 같이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세우신 성도와 집사의 직분을 가진 자들에게 아버지의 뜻대로 그 돕는 선물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와 집사는 모든 지체가 도움을 원할 때에 준다. 특히 말씀에 관하여 도움을 늘 주니 나중에 공동체와 함께하며 거룩에 애쓰는 자들이 늘 말씀에만 거하게 하므로 그 목적에 이르도록 함께 애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에 거하는 영혼들은 영도 육도 도움 받기를 원하니 몸은 정해진 시간에 나와 함께 하지만 마음은 육과 세상에 가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치는 시간을 기다리다 끝나면 몸이 곧장 마음이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한편 거짓된 자들은 교회와 말씀을 통해 오직 자기의 육적인 욕심과 세상적인 유익을 구하니 거짓된 교회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질과 명예와 정보와 사귐을 도움 받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얻고자 자기 것을 바치며 그들과 함께 거한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16일 교사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해 자신이 세우신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에 거하는 지체들에게 아버지의 그 거룩하신 말씀을 가르치며 또한 그 영혼들이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기도하게 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후의 교회시대에는 목사와 장로가 다른 지체들이 거룩에 이르도록 섬기는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아들의 몸 된 교회에 있는 교사는 오로지 장로와 목사이다.

교회시대에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어떻게 교사의 일을 하는지 깨달으려면 우선 한 지역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모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선 초대교회와 교회시대에는 한 지역에 한 교회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시금 서너 가정씩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이니 한 지역의 한 모임은 그 지역의 다른 모임들과 다른 교회가 아니라 그들이 비록 서로 다른 곳에 거한다 하여도 하나를 이룬다.

초대교회시대의 빌립보교회의 예를 든다면 우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의 모임이 빌립보지역의 이곳 저곳에25개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그 주일예배에는 빌립보지역에 흩어져있던 그 모든 25개의 모임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리하여 그것이 이방인의 빌립보교회가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한 몸에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어느 한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모든 지역에 다 있다. 예를 들어 에베소지역에도 빌립보교회와 같이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의 모임들이 있었으며 또한 부활을 기념하는 그 주일예배에는 다 함께 모였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이니 그 두 지역에 있는 이방교회가 서로 다른 교회가 아니요 하나이니 그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 거한다 하여도 하나를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어느 한 나라나 한 민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모든 민족과 나라에 다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시대에는 모든 이방민족에 거하는 교회들이 다 함께 하나를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가운데도 교회가 있으니 초대교회 때는 그 모든 이방민족들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와도 하나를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그 초대교회시대의 이방인과 유대인의 한 교회가 다른 7교회시대의 모든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한 교회들과 하나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그 한 몸을 이루는 것이요 이 하나됨은 이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한 민족이나 나라의 한 지역의 안에서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서너 가정이 한 가정에 모여 만찬을 거행할 때 그 모임을 거룩하게 인도하며 그 모인 자들에게 말씀의 비밀을 알려주는 일을 할 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각 지체들이 함께 모이지 않을 때는 매일 매일 한 가정 한 가정을 찾아가 계속적으로 말씀의 비밀을 전해주므로 거룩에 애쓰는 각 영혼들의 상태를 살피는 자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하여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한 자들 가운데서 뽑아 자신의 몸 된 교회에 세우신 자가 바로 장로이다.

한편 한 지역에 흩어져 거룩에 애쓰던 지체들은 부활을 감사하는 주일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두다 한곳에 모인다. 그러므로 그때에도 그들에게 말씀의 비밀을 가르치며 그 한 지역의 공동체가 그 소망을 향하여 앞으로 행진하게 할 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한 지역의 모든 영혼들이 거룩을 이루도록 늘 아버지께로 구하는 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하루에 5시간의 기도와 7시간의 말씀을 행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역시 거룩한 자들 가운데서 택하여 교회에 세우신 자가 바로 목사이다.

그런데 목사와 장로가 이렇게 교회의 행정과 재정을 집사들에게 맡기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초대교회시대에도 일곱 교회시대에도 동일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영광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느 교사가 그리스도께로 세움을 받은 자인지 아니면 사람의 욕심과 명예를 위해 만들어진 교단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인지 혹은 심판 때에 영광을 얻을 자인지 아님 부끄러움에 처할 자인지를 미리 알거나 분별하려면 이 마지막 때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는 그 행위에 분주한지를 보면 된다.

또한 다른 민족의 교회나 유대인의 교회는 마다하고 오직 한 지역에 거하는 가까운 교회와도 하나 되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그 합쳐진 교회의 교사를 서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하는 지체들과 또한 한 지역에 흩어진 지체들과 또한 다른 지역의 교회와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그 욕심과 교만을 은 그가 이미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품고 있는 그의 마음이 명백하게 증거한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9일 선지자

그리스도의 후의 교회에 거하는 목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면 그리스도전에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끄는 일을 했던 제사장에 대하여 알아야 하며 또한 누가 그를 세우고 이끌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시대의 선지자가 누구인지 알기 원하면 우선 그리스도전의 선지자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구약시대에 유대백성들의 영혼을 거룩으로 이끄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였다. 그리고 그들 간의 질서로서 피의 제사를 인도하는 제사장의 오른쪽에 백성들을 다스리며 감독하는 자로서 왕이 있었으며 제사장의 왼쪽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선지자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백성들을 아버지의 뜻으로 올바르게 이끌 수 있도록 이 세 부류의 이끄는 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이 있으셨다. 그러므로 선지자와 제사장의 관계에서는 그들이 서로 아버지의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의 그 죄를 깨닫고 또한 피의 제사로서 죄들의 씻음을 허용하므로 백성들을 순종케 하여 거룩하게 이끌기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아버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있었으며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아버지의 그 뜻과 그리스도의 초림과 천년왕국에 마음을 둔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다 선하고 신실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 택함 받은 선지자와 제사장은 오직 아버지의 그 원하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원하심을 이루지 못했으니 오히려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명예를 취했다. 그러니 원수가 이끄는 거짓선지자는 아버지의 말을 전한다 하며 아버지의 말을 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말을 했으니 그것은 그들이 오직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전에 거하는 그 악한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전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한 자들은 다 악한 선지자요 악한 제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시대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 선지자이되 그들은 세상에 외치지 아니하고 자신을 교회라 하는 모든 자들에게 외치므로 세상보다 교회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그 교회가 거룩에 이르고 또한 참된 교회가 되도록 말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전에 선지자와 제사장이 구별되었던 것처럼 교회시대의 선지자들은 현재의 사람들이 흔히 보는 목사가 아니요 오히려 그의 옆에서 자신이 받은 말씀을 그 교회의 이끄는 자들에게 전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마지막에 바울이 그 교회를 위하여 모든 글을 기록한 후에는 그들이 예언한 것을 거두셨다. 또한 그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도 다 거두셨다. 그러므로 오직 초대교회에만 선지자가 있고 교회시대에는 선지자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교회에 다시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에도 그 거룩한 자들의 자녀들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전의 선지자들의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뜻과 그리스도의 오심과 천국에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의 선지자들도 그들의 아비와 어미처럼 그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뜻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과 셋째 하늘에 있다.

이와 같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 아버지와 아들께서 세우시는 선지자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오심과 환난의 때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들은 이러한 일들을 감당한다.

