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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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사람은 흔히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가진 것을 준다. 그리고 받은 사람은 그것에 감사하여 자신도 줄 것이 있으면 준다. 하지만 만일 상대방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지 않고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이루고자 주는 것은 오히려 악한 것이요 감사한 마음이 없이 의무감으로 되돌려주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것이니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순수하게 그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되신 선하신 아버지와 택함을 받으신 아들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관계를 유지하셨다. 부모자식간에 무슨 주고받는 경우가 있나 생각되지만 먼저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그것을 받은 자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은 부모자식간에 더더욱 요구되는 인격적인 관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독생자이자 맏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그리스도로 택하셨다. 하지만 그때는 종도 천지만물도 사람도 창조되기 전이므로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듣는 자들이 하나도 없었지만 너무나 기쁘셨기에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으로 그 마음의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셨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품에 있던 그 아들에게 생명과 택하심의 은혜를 주셨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깨끗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순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거룩케 하시어 영광스럽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하여 피 흘리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는 그 순종으로 인하여 지금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둘째사람들은 그 생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그 순종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다. 그 순종한 그 아들에게 이제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혀주셨다. 그리고 그 육체를 입고 다니며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다스리도록 영광과 권세를 허락해주시므로 다시금 크신 영광스런 은혜를 베푸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시며 영원토록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이루어가신다.

    이로 보건대 아버지와 아들의 그 깨끗한 관계도 영원토록 이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는 이 깨끗하고 영원한 인격적인 관계의 비밀을 깨닫는 자가 있으니 그는 우선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니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십자가를 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 생명을 전해주고자 그리스도를 따라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고난의 십자가를 주신 아버지께서는 거룩이라는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시고 영광과 권세를 허락하시어 높여주신 것처럼 둘째사람과도 그러한 관계를 맺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으신 그 모든 영광과 권세를 자신을 따르며 죽기까지 순종한 자들과 함께 나누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로 형제자매가 된 그들은 아버지의 한 자녀로서 기쁨과 즐거움도 영원토록 함께 나누니 아버지와 자녀들의 그 깨끗한 관계가 영원토록 이어져가는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8일 화평케 하는 자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간에 민족과 민족 간에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좋게 하는 사람을 보고 평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며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구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요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는 거짓평화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3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유사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한꺼번에 마셨던 원수는 그 전쟁이 끝나고 3년 반 동안이나 세계적인 거짓평화를 이룬다. 그리고 누구든지 만일 이 거짓평화에 속아 짐승의 수를 받으면 그는 그 거짓된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들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 거짓평화안에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는 불의와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육과 세상의 욕심을 얻고자 죄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 짐승의 수를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죄인이요라는 증명을 그 짐승의 수로 받아 그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 둘 중 하나를 따를 수 있다. 그리고 둘 중에 무엇을 따르느냐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즉 자신의 마음이 참되면 참된 것을 따르고 거짓되면 거짓된 것을 따르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안에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끝까지 자기 자신의 불의함과 죄를 따르겠다는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된 평화이신 아버지와 아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원수와 함께 모두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참되고 영원한 평화와 일시적이고 거짓된 인간의 평화는 그 안에 의로움과 거룩함이 있느냐 아니면 불의함과 더러움이 있느냐로 구별된다. 그리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참된 평화인지 거짓된 평화인지를 구별할줄 안다. 또한 사람가운데 참 평화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한분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사람사이에 평화를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어 이루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시어 맏아들로 인정하셨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화평케 하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지하는 자는 마음속에 있는 선악의 죄를 끊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로 받은 그 거룩한 살과 피를 아버지께로 드린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화평케 한 그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시어 아들로 인정해주신다.

    그리하여 화평케 한 그 아들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가니 그들이 아버지와 평화를 누리는 사이가 되는 것이요 성소에서 맏형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11일 마음이 청결한 자

사람의 피부는 밖에서 온 것으로 더러워지며 사람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몸에서 더럽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은 금방 알아챈다. 예를 들어 육신의 부모는 자기의 자식이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면 즉시 더럽다는 말을 하며 그 더러운 것을 만지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아이를 데려가 깨끗한 물에 손을 씻긴다.

     한편 사람의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이 더러워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안에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욕심이요 육신의 부모는 그것도 훈계한다. 예를 들어 자기의 자식이 욕심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을 본 아비는 다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혼을 내준다. 자기 자식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이 깨끗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은 피부의 더러움은 금방 알아채며 또한 다른 사람의 더러움에도 눈이 크게 떠져 금방 눈치 채지만 자신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여 자신의 더러움을 눈치 채도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그 선악의 죄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애써 무시하며 덮어둔다. 즉 자신을 깨끗케 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피부에 묻은 더러움들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움이 오히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의 마음에서 욕심과 죄를 뽑아내지 않으면 그 더러움들은 죽을 때까지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예를 들어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음란을 품는다.

     사람은 이처럼 자신의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맺는 불의하고 죄악된 열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깨닫고 있음에도 자신이 불의하거나 더러운 줄 아는 사람은 적다. 그 더러움을 깨달은 후 씻어 보고자 하는 사람은 더 적다. 그러므로 인격체인 사람의 이러한 면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이해되지 않는 것을 통하여 원수가 창조한 그 죄가 사람에게서 얼마나 지독하게 떠나지 않는 것인지를 오히려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룩을 원하시며 또한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니 자기의 자식이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지 않도록 혼내서 고쳐주는 육신의 아비와 그 마음이 같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그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믿고 아버지와 함께 거하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것을 씻어내고자 애를 쓰게 되어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더러움이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영혼에 뿌려주시는 하얀 피와 먹이시는 진리로 씻겨지도록 해두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피와 진리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여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영혼은 그리스도께로 말씀도 받고 말씀을 받을 때 피의 뿌림도 받는다. 그리하여 그가 그 능력 있는 것으로서 그 지독하게 떠나지 않는 것과 싸우되 이기며 나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진리와 피를 의지해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그의 마음에서 그 선악의 죄가 떠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그의 마음이 흠뻑 적셔진 깨끗한 상태가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적셔져 아버지의 그 거룩하심과 영광스런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청결해진 영혼을 보고 청결한 영혼이라고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2월 4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한 자신의 죄는 숨기고 다른 사람의 죄는 큰 소리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을 가만히 지켜보면 자신이 그렇게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불의를 숨기거나 의롭게 보이기 위해 의로운 자를 오히려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의 선악과로 인하여 의롭거나 거룩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돌이키지 않으면 거룩하신 아버지를 보고 불의하다고 하며 소리를 높이게 된다.

