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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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첫째로 죄의 종 즉 불순종하는 자이니 살고자 하는 자는 이 교훈을 받아야 한다. 한 영혼이 거듭난 후 자신이 스스로 나는 말씀대로 살며 모든 법들을 지키겠노라 하였다. 그런데 그의 인도자와 그 인도자를 따르는 자들은 거룩에 애를 쓰는 자들이니 자신의 죄악에서 자유케 됨을 바라되 그 영혼은 그들이 애쓰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또한 죄에서 자유케 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지 못하니 그들이 거룩하지 못한 것을 보고 또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았으니 깨달음도 자기생각으로 단정해서 깨달은 것이 죄악인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가 그 인도하는 자를 보고 또한 인도하는 자를 따르는 자들을 보니 오로지 더 죄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그 인도자에게와 아버지의 말씀을 편 후 그에게 말하되 당신은 왜 많은 양떼를 죄 가운데로 빠트리느뇨? 하되 인도자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버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들을 광야에 이끌어 내셨도다. 그런 후 긴 세월을 보내어 그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갔도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부터 그 백성들은 자유를 얻었고 아버지께로 은혜를 얻었다라고 전하였으되 그 자는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스스로 나는 말씀대로 하니 나는 너의 죄 가운데 거하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가 그곳을 떠나니 어둠이 그를 덮어 그는 늘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은 오른쪽 팔에 끼고 왼쪽 팔에는 오로지 술을 드니 그가 무슨 법을 지킬 수 있겠는가?

또한 사람의 예는 이러하니 그는 오직 한가지의 말씀을 붙든 자이니 그에게는 복이 있었다. 그 자는 늘 그 가족에게 불만과 불평과 또한 질투와 시기가 가득 찬 자였으되 말씀가운데 아내를 사랑하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니 먼저 자신의 아내를 보니 자신에게 얼마나 순결하게 또한 순종한 것을 보니 그가 어두운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 후 그가 자기의 아내를 자신의 두 팔에 안고 그 한길거리를 걸으며 큰소리로 ‘나의 아내는 가장 귀한 여자이니 하늘에 있는 아버지께서 못난 나에게 허락하셔서 깨달음을 주셨도다.’라고 외치며 그 밤에는 그가 자신의 아내와 늘 친밀한 관계를 하였다. 또한 자녀들을 보니 자신이 그들에게 만족은 없고 늘 부족한 것만 지적하였으되 그 아이들이 한 가지 한 가지 자신이 했던 것을 보고 애타며 그 자녀들을 자기의 가슴에 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오로지 그들에게 나의 말은 듣지 않아도 오로지 그리스도의 말은 듣고 지키라 하며 나의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은 허용하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훈계가 있겠노라 하며 그들을 오로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들에게 가르쳤다. 또한 그를 낳은 그 부모를 보니 부모가 불쌍한 영혼이라 느끼어 부모에게 가 부모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순종할 때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하라 하셨으니 하므로 그 부모도 그리스도를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어 그들에게까지 생명이 들어갔다. 그러므로 이 한 명이 변화되어 한 가족이 큰 평화와 사랑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떤 자를 따르겠는가? 사망으로 가는 자는 늘 자신이 옳다라고 하여 그 길로 가니 그 웅덩이가 깊다. 그러나 가족들과 지체들과 함께 가려고 그 마음을 돌이킨 자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은혜를 더하시니 조그만 사랑도 크게 그 가슴에 얻게 된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24일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자들에게 교훈이 되는 말이다. 전에는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였기에 사망으로 들어가니 거듭났다 하여도 나는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라고 하여도 자신이 자신을 이끄는 자는 오로지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생명을 원하는 자는 그 이끌림을 그리스도께 받아야 하되 그리스도께서는 오로지 그 지체의 인도자들을 붙들며 인도자들은 그 무리를 이끄니 내가 순종을 할 것인가를 깨달음으로 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에 거하되 끝까지 자신을 자신에게 이끌림을 하는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을 사망으로 내어 두신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7일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우선은 사망은 무저갱과 또한 아버지의 나라와 유황불 못 사이의 어두운 곳을 뜻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는 오늘날 거듭났다 하여도 그 거듭남을 붙들지 아니한 자는 내일의 사망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매일의 그 거듭남을 소중히 여기며 붙드는 자는 그 거룩을 끝까지 애쓰는 자이다.

한편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은 이것이니 먼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였고 그 사도들은 그리스도께 죽기까지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그 지체 안에 있는 목사와 감독도 사도와 같이 죽기까지 순종을 해야 그 장로와 집사도 그 목사와 감독과 같이 죽기까지 순종을 하므로 성도와 지체들도 장로와 집사와 같이 죽기까지 순종을 하므로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을 얻게 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0일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바울이 말한 법은 아버지께로 온 계명이 아니요 사람이 만든 법이니 그 법은 아버지를 기쁘게 못하는 법들을 말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기존에 있는 교회라 하는 자들은 그 인도자가 가르치기를 믿는다면 십의 일을 아버지께 드리라고 가르친다. 또한 그들이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 고백하면 그 다음날 세례를 준다.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말씀의 기초가 없기에 세례가 무슨 상징이 되겠는가? 십의 일이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되겠는가? 오로지 행위로만 하므로 나는 이것을 지켰도다. 나는 이것을 행하였도다 라고 하되 그 영혼이 말씀의 기초가 없고 마음의 중심도 없으니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의 기초가 있는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에게 이제는 물의 씻음을 통하여 그가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자는 십의 일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 라고 들어도 십의 구를 다 드린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이 주님께 있는 자는 그의 마음이 오로지 아버지를 어떻게 기쁘시게 할까에 있음을 그가 알며 그가 행하게 된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3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자신의 몸도 따라가게 되어있다. 사람은 또한 자신의 한 마음을 두 곳에 두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두 마음을 품으면 더럽게 될 것이요 스스로도 힘들다. 마치 한 여자가 두 남자에게 마음을 주면 두 남자와 몸을 합하는 음부가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은 남편인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만일 자신의 마음과 믿음은 그리스도께 있다 하며 자기의 몸은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과 간음하는 하는 지체는 자신과 함께하는 공동체에도 그 죄를 퍼뜨리며 간음으로 이끌게 되리니 그는 자신만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한 몸도 더럽히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다시 올 때까지 그들을 정결케 하시어 자신의 신령한 몸으로 맞이하기 원하시니 믿음을 고백하되 몸이 세상으로 나가는 영혼에 대하여는 자신과 세상 중 오직 하나만 택하길 원하신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는 거룩한 자들과 함께해도 거룩에 이르지 못하며 마음에 갈등만 키우게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택해 공동체에 거하되 자신의 몸을 거룩에 애쓰지 못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거기에는 세 가지의 원인이 있으니 누구든지 어린 한 생명이 그의 어미의 뱃속에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의 비유를 깨달으면 자신의 몸을 가지고 무엇에 어떻게 애써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과 몸을 둘 다 그리스도 앞에 두고 또한 자신의 믿음을 십자가 앞에 둔 영혼은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와 같이 또한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생명이 여자의 아궁 속에 있을 때에 그 생명의 여자와 남자는 함께 기뻐한다. 또한 그 아이가 때가 되면 여자의 아궁 속에서 나오리니 그들은 그 날을 참으로 기다리고 기다린다. 하지만 어린 생명이 여자의 아궁 속에서 계속적으로 땀 흘리며 애쓰는 것을 여자도 남자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이 그 안에서 하는 노력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입덧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여자만 고생하는 것으로 알고 어린 생명은 뱃속에서 편히 있다 오로지 때가 되면 나오는 줄 알되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애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새로운 생명을 위해 계획하신 것은 이것이니 어린 생명은 어미의 아궁 속에서 살기 위하여 계속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어미에게 있는 그 영양분을 받아먹는다. 또한 태를 뚫고 나와 빛을 보기 전까지 그의 일을 쉬지 아니하리니 그것은 어린 생명이 엄마의 아궁 속에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영혼도 새 생명을 회복하기까지 또한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이 어두운 세상에 거하는 동안 오직 진리를 취하고자 애써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자들이 이 땅에서 육이 살기 위해서는 많이 고민하며 무진장 애를 쓰되 자신의 살고자 그와 같이 애를 쓰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자 하려 하는 영혼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로지 나는 오늘 교회 가며 나는 오늘 말씀을 들었다 하되 그것이 그 영혼에게 얼마나 영양분을 끼치겠는가? 또한 그 마음이 얼마나 영이 살고자하는 마음인가?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 말씀의 기초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때가 되었다라고 하실 때까지 애쓰며 열심을 내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은 생각하길 어린 생명이 과연 자신의 어미에게로부터 얻는 그 영양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지 알까라고 생각하되 그 어린 것은 그것을 알기에 살기 위해 어미의 태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몸 안으로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말씀을 듣되 이것이 나의 영혼을 먹여 살리는 양식이니 내가 한 가지만 기억할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을 기억하겠노라 다짐을 하고 듣는 것이 옳다.

셋째 땀을 흘리는 자가 물에 들어가면 물과 합쳐져 그가 땀을 흘리고 있는지 아닌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이 여자의 아궁 속에서 살기 위하여 움직이며 영양분을 먹으며 땀을 흘리고 있으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회복된 그 생명과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소망하는 자도 그가 이 땅에서 자신의 거룩을 위하여 자기의 몸을 이용해 땀을 흘려야 하리니 이 세 가지를 하는 자는 마음이 있는 곳에 그 육이 함께 가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므로 거룩에 이르겠고 마음이 없는 자는 지체를 드리지 못하여 육도 거룩에 이르지 못하리니 그는 늘 부끄러운 상황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2월 3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말씀의 나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6일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어떤 여자가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으니 그 여자는 자기의 몸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며 기쁨을 얻었다. 그 남자는 또한 그 여자가 고민하는 것을 들어주며 이런저런 말로 위로해주었다. 심지어 그 여자가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신을 이해한다며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먼저 그 여자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처음에는 잘해주다 자기의 욕정을 채운 후 마지막에는 그 여자를 물에 빠뜨려 죽인 후 보험금을 챙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유창한 말과 또한 이것저것 잘해주는 모습에 넘어가 그 남자를 사랑하며 따라갔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한동안 자기의 몸이 원하는 것들은 얻으며 육신이 기뻤으나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을 얻지 못했다. 마음의 만족은 돈이나 물질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요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을 통해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여자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와 불안과 슬픔과 두려움가운데 살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에 바르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키 크고 잘생긴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으며 또한 그 남자가 자신에게 비록 육적인 만족은 주지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어느 날 키가 작고 못생긴 한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옛날남자에게 벗어나 키 작고 못생긴 남자를 사랑하며 따라갔다. 그런데 키 작고 못생긴 그 남자는 포도과수원의 주인이었기에 금요일에 해야 할 일이 가장 많고 또한 제일 바빴다. 그리고 그 여자도 자기를 사랑해준 그 남자의 포도원에서 일하며 풍성한 열매를 얻고 싶었다. 이에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자 금요일마다 온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곳에 그 여자를 초대해 함께 외식을 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식사를 마친 후 그 남자와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과수원 일을 했다. 그리고 다른 날에는 금요일에 필요한 것들을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 일을 하며 이전에 얻지 못하던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었으며 또한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키 크고 잘생긴 그 남자가 한번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어리석게도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갔으니 그 악한 남자는 자신의 잘생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예전처럼 그 여자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육신의 기쁨을 위하여 그 옛날남자를 계속 만났다. 그러면서 자기의 남자와 함께 하는 그 과수원 일에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키 작고 못생긴 남자는 그 여자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육의 기쁨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을 더럽힌다오. 하지만 당신의 몸을 이용해 과수원 일을 하면 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다 나중에는 당신이 원하는 포도열매를 풍성히 얻게 된다오.그러니 육의 기쁨을 따라가기 보다는 나와 함께 외식을 한 후 과수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또한 당신의 마음에도 갈등이 없을 것이요.” 그 남자는 이러한 말을 한 번 두 번 세 번 해주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으니 육신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과수원이 가장 바쁜 금요일에도 옛날남자를 만났다. 심지어 그 남자와 함께 밤을 지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의 남자와 외식하는 시간에 늘 늦었다. 또한 자기의 남자와 함께 과수원 일을 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았다. 이에 키 작고 못생긴 남자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나와 그 남자 중에 오직 한 사람만 택해야 당신의 마음과 몸이 함께 기뻐할 것이요.” 그러자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마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또한 가을에 풍성한 포도열매를 얻을 것을 믿어요.” 그러나 그 여자는 옛날 남자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또한 그가 주는 돈을 얻기 위해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인 거룩한 공동체에 거하는 모든 지체들이 오직 한길을 정해 자기의 마음과 몸이 함께 그 길을 걷기 원하신다. 즉 십자가의 길과 세상의 영광스러운 길 사이에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영혼들에게 둘 중에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인지 결단하라는 의미가 이 말씀에 담겨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은 그리스도께 있다 하고 또한 그 믿음이 있다라고 하는 자들이 그의 육은 세상에 있으면 마음도 믿음도 오로지 세상에 함께 가 그 길로 가는 것이 그에게는 갈등이 없다. 그리하여 그는 오로지 육이 기뻐하며 또한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땅에 살면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도 그리스도 앞에 있고 또한 자신의 믿음도 십자가 앞에 있는 자는 그 거룩의 길에서 비록 시험을 당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그 몸을 세상에 팽개치지 아니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몰아치는 그 시험가운데서 늘 말씀의 기초로 돌아가 그 시험을 참고 기뻐하며 오직 자신의 그 몸을 통하여 홀로 있을 때에도 또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에도 다른 영혼들의 거룩을 위하여 섬긴다. 또한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있으니 그 몸을 통하여 자신이 믿음에 더 이르도록 이용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의 몸을 거룩한 병기로 쓰는 자의 마음과 영혼은 그리스도의 그 평화를 얻고 또한 아버지께로 은혜를 얻는다.