아버지께서 세우신 교회는 교회시대에는 오직 육과 세상에서 또한 마음 없는 행위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라는 말씀만을 전하다 환난의 때가 되면 이제는 그 자가 적그리스도라는 말도 외친다. 또한 사람들이 그 적그리스도가 참으로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에 이 땅에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바로 그때에 거룩한 자들의 자녀들이 예언을 하여 어디로 가야 그 영혼들이 안전하고 어떻게 해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는지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원수도 자신이 세운 교회들의 안에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악한 자들을 세운다. 그러나 그 참된 선지자와 거짓된 선지자의 구분이 너무나 쉬운 것은 그것이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는 거짓된 말을 듣고 싶어하니 귀를 긁어주는 자들을 따를 것이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참된 말을 듣고 싶어하니 오히려 육과 세상의 썩어질 복에서 마음을 돌이켜 참된 선지자를 따를 것이요 그와 같이 참된 목자를 따를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8월 9일

8월 2일 사도

한 왕이 자기의 아들에게 의로운 말을 들려주고는 백성들에게 가서 그것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 말대로 순종하라고 하면서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나는 나의 뜻을 이루고자 너를 백성들에게 보내 노니 너도 나처럼 너의 말을 듣고 너를 따르는 자들에게 나의 말을 주어 그들도 백성들에게 보내어라.” 이에 그 왕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백성들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받은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했다.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13명은 왕의 그 의로운 말에 순종하므로 왕의 뜻을 이루기 원했으니 그 아들을 따라다니며 그 아들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그 힘 있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은 그 말이 듣기 싫었으니 그 왕의 아들을 싫어했다. 오히려 자기들의 힘과 앉은 자리를 이용해 이런 저런 해코지를 했다. 심지어 그 아들을 향하여 자꾸 그 말을 전하면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들의 그러한 방해와 협박에 흔들리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결국 그 힘 있는 자들에게 붙들려 많은 자들이 보는 앞에서 온 몸을 칼로 찢겨 피를 흘려 죽었다. 그리고 나서 그 아들을 따르던 13명에게도 동일한 해코지와 협박을 했다. 하지만 그들도 그 어떠한 방해와 협박을 받아도 왕의 아들처럼 의로운 말만 전하며 자신이 먼저 그 말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 힘 있는 자들에게 붙들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으로 끌려 나와 한 명씩 한 명씩 칼로 찢겨 피를 흘려 죽었다.

이와 같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오직 아버지의 말씀과 그 뜻만을 전하셨으며 또한 그 말씀들대로 순종하므로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역시 사람들에게 보내셨으니 사도라는 자는 늘 말씀만을 전하며 그 말씀에 자신이 먼저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품고 그 선악의 죄를 창조해 자신과 다른 종들과 둘째 사람을 타락으로 이끈 원수는 말씀에 끝까지 불순종하며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보내심을 받아 오직 말씀만을 전하는 그리스도를 때로는 시험하고 때로는 대적했다. 마찬가지로 원수는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말씀만을 전하며 순종하므로 자신과 다른 자들의 거룩을 이루어가는 그들을 사람과 이 세상을 이용해 흔든다.

그러나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이 세상의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아니한다. 오히려 그것들 가운데서 더욱더 말씀 위에만 서있다 나중에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에는 가장 큰 그 물기에 나아가 믿는 자들에게 그 깨달음을 준다. 물기라는 말의 의미는 이러한 장면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우선 많은 영혼들이 군데군데 몰려있으며 그 무리들이 그 물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때 그 원수들이 그 한 영혼을 물기로 데리고 나와 한가운데 누이고는 긴 칼로 그의 살을 찢는다. 이때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는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많은 자들은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그 물기를 보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와 같이 물기라는 것은 거기서 그리스도께 받은 그 거룩한 살과 피를 내어 놓으므로 오직 그리스도의 깨달음을 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랐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의 모든 지체들에게 그 물기를 통해 그 푯대가 되는 자가 바로 사도이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보고 누구다 무엇이다 칭하는 자들은 그 칭함과 또한 말씀을 이용해 오직 사람을 모으며 자신이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러다 마지막 때에 그 물기를 피하니 영혼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끈 그는 마지막까지 사람의 영광을 취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입으로 자기를 사도라 하며 자신의 은사와 권능과 사역은 사도적이라 하며 자신들을 사도적인 제자요 교회라 하는 자들의 그 입과 가진 것을 자세히 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26일 직분은 누가 세우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고 정결한 영혼들의 머리시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정결한 몸이니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대로 신령한 은사를 내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서로를 섬기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그들의 안에 여러 가지 직분들을 세워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거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영혼들에게 선물과 직분을 내려주시는 분은 그들의 주인 되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이시다.

그러나 선물과 직분을 내려주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말로는 모든 것을 믿는다고 하되 ‘모든 것이 초대교회에서 다 끝났으니 지금은 모든 것을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자와 사람들이 원하는 자를 뽑아 그 직분에 앉히고는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자신과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가실 때 내가 너희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아들의 그 약속대로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아들의 거룩하고 정결한 몸 안에 선물이나 직분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뜻도 모르니 그 선물과 직분을 통해 거룩을 이루어가야 함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고 헛된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모든 것이 초대교회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 하늘의 은혜도 없는 것이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섭리도 이미 다 이루어졌으니 지금은 아버지의 경륜이 계속해 이루어져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죄와 세상을 이기셨으니 지금은 그 선악의 죄와 이 세상을 이기는 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은혜가 어찌 이 말세에는 없으리요?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 선악의 죄와 세상을 이기며 경륜을 이루는 자들이 어찌 이 마지막 때에는 없으리요?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거룩하고 정결한 교회가 어찌 이 말세에는 없으리요?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정하신 자들을 아들의 그 몸 안으로 부르신 후 어찌 그 은사를 내리시거나 직분을 세우시지 않으시리요?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초대교회만이 아니요 일곱교회시대와 마지막 때와 대환난 때에도 계속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니 초대교회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부인하는 그들은 너무도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이다. 그 이유는 그 말을 통하여 머리가 몸 가운데서 직분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몸이 자기 맘대로 직분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요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는 이방인이 아닌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을 아노라 믿노라 하는 자들이 구약의 이방인들이 왕을 달라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요 이미 에베소 교회시대부터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로 인하여 오로지 육적이고 세상적인 힘이 강한 자들이 교회에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반대로 육과 세상의 힘이 약한 자들은 늘 아래로 내려가므로 강한 자들은 더욱더 강해지고 약한 자들은 계속 약해져 갔다. 이 마지막 때에 자신과 사람들이 원하는 자들을 세우고 있는 자들을 가만히 보면 그 증거와 더불어 결과도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교회시대에 오히려 그 약한 자들과 늘 함께 하셨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는 자들만이 그 인자의 살과 피의 거룩함을 계속해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반면 어리석고 교만하여 강해진 자들은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바리새인들과 같이 오히려 사람과 세상과 타협해오고 있다. 심지어 나라와 타협하고 원수와도 타협하며 더욱더 자신이 높아져가고 있다.