    결국 자신의 불의함을 돌아보지 못하고 돌이키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의 이러한 성품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는 어느 시대에나 의인들이 참 많다. 노아시대에도 노아 한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의인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깊은 마음 안에 영은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불의와 죄들을 모두 다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불의함과 죄악 됨을 스스로가 평생을 지켜보아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곧 다가올 의와 불의 거룩과 죄악의 심판으로 인해 애통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영이 다 그렇게 애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영이 이렇게 자신을 지켜보았다는 것과 보고 있음을 모른다. 게다가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니 그저 입술을 벌려 육에서 나오는 생각을 연방 내뱉다. 물론 어떤 사람은 더 점잖은 방법으로 그렇게 행한다.

    그러나 간혹 자신이 의롭지 않음을 마음 중심으로 조용히 깨달은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오직 아버지의 의만을 전하시고 이르신 그리스도의 의에 주려있다. 자신이 불의하다는 것을 아니 의롭게 되고자하는 마음을 간절히 품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을 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은 배고프면 음식을 찾아 먹고 목마르면 시원한 물을 마시지만 의를 위한 음식과 음료는 스스로 찾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저 그 마음만을 품고 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그 주린 자에게는 반드시 살과 피를 주시니 그는 배부르게 먹고 마실 때가 온다. 그리하여 그가 의와 거룩에 이르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7일 영혼과 심판대

영과 혼과 육의 구분을 두는 것은 그 영이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망에 이르니 오로지 혼과 육만이 그 사망으로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그 영이 거듭났기에 그 영에 있는 혼이 자기의 위치에 가있으므로 그 거룩한 혼이 육에 붙어있는 혼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그 육도 때로는 범죄하고 때로는 게으르다 하되 그 안에서 계속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책망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그 영혼을 하나로 보고 또한 육의 혼은 오로지 거룩한 혼에 지배를 받기에 그 혼을 연관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심판을 받으러 그리스도 앞에 설 때는 영과 거룩한 혼이 있으며 육의 혼은 그 자가 거룩하면 그 혼도 함께 오되 거룩하지 못한 것은 그 혼은 그 그리스도 앞에 오지 못하며 그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의 물벽에 있으며 그곳에서 그 영혼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멸망에 곳으로 향하여 지켜보고 있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20일 영혼의 심판

영과 혼의 심판은 이것이니 거룩한 혼은 생명의 나무요 육의 혼은 선과 악의 나무다. 그러므로 생명의 나무만 있으면 오직 생명의 나무만 심판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선악의 나무가 있으면 그것도 동시에 올라가 심판을 받게 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13일 삼위일체

거듭난 사람은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인 그리스도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말씀을 통해 책망과 훈계로 거룩케 되도록 도우시는 거룩하신 영께서는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진 세분이시며 동시에 한분이심을 믿는다.

 

사람들은 이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보통 ‘삼위일체’ 혹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언제 어떻게 하나 되시는지 혹은 독립된 인격체로 계시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또한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세분이 하나 되시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그것을 가지고 어리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정죄하며 죽여 왔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거쳐 삼으시기 원하신다. 즉 아버지께서는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 원하시니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를 자신의 몸에 모신 그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가 성전이 된 그는 영원토록 의와 거룩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그러므로 그 선하고 기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서로 다른 독립된 세 인격체이시지만 말씀이라는 하나의 영을 통해 한분과 같이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또한 아버지께서 사람의 육체 안에 거하시려면 사람의 영도 거룩해야 거룩하신 영께서 그와 함께 하실 수 있으시며 사람의 몸인 살과 피도 거룩해야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하실 수 있으시며 사람의 혼과 마음도 거룩해야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하실 수 있으시다.

 

그리고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 즉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니 혼의 인격과 육의 인격과 영의 인격이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 즉 사람은 아버지처럼 마음과 생각도 있고 아들처럼 살과 피라는 몸도 있고 거룩하신 영처럼 영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의 영을 인치시므로 그가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십자가에서 주시므로 사람의 육체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을 깨끗케 하시어 즉 독립된 인격을 가지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영과 혼과 육의 세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을 거룩하게 구원하시어 온전한 그와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능력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무엇을 생각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요 그저 ‘영과 영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 아님 육과 육신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를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즉 혼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 영과 육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하나를 택해 그것을 따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삼위일체의 역사로 거룩에 이르러 성전이 되므로 마음이 자신 안에 있는 영의 인격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삼위일체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므로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서로 다른 세분의 인격께서 한분처럼 혹은 각각 역사하시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반면 거듭난 자로서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이 삼위일체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영의 인격이 아닌 육의 인격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1월 6일 영의 직분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들에게 셋째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주시기 위하여 태초에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경륜을 세우셨으며 아들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하셨다. 그리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며 세우신 그 선하신 계획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여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자 함이셨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신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영의 직분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아들이 감당한 그 영의 직분을 깨닫도록 해주신다. 그리하여 그 깨달음을 얻은 자는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그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영에 순종하는 날을 바라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버지의 뜻에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고 자신의 보좌우편이라는 그 영광스런 자리에 앉혀주셨다. 그리고 그 맏아들의 보좌에 앉아 아버지를 제외한 셋째하늘의 모든 것과 둘째하늘의 모든 것과 이 첫째하늘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영의 직분을 감당한 아들에게 이렇게 영광스런 자리를 주신 것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영에 순종한 모든 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영광과 권세를 주신다. 그러므로 영의 직분을 감당한 아들을 따르며 영에 죽기까지 순종한 자들도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의 보좌좌우에 앉아 다스리다 셋째하늘에서는 영원토록 그 영광과 권세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한다.

아버지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영의 직분을 감당한 아들을 따라간 자들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예수는 대제사장이시요 아버지께서 계시는 지성소로 들어가실 수 있으니 자녀들은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를 따라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그 영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은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쁘신 그 경륜으로 인함이요 또한 많은 형제자매들과 그 영광과 권세를 함께 나누길 원하셨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을 데리고 성소와 지성소로 함께 들어가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누리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영에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영의 직분을 감당하고 영광과 권세를 얻고 또한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와 자격을 얻는다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그 ‘영광스런 영의 직분’을 이미 십자가에서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30일 주의 일을 염려하는 영혼

사람은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높은 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자에게는 더욱더 그리한다. 이처럼 사람이 윗사람의 뜻을 잘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영광을 따르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자가 지혜로운 것은 그가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사람 덕을 본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돈 많은 자 옆에서 붙어 있어봐야 명예와 힘 있는 자 밑에서 굽실거리며 기다려봐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풍성한 육과 영광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원수가 자기의 택한 자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육을 풍성히 얻고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육을 입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요 그것은 자기의 욕심과 이익만을 구하는 불의와 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와 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속히 돌이키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윗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입은 육체는 썩어질 것이요 그 육체속의 영혼이 자신이요 그 영혼이 아버지께서 빚어주시는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원히 가는 것임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린다.