     한편 거룩하신 영께서 바울을 통하여 이 말씀 안에 담아놓으신 비밀의 말이 있으니 그것은 곧 거룩한 공동체에서 품을 자와 끊어낼 자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로지 교회를 거룩하게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목사와 장로와 성도에게 해주는 말씀이다. 사람은 모든 자들이 불의하며 죄인이니 교회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다 품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다. 그러나 품지 말아할 자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실수로 죄짓는 것은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할 것이요 알고 짓는 죄는 그 자를 감독에게 넘기어 감독이 그를 자르라고 그들에게 부탁하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9일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모든 것이 의롭고 공평하며 사랑으로 충만한 한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그렇게 불의와 죄가 전혀 없이 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완전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 왕은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상대방을 배려해주었으며 무슨 일이든지 정의롭게 공평하게 이루어갔다. 예를 들어 자신의 품에서 낳은 외아들이라고 하여 무조건 왕자의 자리에 앉혀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해주지 않았다. 그가 오직 땀 흘려 일하고 또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고난을 겪은 후 그 자리에 앉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에야 그 영광스런 자리를 주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밑에 많은 종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단지 부리는 종으로만 대하지 않고 자기의 아들처럼 대우했다. 또한 다른 자들을 위하여 성실하게 충성하는 종을 높은 자리에 앉혔다. 그러므로 그 왕의 독자든 종들이든 왕의 말에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왕의 뜻에 충성했으니 그것은 그들이 그 왕의 그러한 마음과 행위를 보고 그의 공의와 사랑과 공평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가장 높은 종들의 위치에 있는 한 종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가지고 또한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 원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다른 종들에게 이런 저런 거짓말을 했으며 또한 그 왕이 의롭지 못하다고 불평불만을 하므로 자신이 그 왕보다 더 의롭다는 뜻을 내 비취며 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종의 욕심과 교만으로 인하여 죄가 창조된 것이니 그 왕의 나라에는 처음부터 불의와 죄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종들 가운데 죄를 창조한 그 종의 말을 드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 이유는 그 종과 같이 자기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창시한 그 종은 자기의 말을 따르는 종들을 모두다 자기의 밑에 모을 수 있었다. 이에 그 왕은 그 종과 그 종을 따르는 자들을 보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욕심과 교만을 품고 말과 행위를 하면 그 죄로 인하여 자신만이 아니요 다른 자들도 파멸로 이끌게 되니 돌이키라고 말해주었다. 일흔 번의 일곱 번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가지고자 하는 그 욕심과 교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으니 자신이 왕에게 받은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왕은 결국 그 종과 그를 따르는 종들을 먼 나라로 쫓아냈다. 그리고 자기의 외동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저 먼 나라에 거하는 백성들은 나의 원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거짓말과 잘못된 행위를 하면서 각기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가서 그들에게 나의 의로운 말과 뜻을 전하고 옳은 길을 내어라. 그러면 그들 가운데 나의 말을 의롭게 여기며 또한 나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들은 내가 정한 길을 걸을 것이되 나의 원수가 너를 핍박하며 죽일 것이니라. 그러나 그 죽음은 나의 의와 뜻을 위한 죽음이었으니 내가 너를 다시 살리겠노라. 또한 죄로 인하여 마땅히 형벌 받을 그곳의 백성들을 너의 죽음으로 용서해 줄 것이며 그들 가운데 나의 의와 뜻을 위해 너처럼 스스로 죽는 자들에게도 너와 같이 살리겠노라.” 그 왕은 자기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 말을 한 후 먼 나라로 향하는 아들을 보고 내가 너와 함께 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 아들은 이제 먼 나라로 내려가 자기 아버지의 의로운 말과 뜻을 그곳 백성들에게 다 알렸다. 그러자 죄를 창조하고 돌이키지 않아 쫓겨난 그 종은 의로운 자신을 쫓아낸 그 왕은 불의하다며 그 아들을 붙들어 피 흘려 죽였다. 하지만 그 아들의 죽음은 왕이 의롭다는 것을 증거하는 죽음이요 왕의 뜻을 이루는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아들을 다시 살려 가장 영광스런 왕자의 자리에 앉혔다. 한편 자신이 용서받은 은혜를 갚고 싶은 백성들은 그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 아들과 왕이 의롭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들은 왕이 정한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 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왕의 말만을 전하므로 왕의 의를 증거했으며 또한 왕의 뜻만을 끝까지 이루었다. 그것을 보자 죄를 창시한 그 종은 그들 가운데 남자는 네 곳을 칼로 찌른 후 마지막으로 목을 베어 죽였으며 여자는 단두대에서 목을 베어 피 흘려 죽였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도 오로지 그 왕과 그 아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 왕은 그들도 다시 살려 영광스런 왕자와 공주의 자리에 앉혔다. 이에 그 왕의 밑에서 충성하는 종들은 그들이 영광을 얻는 모습을 보며 왕이 정한 그 길과 왕이 행하는 모든 일이 의롭고 참되다고 소리를 높여 인정했다.

     이와 같이 원수는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셋째 하늘에서 죄를 창조했으나 그것을 돌이키지 않았기에 아버지께서는 그를 이 첫째 하늘로 쫓아내셨다. 하지만 죄의 창시자인 그 원수는 쫓겨난 후에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의를 선포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그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의와 뜻을 이루는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시되 가장 밝고 높은 영광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그 죽음과 부활은 믿는 자들의 를 사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의로운 자들의 부활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도 원수가 이끄는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의롭게 된다. 또한 십자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그 인자의 살과 피로 인하여 거룩을 이룬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오직 말씀만을 전하므로 세상에 아버지의 의를 선포한다. 그리하여 그 죄가 그들을 사망으로 옮길지라도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어 영원히 그들과 함께 거하시니 그것은 그들이 의를 따라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또한 마지막에 그 죽음과 생명을 바라보며 사는 자로서 가정과 거룩한 공동체와 세상에서 어떻게 욕심과 교만에 대하여 죽고 오직 부활한 자로 여길 수 있는가? 답은 이것이니 그가 이미 셋째 하늘에 거하는 것과 같이 말과 행위를 취함이 옳다. 즉 자신이 부활을 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거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의롭고 거룩하게 행하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모든 자들과 또한 모든 이방인들에게 그 진리의 빛을 보임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산 자로 여겨야 한다는 이 말씀을 기억한다면 어찌하여 아내에게 분노를 내겠는가? 오로지 사랑만 하게 된다. 또한 아내들이 어찌하여 남편에게 불순종하겠는가? 끝까지 순종만 하게 된다. 또한 자녀들이 어찌 부모에게 불순종하겠는가? 오로지 순종만 하게 된다. 또한 부모들이 어찌 자녀들을 노엽게 하겠는가? 오로지 말씀으로만 다스려 모든 자들이 그 거룩을 함께 이루어가게 된다.

     하지만 부활한 자와 같이 셋째 하늘에서 행하는 것처럼 이 첫째 하늘에서도 이러한 행위를 취하는 것이 옳되 누가 자신을 이렇게 산 자로 여길 수 있겠는가? 사람은 스스로는 이렇게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과 피를 의지하고 있는 의인들만이 가정과 교회에서 또한 세상에 대하여도 옳은 말과 행위를 취하고 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2일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이 말씀 안에는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선악을 따르므로 에게 종 노릇하지 않고 오직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르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아버지의 의를 위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거듭난 한 영혼이 누구와 무엇을 통하여 또한 그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므로 죽음과 부활에 이르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이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왕자가 자기의 욕심이나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의롭고 정직하고 변함없는 자기아버지의 말에만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는 무슨 마음을 품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위를 하든 그것들은 오직 자기의 아버지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왕은 또한 불의나 거짓이나 변함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과 행위로도 늘 올바르고 정직하고 거룩한 것만 나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왕의 이러한 모습을 보자 그를 보고 죄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그 왕은 사람들이 육신을 위해 욕심부리며 아끼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육신은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또한 아껴도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간 후 썩어졌다. 또한 돈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계를 파괴했으며 죽을 때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기의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는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여 얻은 육신의 힘을 자신의 첫 번째 모습을 위해 아끼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육신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그가 이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니 그 안에는 참으로 의롭고 거룩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불의와 죄악만 가득했으니 그는 자신이 만일 세상과 타협하면 자신도 세상과 같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 왕은 꿈같이 헛된 천하 만국의 영광을 구하거나 그 중에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왕을 보고 세상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 왕은 이렇게 세 가지에서 벗어난 삶을 살다 마지막에는 자기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다. 하지만 그 왕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보고 너는 나의 의를 이루었다고 하며 다시 살리되 이번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아주 좋은 육체를 입혀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살아난 그 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 왕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죽었다 부활했다.” 그런데 그 왕을 보고 죄와 육신과 세상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그 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따라 늘 불의하고 악한 말과 행위를 했으며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갔다. 또한 자기의 썩어질 육신을 위해 욕심부리며 아꼈다. 또한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얻거나 좋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그러나 그들 가운데 7명은 자신도 그 왕처럼 좋은 육체를 얻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냐고 그 왕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그 왕은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누구든지 내가 걸어간 그 길을 따라오는 자는 나와 같은 그 좋은 육체를 얻겠노라.” 왕의 말을 듣자 그 일곱 명은 왕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저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왕을 따르므로 죄에서 벗어나고 육신에서 벗어나고 세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세 가지에서 벗어난 삶을 살다 그들도 마지막에는 그 왕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다. 이에 그 왕의 아버지는 그들에게도 그 좋은 육체를 입혀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죄와 육신과 세상에서 벗어난 후 죽었으나 부활한 것은 죽은 나의 아들이 먼저 벗어나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죽은 자라는 것은 믿는 자들을 뜻하는 바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의롭고 거룩한 자녀가 될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먼저 죽으시고 그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셨다. 그리하여 거듭난 자들 가운데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좇는 자들로 하여금 그 길을 따라오게 하므로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그 십자가의 길에서 먼저 죄에서 벗어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벗어나신 것은 세 가지이니 첫째로는 그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남이요 둘째로는 썩어지는 그 육신에서 벗어남이요 셋째로는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벗어나셨다. 그러므로 교회시대마다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도 사람들이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며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사망권세와 썩어질 육신과 죄악된 세상을 그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죄에서 벗어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그들도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산 제사로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5일 죄의 몸이 멸하여

어떤 사람이 마음과 생각으로 음행을 품었다. 실제로도 간음했다.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판단하기도 했다.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구하느라 자기도 옳게 말과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남이 그러는 것은 크게 드러내되 자기의 것은 숨겼다. 그는 매일매일 날마다 그랬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과 생각과 또한 몸과 혀가 불의와 죄를 행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마치 종이 주인을 따라다니며 주인의 말을 듣고 복종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양심이 있었으니 찔렸으며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 자신의 죄를 애통하고 있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거듭남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믿고 자신의 죄들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으로 영접하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다. 이제 그는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았으니 죄에 종 노릇하던 그 옛 사람의 모습이 자신에게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때로는 옛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고 때로는 새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한번 죄에게 지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졌으며 한번 이기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이겼다. 하지만 그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아프지만 옛 사람의 모습에 대해 책망하시는 거룩하신 영의 그 책망을 받아들였다. 이에 그의 안에 계신 인격체이신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더욱더 의롭고 깨끗해지도록 힘을 주셨으며 또한 도와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 그 죄를 이기며 나갔다. 반면 그의 안에 있는 그 죄는 계속 지면서 더 이상 아버지의 그 뜻에 종 노릇 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스스로 떠났다. 그리하여 거룩에 이른 그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또한 몸과 입술로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했다. 오히려 그의 마음과 몸을 거룩한 열매를 맺는 도구로서 아버지께 드렸다.

     이와 같이 옛사람이라는 것은 거듭나지 못한 그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셋째 하늘에서 욕심과 교만으로 죄를 창조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원수는 에덴에서 사람의 마음에 선악과를 심었다. 그리하여 이방인은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품고 또한 그 죄를 행위와 말로 밖으로 내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이처럼 거듭남이 없을 때는 거룩하신 영께서 그의 안에 함께하지 아니하시니 그의 거룩한 영이 그 사람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 선악의 죄가 그의 육을 마음껏 이끌되 이러한 모양을 보고 죄의 종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그가 아직 거룩에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옛 사람의 모습에 대해 책망하시는 거룩하신 영의 도움이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그의 거룩한 영이 거룩하신 영으로부터 힘을 얻어 그 죄를 이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그 죄를 이길 때에는 그의 거룩한 영에게 은혜를 입히시어 더욱더 깨끗하게 되도록 애를 쓰게 이끄신다. 그리하여 거듭난 후에 새사람의 모습을 이룬 영혼이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욕심과 교만을 따르거나 그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거듭난 후에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그 옛 모습들을 돌이키지 못한다. 또한 옛사람의 모습에 대한 거룩하신 영의 그 책망을 아프다며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것도 역시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함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은 인격체이시니 그가 넘어질 때에는 그의 거룩한 영이 힘을 잃는다. 그리하여 많은 자들이 거듭난 후에도 그 죄에 종 노릇하므로 옛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다 육신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한 영혼이 거듭난 후에도 이방인처럼 계속해 죄에게 종 노릇을 하느냐 아니면 의와 거룩에 종 노릇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거룩하신 영께 힘과 도움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거룩하신 영께서 죄를 이기는 힘을 거듭난 사람의 그 거룩한 영에게 주시는 기준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는 주시고 누구에게는 주시지 아니하므로 차별하시는가? 그렇지 아니하니 하고 공평하니 그 기준은 바로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못박히지 않느냐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즉 자신의 몸과 혼을 내어놓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그 살과 피를 얻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세상을 이기신 그 승리의 살과 피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를 내려놓는 그를 도우시니 그가 힘을 얻어 죄를 이기며 나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얻은 자의 죄의 몸이 멸하여 거룩하게 되므로 다시는 그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의와 거룩의 병기로 몸을 이용해 거룩하신 영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9일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

한 의로운 왕이 자기의 아들에게 자신의 온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의 아들이라고 그 영광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요 먼저 그 영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에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의로운 계획에 따라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나의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아!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산에다 길을 만들기 원하는 도다. 그러면 나는 너에게 온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영광을 줄 것이요 네가 만든 길로 올라오는 자들에게도 그들이 올라오며 고난 받은 만큼의 영광을 주겠노라.” 그 아들은 이제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올라가지 않은 곳에다 산길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므로 두 개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나오자 더 힘들지 않고 쉬운 쪽에다 길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표지판에 이렇게 써있었다. “왕의 뜻을 이루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하지만 그 길은 더 힘들고 어렵겠노라.” 그 아들은 그것을 읽고 오직 자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었으니 오른쪽에다 길을 내며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 길은 더 힘들고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항상 더 힘들고 어려운 쪽에다 길을 내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그 왕은 자기의 뜻을 위해 더 힘들고 더 어려온 길을 내며 올라온 그 아들에게 더 좋은 영광을 주며 안아주었다. 이때 그 주위에 모여있던 그 나라의 모든 종들은 그 아들이 영광 받는 모습을 보며 그 왕을 보고 의롭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 나라의 온 백성들은 다 함께 박수를 쳐주며 저 아들은 영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외쳤다. 잠시 후 백성가운데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그 아들이 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의 뜻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내면서 올라가지 않고 그저 그 아들이 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지만 그 산이 너무나 험하고 높아서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다 그 첫 번째 표지판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왕의 아들이 더 힘들고 어려운 쪽에다 길을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표지판을 읽은 후 깨달음을 얻고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그 아들이 낸 길로만 따라 올라갔다. 이제 드디어 그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 나라의 모든 종들과 백성들이 그를 환영하기 위하여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왕은 나의 뜻을 위해 더 힘들고 더 어려온 길로 올라왔으니 너에게도 더 좋은 영광을 주노라고 하며 안아주었다. 이때 그 사람이 영광 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 주위에 모여있던 종들과 백성들은 처음과 동일한 말을 다 함께 외치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 그 길을 올라온 자들이 한 명 한 명 다 영광을 받은 후 모든 자들이 다 함께 왕이 궁전에다 준비한 큰 만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아들과 그 길을 따라온 자들이 왕의 뜻을 위하여 고난 받으며 산을 올라오는 모습을 다시금 큰 화면에다 그대로 비추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자들이 고난 받은 모습을 보며 서로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또한 함께 고난 받은 것에 대한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위로도 해주었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고난스럽다. 그러나 그 길이 고난스러워도 그가 그리스도를 따라 끝까지 그 길을 걷는 것은 그 길이 바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는 새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즉 그 길에 비록 고난이 있지만 그는 그 길에서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십자가의 길에서 새 생명가운데 행하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아들을 따르며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영혼에게는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때에 따라 내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은 비록 고난에 거하지만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그 길에서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쁨과 평화가 그의 영혼과 마음에 늘 임한다.

또한 그 길은 매우 고난스럽지만 그 길의 끝에는 새 생명가운데 행한 자를 위한 새 생명이 실제로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육신의 고난을 받지만 육신의 장막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것과 같은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그리하여 부활에 연합한 뒤로는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원히 새 생명가운데 행하며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새 생명가운데 행하고 있는 지체들에게 거룩하신 영께서 주신 그 말씀의 의미는 이것이다. “그리스도도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할 때에 고난이 더 험하였노라. 마찬가지로 그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자에게는 고난이 더하리니 마지막에 그 부활의 영광이 더 하겠도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2일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 MS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 한글

10월 22일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나무

10월 15일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어떤 엄마가 자기의 아이를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주었다. 또한 때로는 단것도 주었으니 그 아이는 단 것을 웃으면서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배를 잡고 울면서 아프다고 했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에게 약을 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맛을 보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이에 엄마는 이 약은 쓰지만 너의 아픈 배를 낫게 해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쓴 것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단 것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금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가 만일 지금 단 것을 먹으면 배가 더 아파져서 큰 병에 걸릴 수 있단다. 그러니 먼저 이것을 먹고 나은 후에 네가 원하는 것을 줄게. 그러면 그것이 더 맛있을 거야.” 하지만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계속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아이가 나을 때까지 단 것을 주지 않았으며 손에 오직 약을 들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단 것은 좋아하여 계속 취하지만 쓴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단 것도 쓴 것도 짠 것도 모두다 조금씩 필요하다. 또한 단 것이 더욱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쓴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단 맛의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쓴 맛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어리석다.