이러하므로 강한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계속 강해지고 있으며 약한 자들은 더욱더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전에도 당시에도 십자가후의 모든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오로지 그 약한 자들을 택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택하신 그 약한 자들을 통해 그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의 강함을 돌이키지 못하는 자들은 그 마지막 때에 바벨론에 거하는 자들과 함께 오히려 애통하게 될 것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9일 은사를 받으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때에 따라 거룩하신 영을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선물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무에게나 그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 거룩한 공동체에서 오직 마음이 올바른 영혼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선물을 받을 때에는 몇 가지를 그 영혼이 해야 하되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그 참되고 신령한 선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몸이 근질 근질거려 목욕을 가려고 보니 큰 도로 옆에 아주 큰 사우나가 하나 있고 그 옆에 시설이 좋은 찜질방이 있고 동네 안에는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세 곳 중에 어디를 갈까 하고 보니 6층짜리 사우나 건물에는 황토사우나 파도냉탕 이용원 수면실 피부관리실 숯불가마 마사지실 안마실 얼음방 네일아트 토굴 온돌방 놀이방 서점 당구장 식당 호프집 노래방 헬스클럽 PC방 DVD영화관 노천카페 야외정원 지압길 야외 수영장 등 없는 게 없었다. 한편 4층짜리 찜질방에는 근육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건식습식 사우나와 누워만 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물러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준다는 마사지실과 자연산소를 넣어주어 스트레스를 풀게 해준다는 수면실과 전통 불가마 등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두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렸으며 좀도둑들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동네목욕탕에는 오직 때를 벗겨내기 위한 시설만 되어있었으니 온탕 하나 냉탕 하나 한증막 하나 그리고 몇 개의 샤워기와 빨간 고무바가지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거기는 두세 사람만이 있었으며 좀도둑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이 세 곳을 비교해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우나와 찜질방중에 한곳으로 가려고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큰 길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의 중간에 가만히 서서 하늘과 땅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우나에는 자신의 목적과 상관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찜질방이 해준다는 그 서비스들은 거기서 얻는 게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본 후 오직 그 한가지 목적만을 이룰 수 있는 동네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제 카운터에서 주인에게 목욕비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하나씩 벗고 저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오겠다는 마음만 있었으니 다른 생각들은 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탕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는 동네사람들 두셋이 온탕에 앉아있었다. 그러므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샤워를 하고 온탕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함께 나누었다. 또한 그들과 함께 한증막으로 함께 들어가서도 역시 이런 저런 말을 나누었다. 이제 드디어 때를 미는데 몸이 말라서 그런지 때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시금 온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때가 잘나왔다. 그는 이제 모든 곳의 때를 다 밀고 등만 남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해주겠다고 하며 등을 대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도 그 사람의 등을 멀어주려고 하니 자신은 이미 밀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의 등을 마음을 다해 밀어주었다. 이제 그는 비누를 온몸에 묻혀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탕에서 나온 후 저울에 올라가보니 아까보다 5킬로가 줄었다. 그는 깨끗한 수건으로 몸을 닦고 깨끗한 속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선물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거듭남의 그 말씀을 듣고 그가 우선 거듭나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거듭남이 없는 영혼에게는 신령한 은사와 직분의 선물도 허락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이 없는 거짓선지가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그의 직분과 말씀의 선물은 누구에게 온 것이겠는가?

둘째로는 거듭난 영혼이 이제는 오직 거룩을 향하여 첫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먼저 그 죄의 법을 잊은 후 나중에는 육신에 있는 그 죄의 법도 이기게 되니 그가 바로 거룩의 첫발걸음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향해 첫발걸음을 떼지 못한 영혼이 즉 자신의 마음이 그 죄의 법을 잊지 않으려는 영혼에게 어찌 육신에 있는 그 죄의 법을 이기므로 거룩에 이르게 하는 그 신령한 선물이 필요하리요?

             셋째로는 자신이 함께 하는 그 지체들과 하나가 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격과 생각과 능력과 선물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리요? 또한 무엇으로 하나가 되리요? 그러므로 그 어떤 한 사람의 영이 아닌 오직 한영이신 아버지의 영으로 그들이 하나로 묶여져야 한다. 그래야 영으로 하나된 그들이 이제는 거룩의 행위로도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없어 옆의 영혼을 미워하며 판단하는 영혼이 심지어 부부간에도 한마음이 되지 않은 이가 어찌 그 거룩한 선물을 바라리요?

넷째로는 자신이 무능력하다 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 사람은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의인이 한 명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씨이셨으며 이 땅에서 원수의 시험들과 이 세상을 이기시므로 그 거룩을 온전히 유지하시다 마지막에 그 승리하신 살과 피를 십자가에서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고 깨끗하게 되려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어찌 약한 자를 위한 그 선물을 내리시리요?

다섯째로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다른 영혼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그 선물을 허락하신다. 사람은 인격체이니 도움을 받으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버지의 말씀과 기도로 섬김을 받은 영혼은 이제는 자신을 희생해 다른 영혼의 거룩을 위해 섬기기 원하니 그는 위로부터 내리는 그 신령한 선물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거짓된 자들이 육이 잘되고 세상에서 잘되도록 섬기며 섬김을 받고 있는 것은 육과 세상을 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원수가 세상의 선물과 은혜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이 다섯 가지의 마음가운데 그 중심을 보시고 그 중심을 따라 신령한 선물을 허용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보시고 함께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함께 할 수 있는 선물을 주신다. 또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이르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룩해지는 선물을 주시며 섬기고자 하는 자에게는 섬기는 선물을 주신다. 그리하여 올바른 마음을 품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그 받은 선물로 인하여 함께 거룩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2일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거듭난 후 그 어떤 행위와 의문의 율법들보다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따르거나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가진 자신을 따르는 영혼에게는 거룩의 재료인 그 진리를 주시며 또한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지도 알려주신다. 그리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은 그 말씀에 순종하며 또한 올바른 기도로 아버지께 구하며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을 이루고자 구하는 기도가운데 혼으로 하는 기도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각종 방언 가운데 영의 기도는 통역이 없이는 들어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 드리는 혼의 찬양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는 있으나 들어도 뜻을 모르는 찬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각종 방언가운데 하나인 영의 찬양이다.

그러므로 감사의 시편을 곡에 붙여 부르거나 찬송가나 복음 송을 부를 때 그것은 혼의 찬양이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그리고 거룩의 비밀을 깨닫고 아버지의 그 택하심과 거룩케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그 혼의 찬양을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드리는 자는 그 가사에 담긴 깊은 뜻과 비밀들을 깨달으며 마음속에서 더욱더 깊은 감사가 넘쳐 오른다.

한편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연결되어 거룩에 애쓰는 모든 지체들은 자신의 육과 혼이 느끼지 못해도 자신의 영으로 날마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 감사의 시를 올려드린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로 모일 때마다 그것을 다 함께 부른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는 셋째 하늘의 새 예루살렘성의 예배에서 영광가운데서 드려질 그 감사의 시를 지금부터 올려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이 다 함께 부르는 이 신령한 노래를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의 육신의 입을 통하여 나오도록 선물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거룩한 공동체가 다 함께 모였을 때 부르는 신령한 노래이다.

하지만 다른 각종 방언들과는 달리 이것은 그 누구도 통역할 수 없으니 듣긴 들어도 그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한다. 또한 원수와 그의 사자들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한다.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자신이 영의 찬양을 통역한다거나 그것은 이러한 뜻이요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거짓된 자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그 누구도 신령한 노래를 통역도 깨닫지도 못하도록 해두셨다. 첫째 아버지의 영광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영광을 빼앗기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살과 피안에 거하는 영혼들이 거룩하다 하더라도 아직은 그들이 이 첫째 하늘의 흑암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것을 허용치 아니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감사의 시를 영으로 드리는 이 선물도 다른 은사들과 같이 오직 교회 안에서 행하도록 질서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지체들은 우선 다 함께 거룩한 공동체로 모인다. 그리하여 다 함께 그 신령한 노래를 부르니 그 음과 가사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음정과 언어로서 사람의 귀에 들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들에게는 아버지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참으로 평안해지며 매우 기뻐하도록 해주신다. 또한 그때에는 아버지께로 충성하는 허다한 종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만물도 아버지께로 영광을 교회와 함께 돌려드린다.