 

하지만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그 어떤 행위와 능력을 바라시지 않으신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썩어질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온힘을 다해 자기 자신 한 사람을 의롭고 깨끗하게 가꾸길 원하신다. 즉 아버지의 뜻은 사람의 거룩이다.

아버지께서는 거룩을 요구하시는 선하신 이유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에게 자신이 빚은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어 자신의 영광을 가진 그 거룩한 자에게 자신의 권세를 주시어 그 영광과 권세를 가진 자녀로 하여금 셋째하늘에 있는 거룩한 모든 것들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일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거룩케 하신 것은 바로 이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아버지의 뜻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은 거룩이니 주님만을 섬기는 자는 그 뜻을 잘 알고 받든다. 즉 주의 일을 위해 염려하니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뜻만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영혼을 보고 ‘아버지와 아들께 붙들린 일꾼의 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 얻은 그 거룩한 살과 피를 드려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거룩을 완성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고난 받으며 아버지의 아들의 일을 이룬 그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거룩한 셋째하늘을 다스리는 그 거룩한 일들을 영원히 맡겨주시는 것이다.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3일 온전케 된 의인의 영혼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인자의 살과 피로 거룩을 이루고 새 생명가운데 행하다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난 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은 이제 거룩을 이루어갈 수 있는 자가 된 것이요 또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듭난 자들 가운데 많은 영혼들이 원수가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있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마음 안에 있는 죄를 제하는 거룩의 시작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나 자기의 생각과 결단에서 돌이키는 자가 없으니 다수의 영혼들이 그 거룩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듭나므로 누구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으나 그 진리와 생명의 길을 걷는 자들의 수는 적다. 마치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날 수 있으나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지 않아 많은 자들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거룩을 이룰 수 있으나 육과 세상으로 인해 첫사랑을 잊었기에 많은 영혼들이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거룩에 애쓰지 않고 있는 영혼은 오늘 당장 닥칠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거룩해지지 못한 사람의 내일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신을 돌이킬 이유와 필요를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거듭난 여자가 오늘 남편에게 불순종하고 있다. 하지만 불순종하던 여자의 생각이 육체에서 나온 후에 갑자기 순종할 수 있는 여자로 바뀌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 남을 비판하던 입술을 가진 영혼은 내일 육에서 나와도 그대로 비판한다. 오늘 교만과 음행을 멈추지 않던 영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번개를 맞거나 복권에 맞을 확률은 거의 0%지만 그래도 확률은 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를 붙들고 거룩에 애쓰지 않으므로 거룩하지 못했던 영혼이 내일 갑자기 거룩해지는 확률은 완전한 0%다. 왜냐하면 육신의 기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오직 한번이요 땀을 원하시는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교회시대에 한 가지 은혜를 더 베풀어놓으셨으니 거듭난 후 그의 혼이 거룩해지지 못한 영혼이 육에서 나왔을 때 그를 온전하게 되는 과정으로 보내주시니 많은 자들이 거기서 자신의 모든 혈기와 의를 다 내려놓고 아버지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의와 거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과정을 통과한 자를 ‘온전케 된 의인의 영’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사람처럼 심판 받지만 영으로는 영원히 살게 된 그들을 셋째하늘로 받아주시고 아들과 같은 장자들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에게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림을 받게 하시니 그들은 아버지의 백성으로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쓴 그가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자녀로서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든 온전케 되어 형체를 입고 백성으로 들어가든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그가 의롭고 거룩하게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거룩을 이루든 그 과정에서 온전함을 이루든 거룩은 동일하게 필요하되 그 거룩을 어디에서 이루었는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요 그 차이가 영원히 간다. 그러므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순종하는 자에게 만사형통의 복이 영원하다.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16일 육신이 멸해진 영혼

그리스도당시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영혼을 거룩으로 이끌어 거룩한 셋째하늘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목자들이었다. 즉 거룩한 육체의 부활과 셋째하늘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해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라고 선포해야할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그리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일을 하며 자기의 육의 욕심을 채우는데 마음이 있었으며 그 위치에서 높임 받는 것을 기뻐했다. 사람들에게 하늘을 전하는 자들이 정작 하늘의 소망은 버리고 썩어질 것에 마음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한 육체와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전하는 아들을 못 박아 죽였으며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을 핍박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까지도 잡아서 피를 흘려 죽이는 일을 저질렀다. 육과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라는 그 말이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선하고 기쁜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썩어질 그 헛된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신들의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고 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지는 않고 오히려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둔 목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리스도당시의 인도자들처럼 부활과 셋째하늘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한 자가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에 이르는 것도 믿지 못한다. 그저 거듭남이라는 영의 구원만 얻으면 죄가 마음에 있어도 그 영광스런 육체를 얻는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친다. 또한 거듭남은 권세가 아니요 거듭나면 누구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치므로 오히려 영혼들이 거룩에 애쓰지 않도록 이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는 것은 상급 중에 가장 큰 상급이다. 그리고 상급은 일을 한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그러므로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거룩케 하는 일을 한자가 그 상급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하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가길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육의 욕심을 채우며 자신이 높이 올라가니 그 일을 열심히 한다. 그러므로 둘째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상급을 얻는 자는 매우 적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육체의 기회동안 고난을 받으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거룩의 일에 애쓴 영혼에게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상급이 주시니 그것을 바로 부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자들이 이 상급을 얻도록 이 비밀스런 고난과 부활의 복음을 자신의 십자가로 밝게 비추어주신다.

 

반면 ‘육신은 멸해지고 아버지처럼 그 영혼이 구원 얻는 영’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다는 한 말씀에 순종한다. 하지만 영의 구원을 이루어 놓고는 원수의 선악을 따르니 혼의 구원과 육체의 구원을 이루어가지 않는다. 즉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에서 회개하여 돌이키지 못하니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니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오직 한 말씀에라도 순종한 자는 유황불 못이 아닌 거룩하게 되는 과정으로 보내신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온전케 되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거룩을 이루지 못한 자들 가운데 거듭난 자만이 들어간다.

 

아버지께서는 거기서 거룩을 이루고 온전케 된 영혼에게는 거룩한 육체가 아닌 하늘의 형체를 주시어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으로 받아주신다. 그러므로 육신이 아닌 하늘의 형체를 입은 그 백성들이 바로 거룩한 육체를 얻은 교회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죽은 후에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고 믿고 또한 오늘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더 어리석은 자는 그 가르침에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오늘도 마음껏 육과 세상을 즐기며 불의와 죄악을 쌓고 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9일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영혼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말씀대로만 동일하게 행하신다. 즉 세 분의 인격체가 오직 한 영으로 한분과 같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과 거룩하신 영뿐만 아니라 아버지자신도 자신이 하신 말씀을 변치 않으시고 그대로 영원토록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서로 다른 인격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이 동일한 일을 함께 이루셨으며 지금도 변치 않고 쉬지 않고 이루어가신다.