     사람은 또한 자기가 뿌리지 않은 것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때로는 비바람을 맞으며 때로는 내려 쪼이는 태양의 밑에서 땀을 흘리며 밭을 가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땅에서 애쓸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거나 애쓰지 않고도 열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게으른 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리석음과 게으름은 아버지를 모르는 이방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믿는 자들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영혼은 말씀가운데서 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의 눈과 귀가 좋아하며 그것을 취해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동일한 말씀에서 책망을 보게 되면 그것을 피하거나 혹은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나친다. 그러나 사람은 책망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애씀이 있을 때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로워지며 거룩해지는 복을 얻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니 그 영광스럽고 복된 생명이 영원히 간다. 그러므로 책망은 원치 않고 오직 복만을 원하는 영혼은 참으로 어리석다.

     또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죽음의 이야기는 하지 아니하고 오직 부활의 이야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은 싫어하되 부활은 그가 영원히 사는 삶이기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 가운데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취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오로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었도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죽지 않은 사람에게 어찌 부활의 생명이 있으리요? 즉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이니 그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후에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은 가운데서 받는 세례는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새로운 영생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가 이제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원히 사는 그 부활을 소망할 수 있는 영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와 혈기와 또한 마지막에 육의 그 죽음은 원치 않고 오직 부활만을 원하는 영혼이 적지 않으니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며 새 영생과 부활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지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죽어야 자신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죽지 않고 한 몸에 두 인격이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든지 자신도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의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그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여야 한다.

     그는 우선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을 위해 물과 피를 흘리셨으니 사람은 자신의 몸과 혼을 내어놓아야 하되 육과 혼은 사망이요 그를 그 죄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과 생각이 비로소 그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겠고 그의 피도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 그 육까지 깨끗하게 또한 거룩하게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이후에는 부활을 맞이할 수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8일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오직 자기를 위한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는 이유는 그것을 행하므로 자기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의한 일을 행하는 것도 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믿는 자들은 죄와 불의를 범하고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말들을 한다. “나는 은혜를 얻었노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도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니라.” 그러면서 죄와 불의를 계속 범하니 그것은 자기의 욕심과 유익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도 아닌 믿는 자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며 그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돌이키길 원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교회의 믿는 자들과 또한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전한 이 말씀의 안에는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책망이 담겨있다. 한가지 비유를 통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영혼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 보니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위하여 일하고 싶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렇게 약속했다. “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생명의 말씀만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제게 필요한 만큼을 주시어 저와 가족들로 하여금 굶어 죽지 않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이렇게 약속을 하고 말씀을 배웠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려고 하는데 자신과 같은 일을 먼저 행하고 있던 자들이 가정을 돌며 흰 봉투를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그러므로 그는 저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사람들에게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렇게 참으로 신실하게 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하다 점점 배고픔과 굶주림이 다가오니 그것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 가정 저 가정을 두루 다니며 말씀도 주고 기도도 해주었다. 그러므로 이 가정 저 가정을 갈 때마다 그 식탁이 음식으로 가득 찼다. 또한 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을 하니 사람들이 흰 봉투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고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거절을 했다. 그러나 네 번째부터는 거절하다 받아서 넣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가 거절할 때에 그들이 봉투가 두꺼우면 도둑맞거나 들고 다니기에 위험하다고 하며 그 양은 같거나 많되 점점 봉투의 두께를 좁혀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그가 자신의 거하는 처소에 왔을 때 그 봉투를 지붕 위에다 숨겨 두었다. 그리고 자기의 아내와 또한 자기의 자녀들이 훔칠까 그것을 잠가두었다. 그가 이렇게 행하는 것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갔다. 하지만 중간에 그는 스스로 ‘내가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다짐했다.그러나 그의 후손이 와서 이것저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다시금 또 한 가정을 방문해 봉투를 가져와 그 후손에게 넘겨주었다.그리고 그의 아내가 먹을 것이 없다 하니 역시 다른 가정에 가서 또다시 흰 봉투를 들고 와 그 식탁에다 음식이 가득 차게 했다. 그러다 그가 마지막 숨지기 전에 자기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복은 오로지 아버지께로부터 왔으니 너희는 내 발자취를 따르라. 그리하면 너희들에게도 복이 있겠노라.”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행하여 그가 큰 이익을 얻었다라고 하면 그 행한 것이 의로운 일이건 의롭지 아니하건 그 일을 행한다. 사람의 마음에 원수가 심은 그 선악의 뿌리로 인하여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일을 의롭다라고 칭하니 그것은 자신이 그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거듭나지 않은 이방인이라도 아버지께서 주신 양심이 그의 안에 있다. 한편 거듭난 자의 안에서는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도우시는 거룩하신 영께서 이것은 죄요 불의한 것이니 돌이키라고 책망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것을 행하다 이것은 많은 자들에게 유익이 없으며 또한 많은 자들에게 폐가되니 그 일은 행치 말자고 말한다.이때 그것이 욕심에서 나온 죄요 불의한 것임을 아는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자신을 돌이켜 그것을 멈추므로 그는 더 이상 죄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버리고 끝까지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얻기 원하는 자는 그것이 죄요 옳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다시 행한다. 또한 그것을 행치 말자고 자신과 다른 자들에게 말하고도 그것을 계속 행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죄와 행위를 슬퍼하거나 애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그 행위를 끝까지 의롭다고 하며 또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니 그것은 오로지 그의 안에 있는 그 죄의 인격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끝까지 원하니 그것을 멈추지 않고 말과 행위를 하여 자신의 이익을 더 얻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은 은혜를 얻었으며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며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로지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시며 또한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챙기며 그것이 은혜라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생명을 원한다 하며 그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옳음 이뇨?’라는 바울의 지적과 책망이 바로 이 말씀의 뜻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1일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사람들은 흔히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범죄자나 죄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가 법을 통해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며 그 형벌을 마땅히 여긴다.그러나 그 사람과 동일한 죄가 그것을 마땅히 여기는 자신의 마음 안에도 동일하게 있으니 형벌 받은 사람은 그 죄를 밖으로 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마음에 있는 그것을 돌이키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것이 밖으로 나와 그와 동일한 형벌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은 죄로 보지 않고 오직 밖으로 나온 것만 허물로 여긴다. 물론 밖으로 나온 것도 더 이상 허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들도 있으니 그들은 이미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의 죄는 금방 눈치채지만 자신의 죄는 알고도 지나치거나 숨기거나 관대하다. 자신의 불의와 죄를 감추고 오히려 의롭게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위가 바로 그 선악의 죄로 인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가 만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도 이렇게 선악의 죄에 이끌린다면 그 죄는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를 따라 말하며 죄를 따라 행한 그는 나중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반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오히려 자신의 안에서 그 죄를 끊어내기 원하니 그는 겸손히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한다. 그리하여 결국 죄에서 벗어나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한 그가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택함의 은혜를 받은 유대인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은 이방인가운데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 죄나 혹은 은혜가 믿는 자의 안에서는 어떻게 역사하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유대인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그 마음을 다하여 지키므로 은혜를 얻어 아버지의 앞에 가까이 간다. 그러나 이방인은 은혜를 먼저 입은 후 역시 마음을 다해 그 율법을 지키므로 아버지 앞에 선다. 이처럼 유대인도 이방인도 은혜를 받는 그 순서가 다를 뿐 둘 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바치니 마음이 되는 자는 이러한 은혜를 얻을 것이되 마음이 없는 자는 이 생명의 은혜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선 아버지의 뜻에 먼저 마음을 바치지 못한 유대인의 경우는 자신이 ‘나는 율법을 지켰소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하늘높이 올리고 그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신령하고 영원한 그 율법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행한 것에 있으니 그는 그 행한 것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함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자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원치 아니하고 자신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함께 말하게 된다. 또한 누구의 말도 듣지 아니하니 자신의 속 안에서 애통하는 그 말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 얽매이게 한다. 그리하여 이런 자는 그의 육이 쇠사슬에 묶인 후 물 아래 깊은 곳에 빠짐과 같다.

한편 첫사랑을 잊으므로 거룩에 마음이 없는 이방인의 경우는 ‘나는 그리스도를 믿소.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도다.’라고 외치며 또한 ‘나는 십의 일을 매일같이 드리는 도다. 나는 하루에 세 시간 아버지께 구하는 도다.’라고 하는 자는 자신의 얼굴이 하늘로 솟아나며 그 두 팔을 휘두르고 길거리를 다니되 그는 오히려 다른 영혼들에게 거스름 돌이 된다. 결국 이런 자도 그리스도를 알고 또한 율법을 행한다고 하며 행하였으되 그의 마음은 그가 처음 받은 은혜에서부터 떠났기에 그는 오직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고 그것을 남들에게도 퍼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강력한 원자폭탄과 같이 자기의 영혼과 그 주변의 모든 영혼들을 사망으로 이끄니 ‘저 영혼을 보아라. 또한 나를 보아라. 나와 같이 하는 것은 의로운 것이요 또한 구원받은 아들로서 하는 행위로 도다.’라고 하되 자신은 그 율법을 지킴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말하니 그는 스스로 자신이 그 깊은 물에 뛰어들어가 그 물아래로 계속 들어가는 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을 얻은 자는 이러하니 유대인가운데 아버지와 그 뜻에 마음을 둔 자는 그 율법을 지키기에 애쓰되 지키지 못함을 보고 날마다 날마다 애통하며 날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하나 하나 기록하여 묵상하고 행하고 그것이 자신의 몸에 배기도록 말씀과 함께 뒹군다. 이런 자는 아버지도 아들도 사랑하시니 그에게 은혜를 주시되 그 자가 오로지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그 연약함에서 일어난다. 또한 자신에게 의로움이 없음을 인정하여 늘 고개가 숙여져 있고 그 입에서는 ‘나’라는 말이 없으며 ‘모든 것이 오로지 아버지의 은혜로 도다. 아버지의 은혜로 도다.’라고 외치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그 말씀을 심는다. 결국 이런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오른손으로 그 발을 들어올려 이 세상의 더러운 땅에 그의 발이 닿지 않도록 하시니 그에게는 생명이 충만하게 거하게 된다.

한편 이방인가운데서 아버지의 생명을 얻은 자는 이러하니 늘 첫사랑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날마다 그 눈에서 눈물이 날것이요 날마다 날마다 자신의 것을 십의 일이 아닌 십의 십을 다 드리고 또한 더 드릴 것이 없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안으시며 일으키시니 그는 오로지 그 머리를 그리스도의 어깨에 대고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대로 좇아가되 조심스럽게 그 뒤를 좇아가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간다. 또한 다 드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저는 부족합니다. 제가 드릴 것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니 땅의 흙이 그 발을 더럽히지 못하며 그리하여 그가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게 된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24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먼저 아버지께서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태초에 항상 신령한 것들만을 둘째 사람들에게 주셨다. 뿐만 아니라 첫째 사람들에게도 그들에게 맞는 신령한 것들을 공평하게 내려주셨다. 그리고 나서 그 한 영혼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한 민족을 아버지께서 택하셨다. 그것은 그 민족이 참으로 무엇을 잘하거나 위대하여서도 아니요 오로지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또한 빛이 없는 어두운 이 세상에 묶여있는 것을 애통하고 있는 그 민족이 불쌍하였기에 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에 거할 때에는 그 마음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며 진리만을 좇으려 하는 거룩한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진 그들에게 셋째 하늘에 있는 영원한 계명들 가운데 몇 개를 찍어서 그 신령한 것들을 그들에게 주셨으니 그것은 곧 그들을 자기의 아들들로 삼으시려는 은혜를 내리신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처음에 품었던 마음을 바꾸니 그것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이다. 또한 육이 풍성해지거나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게을러지니 영을 좇거나 올바르게 하려는 마음을 잃는다. 그러므로 계명으로서 은혜를 받은 그들이 노예가 아닌 자유에 거할 때는 그들의 마음이 이제는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욕심으로 변하였고 진리를 좇는 갈급한 마음에서 육의 영광을 좇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마음과는 달리 마음이 바뀐 후에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욕심과 육의 영광을 얻으려면 신령한 것을 따라가야 하리요 아님 신령하지 못한 것을 따라가야 하리요? 하지만 신령한 것은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것이니 사람을 죄로 이끄는 그 욕심과 교만을 결코 채워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처음에 신령한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광과 또한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그 신령한 것을 폐하기보다는 바꾸므로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신 아버지의 그 율법은 처음에는 신령한 것이었으되 자기의 썩어질 이익을 구하고자 그 은혜를 저버린 자들로 인하여 점점 더 의문의 법으로 신령하지 못하게 바뀌어갔다. 즉 신령한 것이 육과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의 그 몸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럽힘을 받아갔다. 그리고 그 더러운 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신령하지 못한 그 율법을 행할 때마다 오히려 더욱더 더러워져갔다.

     하지만 그들이 더러워져갈 때 그들의 첫 마음을 보시고 신령한 것들을 주신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시겠는가? 그들이 그 신령한 것을 바꾸어 욕심과 교만을 채우고자 은혜를 버리는 것은 구약의 장자권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율법으로 인하여 죄가 더한 그들에게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하시니 아버지의 은혜가 땅 아래에까지 미치고 의인의 피가 땅 아래에서 아버지께로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그들의 백성들과 후손들을 통하여 애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썩어질 헛된 것과 바꾸는 그 백성들을 보고 모세가 처음에는 분노를 보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도 그들을 보셨을 때 분노가 가득하시어 수없이 그들을 땅 아래로 삼킨 후 다른 민족을 택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땅은 그 입을 벌리기 원하였어도 아버지의 은혜로 땅이 그 입을 벌리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그 민족을 붙들고 계신다. 그러면서 자기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돌이키는 자들이 있음을 믿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기다리시고 계시니 그것이 참된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첫 마음을 회복하지 못하므로 율법이 그들을 더욱더 악으로 빠뜨리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서 새로운 계명을 받은 그 거듭난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죄가 더한 그 이방인들에게도 역시 유대인들과 같이 동일하게 그 은혜를 더욱더 넘치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참되지 못한 그 지체들을 그리스도께서 오늘 그 몸에서 떼시기를 원하시되 아버지와 그 민족을 보시고 또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육과 세상에서 돌이킬 자들이 있음을 아시고 자신도 끝날 까지 기다리며 마지막 날에 뗄 것을 떼고 더 붙일 것을 붙이실 것이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7일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아버지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법도가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육이 아닌 영원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룩을 이룬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기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이웃의 거룩을 위하여 아버지께로 구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 주신 법도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요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도 구원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면 오로지 행위로만 법도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것보다 더 먼저주신 법도가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죽고 난 후 자신이 입었던 육은 썩어지며 그와 같이 육적인 모든 것들도 썩어진다. 또한 아버지의 심판을 받은 이 세상은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가니 육과 세상을 따르는 자도 마지막에 그 썩어짐과 사망으로 들어간다.그러므로 그가 만일 육을 얻고자 세상을 따르는 자는 첫 번째 법도에 어긋난 자이다.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계명은 이것이니 첫째는 오로지 아버지의 아들에게 맺은 언약이요 그 다음으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맺는 언약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기의 생각이나 의를 따르고 있다거나 다른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면 그는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아버지와 아들을 믿노라 하며 자기의 생각이나 세상을 따른다면 또한 사랑을 말하며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 없이 말로만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아버지께서 유대인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것은 율법이니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맺는 언약을 지키는 것이요 그와 같이 다른 영혼과 맺은 언약도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기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며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거룩을 이룬다면 그는 율법을 이룬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그것은 다른 영혼을 위한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만일 마음이 다른 곳에 있거나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피를 드린다면 그것을 받지 않으시니 그것은 마음이 없는 것이요 그리하여 행위로만 지킨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신령한 법도와 계명과 율법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녀들은 셋째 하늘에서도 그것들을 지키며 또한 영원토록 이루어간다. 즉 셋째 하늘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하며 또한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며 또한 자기 민족의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되 그것이 말과 행위로만이 아니요 마음에서 나온다.