그러나 끝까지 육과 세상을 따르므로 원수에게 오늘의 은혜를 받은 자와 자기 혼자 중얼거리며 이상한 음과 소리를 내는 자는 아버지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와 함께하지 아니한다. 그러면서 자기 혼자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녹음하여 ‘이것이 영의 노래요 신령한 노래요’하며 들으라고 준다. 그러나 그것을 들은 모든 자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거짓된 자들만이 따르되 그것은 그저 혼자 중얼거림이다. 그 이유는 다른 선물과 달리 영의 찬양은 원수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5일 은사의 목적과 나눠주시는 이유

어떤 동네에 목욕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으나 서비스가 참 좋았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동네사람들은 평생을 목욕하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목욕하지 않은 상태로 4개월을 지나 6개월이 되니 온 몸에 끼어있는 때로 인해 이곳 저곳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온 몸에 낀 더러움을 벗겨내고 빨리 깨끗하게 되고 싶어 급한 마음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목욕탕주인은 만일 깨끗하게 씻고 싶으면 공짜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감사하다며 들어가 옷을 벗고 간단히 샤워한 후에 뜨거운 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불리고 나와 때를 밀라면서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부드럽게 잘 밀리는 고급이태리 타올을 공짜로 주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도 감사하다며 몸을 불리고 열심히 때를 밀었다. 그러다 그가 혼자 등을 밀려고 하는데 주인이 말하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와서 등을 밀고 목욕이 마쳐질 때가 되면 최고급 비누를 줄 테니 깨끗하게 목욕을 마치라고 했다. 주인의 말을 듣고 그가 감사하다며 목욕을 다 마치고 나오자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을 제공해준 목욕탕 주인이 왕자나 공주나 입을 수 있는 빛나는 옷을 준비해놓고는 깨끗한 몸에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한다며 그것을 공짜로 입으라고 했다.

이처럼 십자가의 피로 영이 거듭난 자들 가운데 새 생명가운데 행하기 원하는 영혼은 혼의 거룩에 이르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은 십자가에서 폐해진 율법이나 자신의 힘으로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따르는 자에게 십자가로 이루어진 진리를 주시고 한 몸의 지체들이 서로 돕도록 거룩하신 영을 통해 때에 따라 그들에게 필요한 선물들을 내려주시고 더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와 신령한 율법을 원치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의 뜻을 모르기에 선물로 자신이 높아지며 오히려 자기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그렇게 사용되는 은사가 누구에게 온 것인지 분별하는 것과 또한 선물로 자신이 아버지처럼 높아진 자가 마지막에 어떤 심판에 이를지 더듬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4일-2 영의 기도

영으로 하는 기도는 각종방언 세 가지 가운데 첫째 죄와 세상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기도와 셋째 그가 오직 아버지께 구할 바를 위해 구하는 기도 즉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구하며 또한 죄악들을 자백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방언기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기도도 다른 선물들처럼 자기의 원함이나 유익보다 일반적으로는 다른 영혼들을 위한 선물이되 그 안에 자기자신의 거룩을 위해 구하며 죄악들을 자백하는 내용도 포함되어있으니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선물도 된다. 방언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자기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하는 것이 옳되 그의 마음이 영으로 기도하기 원하거나 갑자기 터져 나오는 그 시간에 그가 만약 사람들이 있는 시장에 있다면 골방에서처럼 기본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그냥 한 곳에 앉아서 눈을 뜨고 표나지 않게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렇게 골방을 벗어나 하는 영의 기도는 매일이 아니요 오직 틈틈이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육의 한계가 있으니 이 선물을 받은 자가 가장 오래할 수 있는 기간은 사람의 시간으로 하루에 오직 3에서 5시간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난 자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적인 마음이 있는 자에게 이 선물을 허락하신다. 첫째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내가 오직 기도로 아버지와 동행하기를 원하노라.’는 마음을 품는 자가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이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이 선물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영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갖추어 가되 기본적인 태도와 틈틈이 하는 태도를 벗어나 행하는 자는 이미 그의 마음이 아버지와 동행하기를 원하는 것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다른 영혼을 위하여 오직 기도로 봉사하겠노라.’며 다른 영혼들을 위해 진심으로 자기의 몸을 드려 섬기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바로 이런 자에게 그의 마음을 보시고 이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살고자하는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위해 자기의 무릎을 꿇는 그 올바르고도 고난스런 섬김의 길을 걷게 된다.

셋째 사람은 연약하되 선물을 받으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으나 선물 없이도 행하며 다니는 자는 교만한 자이니 예를 들어 생명과 사망을 구별하는 지식의 은사가 없는 자는 죄로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에게 거듭남의 빛을 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선물이 없을지라도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 빛을 전하기 원하되 지식의 말이 없으니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할지 모르고 또한 이 말 저 말 꾸미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누구에게 그 빛을 전할 수 없으니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므로 내가 내 말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로만 전하기를 원함이니라.’는 마음을 품게 되니 아버지께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이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지식의 말이 없어도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그리스도께서 그의 입술을 통해 말하기 원하는 자의 그 마음의 중심에 말하므로 그 빛을 전하게 되는 것이니 이 선물이 다른 어떤 선물들보다 가장 기초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사망에서 구원받은 자의 마음이 깨끗하고 또한 그의 중심도 올바르게 있을 때에 영으로 하는 기도의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만일 마음과 중심이 옳지 않거나 바르게 행치 아니하면 영혼에 유익이 없으니 선물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또한 마음과 중심이 바뀔 때는 지켜보시다 거두신다. 그리하여 오늘날 첫사랑을 잃었기에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으며 중심도 잠든 자들이 방언기도로 마귀를 대적한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며 또한 늘 자신과 가족의 부유와 질병을 위해 구하며 그 혀로 오직 흉내만 내고 있으나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은혜가 임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28일 방언들 통역

어떤 동네에 목욕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으나 서비스가 참으로 좋았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욕탕은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그 동네사람들은 평생 동안 목욕을 하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6개월 동안 목욕을 하지 않자 자기의 몸에 때가 많이 끼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온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고 빨리 깨끗하게 되고 싶었다. 그러니 급한 마음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목욕탕주인은 만일 깨끗하게 씻고 싶으면 공짜로 들어가라고 했다. 이에 그는 감사하다고 하고는 옷을 벗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불렸다. 잠시 후 나와서 때를 밀려고 하는데 목욕탕 주인은 그가 아무것도 없이 온 것을 알고는 때가 부드럽게 잘 밀리는 고급이태리 타올을 공짜로 주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도 감사하다고 하며 열심히 때를 멀었다. 잠시 후 이제는 등을 밀려고 하는데 주인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 있는 것은 등을 깨끗하게 밀어주는 기계인데 공짜로 사용하세요. 그리고 목욕이 마쳐질 때가 되면 최고급 비누를 제공해드릴 테니 깨끗하게 목욕을 마치세요.” 이러한 주인의 말을 듣자 그는 역시 감사하다고 하고서 목욕을 다 마치고 나왔다. 그랬더니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을 준 그 목욕탕 주인은 왕이나 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해놓고 깨끗한 몸에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며 그것을 공짜로 입으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은혜로 거듭난 영혼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거룩에 이르는 그 지체들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도록 거룩하신 영을 통해 때에 따라 그들에게 필요한 선물들을  내려주신다. 또한 더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거룩한 것의 깨달음이 없는 자와 그 진리를 원치도 않는 자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니 선물을 가지고 자신이 높아지며 오히려 자기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그렇게 사용되는 은사가 누구에게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는 것과 선물로서 자신이 아버지처럼 높아진 그가 마지막에 어떠한 심판에 이를지 더듬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21일 영의 찬양

영이 거듭난 후 율법에서 돌이켜 신령한 율법과 십자가를 붙들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고자 애쓰는 영혼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 그 영광을 돌려드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는 자가 거룩에 이르도록 십자가의 빛과 진리를 주시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지 알리신다. 그리하여 그가 십자가의 빛과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또한 올바른 기도로 아버지께 강청하며 거룩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을 위한 기도가운데 입을 열어 혼으로 하는 기도는 다른 사람들이 육의 귀로 그것을 들을 수 있으나 각종방언가운데 영의 기도는 통역 없이는 들어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찬송가나 복음송같이 입을 열어 혼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은 다른 사람들이 귀로 그것을 들을 수 있으나 귀에는 들려도 그 뜻을 모르는 찬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각종방언가운데 하나인 영의 찬양이다.