 

아버지께서는 오직 한분이신 신으로서 또한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모든 창조와 거룩한 구원과 심판의 뜻을 세우시고 완벽하게 계획하셨다.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신 아들로서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대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구원을 위하여 사람을 거룩케 하시는 일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셨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인치시어 그리스도께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자신을 따르며 그리스도께로 인도받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은 의와 거룩에 이르도록 즉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그를 책망하시며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서로 다른 인격이시지만 그 창조의 역사와 사람의 거룩한 구원과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위해 불의와 죄악을 행한 자들의 심판과 이 세상에 대한 멸망의 역사를 오직 아버지의 말씀대로만 동일하게 행하며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세 분을 보고 한번에 칭하는 호칭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이 삼위일체의 깨달음은 참으로 깊고 깊은 비밀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그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육과 이 세상에 마음을 둔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역사가운데서 서로가 서로를 수없이 죽였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말들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 육의 욕심과 필요를 따라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을 취하며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자들이 있다. 즉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몸의 행실을 죽이며 아버지의 거룩하신 영에 의해 인도받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의 영은 거룩하신 영께서 그의 안으로 들어오셨으니 그 사람이 얼마든지 기도하는 동안에는 그의 영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보고 항상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기도하는 사람의 혼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요 기도하는 사람이 거룩하니 그의 영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오직 한분 신을 보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것처럼 사람의 영도 동일하게 자기의 아버지처럼 부를 때 그의 영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영’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거룩한 육체를 입은 그 영혼들이 아들과 함께 셋째하늘의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0월 2일 몸의 행실을 죽이는 영혼

어떤 자는 돈이 많은 집에서 어떤 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어떤 자는 머리가 좋지만 덜한 자도 있고 겉모양이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키가 크거나 힘이 센 자도 있고 작거나 약한 자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저마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니 사람들의 외모는 모두 다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믿는 자들이 각자가 가진 선물을 가지고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거룩을 이루어가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이 거듭날 때 다양한 능력과 은사를 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의 외모도 서로가 다 다르다.

 

이렇게 사람의 외모는 그가 거듭남이 있든 없든 각기 다르니 만일 그 사람의 외모를 보거나 혹은 그가 가진 선물과 능력을 통해 그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면 그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오직 그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들을 사용했는지를 심판받아야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더 큰 능력과 더 위에 있는 은사를 얻는다. 하지만 만일 그가 그 능력과 선물에 의해 더 거룩한 자가 된다면 더 유리한 곳에서 출발한 만큼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더 높은 자가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심판이 내려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외모를 취치 아니하시며 공평하시니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을 심판하실 때 그의 능력과 은사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신다. 오직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지 얼마나 순종했는지 또한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그 외모를 행했는지를 심판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의 외모를 기준으로 심판하여 아버지를 불의하고 불공평하게 만들지 않으신다.

 

결국 그 외모의 차이에 따라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은사와 능력을 이용하는 것은 이루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거룩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순종을 통해 이룰 수 있으니 그 큰 구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큰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아야하는데 사람은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이 있으니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말씀에의 순종은 누구에게 힘들고 고난스러운 것이요 의와 거룩을 이루고자 순종하는 자는 고난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기 원하는 자에게는 그가 자신의 불의함과 선악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며 또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불의하고 깨끗하지 못한 자신을 깨달은 그가 육신의 죄와 불의를 멈추고 거룩에 이르니 그가 마지막에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하신 영을 따른 자는 말씀으로 인하여 육의 죄악을 멈추며 이 세상과 구별되니 그분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영이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25일 생명과 평안의 영혼

 사람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대로 육체를 움직이니 생각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맞지만 생각이 육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으면 생각이 육신을 이끄는 것이 아니요 육신에서 나온 그 생각과 원함을 따라 그의 육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니 부엌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몸은 이미 부엌으로 움직인다. 즉 육신의 생각이 그의 육체를 움직인 것이지만 몸을 움직이고 있는 그 생각은 육신의 배고픔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육을 위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렇다고 이것만 하면 그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을 육적인 사람이요 세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에서 생각이 나오듯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靈)에서도 생각이 나오니 그것을 보고 ‘영의 생각’이라고 한다.

     영의 생각은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니 사람은 이것을 따를 때 오늘 거룩을 이루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내일 그 육을 벗어났을 때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을 원하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중에 어떤 생각을 따라야 할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이유가 있으니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따를 때 잠시 그의 육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행하는 것이 기본적인 것을 벗어날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게 된다. 즉 필요한 의식주보다 더 원하며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을 맺는 그 욕심이 사람을 죄로 이끈다. 그리하여 욕심을 따라 육신의 생각을 따라간 그는 오늘 마음의 천국도 잃고 내일 육에서 벗어났을 때는 죄의 형벌이 있는 그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난 사람의 육에서는 육신의 생각도 나오고 그의 마음에서는 영의 생각도 나온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생각을 따르지만 영의 생각을 따라 영(말씀)에 순종한 그는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 그러므로 영을 따르는 그 영혼은 ‘생명과 평안의 영’이요 모든 영혼은 말씀으로 인하여 그 생명과 평안을 얻기 원한다.

     생명이라는 것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후에 얻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며 거룩의 약속을 지킨 자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의 생명을 허락하신다.

     한편 평안이라는 것은 그 생명을 가지고 마음의 흔들림이 없으신 아버지의 그 영광과 얼굴 앞에 설 때 흔들림이 전혀 없는 평안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하늘의 평안을 그 생명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나아가고 있는 그의 마음에 오늘도 이 땅에서 넘치게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 생명과 평안을 바라보며 오직 진리만을 따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썩어질 육체 안에 거할 때도 늘 그 거룩한 살과 피의 생명만을 얻는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얻은 그는 오직 그 생명을 얻는 날만을 믿고 소망하니 그의 마음에는 늘 변함없는 평안이 하늘로부터 있다.

     하지만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얻으려면 자신의 마음이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오직 영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마음보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은 육신의 욕심과 편안함과 게으름과 정욕을 원하니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혼이 강한 그에게는 그 생명이 없으며 마음에 그 평안도 없다.