유대인들은 택함의 은혜를 얻었으니 이러한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받았으며 그것을 지키므로 자기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부활의 약속을 이룰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로부터 받은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하여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육신이 있으리요? 또한 그것은 신령한 것이니 마음이 다른 곳에 있거나 거룩하지 못한 자는 지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거룩을 이루고자 자기의 힘으로 애쓰던 자들도 또한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던 자들도 공히 그것을 지키지 못했으되 지킬 때는 마음을 다하여 지킨 것이 아니요 오직 행위만을 보였다.

그러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법도와 계명은 물론이요 율법까지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다 지킨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은 또한 율법을 완성한 그를 의지해 자신도 신령한 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선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들이 아닌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자기의 힘으로 애쓰던 자들은 자신이 받은 율법을 스스로 이루려 하는 과정가운데서 율법의 완성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앞에 나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율법을 힘입어 완성시켰으니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를 끝까지 의지하고 따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구체적으로 유대인이었던 그들은 율법의 완성을 스스로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나와 한 가지 한 가지씩 그리스도께 구하며 그리스도를 힘입어 한 가지 한 가지씩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율법보다는 먼저 법도와 계명을 이루었으니 그들은 그 과정에서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다. 그리고 거듭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교회에 두신 그 구원의 일정을 따라 동일하게 구원을 이루어갔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 아버지께로 드리는 산 제사를 통하여 율법을 완성하므로 그들도 그 영광스런 구원의 약속을 이루었던 것이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0일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둘째 사람의 후손인 유대인이 태어난 지 팔일 만에 받는 그 할례에는 큰 비밀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는 그 약속이다. 하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가 그 영광에 이른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 거룩의 길은 오직 거듭난 후에 걸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 육신에 받은 할례에는 부활이라는 그 온전한 구원의 비밀과 더불어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룰 수 있도록 첫걸음을 떼도록 해주는 거듭남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할례의 비밀과 또한 할례와 거듭남의 관계로 인하여 유대민족은 팔일 만에 그 육신가운데 영광에 할례를 받으면 아버지의 약속대로 거듭났다. 그리하여 할례 받은 그가 이제는 자신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받은 그 생명의 약속을 바라보고 율법과 계명과 법도에 순종을 통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거듭나므로 거룩한 혼이 일으켜 세워진 영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에게 임하는 거듭남의 기준을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그 시점 이후로는 그 영혼의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에 두신다. 즉 그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구약의 약속대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해 거듭남을 얻을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율법을 이루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육신의 할례를 받고 살아있던 유대인들의 그 할례는 아버지께서 더 이상 인정하시는 할례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그 유대인의 거듭남도 인정을 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후에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 육의 사망으로 들어간 유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당시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육의 사망에 들어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들의 할례와 거듭남을 인정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의 전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할례의 언약을 지키셨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팔일 만에 할례 받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가르침이었으니 할례를 받은 자는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후에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더 이상 거듭남의 표가 아니니 할례는 오로지 아버지와 약속을 맺은 표적이었고 그리스도와 그의 살과 피가 거듭남의 중보가 된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3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아주 복잡한 컴퓨터나 기계들을 보며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 있으니 누군가 그것을 그 목적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태초에 먼저 뜻과 계획을 세우시고 아들께서 그 뜻과 계획대로 명하셨으며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들의 말씀대로 자신의 종에게 창조를 명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손에서 나온 그 창조의 재료들을 가지고 사람의 육체를 빚되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작고 정교하고 질서 있게 살아 움직이며 유전을 시키는 그 세포와 유전자와 염색체를 만들어 넣었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이렇게 작고 정교하고 질서 있게 살아 움직이며 유전을 시키는 것들을 동물과 식물들에도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비록 인격체는 아니지만 원수를 따라가지 않는 피조물들은 자신이 창조된 그 목적을 알고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생명의 은혜에 감사한다. 그리하여 감사하는 피조물들도 사람의 눈과 귀에 보이며 들리지는 않아도 자신의 위치를 떠나지 않고 충성스럽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므로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다.

하늘에 떠있는 아버지의 열두 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태양은 아버지께로 받은 그 빛을 쉬지 않고 비추므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다른 열한 별들과 함께 아버지께서 주시는 그 영광스러운 상급과 더불어 영원한 형벌을 모든 사람들에게 날마다 깨우쳐주고 있다. 또한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태양의 주위를 돌며 스스로도 돌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에게 정해주신 그 길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있게 달리며 아버지의 그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영을 받은 둘째 사람에게 세포와 유전자와 염색체를 넣으시고 또한 영혼이 없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여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또한 하늘에 떠있는 그 별들의 목적과 영광을 보이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작고 정교하고 질서 있게 자신의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 또한 다른 피조물들을 보며 자신의 창조자가 있음을 깨닫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창조자가 있음을 깨닫고 또한 창조자의 그 뜻과 계획대로 모태에서 지어져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목적을 깨달은 사람은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원수의 그 선악에 대하여 알게 되니 자신을 본 후 가장 먼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자기의 마음을 다해 자기의 몸을 움직여 창조자께서 원하시는 그 거룩을 이루고자 늘 애쓴다. 그리하여 썩어질 육신을 벗어났을 때 창조자의 목적을 이룬 자들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러 아버지와 아들의 품에 안기어 기뻐하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것을 받아 영원토록 다스리며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버린 사람은 창조자가 있음을 알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그 목적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불의함을 알고도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마음과 몸으로 범죄하고도 자신을 깨끗하게 여기며 또한 돌이키지를 원치 않는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어찌 인생의 목적을 알리시리요? 설령 알려주신다 해도 그들 스스로가 원치 아니하며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의 말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거룩을 이루기보다 오히려 자기의 마음을 다해 자기의 몸을 이용해 창조자가 원치 아니하는 불의와 죄를 쌓아가며 아버지의 분과 노를 일으키고 있으니 그것은 오로지 자기의 욕심과 기쁨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상급을 주시되 형벌도 주시니 선악의 죄를 창조한 그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른 자들은 모두다 원수와 함께 태양의 형벌로 들어간다. 그러나 만물을 분명히 보았던 그들이 어찌 창조자가 있음을 몰랐으며 또한 거룩의 상급과 죄의 심판이 있음을 몰랐다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또한 그 영원한 유황불 못 안에서 핑계하리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7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한 왕이 왕자들이 입는 옷을 가지고 험하고 높은 산의 꼭대기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산을 끝까지 올라오는 자에게는 내가 준비한 이 옷을 입혀주겠노라.” 이에 어떤 사람이 산밑에서 그의 말을 듣고 그것을 보고 그 산을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한 악한 자가 산꼭대기의 바로 밑에서 칼을 들고 서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자는 여기서 나의 칼에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저 옷을 입지 못하겠노라.” 그 악한 자의 말을 듣자 그 사람은 그 칼을 보고 두려워서 한걸음도 올라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하지만 다시금 자세히 보니 왕복을 가진 그 왕의 아들이 그 악한 자와 싸워 이긴 후 그의 머리를 발로 밟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들으면서 이 산을 올라오는 자에게는 내가 아버지와 함께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서 그 길을 끝까지 인도해주겠노라. 또한 내가 저 악한 자를 이겼으니 누구든지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 아버지와 나를 믿고 따르는 자는 이 산을 올라오며 두려움대신 마음에 평화를 얻겠노라.” 그 아들의 말을 듣자 산을 올라가려다 두려워서 멈춘 그 사람은 드디어 첫발을 떼어 그 산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 길에서 늘 그 왕자의 말을 듣고 따라갔다. 그러므로 그 왕과 왕자는 약속대로 그가 그 길에서 힘들어 할 때는 힘을 주며 도와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지쳐서 낙심이 될 때는 그를 일으켜 세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그 악한 자의 시퍼런 칼을 보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러다 결국에 그는 그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왕자가 입는 그 옷을 받아 입고는 성취감을 누렸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뒤돌아보니 자신이 그 험하고 높은 산을 끝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왕과 왕자가 인도해주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모든 서신서의 여러 곳과 또한 계시록에 기록된 은혜와 평강이라는 것은 오직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들에게 그에 대한 위로의 말씀으로 주시는 것이다. 즉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선악의 죄를 이기고자 영적으로 싸우는 지체들에게 내려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이제는 자기의 생각과 이 세상의 길에서 마음을 돌이켜 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십자가군병들만이 이 말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싸우며 애쓰고 있는 지체들에게 주신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씀의 뜻은 이것이니 우선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 두 분의 영혼을 언급하면 그 안에서 함께 나오신 거룩하신 영의 의미도 담겨 있다. 즉 그 세분이 한 분으로서 한 사람을 그 죄에서 구원하여 거룩한 육체로의 부활이라는 그 온전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그 물결가운데서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은혜요 평강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은혜라는 것은 그 구원을 얻은 자가 자신이 스스로 뒤돌아보았을 때 그 뒤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인도에 순종한 것으로 된 것이니 은혜이다. 또한 그들이 그 십자가의 길에서 앞날에 죽음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육으로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산 제사를 드리게 될 그 영혼에게 평강을 끼치시니 두려움도 없어지는 것은 그 거룩의 완성을 이루는 목 베임에 오히려 온 영과 혼과 육이 평강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외에는 은혜와 평강이 무엇에 대하여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또한 누가 누구와 문안하는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은혜를 말할 때는 거듭남 이후에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에서 얻는 그 은혜는 깨닫지 못하여 많은 자들이 오로지 거듭남을 보고 은혜라고 한다. 또한 샬롬하며 늘 인사를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싸우는 길에서 얻는 그 평안은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육을 얻는 것이 은혜요 그 썩어질 것이 줄어들지 않고 많아지며 이 세상에서 별일 없이 지내는 것이 평안이라고 가르치는 거짓선지자들도 많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0일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예수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으며 동시에 아버지의 씨앗으로서 성결한 영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는 순종으로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으셨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후의 그 아들 됨을 설명하는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이 들어있다.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서 태어난 아들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전 이미 셋째 하늘에서부터 아버지께로 모든 권위를 받아 아버지의 모든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이루어가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는 셋째 하늘에서부터 창조자로서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그 아들은 셋째 하늘의 그 모든 영광을 그대로 두고 이 첫째 하늘에 가장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니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가 없으셨다. 그리고 원수의 선악을 따르며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면서도 아버지의 그 뜻과 의는 원치 않았으니 그를 죽기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그 아들에게는 셋째 하늘의 영광이 가득하셨기에 이 첫째 하늘에 있는 사망이 그를 사망으로 묶어두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들께서는 이 첫째 하늘에 내려오기 전까지 가졌던 그 영광을 이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다시 얻으시되 더욱더 큰 영광을 아버지께로 얻으셨다. 그러므로 그 부활은 아들께서 이 첫째 하늘에서도 부활을 하신 것이요 셋째 하늘에서도 또 다시금 부활을 하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 첫째 하늘에서 다시 부활하여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로 하여금 믿는 자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요 믿음의 주로 세워주셨다. 즉 아버지께서 태초에 세우신 그 계획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뜻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이 첫째 하늘에서 다시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도 부활할 것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 아들의 영광을 조금씩 나누어 주시니 그것이 바로 믿는 자들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는 이 첫째 하늘에서는 원수로 인하여 비록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죽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에게 이전의 썩어질 육체보다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신다. 그런데 그 육은 이 첫째 하늘을 다스리는 영광과 권세요 나중에 셋째 하늘에 갔을 때는 셋째 하늘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영광과 권세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들을 끝까지 따르는 자도 그리스도처럼 이 첫째 하늘에서도 부활을 하며 또한 셋째 하늘에서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13일 성결의 영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예수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씨앗으로서 성결한 영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으셨으니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들이 있다.

     이 말씀은 우선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배경을 따라 그 기록을 한 것이니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심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유대민족이심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택하신 그 민족에서 자신의 그 아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예비하셨다. 둘째 그리스도는 그 육적인 계보상 유대민족의 왕의 후사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택하신 민족의 왕이었던 다윗을 통하여 그의 후사로서 태어날 수 있게 하셨다.

     결국 그리스도의 이 육적인 출생배경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참된 그리스도는 반드시 유대인이어야 하며 동시에 유대인의 왕의 후손이어야 한다. 그리고 메시아가 이 땅에 이렇게 오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 아니요 성전을 지키는 종교지도자들도 이미 동일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만 태어나신 것이 아니요 이 땅에 계실 때에 그 왕의 권위도 함께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유대민족만을 보고 왕의 후사란 것은 깨닫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셨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부활의 약속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자들에게는 아버지께서 깨달음을 주셨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던 영혼들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진리를 듣고 그 나사렛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믿었다. 그러므로 어떤 자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으며 어떤 자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으니 그것은 곧 그가 참된 그리스도시요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성전을 지키는 자들의 마음은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에 있었으며 심판도 싫었으니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분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출생배경을 따라 기록한 것이니 성결한 영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다른 둘째 사람들의 경우에는 육의 씨앗을 육의 밭에 심어 이 땅에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들은 그 선악의 죄를 그 안에 품고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깨끗한 씨앗을 이 땅에서 가장 깨끗한 밭에 넣으므로 이 땅에 나타나게 하셨으니 깨끗하셨다.

     이와 같이 그 아들의 깨끗함은 오로지 아버지의 깨끗함이라는 의미가 바로 성결의 영이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거룩한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믿고 행하므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께서 찢으신 그 살과 흘리신 그 성결한 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에 애쓰는 자의 안에 있는 그 죄의 뿌리가 뽑히고 그리스도와 같은 깨끗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요 그 영혼도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6일 로마서를 이해하려면

그리스도 이후에는 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된다. 그리고 심판대에서 서서 그리스도께로 심판을 받은 후 그 상급으로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 그리고 거룩한 육체를 입은 영혼은 왕과 제사장으로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 또한 셋째하늘에 갔을 때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모든 영광과 권세를 상속하므로 역시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며 또한 성소와 지성소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거하며 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니 그것이 영원히 간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영광과 권세와 기쁨과 즐거움을 어찌 복된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또한 그 복음의 약속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니 그것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자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의 주인인 아들을 따르며 순종하므로 거룩과 평화에 이르러 그 복음의 약속을 이루도록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거룩하신 영께서 주신 계시를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해 로마에 거하는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에게 전했으니 그것이 바로 로마서요 또한 다른 모든 복음들의 목적도 이와 같다.

로마서에 기록된 그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자 하면 우선 자주 나오는 몇 가지 말들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 율법과 의문의 차이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유대인들이 아버지를 올바르게 섬기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모세에게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내려주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령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또한 지키기 어렵거나 찔림이 되는 것들은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었으니 그것이 바로 의문이다. 예를 들어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거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할 때 그 율법은 모세가 받은 그 신령한 율법을 뜻한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말자는 것은 의문의 율법을 뜻한다. 그러나 율법과 의문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자들 가운데 은혜만을 주장하며 율법은 폐해졌다고 하는 자가 있으니 은혜를 구하며 불순종이 가득한 그는 짐승과 같은 자요 믿음과 함께 율법과 행위를 주장하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둘째 할례와 거듭남의 관계는 이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유대민족의 경우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면 그가 거듭나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십자가 후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할례를 받았던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후에는 그가 받은 것이 더 이상 거듭남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 전에 육의 사망에 들어간 유대인은 그 할례를 거듭남으로 아버지께서 인정하셨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었던 바울의 경우에 할례를 받았으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으니 그것은 그때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을 지키는 자들과 다른 유대인들은 그들이 비록 할례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니 거듭남이 없는 것이요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다 사망으로 들어갔다.