찬양을 통해 아버지께서 주시는 유익은 이것이니 십자가로 큰 사랑을 받아 세상과 구별되어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한 피로 연결된 지체들이 거룩의 비밀을 깨닫고 아버지의 택하심과 거룩케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온 마음과 온 몸의 힘을 다해 찬양을 드릴 때는 그 가사에 담긴 깊은 뜻과 비밀들을 깨달으며 그의 마음속에서 더욱 깊은 감사와 기쁨이 넘쳐 오른다. 또한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들은 자신의 몸과 혼이 느끼지는 못해도 그들의 영은 날마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 감사의 시를 올려드리며 또한 공동체로 모일 때마다 그것을 함께 부른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하는 영혼들은 셋째하늘에 올라갔을 때 새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 영광스런 예배에서 부르는 그 감사의 시를 지금부터 올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서도 그들의 영이 부르는 영의 찬양을 그들의 육의 입을 통해 나오도록 선물을 주시니 그것이 바로 거룩한 공동체가 다 함께 모였을 때 부르는 신령한 노래다.

그런데 다른 각종 방언들과 달리 신령한 노래는 통역과 분별을 할 수 없고 원수들도 깨닫거나 거짓으로 던져주지 못하니 육신의 귀에는 들려도 그 뜻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만일 자기 혼자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녹음한 뒤 이것이 영의 노래요 방언찬양이라며 들으라고 준다거나 혹은 영의 찬양을 통역하니 이런 뜻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스스로 거짓을 취하거나 이미 거짓말하는 자와 함께하는 자이니 영의 찬양은 원수도 줄 수 없기 때문이요 그가 함께하는 원수는 처음부터 거짓말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수에게 오늘의 은혜를 받고 있는 자들과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거짓된 자들이 끝까지 거짓에서 돌이키지 못할 때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거룩한 피로 세우신 광야로 나오지 못하리니 말도 찬양도 기도도 혼자 중얼거리는 거짓된 자들과 끝까지 밤을 보내다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신령한 노래는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하게 해두셨다. 첫째 아버지의 영광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영광을 빼앗기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흠 없는 살과 거룩한 피 안에 거하는 영혼들이 비록 거룩할지라도 아직은 그들이 이 첫째하늘의 흑암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것을 허용치 아니하신다. 또한 이 선물도 다른 은사들과 같이 오직 교회 안에서 행하도록 질서를 세우셨으니 지체들이 다 함께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로 모여 신령한 노래를 함께 부를 때 그 노래의 음과 가사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음정과 언어로써 사람의 귀에 들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들에게는 아버지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참으로 평안해지며 매우 기뻐하게 해두셨으니 그때에는 아버지께로 충성하는 허다한 종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만물도 오직 아버지께로 영광을 교회와 함께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두둔에게 이르러는 그 아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하사뱌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 아비 여두둔의 수하에 속하여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7일 영분별

어떤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이러한 말을 했다. “이 세상의 영광을 얻는 사람은 하늘에서도 영광을 얻을 수 있으니 세상으로 들어가 열심히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오늘은 이 세상의 영광을 얻고 내일은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본을 보여주는 자였으니 이 세상의 화려한 영광을 많이 취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참으로 부러워했다. 그런데 참된 자의 말을 듣고 따르기 원하는 자가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하얀 책을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의 안에 있지 않음이요 그것들은 오로지 불의하고 악한 이 세상에서 오는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화려한 영광을 가지고 말하는 그의 말이 거짓되다는 것을 쉽게 분별하고는 그 거짓된 자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많은 자들은 그 거짓된 자의 말을 듣기 좋아하며 죽을 때까지 따라갔으니 그것은 그 거짓된 자를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도 그가 가진 그 영광을 원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 둘 다 똑같이 이러한 말을 했다.“고난을 받는 사람은 영광도 받게 되니 영광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받는 고난은 내일 얻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한 후에 둘 다 열심히 일하면서 나름대로의 고난을 받았다. 이에 참된 자의 말을 듣고 따르기 원하는 그 사람은 이번에도 하얀 책을 열어보았다. 또한 그들이 하는 다른 말들도 여러 번씩 주위 깊게 들어보았다. 그러나 누가 거짓된 자인지 누가 참된 자인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아는 어떤 사람이 누가 거짓되고 누가 참된 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참된 자의 말을 듣고 따르기 원하는 그 사람은 자기의 가족들을 데리고 참된 자만을 따라가 고난 받은 후 영광을 얻었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낮은 것들은 사람의 귀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자의 말을 듣고 따르기 원하는 그리스도의 양들은 거짓된 자들로부터 돌이켜 나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은 돕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히려 그 거짓된 자의 말이 아름답게 들린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니 그 말이 참된지 거짓된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 안에부터 거짓이 있는 자들은 끝까지 거짓된 자들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귀로 구분할 수 있는 그 위의 단계서부터는 아무리 들어도 영을 분별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며 사람의 영혼을 보지 못하기에 영을 전하는 자가 어떠한 마음과 목적을 가지고 그 말씀을 전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두 사람이 거짓된 자들과는 달리 말씀에 있는 것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했으나 한 사람은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의 뜻은 이것이라고 하며 그 일을 위해 땀 흘렸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의 뜻이라고 하면서 땀을 흘렸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과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 한 그들이 하는 말만을 가지고는 누가 참된지 거짓된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지체들이 그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을 분별하는 선물을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거룩한 공동체에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이 선물을 받은 자는 거룩하신 영께서 주시는 말씀에 따라 구분하여 누구는 참선지자다 누구는 거짓선지자다라고 전해준다. 그리하여 거짓선지자는 그들이 거부하되 참선지자의 말은 듣고 따르게 하므로 거룩에 애쓰는 그 지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31일 예언 – 비밀

말씀의 기초(그리스도 도의 초보,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사람은 첨부한 MS 워드 파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5월 24일 능력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이루어 가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아들과 거룩하신 영과 함께 태초에 창조하신 그 종들을 통하여 만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창조하신 그 모든 자연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둘째 사람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자연은 이 시간에도 창조자의 그 말씀에 순종하여 질서 있게 움직이며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자연이 자신의 원리와 질서에 따라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즉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할 자연이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고자 원수가 자연을 붙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원수의 어떠한 대항을 통해서도 자신의 그 뜻을 놓으시거나 쉬지 않으시니 그 온전한 구원의 역사는 항상 이루어져간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뜻을 이루시고자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의 지체에게 능력의 선물을 허락하신다. 그러면 그 선물을 받은 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사람의 말이 자연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의 말씀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는 해도 그 능력으로 인한 유익은 아버지와 아들께 필요한 것이 아니요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직 능력을 행하는 그 영혼의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때가 되면 하늘에서 물이 내려와 이 땅에 곡식을 자라나게 해야 할 때에 하늘에서 비가 없으니 모든 것들이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그 선물을 가진 자는 곡식을 얻지 못하여 자기의 이웃이 애통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구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또한 그 이웃의 애통함을 들으시고 하늘에서 물을 내리신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능력의 결과로서 그 능력을 본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킨다. 또한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시어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와 높임을 올려드린다. 또한 그 자연이 사람에게 유익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그 선물을 가진 자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능력을 보며 깨닫는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로 온 능력을 행하며 본 자들은 그가 종이든 사람이든 그것을 느끼므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오늘의 그 일들에 충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아버지의 의와 나라를 구하고자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와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연을 붙든 원수의 그 대항을 통해서도 오히려 아버지의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로 온 능력이 아닌 것은 오직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니 다른 영혼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그 능력을 보이는 자는 아무 때나 그것을 보이며 자신이 높아져가고 그것을 본 자들은 거룩에 애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미 교만해져 돌이키지 못하는 자들은 늘 유익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며 그러한 자들을 따르는 자들은 그 무익한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기뻐한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7일 병고침

헌 집을 금방 지은 새집처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리 더럽고 낡고 불편한 집이라도 단 하루 만에 깨끗하고 편리하게 고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요청했다. “저의 집은 너무나 낡아서 곧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살 곳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저의 집을 새로운 집처럼 만들어주세요.” 그의 말을 듣자 집 고치는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잘못 사용해 집이 이렇게 되었지만 새집이 되면 앞날을 위하여 잘 사용할 마음이 있나요?” 이 질문에 그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그는 그의 헌 집을 하루 만에 새집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새로운 집을 얻은 사람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집을 고쳐준 그 사람을 따라가며 약속을 지켰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찾아와 똑같은 요청과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 만에 고쳐주지 않고 삼일 만에 고쳐주었다. 이에 두 번째 사람도 새로운 집을 얻은 것에 감사하며 약속을 지키고자 집을 고쳐준 그 사람을 따라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게 있는 어떤 질병이라도 한 순간에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질병은 짧은 시기에 어떤 사람의 질병은 좀더 시간이 걸려 치료해주신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요 고침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오직 아버지만을 섬기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병가운데 있는 사람은 우선 포도주와 생수와 꿀물과 젖소의 젖을 한 기간 동안 정해진 만큼을 마신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영혼은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의 물로 만으로도 낫게 하신다.