     반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생명과 평안을 원하니 늘 영의 생각을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긴다. 그리하여 말씀을 따르는 그가 늘 생명과 평안을 얻다 나중에 이 땅에서 육체를 벗어났을 때는 그것을 더욱더 풍성하게 셋째 하늘에서 영원토록 얻게 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8일 환난과 곤고의 영혼

어떤 사람이 아주 깊은 산골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곳은 너무나 깊은 산골이라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으며 등잔불도 없었다. 그러므로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밤만 되면 집안을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부딪혀서 몸을 다쳤다. 또한 악한 짐승들이 와서 음식들을 빼앗아가거나 그의 몸을 물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해가 뜨면 그런대로 살만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며 살다 어느 날 그의 마음가운데서 더 이상 어려움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낮이나 밤이나 밝은 빛이 언제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을 품자 어떤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등불을 선물해주었다. 또한 그가 밝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알고는 빛이 항상 있는 마을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제 그는 밤에 집안을 걸어 다녀도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악한 짐승들이 찾아왔으나 등불 빛이 비추는 것을 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밝은 빛이 있는 그 마을을 찾아가고자 밤낮으로 그 등불을 비추며 걷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환난과 곤고가 오는 것은 말씀이 없어서 흑암의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의 영혼을 ‘환난과 곤고의 영’이라고 한다.

하지만 환난과 곤고를 당하는 영혼에게 오직 하나의 해결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말씀인 진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인 진리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기만 하면 그 십자가와 말씀으로 빛을 비추어주신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행위와 노력을 멈추고 우선 자신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를 뽑아내기 원하며 동시에 이 어두운 세상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또한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위하여 자기의 육신보다는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

 

이때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음이 진실하고 간절함을 보신다. 그리고 그가 그 원함을 이루도록 자신에게 있는 빛을 허락하신다. 그러면 진리를 받은 그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환난과 곤고에서 벗어난다. 즉 흑암의 세력들에게 더 이상 공격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말씀이 비추는 대로 순종해 따라가니 이 세상에서 점점 벗어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거룩에 이른 그가 거룩한 육체를 얻어 그 밝고 밝은 셋째하늘에 이르러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11일 주의 영에 이끌리는 영혼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아버지의 형상이시다. 그리고 사람은 육신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처럼 영과 혼과 몸(살과 피) 세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인격을 모두 가지고 있을 때 그는 사람이요 그 세 인격이 모두 의롭고 거룩할 때 그는 온전한 사람이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그 약속을 아들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다음과 같이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집안에서 쉬면서 거하듯 사람의 육체는 그 영과 혼의 집과 같다. 하지만 집이 무너질 때가 있는 것처럼 그 썩어질 육안에 잠시동안 거하던 영혼도 자신의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그런데 만일 그가 거듭난 영이요 그의 혼이 거룩하면 육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그 영혼이 영원히 거할 집인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즉 온전한 사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온전한 사람으로의 구원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나무에 물을 주고 생명이 있는 나무에 쓸데없이 웃자란 가지를 잘라주고 생명이 있는 나무에 있는 나쁜 벌레를 잡아내며 땀과 정성을 들여 그 생명을 키우듯 그 온전한 생명으로의 구원에도 이러한 생명의 과정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신 영을 사람의 코를 통해 넣어주셨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영은 그가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함을 믿고 자신의 모든 죄들을 진심으로 고백할 때 거듭나는 은혜를 얻는다. 하지만 영은 보이지 않으니 영의 거듭남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혼은 자신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구원에 이른다. 즉 자신의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이 나타나는 것은 혼의 구원에 이른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듣고 행위를 보면 그가 혼의 구원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은 보이지 않으니 혼의 구원도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혼의 구원을 이룬 자는 육의 구원을 쉽게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의와 거룩에 이른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그것을 아버지께로 드린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 의로운 것을 받으시고 그 거룩한 육체를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거룩한 육체는 심판 후에 얻는 것이니 역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영과 혼과 육의 구원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함을 믿고 자신의 모든 죄들에 대한 고백을 진심으로 마친 자는 거듭난 자요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혼의 구원을 이루고 가고 있는 자요 혼의 구원을 이룬 자가 피를 뿌리는 것을 볼 때 그 거룩한 육체가 아직은 보이지 않아도 그는 부활하여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선 아버지의 말씀이 그 거듭난 사람의 영 가운데 임하신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안에 담긴 말씀은 그의 혼이 순종할 때 그 사람의 혼을 의롭고 거룩하게 이끄신다. 그러다 그 말씀이 마침내 그 사람의 몸과 입술까지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 인격의 한 사람이 오직 영이신 말씀으로만 인도받는 것을 보고 ‘주의 영에 이끌리는 사람’이요 그리하여 그가 그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온전한 사람이 된 것은 그의 행위와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그를 그곳까지 말씀으로 이끄셨기 때문이요 그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해 따라갔기 때문이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9월 4일 새로운 영혼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으니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거룩케 구원하시는 그 일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 그는 영이 거듭나니 그는 은혜로 영의 구원을 얻은 것이다.

 

이제 영의 구원을 얻은 사람은 그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혼의 구원을 바라보고 나가되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른 그의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의와 인격이 나타나니 그는 은혜로 혼이 의롭고 거룩하게 구원을 얻은 것이다.

 

혼의 구원을 얻는 사람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로 살과 피를 드린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도께로 받은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의 것을 받으시고 그에게도 그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시니 그는 은혜로 육의 구원도 얻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를 원하며 땀과 정성을 드려 가꾸지 않아도 생명이 자라며 자신이 애쓴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이방인가운데는 늘 복권 부동산 주식에 마음을 두며 땀과 고난이 없는 열매를 바라는 자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거듭날 때 이미 혼과 육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주장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영의 구원인 거듭남과 그 후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혼의 구원에 이르며 마지막에는 거룩케 된 피를 뿌리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마지막에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얻어 부활하므로 아버지의 그 영광에 이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거룩의 시작인 거듭남과 거룩의 완성인 온전한 구원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요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아버지께로 진리를 얻지 못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게으른 이방인처럼 땀 없는 열매를 원하는 악함과 게으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듭난 모든 자들이 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듭난 자의 말과 행위를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정직한 땀을 원하신다. 또한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땀 흘리며 정직하게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그 성품과 반대되는 악함과 게으름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면 그 마음이 원수에게로 온 것임을 깨닫고 돌이켜야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온전한 구원의 길을 걸으려면 우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영이 일어나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영이 일어나므로 이제는 아버지의 뜻인 그 거룩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된 영혼을 거듭난 영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거듭난 영혼이 영을 얻지 못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또다시 굶주려 죽어가는 영도 있다. 이때 그 죽어가는 영이 다시금 말씀을 받으면 되살아난다. 그리하여 다시금 거룩을 이루어 가게 되니 그러한 영혼을 보고 ‘새로운 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죽어가던 영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순종의 마음을 품을 때 그의 영이 새롭게 되니 그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8일 겸손한 영혼