셋째 유대인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의 내용으로서 아버지께서는 우선 그들에게 가장 처음에 계명을 포함한 법도를 주셨으니 아버지와 아들을 알 수 있는 것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법도를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따른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그 따르는 자에게 계명을 주시니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아들에게 맺은 언약이요 그 다음으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맺는 언약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언약은 마음에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그에게 율법을 주셨으니 그것은 그 한 영혼과 그가 속한 한 민족이 거룩함에 이른 상징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법도가 없는 자에게는 계명과 율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처럼 유대인은 율법과 계명이 먼저이나 그 가운데 은혜가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죽기까지 이루기 원하는 유대인은 은혜를 얻은 후에도 계명과 율법을 버리지 않는다. 한편 그리스도 후의 유대인은 이러하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역시 법도를 주시되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을 알 수 있는 말씀의 기초다. 그리고 나서 법도를 행하는 그에게 계명을 주시니 그것이 바로 새 계명이다. 그 후 그것을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지키면 아버지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시고 율법을 주신다. 그러면 그는 율법을 통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와 아들께 순종하고 또한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니 율법에서 그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나라에 그 행위가 있다. 이처럼 이방인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먼저 얻고 그 다음에 계명과 율법들이 주어지되 그것을 원치 아니하는 자는 그 안에 죄가 있고 그 죄로 인하여 그는 거듭남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넷째 큰 비밀로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기 전의 유대인들은 아버지께로 받은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순서대로 다 지키므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으셨을 때 그들도 아브라함 때부터 그토록 원하던 그 부활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위에서 나신 한 사람 외에 그것을 순서대로 다 지킬 수 있는 육체가 이 세상에 있으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구하는 자의 그 마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을 의롭고 거룩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거룩케 된 그들이 육체가운데서도 그 신령한 율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요 거룩의 약속을 지킨 그가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바울이 자신을 동일하게 ‘나’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그의 세 가지 위치가 있으니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가 첫째 단계요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피를 의지해 거룩에 애쓰는 과정이 둘째 단계요 선악을 뽑아내므로 거룩을 이룬 후가 셋째 단계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자신이 죽었다고 할 때는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요 자신을 보고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며 그 사망의 몸에서 누가 자신을 건져줄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 거룩에 애쓰고 있을 때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제는 거룩을 이룬 후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도 역시 자기처럼 거룩을 이룬 영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거듭난 후 거룩에 애쓰는 과정도 없이 또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늘 범죄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나는 믿는 자이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거룩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눈을 열어주시니 이러한 단어들의 의미를 알았다 할지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면 로마서도 다른 말씀들과 마찬가지로 까만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종이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으면서도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로마서를 보고 복음의 결정이니 최고봉이니라고 하며 이 말 저 말을 한다. 또한 율법과 행위로 거룩하게 되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리스도를 따르지는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을 따른다. 그러면서 자신이 깨닫지 못한 것을 전하며 가르치니 그는 그 어리석음으로 다른 영혼들을 더욱더 깨달음 없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선악을 따라 말과 행위를 하면서도 믿음과 은혜만을 부르짖으며 점점 더 자신의 행위를 들고 아버지의 앞으로 떳떳이 나가고 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30일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어떤 부모가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그 아기는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울었더니 엄마가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리고 더 크게 울면 엄마가 우유를 더 빨리 챙겨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아기는 자기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으니 그것은 우유와 이유식과 야채와 고기를 날마다 빠뜨리지 않고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밥과 반찬을 만들지는 못했으니 그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혹은 그 말을 하기 전에 밥상을 엄마가 계속 차려주었다. 또한 어릴 때는 더러운 것을 몰라서 구정물에도 마음대로 들어가 놀더니 이제는 더러운 곳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잘 만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기 혼자 씻기도 하고 자기 혼자 옷도 갈아입었다. 어느 날 아빠가 가만히 보니 아이가 이제는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알고는 자전거를 사서 가르쳤다. 또한 아이가 세상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사람과 세상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주었으며 잘못하는 것은 책망과 훈계를 하여 고쳐주었다. 그리하여 어느덧 그 아이는 자기 혼자 밥도 찾아먹고 몸도 씻고 잠자리도 준비하고 개고 일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또한 다른 성인들과도 함께하며 바르게 말하며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온전한 성인이 되기까지 성장한 것은 아빠가 바르게 가르쳤기 때문이요 엄마가 계속해서 밥상을 차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하는 동안 그 아이는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따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육신의 부모가 아기를 낳고 성인이 되기까지 음식을 차려주며 바르게 가르치는 것처럼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낳으신 자들을 온전하게 기르시고자 영의 양식을 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 가운데 갈급한 영혼에게는 말씀의 기초를 주시고 또한 아버지의 그 뜻에 따라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아들의 살과 피를 허락하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사실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른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모든 것을 마련해주고 성인이 되어서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 육신에 필요한 것을 얻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거듭나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어렸을 때는 일일이 필요한 진리를 찾아서 갈급한 영혼에게는 먹여주신다. 그리고 그가 조금 커서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애통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만큼 필요한 진리를 내려주시니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 원하는 영혼은 계속해서 진리의 양식을 얻어 거룩하게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내려주실 것을 믿는 영혼은 영의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 영혼이 더욱더 배부르게 먹고 마시기를 원하신다. 아버지의 의로운 자녀로 키우시어 그 영광과 권세를 영원히 상속해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에 굶주린 영혼이 즉 의롭게 되기를 원하여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영혼이 마지막 때에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의에 이르도록 주님의 여섯째 날마다 아들의 살과 피를 주신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한두 끼를 먹는다 하여 금방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므로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도 의에 이를 때까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롭게 되는 날을 사모하며 마음 없는 행위로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아들의 의로운 살과 피로 배불리 먹고 마시도록 해주신다.

     그러나 자신의 불의함을 보고도 알고도 숨기고 의롭게 되기를 원치 않는 영혼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의 배가 고파도 밥을 먹지 않는 것처럼 말씀에 갈급함을 가지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지도 않는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의 마음이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자는 거짓된 자를 찾아 다니고 그러한 인도자는 앞에 서서 육과 세상의 말을 즐겨 한다. 또한 육에 좋다는 음식은 차를 타고 멀리라도 가서 사먹지만 자신을 의롭게 하는 인자의 살과 피에는 주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부요하고 거짓된 자들이 어찌 영혼의 배부름을 얻을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아버지께로 구원에 이르는 의롭다 함을 어찌 얻으리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23일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니 자신의 마음만이 아니요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과 모든 것을 그 여자에게 다 주었다. 또한 그 사랑이 끝까지 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어떻게 언제까지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참으로 귀하고 순결한 사랑을 받은 그 여자는 그 남자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저는 죽을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며 당신의 말만을 듣고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나는 당신이 방금 나에게 한 그 약속을 지키며 나를 위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가꾸길 원하오.” 그 여자는 그 남자의 말을 들은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남자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떤 남자가 금은보화를 가지고 나타나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가꾸며 사랑하는 남자와 약속을 지켰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그 여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래서 그 일을 하려고 했으나 자기의 뜻을 이루려면 남자와 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남자가 원하는 그 일만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마음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가꾸는 그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너무나 힘이 들었기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이 받은 그 사랑을 기억하며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남자를 위하여 자신의 마음과 몸을 끝까지 깨끗하게 가꾸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마지막에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과 약속을 지키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면 자신을 사랑해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그 사람을 따른다. 또한 어떠한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고난이 크다 해도 누군가에게 순종하며 따른다면 그것은 그가 그를 통해 참된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요 또한 상대방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대라는 증거이다.

하지만 사람은 인격체이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내려놓지 않고 어떻게 자신이라는 인격과 다른 사람이라는 인격을 동시에 따르리요?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는 그 아픔가운데서도 순종하며 따른다면 그것도 역시 그가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요 또한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원치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랑을 보이리요?

예를 들어 영원 전부터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품에 있던 그 아들을 태초에 낳으셨다. 그리고 그 아들을 자기의 영혼처럼 사랑하셨으며 자신을 희생하시어 가장 좋은 것으로 그 아들에게 허락하셨다. 또한 그 아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한 순간도 떼시거나 바꾸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깨끗하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사랑하신 것이요 아들은 아버지께로 그러한 사랑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인격체는 사랑을 받으면 고난과 아픔가운데서도 자기를 사랑한 사람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따른다. 그러므로 아들께서는 셋째 하늘에서부터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으며 이 땅에 오셔서도 아버지와 둘째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는 순종으로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크신 사랑 받았음을 또한 마음과 몸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셨음을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확증하셨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 있는 이러한 사랑과 순종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인 그리스도의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한 몸인 그의 지체들과 아버지의 관계에도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둘째 사람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주셨으되 그 아들은 자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이니 아버지께서는 둘째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진리의 길을 그 험하고 고난스런 자신의 십자가로 내주셨다.

이때 거듭남의 은혜와 그 자녀 됨의 약속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받은 영혼은 자신이 사랑 받았다는 것을 과연 무엇으로 증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는 자기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간다. 그것이 비록 고난스럽고 아프고 죽는 길일지라도 순종하며 그 길을 끝까지 걷는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요 사랑 받은 자는 사랑한 자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그리스도를 따름과 말씀의 순종 없이는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께로 사랑 받았음을 증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그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중한 그 목숨까지 바쳐 순종하게 될 그 마지막 날을 바라보고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에 있음을 증거하는 자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큰 구원을 베푸시니 순종한 그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자녀가 되어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께로 가까이 거하게 된다.

“만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6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어떤 마라톤코치가 다른 선수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직접 경기에 나가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자 마라톤선수들은 그 코치가 승리한 비결을 듣고 싶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에 금메달을 딴 코치는 자기의 말을 듣고자 바라보는 선수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저는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험하고 높은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노라.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5년 동안 나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오직 경기하는 날만을 바라보았으며 또한 그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니라. 결국 내가 마라톤에서 승리한 비결은 마음과 믿음에 있으니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을 그 경기에 두고 또한 그 경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그도 나처럼 승리할 수 있겠노라.” 그러나 그 코치의 말을 듣고도 많은 선수들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니 금메달을 따는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코치의 말대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 한 선수는 자신도 마라톤 경기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루에 한번씩 험하고 높은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힘들게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친구가 찾아와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직 경기가 열리는 그 날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것을 거절하고 힘들어도 계속 연습했다. 또한 어떤 악한 자가 찾아와 그가 연습하는 것을 보며 이리저리 방해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믿음은 오직 그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에 있었으니 어떠한 방해가운데서도 그 힘든 연습을 계속했다. 또한 다른 어떤 선수가 찾아와 너의 모습을 보니 승리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코치의 말대로 그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힘들어도 계속 연습했다. 그리고 그 코치는 그가 모를 때 이것저것을 알려주었으며 그가 힘들어할 때는 그의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5년 후에 열린 마라톤 경기에 나가서 그 코치가 말한 대로 금메달을 땄다.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면 또한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아무리 힘든 것도 오랫동안 이루어 갈 수 있다. 자기의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는 결국에는 그 죄를 이기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자신이 그 무엇을 행하기보다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구원에 있으니 썩어질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자기의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둔 그가 그 거룩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사람들 가운데는 오직 그리스도예수만이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셨으니 자신도 그리스도를 통해 의와 거룩에 이를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그 참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매주 여섯째 날에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의 그 거룩하신 살을 주시며 영혼에 피를 뿌려주시니 그의 속 사람도 겉 사람도 점점 깨끗하게 되어간다.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따른 그가 거룩에 이르는 복을 받아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후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셋째 하늘의 그 영광과 권세를 상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영광스런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영혼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모여 그의 살과 피에 참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아버지의 뜻에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믿음을 아버지의 뜻에 두지 않고 참여하는 영혼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살과 피를 더럽히게 되니 그는 점점 더 약해지고 병들어 더 빨리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로 보건대 주님 만찬에 참예하는 모든 자들이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격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죄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인격체를 거룩케 하시며 구원하신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그 온전한 구원에 마음과 믿음이 있는 인격체가 하나님께로 받으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9일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어떤 사람이 자기 나라의 왕에게 깨끗하고 하얀 그릇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귀한 그릇을 잘못 사용해서 그릇의 안팎에 찌든 때가 묻었다.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그것을 처음과 같이 깨끗하고 하얗게 만들어보려고 열심히 닦았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서 닦아내도 그 찌든 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낙심하여 포기하고 있었다. 이에 그 왕이 그를 찾아와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그릇을 처음과 같이 깨끗하게 회복시킬 수 있노라. 그릇을 만든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니라. 단 너는 그 그릇이 처음과 같이 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행해야 회복될 수 있겠노라.” 그 사람은 왕의 말을 듣자 그 그릇을 처음과 같이 깨끗하고 하얗게 회복시키기 원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또한 그 왕의 말을 믿었다. 그러므로 왕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는 왕의 말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그는 역시 저렇게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힘쓰고 애쓰며 닦아낼 때는 더러움이 씻기지 않던 것이 점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결국 자신이 그 그릇을 처음 받았을 때처럼 깨끗하고 하얗게 회복되었으며 마지막에는 그릇의 안과 밖이 처음보다 더 깨끗하고 하얗게 변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둘째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태초에 아담의 몸은 깨끗했다. 아담은 또한 아버지의 그 거룩하신 영을 코를 통해 자신의 그 깨끗한 마음에 받았다. 그러므로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참으로 의롭고 선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고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고 오히려 원수의 말을 들었다.그러므로 그 타락으로 인하여 원수는 사람의 선하고 깨끗한 그 마음에 자신이 창조한 그 죄의 뿌리를 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자 그 아이들도 역시 그의 마음 안에는 의롭고 거룩한 것이 있었으며 또한 그 선악의 죄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도 자기의 욕심과 의를 따라 행하고자 할 때는 늘 그 선악을 따라 원수의 말을 듣고 행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할 때는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동생을 죽인 가인과 피 흘리기까지 말씀에 순종한 아벨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둘째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했어도 아버지께서 나를 그 죄가 없는 깨끗한 상태로 태어나게 하셨다면 나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오직 의롭고 깨끗한 말과 행위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즉 자신이 만일 오직 의롭고 거룩한 영만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불의와 죄악을 행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원수가 심은 그 죄의 뿌리에 대해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체이니 그의 마음에 오직 깨끗하고 거룩한 것만 있다 하더라도 그가 만일 자신의 욕심과 의를 구하면 원수의 말을 듣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타락이 되니 사람이 그 죄의 뿌리가 심겨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다 해도 신이 아니니 욕심을 구하는 순간 그는 범죄하게 되어있다. 처음에 선하고 의롭게 창조된 아담이 욕심을 품고 타락한 것을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아비의 씨와 어미의 밭이 만나 모태에서 그 육이 자라다 그 어미의 그 변질된 영을 받고 이 세상에 나오되 그의 영은 그 어미의 성품에서 더 변질이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만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한 자기의 욕심과 의를 구하면 자기의 마음에 심긴 그 선악으로 인하여 그는 점점 더 더럽혀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이 비록 변질된 영을 타고 난다 할지라도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는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질된 영이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순종을 통해 그 회복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 의롭고 선하게 창조된 그때의 깨끗한 영으로 회복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그 선악의 죄를 끊고 거룩을 이루니 회복된 그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진정 그 부활의 생명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위하여 당신은 회복되기를 원하는가?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2일 영혼과 사람

육체는 살과 피가 있어야 하듯이 인격은 영과 혼이 있어야 한다.

 

영혼이라는 인격이 육과 함께하면 그것은 온전한 사람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25일 영의 인격

영은 인격체이기에 말씀을 따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영은 오직 말씀에만 관계가 있고 나머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영의 인격은 오직 그가 말씀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영은 언제든지 빛을 받으면 거룩해지고 또한 마음과 생각도 거룩해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8일 마음을 다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천명이 함께 모여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와 당신들은 지금 왜 노래를 부르고 있냐고 물었다. 이에 그 사람들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감사의 표를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대답했다. 또한 자기들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그 사람은 이렇게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정말로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군요.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하여 그렇게 편히 앉아서 부르지 말고 일어서서 두 손을 번쩍 들고 한음 한음을 배에다 힘을 주고 창자와 허리가 끊어지듯이 마음을 다해 70분 동안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그의 말을 듣자 999명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마음을 다해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이제 노래가 끝나자 그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건물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왜 청소를 하냐고 물었다. 이에 그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의 몸과 건강을 바쳐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이 중요한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그 사람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하여 이 건물의 구석구석이 깨끗해질 때까지 마음을 다해 일할 수도 있겠군요?”그러나 999명은 잠시 일하다 저마다 볼일이 있다며 가버렸다. 하지만 그 한 사람만이 그렇게 마음을 다해 일했다. 일주일 후 그 사람들은 다 함께 모여 길거리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왜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있냐고 물었으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를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어디든지 가서 그 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저기 있는 사람들은 아주 흉악하고 무자비하게 보여서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해주어도 오히려 당신들을 때리며 고통을 주어 죽일 것 같군요! 그래도 마음을 다해 저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해줄 건가요?” 그 말을 듣자 999명은 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한 사람은 마음을 다해 그 말을 해주었다.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왜 돈을 바치냐고 물었으며 그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제가 가진 모든 재산은 그 분의 것이지만 그 중에 일부를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돈보다는 그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마침 저기에 서 있군요. 그러니 당신들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저 사람을 따라가세요.”그러나 그 999명은 그 말을 듣고는 다음주에 그곳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말대로 하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따라갔다.