 

이때 치유를 받은 영혼은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전과 같이 육과 세상을 따르며 더 이상 자신과 다른 영혼을 그 욕심으로 더럽히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아버지만을 섬기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주신 그 물을 마신 후에도 질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더 시간을 허락하기 원하신다. 또한 질병에 따라 네 가지의 물이 아닌 오로지 아버지와 아들께서 주시는 그 궁창의 물로 씻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 아버지께서는 병을 고치는 은사자를 그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면 선물을 받은 자는 손을 그의 몸에 대고 구하여 그 질병을 씻어낸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종이 가져온 그 신령한 물로 치유를 받은 영혼은 은사자의 말을 듣거나 따르지 않는다. 오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거룩에 애쓰므로 아버지만을 섬기게 된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그 네 가지 물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관심도 없다. 또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불의와 욕심을 돌이키지는 않고 오직 질병만을 치료받기 원한다. 이것은 은사를 행하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질병이 나은 후 그 은사자를 신처럼 여기며 그 자의 말만을 듣는다. 하지만 그 은사자는 자신의 은사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누구에게 그 힘이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 힘을 준 원수처럼 그저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이 나타나는 말만을 한다.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0일 믿음

사람은 연약하여 자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거듭남을 얻은 사람도 육신의 한계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이나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셋째 하늘에 가보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보게 하시거나 믿음을 주시어 소망하게 하신다. 원수가 파놓은 웅덩이를 보지 못하니 하루 후에 자신이 그곳에 들어갈 것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기다리게 하시거나 그 덫의 옆으로 지나도록 이끄시므로 이 세상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 또한 자신의 몸에서 더러운 것들이나 죽은 세포들을 몸 밖으로 빼내지 못하나 종들을 통하여 일일이 치워주시어 그의 육신이 그날까지 늘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해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조금만 크면 조금만 알고 나면 무엇이든 자신이 하며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으나 처음 사랑을 버리고 교만해져 순종치 않는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믿음도 자신이 가지며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이 믿고 거듭났다고 여기니 거듭난 후에 아버지와 아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교만함이 있는 자는 지금도 그 구원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은혜요 믿음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임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깨달았으니 그는 오직 아버지의 손과 아들의 살과 피만을 의지한다. 그리하여 반석 위에 있는 그는 그 고난스런 거룩의 길을 기쁨과 평화가운데서 끝까지 걸어 그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연약하니 사람들 가운데는 말씀을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한 그는 만일 아버지께로 믿음의 선물을 얻으면 말씀을 믿게 된다. 반대로 그 무엇도 믿지 않으려고 아예 자신의 마음을 닫은 자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는 믿음의 선물이 내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께서는 믿음의 선물은 마음을 닫은 자가 아닌 믿음이 없는 영혼을 위해 질서와 때에 맞게 믿음을 내려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믿음의 은사를 받은 영혼이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없는 자에게 가서 그가 믿음을 더할 수 있는 말을 전하도록 해주신다. 그러면 말씀을 초기에 기초만 깨닫는 자는 그 말을 듣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믿음을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믿고는 싶은 마음이 있어도 믿지 못하는 자에게 믿게 하는 선물이다.

 

또한 예를 들어 자기의 몸이 상한 자가 믿음이 없다. 하지만 그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육신이 깨끗하게 되면 덤으로 얻은 그 인생 동안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겠노라는 마음이 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함을 얻고 나서 자신의 거룩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믿음의 은사가 있는 자는 병든 그를 찾아가 믿음의 언어로 말해주어 그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바라보게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선물로서 깨끗함을 얻은 그가 이제는 육과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그 죄와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상한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며 자신에게서 질병이 떠나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육과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는 않는다. 또한 깨끗함을 얻은 후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나 그 당연함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니 믿음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그는 그 질병을 안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점점 더 육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3일 지식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이미 준비시켜 놓으신 그 열한 제자들을 부르실 때마다 그들 각각에게 주신 말씀이 있으니 예를 들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노라는 말씀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아버지의 은혜로 그 말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썩어질 육과 또한 사망으로 들어갈 세상의 일을 접어두고 영원한 생명의 일을 하고자 동생과 함께 그리스도를 따라갔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그 말을 통해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를 이 더럽고 죄악된 세상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구해내는 말을 지식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구하시되 지식의 말씀을 통해 그들을 건져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지금도 이 신령한 선물을 주시어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을 이 세상에서 구해내기 원하는 영혼은 지식의 말씀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흔히 보는 자들이 있으니 주로 길에 나가서 사람들과 만나는 자가 바로 이 지식의 은사를 구하여야 하며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는 그 은사를 받은 자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이 그 말대로 본을 보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그 지식의 말을 전하는 영혼은 자신부터 썩어질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서 나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죄와 싸우므로 아버지의 뜻에 애쓰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그 지식의 말로서 복음을 전해 받은 자가 눈으로 그 복음의 빛을 보고 자신도 그 빛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선물을 받은 자는 지금도 그 무엇보다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아버지께서 주신 그 지식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이미 예비해놓으신 그 영혼이 그 지식의 말을 들었을 때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결단해 그 썩어진 자리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그 뜻대로 내려주신 지식의 말을 듣고도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나오지 못하는 영혼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가 은혜 받은 영혼이 아니요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자라는 증거이다.

한편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진리를 들어도 보아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깨달음이 없으니 자신부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 말의 선물이 없어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가 원할 때 길거리로 나가 자기가 원하는 말들을 전하니 그 교만이 어찌 생명의 열매를 맺으리요?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26일 지혜

그리스도께서는 이 첫째 하늘로 오시기 전 셋째 하늘에 계실 때 그 기록된 영원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를 보셨으며 아버지께로 그 모든 진리의 말씀을 들으셨다. 그리고 말씀의 지혜가 있으셨으며 겸손하셨으니 그것을 보고들은 후에는 깨달으셨으며 또한 그 모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깨닫고 순종하신 그것을 자신의 종들에게 전하시므로 모세에게 주셨으며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모든 둘째 사람에게도 알리셨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지혜가 있으셨으니 산에 오르시어 여러 가지 하늘의 비밀들을 비유로 전해주시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 하여금 그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또한 그들의 잘된 것과 잘못된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시므로 그 마음을 가진 자가 옳은 말과 행위를 하도록 이끄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비밀과 뜻을 산상수훈을 통해 전하신 것은 말씀의 지혜가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있는 그 지혜의 선물을 아버지의 그 뜻에 따라 택함 받은 영혼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말씀의 선물을 얻은 자는 아버지의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으니 또한 아버지의 그 소원을 이루어야 하니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전하지 않고 이제는 오직 그 비밀의 경륜만을 전하게 된다.