사람은 보통 자신을 낮출 때 겸손하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낮추면 더 겸손하게 본다. 하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겸손은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면 당연히 자신을 낮추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라는 것은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겸손한 성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영에도 그 성품이 있으니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겸손한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되는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영혼들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의롭게 여겨 자기의 생각을 따르며 자기의 뜻을 이루어가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따르므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거룩한 열매를 맺는다. 동시에 자기의 영혼과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길 때 그 사람의 영은 겸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종과 사람의 육체를 창조하셨다. 또한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과 그 안의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위나 위치를 드러내거나 자기의 말을 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이 창조한 모든 종과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순종을 통해 거룩케 되라는 아버지의 뜻만을 전하셨다. 또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시므로 아버지와 모든 만물에게 그 겸손함을 보이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교만한 자는 멀리하시나 겸손한 영혼은 자신의 가까이에 거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에 앉아계시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우치는 자도 생명의 아버지와 아들께로 가까이 거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아버지께서 주신 선하고 깨끗한 마음도 있으나 원수가 심은 선악과라는 가라지로 인하여 자기의 욕심과 뜻을 이루려는 생각도 있다. 그러니 선악에 이끌리는 자는 그가 어떠한 아름다운 말과 행위를 해도 그 아름다운 말과 행위를 통해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그 죄의 뿌리를 뽑아내라고 하신다. 또한 자기에게 이끌리지 않고 거룩하신 영에 이끌려 그 깨끗한 마음으로 거룩한 열매들을 맺으라고 하신다. 사람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자신의 가까이 나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 겸손한 영혼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한다. 즉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반면 교만한 영혼은 아버지의 뜻은 이루지 않고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바꾼다. 그리고 늘 그것을 이루어가며 그 안에서 선악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다. 그러면서 자신 스스로 욕심 많은 신(원수)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말씀에 불순종한 그 교만한 신은 멀리하시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순종한 자는 가까이 하신다. 그리하여 겸손한 그가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자녀가 되니 겸손한 그가 그리스도와 같은 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도 배우며 낮추며 용서를 구함이 마땅하나 아버지께서는 모든 생명의 근원되시며 전지전능하시며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거룩하심이 완전하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당연히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에 애씀이 마땅하나 아버지의 이 뜻에 순종하는 자가 없으니 겸손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21일 정직한 영혼

만일 사람의 말이나 태도 그리고 행위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반면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거짓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과 혼에 이렇게 정직하거나 거짓된 성품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에도 정직한 성품이 있으니 ‘정직한 영’은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혼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환경과 경험이 셋째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A라는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의 영원한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B라는 말씀을 주신다. 그를 세상에서 이끌어내시어 그 죄로부터 거룩케 하시므로 자신의 가까이에 이끄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은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종과 불순종의 기준은 욕심과 의로움이다. 즉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붙들거나 의롭지 않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는 불순종하고 그 반대는 순종한다. 그러므로 끝까지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며 불의한 자신을 붙드는 자는 끝까지 불순종하되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A를 원해도 B라는 말씀을 마음에 받아 순종한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환경과 경험에 비추어보면 순종하기는커녕 받거나 듣기도 힘든 말씀이다. 하지만 순종하는 그는 정직한 자이니 그것은 그의 마음이 아버지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어떤 사람이 거짓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때 자신의 욕심과 이익에서 돌이키는 사람은 거짓말을 멈추니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또한 어떤 여자가 자신을 남자보다 더 의롭고 지혜롭게 여기니 입을 열어 남편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거룩한 공동체로 들어왔을 때는 잠잠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배우라고 하셨다. 이때 자신의 의로움과 교만을 내려놓는 사람은 남편에게 순종하기 시작하니 그도 정직하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는 불순종이 너무 많으니 불순종하는 자가 옳은 것처럼 보이고 순종하는 자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게다가 항상 많은 자들의 목소리가 크며 이긴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가 적은 지금은 아버지의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 순종하려면 얼마나 큰 아픔과 저항이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후 정직했다. 즉 욕심을 품고 범죄한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주시는 그 책망과 채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정직한 영혼에 대해선 그의 영혼을 새롭게 살려주신다. 그리하여 그는 그 약속을 붙들고 침상이 젖도록 간절히 회개하며 자신의 영혼을 새롭게 해달라고 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윗이 회개를 통해 그의 영이 새롭게 되므로 아버지와 그 기쁨과 평화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 은혜를 다윗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시오 모든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룩을 모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씩 하나씩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자는 아담이 범죄해 타락하기 전에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된 그 시점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또한 그 정직한 영의 성품을 유지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의롭고 거룩한 그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간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정직한 그가 썩어질 육에서 벗어났을 때 그가 맺은 의와 거룩의 열매에 맞게 그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14일 주의 손에 부탁하는 영혼

사람들은 눈으로 산파나 산부인과 의사의 손이 태어나는 아기를 받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는 사람이 이 첫째하늘에 태어날 때 사람의 손에 자신을 부탁하는 것처럼 본다. 또한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생명의 씨를 보고는 사람이 스스로 그 생명의 씨앗들을 만든다고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생명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아버지의 지혜로우신 생명의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에 의한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그리하여 그 자녀들에게 의롭고 거룩한 기쁨을 영원토록 주시려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위해 사람의 창조와 번성을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셋째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왔음을 상징하여 씨와 밭이 만나 세포분열을 하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머리가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다음으로 심장 허리 아버지의 영광 그리고 다리 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스스로 씨와 밭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사람의 손을 의지해 이 땅에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혹은 사람의 손에 의해 길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씨와 밭이 만날 때부터 그리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의 손길이 사람을 손수 짓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육이 창조되면서부터 영을 받을 때부터 심지어 씨에서부터 아버지의 손길을 의지했듯이 사람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올 때 즉 죽음을 맞이할 때도 아버지의 손길을 의지하며 아버지께 자신을 부탁하는 성품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물과 같은 영혼이 한평생 자신을 담았던 그 그릇과 같은 썩어질 육체에서 나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아버지의 뜻을 이룬 영혼은 자기에게 영을 부어주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또한 육체를 지으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기의 영혼을 맡기는데 이를 ‘주의 손에 부탁하는 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로 부탁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거룩하신 아버지와 거룩을 이루신 아들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받는 그 고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며 육과 세상이 아닌 그리스도만을 죽기까지 따른 자가 육에서 나올 때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8월 7일 독을 마시는 영혼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온 몸을 쉴 새 없이 돌고 있는 피를 그 사람의 영혼이 만들어내도록 계획하셨다. 또한 사람이 아버지의 그 뜻에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빨간 피안에 깨끗하고 건강한 그 하얀 피(백혈구)가 생성된다. 물론 빨간 피안에 섞여있는 하얀 피는 빨간 피의 양보다 적고 또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냥 빨갛게만 보인다.