     이와 같이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하며 또한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다 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앞에 나와서 여러 가지 말과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말과 행위를 하는 그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을 다해서 하라고 하면 그 말과 행위를 할 사람이 없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려면 우선 그 행위에 자신의 마음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앞에 와서 여러 가지 말과 행위를 하되 그 마음은 아버지와 아들께 또한 아버지의 그 뜻에도 있지 아니하며 뜻도 모른다. 그들이 그 말과 행위를 마치자 마자 그의 몸이 어디로 가서 무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거짓된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섬긴다는 그곳에 앉아서도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그들이 어찌 그 거룩한 말과 행위들을 하리요? 설령 그런 말과 행위를 한다 하여도 그것이 어찌 마음을 다하는 말과 행위라 할 수 있으리요?

     두 번째 이유로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신의 마음이 있으면 자기의 온 몸을 바쳐 그 일을 하니 땀을 흘리게 되어있다. 또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이용하고 바쳐 그 일을 한다. 그리고 그러다 마지막에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것에 희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144000은 그때 갑자기 순교하는 것이 아니요 이미 그전부터 땀 흘려 거룩에 애쓰던 자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후 살과 피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평소에 육과 세상에 있던 그들이 어찌 들림을 받으리요? 또한 그 마지막 때에 어떻게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바칠 수 있으리요? 설령 살을 찢고 피를 흘려드린다 하여 어찌 그 살과 피안에서 깨끗한 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으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음이 없이도 또한 마음을 다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말과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마음 없는 것에는 임하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받으시지도 아니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이든 마음이 없는 것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이요 그것이 더러운 이유는 아버지와 그 뜻에 마음이 없으면 마음을 다한 그 말과 행위가 오로지 그 죄와 함께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똑같은 행위일지라도 그 안에 마음이 없으면 아버지께서는 그 더러운 냄새 나는 똥들을 받으시지 않으시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거룩을 깨닫는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것에 자기의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아버지의 그 뜻만을 자기의 마음을 다해 이루고자 애쓴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 살과 피를 아버지께로 드리니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는 그 살과 피를 향기로운 제물로 받아주신다. 그리고 받으셨으니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혀 부활시켜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에 대적하는 원수는 사람의 이런 마음에 대해 알고 있으니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오직 마음 없는 행위로 이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통해서도 상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금도 마음 없는 말과 행위를 하며 자신은 나중에 큰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는 것은 받으시지 않으시니 마음 없는 그 말과 행위는 오로지 그렇게 이끈 원수가 향기롭게 취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말과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당신의 마음에서 그 말과 행위가 나오고 있는가? 마음을 다해 하고 있는가? 즉 그 말과 행위를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가?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1일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한 왕이 두 종을 불러서 이러한 명을 내렸다. “나는 손이 깨끗한 자를 원하니 내 백성들이 손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일을 이루어놓았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백성들에게 가서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손이 깨끗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에 세 번씩 손을 씻으면 손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전해주어라.” 이에 왕의 뜻과 말을 받은 그 두 종은 백성들에게 갔다. 그리고 한 종은 마음이 참된 자였으니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의 왕께서는 우리가 손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일을 이루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손이 깨끗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을 씻는 일 이외의 다른 것에서는 마음을 떼고 오직 손이 깨끗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에 세 번씩 손을 씻어야 합니다. 그러면 왕의 뜻대로 우리의 손은 반드시 깨끗해질 것입니다.” 그 종은 이러한 말을 하고 나서 자신이 먼저 자기가 말한 대로 본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백성들 가운데 왕의 명에 순종하기 원하는 자들은 모두다 그 종의 말을 들으면서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하루에 세 번씩 손을 씻었다. 그리하여 그 종과 그 종을 따른 백성들은 손이 깨끗해졌다. 그러나 다른 한 종은 가만히 보니 백성들이 자기를 왕의 종이라고 섬겨주며 또한 이것저것 선물을 해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종의 마음도 그것을 점점 더 원했다. 그러므로 그 종은 사람들에게 말을 이렇게 해주었다. “여러분 우리의 왕은 우리의 손을 이미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감사한 마음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루에 세 번 손을 씻되 자신이 돈이 있다면 돈을 내고 건강이 있다면 열심히 봉사하고 지식과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나와 바쳐야 합니다.그러면 우리의 왕께서는 우리가 행한 것과 바친 것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큰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 종의 말을 듣자 백성들 가운데 그것이 왕의 말과 뜻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 종의 말을 듣고 따르며 오직 돈을 모으며 봉사하며 지식과 경험을 키우는데 온 마음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것들을 들고나와 바치며 행했다. 물론 하루에 세 번 손도 씻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손을 씻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돈과 봉사와 지식과 경험에 있었다. 게다가 그 종은 자신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며 돈을 모으며 열심히 봉사하며 지식을 쌓는데 열심을 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원함을 이룰 수 있었다. 이에 그 왕은 너희는 거짓없이 행했다고 칭찬하며 첫 번째 종과 그 종을 따른 자들에게는 큰 상급을 주고 자신의 가까이에 두었다. 그러나 두 번째 종을 보고는 너는 거짓되이 행했다고 하며 그 종과 그 종을 따른 자들을 모두다 그 나라에서 쫓아냈다.하지만 그들 가운데 뒤늦게라도 왕의 명에 순종해 마음을 다해 손을 씻겠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러라고 한 뒤 자신의 나라에 두었지만 상급을 주거나 자신의 가까이에 두지는 않았다.

     이와 같이 거짓되이 행하는 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도 말씀을 전하니 가장 먼저 말씀을 모르고 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또한 거짓된 자는 자신의 마음이 아버지의 그 뜻에 없음에도 여러 가지 종교행위는 다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음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행하는 그것이 아버지의 말씀이요 아버지의 뜻이니 자신이 말하고 행하는 것을 마음을 다해 행하라고 시킨다. 그리하여 거짓되이 행하는 자를 따르는 자들도 역시 그와 같이 거짓되이 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마지막 때에 거짓되이 행하는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이러하니 첫째 그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모든 것을 버려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채워주신다.’고 말한다.게다가 야곱을 예로 들며 야곱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갔기에 아버지께서 채워주셨다고 말한다. 이에 거짓되이 행하는 자를 따르는 자들은 자신이 지금 있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잡으려고 욕심을 낸다. 그러나 거듭난 영혼에게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룸보다 또한 구원의 약속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리요? 또한 야곱은 이미 약속을 받았기에 오히려 자기에게 있는 그 신들을 버리고 그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고 오직 하늘의 아버지만을 붙잡고 나갈 수 있었다.

     둘째로 거짓되이 행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마음 없는 행위를 더욱더 부추긴다. ‘산의 짐승들과 모든 것들이 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께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과 즐겨 하는 마음으로 내십시오.’ 이에 거짓된 자를 따르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기 보다는 그것들을 바치고자 오히려 더욱더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은 한곳에 마음을 둘 수 있으니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들이 어찌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있으리요? 그들이 바치며 행하며 품는 감사는 누구를 향한 것이요? 그러므로 그들이 바치는 그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어찌 아버지께서 받으시리요?

     셋째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주일 성수해야 합니다.’라는 말은 하지만 자신부터 거짓되이 행하고 있으니 육과 세상에 가있는 마음을 돌이켜 오직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는 말은 해주지 못한다. 이에 그의 말을 듣고 따르는 자들은 주일날에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예배시간의 뒤에다 잡아놓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말씀과 마음이 없는 행위는 곧 믿음이 없는 행위이니 그 행위의 수고는 누구의 일이며 또한 그 결과의 자랑은 누구에게 가겠는가?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거짓되이 행하는 자는 하늘과 같이 높아지며 영광을 받고 있으며 그를 따르는 자들의 마음은 육과 세상에 있으면서도 몸은 아버지 앞에 나와 그 거룩의 믿음이 없는 행위를 드리고 있다.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거짓되이 행하는 자들에게 다른 말과 다른 마음과 다른 믿음을 준 자는 원수이니 그들의 높아짐과 영광과 행위는 오직 원수가 취한다.

     반대로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자는 이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의 당시와 동일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거룩의 일을 다 이루셨으니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아버지의 뜻을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부터 말한 대로 행한다. 또한 아버지의 뜻에 애쓰려면 자신의 마음을 다해야 하니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키라고 전하니 거짓없이 행하는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오늘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직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고 행한 그들이 바로 그 큰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4일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2

어떤 어린아이가 땅을 쳐다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이쑤시개 한 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금만 이쑤시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칼처럼 휘둘렀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이쑤시개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래서 그 아이는 하늘에 뭐가 있길래 그런가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하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아주 큰 불 칼을 들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불 칼을 들고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는 그 아이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그 이쑤시개를 주워서 어떤 사람에게 주니 그것은 아주 예리하고 큰 칼로 변했다. 이에 그는 그 큰 칼로 그 아이를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큰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하나도 겁내지 않았다. 하지만 큰 불 칼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은 두려워했다. 그 아이가 다시금 땅을 쳐다보니 이번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모래알 한 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금만 모래알을 들고는 하늘을 향해 던진 후 숨어서 눈을 감았다. 그래서 그 아이가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하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이번에는 태양을 들고 서있었다. 그리고 태양을 든 그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는 그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그 모래알을 주니 그것은 아주 큰 돌로 변했다. 그러자 그는 그 큰 돌로 그 아이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신의 손에 아무것도 없지만 큰 돌을 내리치려고 하는 그 사람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오히려 태양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 아이가 또다시 땅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이번에는 공기가 너무 많이 들어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선을 하늘을 향해 이러 저리 흔들다 갑자기 눈을 감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이번에는 또 뭐 때문에 그런가 하며 하늘을 쳐다보니 이번에는 하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이번에는 황금으로 만든 눈부신 의자를 들고서 아까처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어떤 사람에게 그 풍선을 주니 그것은 이 세상의 왕이 앉는 자리로 변했다. 그리고 거기 앉은 왕이 자신을 감옥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번에도 그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황금의자를 들고 서있는 그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하얀 옷 입은 사람을 두려워한 그 어린아이는 큰 일을 이루었다.

     이와 같이 편벽되지 않다는 것은 사람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람의 말이나 환경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눈에 보이시지 아니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그 반대는 편벽되이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어찌 말씀에 순종하리요? 그리하여 거룩을 이루지 못한 그가 어찌 그 생명을 얻으리요? 그러므로 편벽된 자는 마지막에 오직 사망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와 아들을 믿고 영적인 전쟁을 하며 거룩에 애쓰고 있는 자들은 특히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편벽되지 않았던 아벨과 요셉을 보며 또한 반대로 편벽되이 행했던 사울을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편벽되지 않은 자는 큰 일을 이룰 것이요 편벽된 자는 사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당신은 아벨과 가인의 사건을 기억하는가? 아벨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가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직 그 두려우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거룩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의 죽음과 그의 피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는 동안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말씀에 순종치 않았던 가인은 그의 피를 보고 오히려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뒤늦게 두려워하며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은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요셉은 그 죄와 이 세상을 이기므로 그는 자기의 형제들과 그의 나라 사람들을 구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사람과 이 세상을 두려워했다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또한 반대로 편벽되었던 사울을 보라. 그는 오직 사람을 두려워했기에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의 말에 넘어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두려워한 그 사람을 인하여 그의 죽음이 왔다.