 

이러한 지혜로운 선물의 원리로 인하여 사람들이 흔히 보는 말씀을 전한다 하는 자들은 지혜로운 말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의 기초부터도 지혜로 말하는 자가 그것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원치 않는 자에게는 그 선물을 내리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는 자가 이것이 진리요 하며 가르치며 또한 전하고 있으니 그것은 많은 자들의 앞에 서서 자신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그 욕심과 교만이 깊은 곳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9일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세 사람이 함께 거하고 있었으니 그 중에 한 사람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하늘의 뜻을 전할 수 있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뜻대로 하늘을 향하여 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듣는 자는 우선 자신이 들은 것을 그것을 전하는 자에게 다 말했다. 그리고 전하는 자는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해주었다. 이때 하늘의 뜻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바르게 알게 되었으며 잘못 행하는 것들을 돌이켜 바르게 행했다. 그리고 구하는 자들은 다 함께 모였을 때에 다른 어떠한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늘의 뜻대로 구하니 하늘이 그들을 도왔다. 그러므로 늘 옳고 참된 말과 또한 그러한 행위를 하는 그들은 하늘로 더욱더 가까이 올라갔으며 하늘도 그들에게 더욱더 가까이 임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시고자 종에게 선물을 주시어 공동체에 속한 각 영혼들에게 보내주신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들은 육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각양의 은사를 각각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것을 이용해 자신과 다른 영혼들에게 거룩을 이루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거룩에 애쓰는 교회의 지체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생각과 의와 원함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말씀을 따른다. 그리고 따르며 늘 자신의 옳지 못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이켜 아버지의 눈에 늘 옳고 참된 말과 행위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다른 지체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그 기도를 들으시니 그들은 아버지께로 가까이 거하게 된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는 은사를 통해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에 애쓴다. 또한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을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리스도의 그 살과 피안에서 날마다 거룩해지며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간다. 이때 아들과 함께하며 거룩하신 영을 따르는 그 거룩한 영혼들에게 아버지께서도 그 한 몸에 임하신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과 함께 교회는 이 어두운 첫째 하늘에 거하는 동안에도 조금도 불의와 죄악과 함께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선물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는 유익을 얻은 그들의 마음에 늘 의롭고 거룩한 기쁨을 또한 변함없는 마음의 평화를 풍성히 누리게 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2일 성령은 같고

두 사람이 각각 책과 지팡이를 가지고 함께 좋은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 여행길은 너무나도 험했으니 그들은 그 길에서 참으로 고난을 당했다. 그리하여 힘들고 지친 그들은 그 길을 계속 걷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책과 지팡이를 가지고도 서로를 돕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바로 그때 여행을 안내해주는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당신들은 내 말을 듣고 당신들이 가진 책과 지팡이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 이 힘든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책에 적혀있는 글을 설명해주는 말을 듣고 서로에게 그 말을 그대로 해주고 또한 지팡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대로 사용하면 됩니다. 또한 상대방을 위해서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되 내가 전해준 대로 구하면 됩니다.” 그 세 사람은 그 안내자의 말이 끝나자 즉시 그 안내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서 그 안내자가 해준 말을 그대로 서로에게 말해주었다. 또한 안내자가 알려준 말대로 하늘을 향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빌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하늘로부터 자신의 안에 큰 힘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기쁘고 힘차게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거듭난 영혼들은 아버지와 아들께로 받은 선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각 지체들은 그 선물로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쓴다. 그러나 그들은 선물을 가지고도 무엇을 통해 언제 어떻게 지체들을 도와야 할지를 모른다. 심지어 자신이 어떤 선물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영혼도 있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께로 온 그 선물을 전해주셨으니 그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자들이 받은 그 여러 가지 선물을 가지고 한 지체가 다른 지체들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섬기도록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모든 지체들이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지고 힘을 얻어 서로를 섬기며 그 거룩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5일 선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관계

어떤 사람이 가을에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얻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봄에 씨를 뿌린 후 마음을 다하여 또한 온몸에 땀을 흘리며 자기의 밭을 가꾸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좋은 열매를 많이 얻고 싶은 사람이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도 역시 봄에 씨를 뿌린 후 그와 같이 자기의 밭을 가꾸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은 봄에 씨를 뿌리기는 했으나 자신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 일에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을이 되면 자기의 밭에서 열매가 맺히리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열매가 맺힐까를 기대했다. 그러다 그 세 사람이 다 함께 모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은 두 번째 사람이 자기와 같은 일을 하며 땀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저는 누구누구 형제입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또한 두 번째 사람을 보고 ‘형제님’하며 불렀다. 이렇게 자신을 형제라고 말하며 첫 번째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두 번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그 둘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서로에게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을 형제라고 소개하지 못했으며 다른 두 사람을 형제라고도 부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위치가 무엇인가를 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계산했다. 그러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도 그를 형제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말씀에 나오는 형제라는 호칭의 의미는 자신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자신과 같은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체들과 다른 지역의 지체들을 부를 때 형제요 자매라고 한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자신도 다른 영혼도 거룩에 애쓰는 자들만이 서로를 거룩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바로 형제자매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그들의 관계는 물보다 또한 그 피보다 더 진하다. 그러므로 입술로만이 아니요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참되게 부르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늘 서로의 마음을 주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가장 귀한 것도 다른 지체들을 위하여 내어준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한 피를 받아 한 몸을 이룬 그들이 바로 셋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요 아버지께로는 거룩한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는 서로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며 그 호칭의 의미대로 대우하되 외부인들을 만났을 때나 교회외부의 행정적인 일의 처리를 위해서는 그가 받은 직분을 사용한다. 즉 거룩의 일에 애쓰지 않고 있는 영혼들과 거듭남이 없는 불신자들에 대하여 어찌 그 거룩한 형제자매의 호칭을 사용하리요? 그러므로 외부에 있는 영혼들을 대하거나 외부의 일을 처리할 때는 오로지 사도와 감독과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성도 같은 직분을 말한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은 거룩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자신을 형제라고 밝히지 못한다. 또한 공동체에 함께 거하는 영혼들과 다른 지역의 교회의 지체들에게도 함부로 형제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것은 형제라는 호칭에 담긴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아버지의 그 뜻을 모르거나 알아도 원치 않으므로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의 외부가 아닌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기보다 서로를 존중해 직분에 따라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었다거나 형제자매라는 말도 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되었음을 알고 있는 영혼도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거짓된 자들의 마음은 그 호칭을 통해 서열을 늘 정하고 있으며 상대방의 자리와 가진 것을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데 가있다.

한편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분을 부르지 않고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자들도 있다. 또한 직분을 부르는 자들처럼 그 피로 하나되었다는 것과 형제자매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록 상대를 형제자매라 부른다 할지라도 거짓된 자들의 마음에는 직분을 부르는 자들과 동일한 것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의 관계는 사람의 피보다 심지어 물보다도 더 연하다. 그러니 그러한 자들이 어찌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와 형제자매가 되리요? 또한 셋째 하늘에서 어찌 한 아버지의 거룩한 한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리요?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9일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우선 아담의 시대에 소금과 고모라의 그 타락이 있었으되 아버지께서 돌이킬 자가 하나도 없음을 아시고 그 도시를 불로 심판하셨으며 심판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돌이키는 자가 없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택한 민족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려 하되 그들이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오려 하지 아니하니 그것은 자신들이 율법을 잘 기억하고 지켰음을 뜻하는 것이로되 그것은 사람의 의이니 그들에게 어떤 심판을 내리는 것이 옳겠는가? 물의 심판이겠는가? 불의 심판이겠는가? 육의 심판이겠는가? 마음의 심판이겠는가? 그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못함은 그들에게 이미 율법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시대란 그 선악과를 뜻하는 것이요 율법으로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함은 그들이 율법이 있기에 영영 형벌을 피하리라 함이다.