     사람은 또한 어릴수록 그의 영혼이 깨끗하니 영혼이 깨끗한 유아 때 백혈구의 수치가 가장 높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영혼은 늘 백혈구를 만들어내어 더러운 질병이 없는 전혀 없는 몸으로 변화되어 그 깨끗함을 유지한다. 즉 사람은 먼저 그의 영혼이 깨끗하고 거룩하니 그 피안에 백혈구가 많이 생성되어 그의 몸도 깨끗하고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토록 중요한 그 하얀 피가 없으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그 육의 생명을 잃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영혼의 생명을 잃는 자도 적지 않다.

     우선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며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의와 생각을 따르며 또한 육의 욕심을 이루고자 이 세상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도 순종치 못하니 그는 그 선악의 죄로 불의와 죄악을 쌓아간다.

     이제 그 불순종과 죄의 결과로서 그의 영혼은 하얀 피를 만들지 못하며 약해진다. 게다가 암세포와 같은 더러운 것들이 그의 피에 퍼진다. 그러다 그 더러운 것들이 몸의 한 부분에 정착해서 그 한 부분을 약하게 한다. 하지만 영혼이 하얀 피를 만들지 못하니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리하여 그 더러운 질병이 그 부분을 썩혀서 그의 육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육이 사망으로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치 않으므로 그가 독과 같은 더러움을 마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도 서서히 ‘독을 마시는 영의 성품’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영과 마음이라는 인격이 있으니 그의 영이 아무 때나 독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의 영이 의지를 잃었을 때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흑암의 세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서 아버지의 말씀에 경솔했던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보이는 육과 이 세상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심지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 자신이 빠져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망의 중독에서 깨어남을 원하는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 사람의 영이 언제부터 의지를 잃고 독을 마시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요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사람은 자신이 처음에 거듭날 때 가졌던 그 살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버릴 때부터 영이 의지를 잃고 독을 마시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과 인격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면 영이 그 중독에서 깨어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대로 그러한 영혼을 깨워주시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인격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버지와 함께 셋째 하늘에서 영원토록 거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을 의롭고 거룩케 하려는 그 마음의 소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31일 다스려지는 영혼

인격체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백성은 왕의 다스림에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아내는 남편의 말에 부하는 직장상사의 말과 다스림에 따르므로 그가 사랑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피조물들은 창조자의 의로우시고 정직하신 말씀과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생명이 의롭고 거룩하고 풍성해진다.

     이처럼 사람은 다스림을 받는 존재이지만 그리고 다스림을 받는 것이 옳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무조건 다스림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다스림이 만일 불의하고 죄악된 다스림이라면 자신도 불의와 죄를 이루어 사망으로 들어가며 반대의 다스림이라면 의와 거룩을 이루어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기 원하는 자에게 다스림 받는 것을 기뻐한다. 자신의 마음도 사실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익을 먼저 구하는 사람의 다스림을 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역시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또한 자신을 다스리는 자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다스림의 끝에는 생명과 사망이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가 어떠한지를 돌아본다.

     사람을 다스리는 세 종류의 인격체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 세 가지의 다스리는 인격체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다스림 당할 수 있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그 다스림 외의 다른 다스림은 거부할 수도 있으니 사람은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첫째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그 목적을 이루시고자 사람을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선과 의와 거룩에 이르니 그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른다. 또한 자기의 주위사람들에게도 그 거룩한 것을 비추어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둘째 오직 자신의 욕심과 또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원수도 불법적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의 욕심과 이익만을 구하는 자는 원수의 다스림과 말을 듣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불의와 죄악을 이루어가게 된다.

셋째 사람은 인격체이니 자신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도 원수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들처럼 불의와 죄악을 이루어간다. 그 이유는 사람의 안에는 죄의 뿌리가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의로운 자가 없기 때문이요 원수는 사람의 혼에 육신적인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흔히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은 이 세상의 사망권세를 쥐고 있는 원수에게 전혀 다스림 받지 않는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혈기를 부리거나 썩어질 육의 욕심을 채우고자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따라가는 자가 적지 않다.

 

결국 사람은 자기에게 현재 맺히고 있는 그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의 열매를 가만히 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누구에게 다스림을 받았으며 또한 현재 누구에게 다스림을 받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생명을 위하여 앞으로는 누구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가도 결정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다스리시되 오직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하지만 인격체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은 의롭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심을 믿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땀에는 열매가 있으니 말씀에 다스림을 받으므로 고난을 받은 그들에게도 역시 열매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다스려지는 영’의 성품을 품고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으면 그의 영혼이 온유해진다. 즉 한두 가지의 말씀에라도 순종하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구원해주시는 그 때를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나중에는 한 말씀도 버리지 않고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절제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큰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24일 강건한 영혼

육신의 부모가운데 이방인은 자녀들의 영혼의 건강이 아닌 육체적인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맛있고 좋은 것들을 골라 뒤따라 다니며 먹인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며 키가 작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면 자녀의 육적인 건강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는 영혼의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는 거룩한 종들을 통해 죽은 세포들과 더러운 피들을 몸에서 빼주시므로 사람의 몸도 건강케 하시며 또한 여러 가지 위험한 사고들과 질병들로부터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고 늘 감사한다.

물론 사람의 육체도 기왕이면 건강해야한다. 그래야 다시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때까지 더럽고 악한 병에 걸리지 않은 그 깨끗한 몸으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에 온 힘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질병이 없고 건강한 육체가 있듯이 사람의 영에도 ‘강건한 영’이 있다. 강건한 영이란 그리스도의 비밀들 가운데 기초단계의 말씀인 말씀의 기초(그리스도 도의 초보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영을 뜻한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둠의 세력들이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지 못하도록 또한 아버지의 의로우신 셋째하늘에 마음을 두지 못하도록 육과 세상의 온갖 것들을 통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고 있다. 그러므로 원수가 이끄는 육의 욕심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그 썩어질 것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취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그것들이 썩어져 사망으로 들어갈 때 자신도 함께 사망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원수는 욕심을 품고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는 자에게 육과 세상의 영광을 준다. 그러므로 욕심이라는 죄를 가진 자들은 그것을 취하면 취할수록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어둡고 악한 그 영들은 강건한 영에는 침투하지 못한다. 리하여 영이 강건한 사람은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 그리고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을 조금도 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영이 강건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강건한 영의 성품을 지닌 사람의 뼛속 깊은 곳에는 이미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말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 흑암의 세력들은 강건한 영을 소유한 사람의 뼈의 마디마디에 있는 혼속에 들어갈 수 없다. 이미 빛이 거하고 있는 곳에는 어둠이 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강건한 영혼은 그의 육신에서 늘 거룩한 생각이 나오며 불의한 말과 행위를 취하지 않게 된다. 또한 눈에 보이는 그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들에 대한 어리석은 마음을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의 기초를 배워 그의 영이 강건해졌다고 해서 그가 거룩에 이른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기초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이르기 원하는 영혼은 날마다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야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의 의를 위한 핍박과 육신의 고통과 피 흘림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진리이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따라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그 온전하심에 십자가로 이르셨기 때문이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7일 시원케 하는 영혼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서 멋진 경치를 즐기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바로 앞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만일 몇 발자국만 더 디디면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도 눈을 즐겁게 하는 절경 때문에 그 사람에겐 그 절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본 어떤 다른 사람이 그의 바로 앞에 서서 ‘앞에 절벽이 있습니다. 돌이키세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그 절벽이 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참으로 이 산의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달리기를 계속하십시오!’라고 말해주었다.