     이처럼 편벽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니 그는 오직 말씀에만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편벽되지 않은 그를 도살할 영광스런 어린양으로 키워주신다. 그러나 만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두려워하므로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람을 맞추며 이 세상과 환경에 따라 움직이느라 말씀에 순종치 못하니 그 불순종은 곧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당신은 또한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는 당신은 누구의 두려움을 취하기 원하는가? 누구에게 심판 받기를 기다리며 행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8일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1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인가?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도 생명의 약속이 있은 그 거룩을 이루도록 인도하고 있는가? 또한 아버지께서 때가 되어 한 영혼을 허락하셨을 때 오직 그 한 영혼의 거룩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아버지의 거룩하신 말씀을 당신의 입에서 내어 전하고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두렵고 떨며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자기의 나라에 거하는 모든 가장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큰 상급을 베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가장들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고 싶었으니 자기의 밑에 있는 종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나는 한 가정의 남자가 나의 아들을 따라가며 그의 말에 순종하며 또한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기 원하는 도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따르고 자녀들은 자기의 부모를 따르며 순종하기 원하는 도다. 또한 앞에 있는 자는 뒤에 있는 자를 바르게 이끌고 뒤에 있는 자는 앞에 있는 자의 말에 순종하며 따르기 원하는 도다. 그러면 마지막에 나는 이 말에 순종한 자에게는 큰 상급을 베풀되 불순종한 자에게는 심판을 내릴 것이니라.” 이에 왕의 종은 그 왕의 명령을 그 나라의 모든 가장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어떤 남자는 왕의 마음을 깨닫고 한 가정의 남자로서 자신은 왕의 아들을 따르며 그의 말에 순종했다. 하지만 자기의 아내를 가만히 보니 여러 가지 집안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왕의 명령에는 불순종하고 있었다. 게다가 때로는 자기에게 대들며 말대꾸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남자인 자신을 이 말 저 말로 이리저리 움직이므로 자기가 가장인 것처럼 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그 남자는 상급과 심판을 내리는 왕을 만족시키기 원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자 그는 왕이 비록 자기의 눈앞에 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두려워졌다. 그러므로 자기의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아내를 계속 사랑하며 왕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그 아내도 왕을 두려워하며 왕의 말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자기의 자식들과 자기의 뒤에 있는 사람들과도 늘 이러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므로 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두려워진 그 한 가장으로 인하여 그의 가족들과 그와 함께한 모든 자들이 왕으로부터 큰 상급을 얻게 되었다. 한편 어떤 다른 한 남자도 동일한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뜻은 이해했으나 아내를 만족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 말 저 말을 하며 자신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자기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면서 그 왕의 심판을 두려워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식들과 자기의 뒤에 있는 사람들과도 늘 이러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족시키며 왕의 심판을 두려워한 그 한 가장으로 인하여 그와 관계된 모든 불순종한 자들이 왕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든 사람에게 순종하든 오직 둘 중에 하나이다. 또한 말씀과 사람을 다 순종하므로 둘 다에게 만족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사람의 만족을 얻지 못하며 반대로 사람에게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원하는 자는 그가 스스로 두려워진다. 그리하여 스스로 두려움을 가지고 오직 말씀에만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의 만족을 하게 되면 심판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이 땅에서 편벽되이 행한 그는 마지막에 그 생명의 상급이 아닌 심판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는 당신은 누구의 만족을 얻기 원하는가? 또한 어떤 두려움을 취하기 원하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1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한 의로운 왕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과일바구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바구니를 자기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이러한 말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 맺을 열매를 위하여 이 바구니를 금으로 만들었노라. 그러므로 추수 때에 너희들이 나에게 가져오는 열매는 참으로 귀한 것이요 그 귀한 열매를 많이 가져온 자에게는 큰 바구니를 줄 것이요 적은 자는 적은 바구니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열매가 없이 오는 자는 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주겠으니 처음부터 다시 깨끗한 열매를 맺어 그곳에다 넣어야 할 것이요 깨끗하지 못한 열매를 가져오는 자는 내 앞에서 쫓겨날 것이니라.” 왕의 말을 듣자 백성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가진 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들이 가진 나무에서는 깨끗한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이에 깨끗한 열매를 풍성히 맺은 어떤 농부가 말하길 자신을 믿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하면 왕이 원하는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온 마음을 다하여 그 농부를 믿고 따르며 그 농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에서는 열 개의 깨끗한 열매가 맺혔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다해 그 농부를 믿고 따르며 그 농부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 그의 나무는 다섯 개의 깨끗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다른 곳에 마음이 가있었으니 금으로 만든 바구니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나무를 깨끗하게 가꾸는데도 마음이 없었으며 오히려 자기의 마음이 있는 그것을 열심히 이루었다. 그리하여 그의 나무에서는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했다. 반면 네 번째 사람은 늘 세상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노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을 즐기면서도 나중에 자신은 왕에게 금으로 만든 바구니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무를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가 맺은 열매는 썩고 병들고 시어서 먹을 수가 없었으니 온전한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이에 추수 때가 되자 그 왕은 첫 번째 사람에게는 열 개의 열매를 담을 수 있는 귀한 금 바구니를 주었으며 두 번째 사람에게는 다섯 개의 열매를 담을 수 있는 귀한 금 바구니를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에게는 저기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마음을 다해 애써서 깨끗한 열매를 맺어 가져오면 그것들을 나무로 만든 바구니에다 담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즐기느라 나무를 더럽히고 안 좋은 열매만 맺은 네 번째 사람은 쫓아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원수가 덧뿌린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다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나오는 생각과 말과 그 행위는 의롭고 거룩한 결실을 맺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선한 것들을 결실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는 이 세상에서 맺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그 심판대에서 아버지께서 맺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지금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는 것이요 열매는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한 만큼 그들이 결실한 것에 맞는 열매를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얻으신 것과 같은 그 거룩한 육체요 그 영광스런 부활을 얻은 자는 아버지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그 권세와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충만하고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4일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책을 한 권 가지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힘이 들어 좋은 밭의 옆에 앉아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책의 처음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있었다. “사람은 한 몸에 두 인격이 거하지 못하니 이 길을 걷는 자는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는 도다.” 그는 그 말을 읽자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자 어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그의 간절함을 알고는 그에게 와서 그 말의 뜻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는 기뻐하며 다시금 길을 가는데 잠시 후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려면 왼쪽 길로 가고 자기의 의와 생각을 내려놓기 원하는 사람은 오른쪽 길로 가라고 되어 있었다. 이에 그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니 깨끗한 생명을 위해 오른쪽 길로 갔다. 잠시 후 그는 길을 걷다 잎사귀가 파란 포도나무의 아래에 앉아 또다시 책의 중간쯤을 읽는데 이번에는 이러한 글을 보았다. “그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을 어두움과 나누었도다.” 그는 이번에도 아무리 읽고 또 읽었으나 역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하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이번에도 그 말의 뜻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기쁘게 길을 가는데 잠시 후 어두운 곳에 숨어있던 자가 화살에 불을 붙여 쏘았다. 이에 그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으로 막았다. 그랬더니 그 화살은 책에 맞자마자 없어져버렸다. 그는 잠시 후 길을 걷다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고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의 옆에 앉아 다시금 책의 마지막 부분을 펴자 그곳에는 양의 피와 자기의 말을 인하여 저를 이겼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그 뜻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번에도 깨달음을 얻고 길을 가는데 사람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큰 웅덩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영원히 사는 생명을 은혜로 얻은 자는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그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잠시동안 사는 생명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 웅덩이가 흙으로 채워지더니 그는 그 웅덩이 위를 밟고 지나갔다. 그리하여 그 책에 적혀있는 말들을 깨달음을 그는 그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증거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말씀의 깨달음을 얻어 그 길에서 원수가 박아놓은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또한 원수가 쏘는 독화살에 맞아 시험 들거나 그가 파놓은 웅덩이에 빠지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므로 원수가 자신의 마음에 뿌린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마지막에는 피 흘려 죽기까지 싸운다. 그리하여 그 고난과 영광의 길에서 실족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들이 장래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거룩하신 영께서는 오직 말씀을 증거하시니 말씀 밖의 그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신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들은 어리석게도 거룩하신 영께서는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들을 인도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서 거룩하신 영께서 그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에 대해 감동을 주셨다고 말하며 간증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사람을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그 어두운 영들에게 이끌리는 자들은 이미 세상이라는 웅덩이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웅덩이 안에서 늘 원수의 말에 맞으며 그 안에서도 돌 뿌리에 넘어져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비록 썩어질 것들은 거두지만 육에서 나왔을 때는 썩어질 사망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7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아주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마음이 아주 더럽고 악했다. 예를 들어 한 여자를 꼬여 성관계를 맺고는 자신과 같이 마음을 더럽고 악하게 하며 거짓말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면 그 여자는 그 육의 기쁨을 얻고자 그 잘생긴 남자의 말을 들으며 그와 함께 거했다. 그런데 그 잘생긴 남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한두 여자가 아니요 자기의 눈에 보이는 모든 여자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모든 여자들은 그 잘생긴 한 남자와 함께 거하며 계속 씨를 받았으니 그 기쁨을 위해서였다. 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한 의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와서 그 남자와 여자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는 그 악한 자에게 돌이키라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내가 하는 일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으며 모든 여자들이 나를 통해 자유롭고 참된 기쁨을 얻고 있는데 내가 왜 돌이키냐고 되물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아무리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지만 의로우니 그 악한 자가 원하는 것을 도울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 잘생긴 남자와 더 이상 말하거나 함께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잘생긴 남자와 함께 동거하는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그 의로운 사람의 말과 모습을 가만히 듣고 보더니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음란하고 더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았으니 그 잘생긴 남자에게서 마음을 돌이켜 그 의로운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와 함께 거했다. 그리고 그 의로운 사람과 함께 거하느라 그 악한 남자와는 다시는 함께 거하지 않았다. 그 악한 자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또 다른 한 여자도 역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그 잘생긴 남자에게서 돌이켜 그 의로운 사람과 함께 거했으니 그 여자도 다시는 그 악한 남자와 함께 거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 돌이킨 그 여자는 그 의로운 사람과 함께 거하면서 두 번째로 돌이킨 여자를 보더니 그 여자와도 함께 거했다. 그리고 그 두 여자는 그 의로운 사람과 함께 거하며 자신들이 그 잘생긴 남자로 인하여 더럽혀진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요 검을 주러 오셨다. 즉 이 세상을 말씀대로 심판하러 오셨으나 그 전에 생명의 말씀을 전하므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셨으나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과는 평화를 이루지 아니하신다.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죄와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자들과 평화를 이루시어 그들과 함께하신다. 그렇지 아니하고 아버지와 사람의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이 세상과도 화평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육신을 입고 있으며 이 세상과 화평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 생명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와 화평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 화평을 이루셨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의 지체들도 먼저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후 이제는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와 화평을 이루고 있는 다른 지체들과도 함께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처럼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과는 조금도 평화를 이루지 못하니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평화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평화를 이룬 자가 그리스도와 평화를 이룬 자들과 함께 이루어가는 일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람들의 안에 거하는 그 흑암을 이기며 자신과 함께하는 그 영혼과도 화평을 이루어가며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들의 가운데 그들과 함께 화평을 이루며 하나가 되시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30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이 세상에는 늘 자신의 욕심과 편리와 교만을 마음에 품고 불의와 악을 범하는 자들도 있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도 있고 심지어 다른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버리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인격과 성품이 그렇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육의 부모가 그러하기에 윗사람을 보고 배워 그렇게 변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식 뒤에 교만한 부모가 있으니 자식이 교만한 것은 자신이 그렇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욕심이 많은 자도 폭력적인 자도 시기와 미움이 많은 자도 거짓말하는 자도 게으른 자도 바로 앞의 자기이익만 바라보는 자도 판단이 아닌 비난과 정죄가 강한 자도 그들의 위에는 그런 부모가 있으니 자식은 부모의 성품을 닮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어리석고 악한 자라도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부모와 자기자식을 바라볼 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으니 그는 집안 대대로 흐르는 악한 대물림을 자신의 대에서 피로 끊을 수 있다.

한편 자식이 이렇게 육신적인 부모의 말과 행위를 닮는 것은 사람과 영원한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요 이 세상을 불법의 죄로 이끌어가고 있는 원수의 말을 듣고 대적자를 자기아비로 섬기는 사람과 사망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아벨은 아버지의 의와 거룩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바쳤으니 그 구원의 결과는 그가 원수의 말을 듣지 않고 오직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고 오직 아버지의 말씀과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되 반대로 가인이 오히려 그 의로운 동생의 피를 흘리고 사망으로 들어간 것은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말씀을 거부하고 오히려 선악의 죄를 창조한 대적자를 자기아비로 섬기며 원수의 말을 듣고 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사람에게 자신의 거룩한 영을 불어넣어주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의 성품에 자비가 있으시니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육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법적인 심판을 받고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가 아무리 불의한 큰 죄인이라도 어떠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그의 영혼을 구원코자 하시는 그 마음을 절대로 끊으시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의 의롭고 거룩한 자녀들도 마찬가지니 자식은 자기아비의 성품을 닮아가다 결국에는 닮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비로운 자들은 그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배움이 있든 없든 귀하든 천하든 병들어있든 건강하든 지난날 어떠한 사람이었든 현재 어떠하든 외모를 보거나 이용하려거나 차별치 아니하고 오직 그 영혼이 생명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원하는 말이나 자기를 높이는 말이나 자기 뜻을 이루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과 제물만을 전하며 자신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힘과 목숨까지 다해 거룩에 애쓰리니 그런 자가 자비로운 자다. 하지만 그가 자비로운 영혼으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시기 때문이요 말씀의 약속을 믿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23일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착한 행실 – MS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착한 행실 – 한글

4월 16일 오래 참음

사람들은 오래 참으라는 그 말씀을 보지만 진리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무엇에 대하여 참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혹은 무슨 일을 당했을 때 혹은 자신이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에서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참고 기다린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과연 누구를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며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누가 오래 참고 기다리도록 도우시는지도 알 수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자기의 마음과 몸을 다하여 사랑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이 그 남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알았다. 그러므로 그 남자와 여자는 정혼을 했으며 남자는 혼인준비를 잘해서 여자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고자 먼 길을 떠났다. 그 남자가 나중에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떠나자 그 여자의 친구들은 그것을 알고는 늘 전화해서 밖에 나와 함께 재미있게 놀자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집안에서만 거하며 돌아올 남자를 위하여 자기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세상의 유혹이 너무 강해 남자만을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자신을 사랑해준 그 남자만을 끝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그러자 그 여자의 마음에서 사랑의 비밀에 대한 깨달음과 남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혜가 떠올랐다. 또한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할지 그 방법도 떠올랐으니 늘 하얀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므로 다른 남자들이 보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자신도 다른 남자들을 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남자만을 생각했다. 그 여자는 이렇게 마음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도움을 받아 자기의 마음과 몸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의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며 신랑이 오는 그 날까지 끝까지 참고 기다렸다. 그러므로 남자가 돌아왔을 때는 자신의 깨끗한 마음과 몸의 향기를 남자에게 보여주며 영원히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누렸다.

이와 같이 오래 참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날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직 그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자만이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을 기다릴 때 자기를 사랑해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준비하면서 기다린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그 깨끗한 첫 마음을 늘 지킨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를 이 세상에서 건져주시어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오래 참도록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첫사랑을 잃지 않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거룩에 애쓰면서 그리스도를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첫사랑을 잃은 자이니 그는 이 세상에 자기의 마음을 두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종교행위를 하고는 예수님 사랑해요 버릇처럼 말한다. 더 어리석은 자는 마라나타라고 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에는 애쓰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어찌 자신을 정결케 하는데 마음과 몸을 드릴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림을 받으리요?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9일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온유하시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의 온유하심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늘 아버지의 말씀 안에 거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은 늘 편안하셨다. 그것은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아니하고 오직 말씀에 거하는 자는 그 마음의 평안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지닌 그 온유하신 성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달려있음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하실 것을 믿으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그 인정과 믿음이 있으셨으니 말씀을 전하실 때 한 번을 전하고 두 번 세 번 전한 후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셨다. 그러므로 오로지 아버지의 말씀의 씨앗이 그 영혼의 마음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런 후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들이니 그들은 지금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자기의 가족과 지체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한다. 그리고 그 인정과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씀을 받은 자들에 대하여 자신이 그 어떤 것을 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 맡긴다.

 

이것이 바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말씀을 전하며 그 마음에 있는 평안을 빼앗기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자의 성품이 온유하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종은 오직 자기의 주인을 따르며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자이다. 그리고 종은 자기의 주인과 늘 함께 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의 성품을 하나씩 닮아간다. 그러다 나중에는 자기주인의 모든 성품을 다 닮게 되는 것이 종이다.

 

이로 보건대 온유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말씀의 씨로 거룩의 열매를 맺으실 것이라는 그 인정과 믿음을 가지고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요 동시에 그리스도의 그 모든 성품을 닮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2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어떤 과수원의 주인이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원하니 두 종에게 다음과 같은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나는 너희에게 각각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주겠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행하면 10년 후에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얻을 것이요 그에게는 충성한 만큼의 상급이 있겠노라.” 이에 한 종은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물을 주라고 하면 물을 주고 병들지 않도록 약을 주라고 하면 병약을 주고 벌레를 잡으라고 하면 벌레를 잡고 쉬라고 하면 쉬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며 힘들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을 끝까지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한 종은 주인의 말에 순종치 않는 자였으니 깨끗한 물을 주라고 하면 더러운 물을 주고 병들지 않도록 약을 주라고 하면 벌레 약을 주고 벌레를 잡으라고 하면 벌레들과 놀고 쉬거나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 나가서 땅을 파며 힘들어도 끝까지 포도원을 넓혀갔다. 그러면서 생각하길 나는 참 충성된 자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10년이 지나자 첫 번째 종은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주인에게 드렸으나 두 번째 종은 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의 주인에게 받은 그 포도나무는 벌레가 다 먹고 병들었으니 그는 더러운 열매를 거두었다. 이에 과수원 주인은 첫 번째 종에게 말하길 충성된 종이라고 하며 그가 거둔 열매와 함께 과수원의 한 부분을 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종에게는 불 충성한 종이라고 하며 쫓아냈다.

 

이와 같이 충성이라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둘째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힘들어도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끝까지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된 자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직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에 애쓴다. 그리하여 작게 보이는 그 일에 충성된 자는 아버지와 아들께로 천국에서 왕과 제사장의 일을 받아 그 일을 하며 셋째 하늘에서도 그 일을 받아 영원토록 행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충만히 얻는다.

 

그러나 불 충성된 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니 말씀을 전해도 자신은 그것에 순종치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한다. 또한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그 일을 이루어간다. 그러면서 그러한 자신을 충성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말을 듣는 자와 아버지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를 충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그를 충성스럽다고 칭찬하며 올려 세운다. 그러므로 원수와 같은 마음을 품은 그가 어찌 그 어두운 곳과 불 못으로 들어가지 않으리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6일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 비밀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혼을 위한 말씀이다.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하는 양심 – MS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하는 양심 – 한글

3월 19일 희락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자들은 썩어질 것을 얻거나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얻으면 그들의 마음이 기뻐한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집에 새 물건을 들여놓거나 새 차를 뽑거나 좋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돈을 더 받게 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자식들이 돈을 많이 버는 곳에 들어가거나 눈을 기쁘게 하는 곳에 갈 준비를 할 때 잠시 마음의 기쁨을 얻는다.

 

한편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얻기 원하는 자는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며 희락을 누린다. 그러므로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은 눈 깜빡 하는 그 순간의 기쁨을 위하여 저울과 사람을 속여 돈을 벌거나 게으르니 일확천금을 바란다. 또한 기회가 있으면 늘 여자와 남자를 바꾸고 남을 누르거나 끌어내린 후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그곳에 앉고자 자신과 가족도 내어 놓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그 죄에서 벗어나고자 애통하는 것을 보시며 기쁘심 가운데서 거듭남의 피를 주신다. 은혜를 받은 한 영혼이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방황하다 이제는 그 어둠에서 나오기 원하는 자를 보시고 기쁘심 가운데서 말씀의 기초와 진리를 주시고 때에 맞게 영광스런 살과 피도 주신다.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를 보시며 기뻐하시니 그에게 십자가를 주신다.

 

그러므로 희락이라는 것은 이것이니 한 영혼이 그 선악의 죄와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돌아오면 그가 누구이든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오든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시며 그를 반가이 맞이하신다.