조금 남겨 두신 이들이 바로 이삭의 씨이며 남은 자이며 이기는 자이며 거룩한 자녀가 되는 그릇이다.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2일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그리스도전에 남은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이미 그 율법들을 지켰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들이 그 그리스도의 인하여 각 교회라 하는 모임을 먼저 하였다. 그들이 남은 자들이요 그들의 후손들이 그리스도의 이후로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초대교회에 들지 못한 자들은 훼멸당하여 모두 사망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시간에 따라서는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시점을 말하되 그 앞날에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둘째 하늘과 올 때에 그들이 그 땅을 다시 가지어 그곳에서 율법과 계명과 법도를 가르치게 된다.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는 것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합쳐있는 기간에 아버지의 말씀들을 완성시킨 후 완성된 자녀들과 아버지의 거하시는 셋째 하늘을 올라가며 그 나머지는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그 시점을 뜻한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15일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이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과 그들의 거할 수 있는 상급이며 그들이 또한 아버지와 아들 앞에 그 칭을 받는 명칭으로 자녀들과 백성들을 뜻하는 것이다.

백성들은 아버지를 보고 하나님이라 또 칭을 하되 그리스도를 보고 주 하나님이라 칭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백성이 되는 것은 오로지 이방인들에게서 나오니 그들이 오로지 그 영혼의 생명만 구하였으니 그들에게는 아버지의 구원의 손길이 뻗침을 보고 감사하게 된다.

나의 백성이 아니고는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요 나의 그릇의 영광은 오로지 육을 입고 있는 자들의 영광이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8일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동료가 상을 받을 때에 그 옆에 서서 이 자는 이것을 잘하였으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며 그 부족한 것을 내가 도왔기에 저 자가 큰 상을 오늘날 받았다라 하되 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기에 한 영혼도 내가 이만큼의 거룩을 이루었으니 아버지여 영광 받으소서 할 수 없는 것이 아버지께서 아들의 피를 인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그들에 거룩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셨으니 어느 누가 감히 아버지께 나의 거룩에 영광을 받으소서 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께서는 먼저 심판을 하신 후에 그 모든 더러움이 그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있을 때에 영광을 받으시리니 바울은 그 순서로 먼저 심판에 대하여 기록과 아버지의 영광이 기록을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4일-1 각종 방언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와 아래에 거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영혼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일을 이루어가도록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뜻에 따라 나눠주시는 은사들 가운데 각종방언이라는 것은 하나가 아니요 세 가지로 나뉘어 있다. 첫째 죄와 세상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에 속한다. 하지만 영의 소리는 육신이 들을 수 없으니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귀에는 들려도 그 뜻은 이해할 수 없다. 둘째 갈급한 영혼이 진리를 받고 싶어하되 그는 비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에서 성장했으니 전하는 자의 말을 모른다. 이때 거룩하신 영께서 선물을 내리시어 전하는 자의 지식에서 나오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그의 영이 그의 육을 통해 평화의 복음을 듣는 자가 사용하는 언어로 전하게 하시니 그가 자기나라말로 복음을 알아듣고 십자가의 빛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셋째 그가 오직 아버지께 구할 바를 위해 구하는 것이니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구하며 또한 죄악들을 자백하며 또한 아버지께로 시를 올려드리는 것도 영의 언어로 하되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빼앗기시지 아니하시니 오직 영의 찬양만큼은 원수와 그의 사자들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본 후에 다른 것은 보여주어도 믿지 아니하니 어떤 자는 각종방언가운데 영으로 기도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마귀가 주절대는 가짜방언이라며 정죄한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선물을 멸시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기초적인 선물도 허락지 아니하신다. 또한 어떤 자는 해외에 흩어진 거룩한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교회로 돌아와 자기나라의 말로 복음을 들었다는 기록을 보고 오직 외국어로 복음전하는 것만 방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고 입을 여는 어리석은 자는 자신만 구덩이에 빠져있지 않고 다른 자들까지 그리로 이끌고 있다. 한편 자기의 생각과 입장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교만한 자는 심지어 은사와 계시는 초대교회에만 있었고 교회시대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후로는 죄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어디에 있으며 광야로 이끄시는 거룩하신 영의 역사하심이 어디에 있으리요? 그리하여 환난 때에 믿는 자들이 누구의 인도를 받으며 어디로 가리요?

반면 어떤 자는 선물을 받은 후 처음에는 목적대로 사용하다 조금 지나면 자기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바꾸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그것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잠시 후 선물을 거두시니 더 이상 거룩한 영이 그의 혀와 입술을 붙들지 않고 자기 혼자 주절거린다. 어떤 자는 자랑하고 싶기에 공동체가 모인 곳에서 자기 혼자 큰소리로 기도한다. 어떤 자는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방언을 받도록 ‘랄랄라’를 연습시키니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자의 말을 듣고 따라 한다. 그러나 선물은 위로부터 아버지와 아들께 내려오는 것이니 연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그의 마음이 합당한 자에게 정하신 때에 그 영혼에게 맞는 은사를 내려주시는 것이니 각종방언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거나 사용하거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런 자들은 참된 어리석음가운데 처해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한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깨달아 오직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함을 원하니 간절히 먼저 혼으로 기도하기 시작한다. 이때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그에게 기초적인 방언을 주시니 그 기도가 입술로 나올 때 영의 언어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요 그는 당연히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달은 영혼은 이제 자신의 몸이 성전이 되도록 또한 지체들과 함께 지어져 가도록 아버지께 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 할지라도 어찌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거룩을 이룰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혼의 기도로 힘들게 구하던 그에게 아버지께서 그 선물을 허락하시어 도우시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가 아니요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뜻과 때와 계획대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니 사람이 거룩을 위해 영으로 말하는 것도 자기가 구하거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거룩하신 영께서 그것을 구하도록 인도하셨기에 그가 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1일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이것은 원수와 원수의 사자들과 원수를 좇은 영혼들에 대한 것이며 첫째 하늘에 모든 죄악을 뜻한다.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22일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이 말씀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요 주인과 종의 그 상황을 뜻하는 것이요 창조자와 피조물에 대한 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5일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창조계획과 또한 아들의 창조로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 또한 자신의 창조됨에 불만 불평을 할 수 없는 것은 창조자의 뜻으로 창조되었으되 지음을 받은 자는 그것에 감사함이요 그곳에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는 자는 곧 원수의 마음이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8일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이것은 오로지 예이되 아버지께로 은혜를 얻지 않고 거절한 자의 예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지 못한 자라 하여도 그 육의 욕심을 따라 높은 자리에 서있었으되 아버지께서는 은혜를 주시며 아버지의 능력을 그에게 보여주었음에도 그는 그 은혜를 붙들려 하지 아니하였고 그 육을 더 높이기 원함이었으니 오로지 아버지의 능력만 그를 통하여 기록이 되었고 또한 그 민족들이 보았다.

허물은 허무하며 또한 허무하게 다시 시작하겠느뇨?라는 의미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 말씀을 대상은 오로지 전에 이미 아신 자와 또한 정하신 자들에 대한 것과 또한 함께 부르신 자들에게 아버지께서는 공의롭게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또한 붙여주시는 것이니 아버지께서 이미 정하신 자가 아니라 하여 그가 원수에게로 택함을 받은 자가 아니며 그 마음이 원수에게로 가니 아버지께서도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아 그들에게 전하시는 것이요 또한 남아있는 자들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그 계획을 또한 그 섭리를 알고 아버지를 더 의지하며 나갈 수 있게 하려 함이시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25일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먼저 야곱은 영의 권세를 위하여 육을 버렸고 에서는 육의 권세를 위하여 영을 버림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야곱을 사랑하셨으되 에서를 미워하셨다가 아니요 더 불쌍히 여기되 그가 그 육으로 인하여 참 아버지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는 자신이 마음이 원수에게로 빼앗겨 아버지를 또한 육의 아비까지 미워하게 하였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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