 

그런데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희락의 열매를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도 주신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든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오든 거룩한 영혼들과 하나 되었을 때 교회는 마음에 그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안에 그 희락이 있는 자는 거룩하신 영으로 인하여 충만한 열매 맺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12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한 나라의 왕이 자기 나라의 백성들을 영광스런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영광을 주는 것이 아니요 오직 고난가운데서도 자기의 말에 순종하며 자기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본을 자기의 아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으니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나는 너를 따르는 자들을 너와 같은 자녀들로 삼아 영광스런 자리에 앉히기 원하는 도다. 하지만 영광은 고난 받은 자가 얻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고난이 있겠으나 이 산을 끝까지 올라가며 너의 뒤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그 길을 닦기 원하는 도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너의 안에 넣어둔 무궁무진한 지식을 알아가며 너를 끝까지 따르겠노라.” 이에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깨닫고는 그 험하고 높은 산을 올라갔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아들이 고난 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많은 자들은 그 왕의 아들을 보고서도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왜 고난 받는지를 몰랐으니 따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아들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 무궁무진한 지식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백성들 가운데 5명은 점점 그 아들을 알아가며 그 아들을 따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에 그 왕은 본을 보인 자기의 아들에게는 가장 큰 영광을 주었으며 자기의 아들을 알아가며 길을 걸은 5명에게도 그들이 힘든 가운데서도 순종한 만큼에 맞는 영광스런 자리에 앉혀주므로 약속을 지켰다.

 

이와 같이 지식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무엇을 알거나 깨달으면 그 올바른 것에 맞게 행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따르거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이로 보건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시작한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보면 그가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에게 그리스도의 지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그가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식이라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섯 명의 백성들은 그 왕의 아들만을 알아간 것이 아니요 아들을 통해 그 왕의 뜻과 계획도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았으니 왕의 뜻과 계획에 순종해 그 길을 올라갔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에 애쓰기 시작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알아가기 시작한 자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는 그것을 깊이 알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5일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사람들은 노란 돌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그것은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의 천국을 빼앗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육적인 것들을 그것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돌을 필요한 만큼보다 더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욕심이 필요하니 사람을 로 이끈다. 또한 그 돌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썩어질 것이요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일만 악의 뿌리를 자기의 마음에 심고 그 돌의 열매를 얻고자 오늘도 세상으로 들어가 열심히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귀한 것은 그 딱딱한 돌이 아니요 자신의 깨끗한 마음이니 마음을 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자신의 마음이 가면 그곳에 자신의 몸도 가며 자신의 몸이 가면 그곳에는 자신에게 있는 것들도 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자기의 목숨을 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깨끗한 마음과 함께 주는 그 목숨은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이요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하며 순수한 마음과 함께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다. 하지만 친구라는 것은 한 사람은 주고 한 사람은 계속 받기만 하는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간에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친구라 생각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깨끗한 마음과 함께 자기의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사람을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라 하신다.

 

하지만 제자들을 향하여 친구라 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는 생명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에는 생명이 있었으며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다시금 그 생명을 얻으셨다. 또한 그 귀하고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그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셨으니 그들도 그 생명을 얻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가끔씩 무엇인가를 위하여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내놓는 자가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이 죽는(사랑)자들은 그가 무엇을 주겠는가? 오직 그 죽음과 그 사망뿐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26일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누군가의 말을 믿는 이유는 그 말을 한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들을 믿는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신실하시니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약속들을 이루어주신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가운데 구원에 대한 약속이 있으니 사람은 우선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사해짐을 믿고 자신의 죄와 허물들을 진심으로 고백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영접하면 거듭난다.

 

그 후 택함 받은 자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거룩에 이르니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어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니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온전한 구원의 약속을 얻기 위해 가져야 할 믿음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믿음이다. 즉 말씀의 순종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지하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가 떠나고 거룩에 이르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룩한 믿음은 자신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요 다른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마음이 갈급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그 선물을 받지만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믿음을 잃어버리는 세 가지 이유를 깨달으면 그 선물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첫째 아버지께서는 거룩의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는 그가 마음에 그것을 잘 간직하기를 원하신다. 즉 믿음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두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그러나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오직 거룩에 두면 그는 그것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된다.

 

둘째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그 십자가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또한 자신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 선악과 사망의 죄에서 벗어나 거룩에 이를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기 좋아하며 자기가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은 쉽게 포기한다.

 

셋째 사람과 상황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표적을 보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말씀만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보이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엇인가를 보기 원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들은 선물로 받은 그 믿음을 잃게 되는 것이요 믿음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9일 경건의 능력

한 의로운 아비가 자기의 세 자녀들이 아랫집에 사는 악한 자를 따라 거짓말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자기의 자식들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타일렀다.“사람은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얻고자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죄요 죄에 대하여는 심판이 있겠노라. 그러나 나의 말을 듣고 따르며 말한 대로 행하면 너희는 그 거짓말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될 것이니라.” 이 말을 듣자 첫째는 의로움을 원했으니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동생들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아랫집에 사는 악한 자는 모든 자들이 자기의 말을 듣고 거짓말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그 첫째를 항상 핍박했다. 그러나 첫째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아비에게 들은 말대로 행했으니 결국 그 악한 자에게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아비의 그 의로운 말이 첫째에게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즉 그 첫째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둘째는 자기 형이 핍박 받는 것을 보자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둘째는 아비의 말을 듣고도 따르지 않고 거짓말을 계속했으나 아비의 말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그 말이 능력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자기의 아비에게 들은 말대로 행치 않으면서도 나의 아버지는 의로우니 나는 의롭지 못해도 의로운 것을 믿는다고 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말을 알고 있으니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계속 거짓말을 했다. 그러므로 둘째와 셋째에게는 그 아비의 의로운 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이 되어버렸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말씀을 듣고도 따름이 없으면 그 지식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는 정작 자신은 말한 대로 행함이 없으면 그 말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 자들 가운데 진리와 피로 인한 그 경건의 모양은 알지만 그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을 듣고 그 말을 하고 자신은 따름과 행함이 없다. 그리하여 진리와 피로 인해 경건해짐을 부인한 그는 절대로 그 선악의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달은 자는 진리와 피로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는 또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경건의 모양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자신에게서 나타나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자신이 듣고 자신이 말한 것의 행함으로써 결국에는 그 죄악에서 벗어나 의롭고 또한 거룩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안에 그 선악의 죄를 심은 원수는 아버지의 그 뜻을 대항하는 자이다. 즉 사람이 진리를 따르고 피를 의지해 의롭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오직 자신이 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또한 자신이 말한 대로 행하고자 하는 자들은 악한 자들과 이 세상을 통해 원수에게 핍박을 당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말씀을 듣고 따르며 또한 말을 하고 행하고 행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그 경건의 능력인 거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2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사람은 무엇이든 언제든 자신의 생각으로 상황과 때를 판단하고 결정해 자신이 이루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언제든 그게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으며 또한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육신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대변을 봐야 한다. 잠도 누가 시켜서 보다는 자기가 알아서 자야 한다. 또한 누가 밥과 국을 수저로 떠 넣어주기를 바래선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 외의 일들은 다 영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의 영적인 것들은 아버지께서 이미 예비하셨으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뜻과 때에 맞게 그를 그 예비하심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림을 당하는 자는 십자가의 길에서 기다리며 인내할 때가 있으나 결국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영적인 것들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항상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옳다.

 

하지만 교만한 자와 아버지의 예비하심을 믿지 못하는 자는 사람들의 그 좋아함을 따른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언제든 자신의 생각대로 영적인 일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뜻과 계획들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원수의 일을 이룬 것이니 원수는 사람의 육신과 생각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있으나 그리고 사람은 그것을 이루어야 하나 사람이 믿음이 없이 하나님보다 높아져 자신의 생각을 이루어가는 자의 문제는 그에게 인내와 기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 외의 영적인 일들을 행하지 않고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는 결국 아버지의 때와 계획안에서 그것들을 행하게 될 때가 온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린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한 후에 그 인내의 열매를 순종으로 따게 되는 것이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5일 절제

 아버지의 뜻에 마음이 없는 자는 어리석으니 이방인이 말하는 대로 말씀을 본다. 예를 들어 절제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가 욕망을 누르고 무엇이든지 잘 조절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절제가 거룩하신 영의 열매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어도 거룩하신 영의 도움과 인도를 의지하지 않는 그는 자기수련과 노력에 빠진다. 그리하여 오히려 그는 모든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선악의 죄를 범하고도 회개치 아니하니 자신은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았으며 또한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거룩을 거부하는 자도 스스로 애쓰는 자와 같이 모든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부한 그는 그 어리석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절제라는 것은 자신이 아는 한가지를 절제하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여러 가지 말씀에 모두다 순종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처럼 절제하려는 자는 정반대의 깨달음을 얻고 행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완전히 반대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거룩하신 영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마라톤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빛나는 면류관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왕은 1등 2등 3등을 한 세 사람에게만 그 면류관을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한 규칙을 다 지키면서 끝까지 달리기만하면 누구에게나 다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공이 울리면 즉시 달려 나가야 하되 만일 공이 울려도 가만히 있거나 공이 울리기 전에 달리면 안 되는 도다. 힘들면 잠시 쉬어도 좋으나 달리는 길의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는 도다. 마지막에 결승점이 보이면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달려야 하는 도다.” 이제 그 왕의 말을 듣고 경기에 참여한 자들은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라톤에서는 출발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니 중간과 마지막의 규칙들은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중간만을 지키고 처음과 마지막 규칙들을 지키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만 중요하다고 여기며 처음과 중간의 규칙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그 결승점으로 들어왔어도 왕이 말한 규칙을 모두 다 지킨 사람은 오직 7명밖에 없었다. 이에 그 왕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며 ‘너희들은 절제를 잘 했도다.’고 말해주었다.

     이와 같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운동경기에 참여한 자들과 같다. 하지만 거듭난 모든 자들이 다 거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니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말씀에 순종한 자가 그 영광스런 구원의 은혜를 얻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육이나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썩어질 것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찌 복이리요 또한 아버지께서도 어찌 영원한 것과 하늘의 것 대신 그러한 것들을 주시리요?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복은 오직 영이요 아버지의 나라이니 그 복은 오직 순종하는 자가 얻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말씀에는 단 한 가지만 순종해도 영적인 복이 있다. 하지만 만일 그 한 가지만 옳다고 하며 그대로 나가는 자는 다른 것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한 가지만 알고 지키되 자신이 아는 그것만을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만일 아버지께서 주신 다른 여러 가지 말씀들에 모두 다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한 가지만 하려는 것을 절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는 그 절제로 인하여 다른 모든 말씀들에 고르게 순종할 수 있게 되니 그는 더욱더 영과 하늘의 복을 받으며 그 온전한 구원의 길을 걷게 된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29일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믿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말과 행위를 듣고 보며 종종 ‘덕이 되지 않는다.’ ‘덕을 끼치지 못한다.’ ‘덕스럽지 못하다.’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덕의 의미를 깨달은 자는 정작 그러한 말을 한 자가 더더욱 덕을 끼치지 못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덕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직 말씀에 순종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순종을 통해 본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마음을 다해 한 말씀에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또한 다른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치 않던 덕을 세우며 끼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로서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 안으로 모일 때 여자는 입을 열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께서 그 말씀으로 주시는 책망과 찌름을 거부한지 오래된 여자들은 서로가 모였을 때나 교회로 모여서나 교제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입을 연다. 남편에게 종용히 배우는 말씀도 마음에서 지운 지 오래다. 즉 원수에게 넘어가 생명을 잃은 그 하와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자들과 함께 모여서 어떤 한 영혼을 놓고 누구는 참 덕스럽고 누구는 참 덕이 되지 못하다고 아무런 부담 없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하며 영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 서로서로 그저 육신의 입과 귀가 기뻐한다.

    하지만 하와의 교훈을 들어서 알기에 또한 말씀에 생명이 있으니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알면서도 하와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는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지 못한 그들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자녀들과 교회와 주변의 영혼들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처럼 덕을 말할 자격조차 없으나 또한 자신이 덕을 세우고 있는지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덕스럽다거나 덕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참으로 덕을 세우지 못하는 자들이요 또한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말씀을 받고 들을 때 순종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이 힘들다 하여도 그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의지해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며 한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모든 것에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니 다른 자들도 덕스런 그를 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덕을 세운 그는 자기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지체들의 육이 아닌 영혼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22일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말씀에 거룩한 제자라는 의미로서 성도(聖徒)라는 호칭이 나온다. 그런데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전통을 따르는 영혼들은 성도라는 의미를 모르니 서로를 부를 때 교회에서 그 사람이 받은 직분을 부르니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하며 부른다. 하지만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은 직분이 없으니 그를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아 형제자매님 혹은 성도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도라는 것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도 아니요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자신이 십자가로 받은 그 첫사랑을 기억하고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 붙들린 자가 성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킨 자요 또한 이 세상에서도 그 마음을 뗀 자이다. 그리고 나서 자기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붙들려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자가 바로 성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거듭남을 통해 영의 구원을 얻은 후 그 첫사랑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그 영혼을 깨워주시니 그는 늘 말씀이 갈급해 진리를 깨닫고 싶어하며 또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보며 애통하니 그것은 그의 영혼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체간의 사랑이 어찌 일방적으로 맺어질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인격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첫사랑을 잊고 자신이 나왔던 세상에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빼앗긴 영혼은 깨워주지 않으신다. 이로 보건대 첫사랑을 잃은 영혼은 거듭남 후에 깊은 잠을 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이 지금 깨어있는지 아니면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는 자신의 마음이 지금 육과 세상이 있는지 아님 그리스도께 있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

     이제 거룩하신 영께서는 이렇게 갈급한 영혼이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그를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로 인도받은 그는 참된 목자에게 말씀의 기초를 배우고 오직 십자가만 붙든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말씀과 기도로 거룩에 애쓰니 결국에는 그의 안에서 그 선악의 죄가 뽑히고 거룩한 자가 되니 그가 바로 성도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붙들려 거룩에 애쓰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거룩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마음에서 그 원수의 선악이 끊기므로 거룩에 이르면 그는 더 이상 육신이나 육신의 생각이나 세상이나 죄를 따라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더 이상 죄의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의의 열매와 거룩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간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 붙들렸던 자가 그리스도의 안에서 맺은 그 열매만큼 셋째 하늘에서 아버지의 그 약속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성도가 된 영혼에게 셋째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셋째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이방인의 교회가 만국백성들을 직접 다스리되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자들에게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다. 그리고 몸인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소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방인가운데 거하는 딸들로 보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아버지의 자녀 되는 그 약속을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기쁨과 즐거움과 권세를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정을 가만히 보면 세상의 조직과 같이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라고 하기보다는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의 가족관계로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며 순종하는 질서가 있다. 마찬가지로 셋째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그 가정에도 질서가 있으니 아버지의 그 가정에 속할 신령한교회의 안에도 질서가 있다. 그러므로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아닌 진실하고 동등한 형제자매의 관계를 이 땅에서부터 맺고 있다.

     동시에 아버지께서 이렇게 정해놓으신 가정의 질서로 인하여 동일한 자녀들이라 하여도 육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그 안에 형 오빠 누나 언니 동생이 있다. 그리고 장자 장녀로 갈수록 아버지께로 더욱더 가까이 가며 다스리는 백성과 땅도 더 많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셋째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그 신령한 교회에서 가장 높은 거룩을 이룬 성도가 바로 장녀이다.

     이로 보건대 누군가 이 땅의 교회에서 만일 성도라는 호칭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고 있는 자요 따르는 자들 가운데서 거룩에 가장 모범이 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셋째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장녀와 같은 자가 될 사람이니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에서 딸의 영광과 권세를 지닌 자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는 자들의 안에 있는 이러한 질서를 이 첫째 하늘에서 그들이 육신 안에 있을 동안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정도에 따라 그 단계를 공평하게 정하신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룬 후 거룩의 열매가 더 많은 자는 위로 가며 동일하게 거룩은 이루었으나 그 열매가 더 적은 자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도 아래로 간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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