 

그 절벽은 바로 누구에게나 다가오고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말한 자와 계속달리라고 말해준 자는 사람의 영혼을 이끄는 목자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러 곳에서 벌어진다.

 

그러므로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첫 번째 사람의 말은 원치 않고 오히려 두 번째 사람의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그 육과 세상에서 끝까지 나오지 못하며 거짓된 목자는 그들을 통해 육과 세상의 유익을 취하며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육의 사망으로 이끄는 것이요 영원한 사망으로 이끄는 것이다. 즉 다른 자들의 생명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있는 자들은 두번째와 같은 말을 전하는 자들을 보시며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실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그 썩어질 생명 없는 것들과 헛된 이 세상으로 인도하는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대해서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고 공평하신 심판의 칼을 갈고 계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치 않는다할지라도 말씀에 따라 정직하고 바르게 첫 번째 경고를 하는 사람도 있다. 즉 육과 세상에서 그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므로 그리스도의 심판을 준비하라고 전해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의 영혼은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는 뜻에서 ‘시원케 하는 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원함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한편 사람에게는 차가운 영의 성품도 있으니 말씀이 없는 영을 보고 ‘차가운 영’이라고 한다. 이들은 차가우면서도 진리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인격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도 차가운 자에 대해서는 그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의 말씀을 원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10일 쇠한 영혼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물고기가 시원하고 깨끗한 물에서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물고기는 절대로 물을 떠나서는 살수 없으며 좋은 환경에서 사는 물고기는 물에서 건져 올렸을 때 너무나 싱싱해서 퍼덕퍼덕 거린다.

 

그러나 차가운 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꺼내지 않으면 곧 죽어 버린다. 혹은 뜨거운 물과 찬물에 번갈아가며 담겨진 물고기는 힘을 잃고 서서히 죽어간다. 또한 물 밖에서 죽은 고기는 그 미끌미끌하던 것이 참으로 까칠까칠 해진다.

그런데 사람의 영에도 이렇게 힘을 잃고 죽어가는 성품이 있으니 이를 ‘쇠한 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원한 물에서 살아야하는 물고기가 뜨거운 물과 찬물에 번갈아가며 담겨진 것처럼 그리스도라는 남자와 이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그 사람의 영은 점점 쇠해진다. 그러면서 그의 영은 서서히 말라서 죽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영혼은 물고기처럼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영에도 사망과 죽음의 상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생명이시며 거룩하신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살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은 자녀를 얻으시어 그들에게 모든 영광과 권세를 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선하고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시어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셨으니 그렇게 살려주신다.

이로 보건대 자신의 영이 쇠해지지 않고 오히려 생명이 풍성해지기 원하며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의 부활을 소망한다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마음에 두며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닮고자 애씀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구원의 시작인 거듭남의 은혜를 입고도 스스로 쇠한 영의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그는 일용할 것을 내려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육적인 것을 염려하며 오히려 그 썩어질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이 세상에 마음과 몸을 둔다. 그러다 세상에서 육을 취하는 것이 힘들 때는 다시 그리스도를 찾는다. 하지만 자신의 육적인 필요와 염려와 욕심이 채워지면 자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두고 다시금 그리스도를 떠난다. 그러다 그리스도를 원할 때는 또다시 그리스도를 찾는다.

 

그러나 뜨거운 물과 찬물에 번갈아가며 담겨진 그 물고기처럼 자신의 영을 이렇게 쇠하게 만드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영혼이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두남자의 사이를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7월 3일 양심이 화인 맞은 영혼

사회와 격리되어 자유를 규제받는 사람이 있으니 죄를 지은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감옥을 벗어나 사회를 다니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원하는 그 죄악을 맘대로 범하지 못하고 또한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한다.

그런데 종종 탈옥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구속받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보다 더 자유를 규제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춘향’이었다.

그녀는 전신에 줄이 묶여 있었으며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예리한 칼이 목을 두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반죄수는 춘향에 비하면 좀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에도 이와 같은 처지가 있다.

사람의 영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나온 것을 아니 자기의 생명을 위해 오직 한 가지 원함과 활동을 한다. 그리고 생명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진리인 그 비밀스런 말씀의 빛을 보기 원하며 그 영에 순종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신의 영이 활동에 규제를 받아 영으로써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영이 있으니 그러한 영혼을 보고 ‘양심에 화인 맞은 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영이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히 악한 영들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영을 거부하고 육과 세상을 좇았기 때문이요 그 어두움이라는 죄 가운데서도 스스로 그 빛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영이 악한 영들에 의해 완전히 둘러쌓여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영이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온 것은 분명하나 생명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는 그 진리의 빛을 인정하지 못한다. 또한 다가오는 심판을 멸시하며 오히려 그 어둠과 규제를 영원히 원하여 양심에 어긋나는 육과 세상의 죄악을 마음껏 즐긴다.

예를 들어 이 마지막 때에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은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과 성을 맺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불의와 죄악을 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얻고도 거룩의 믿음을 떠나 오직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만을 좇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양심에 화인 맞은 영혼은 받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며 마지막까지 육과 세상을 놓지 않은 영혼들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은 후 그 어두운 곳에서 영원토록 슬피 운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껏 즐기며 취한 영혼은 끝까지 불순종하며 믿지 않은 영혼과 함께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 속히 돌이키는 것이 옳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깨끗한 마음인 ‘양심’을 주셨다. 그러므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도 자신이 원한다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탈옥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한 회개와 육과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는 그가 어떠한 죄인이라도 돌이킬 것이요 거룩을 원치 않는 자는 그가 아무리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해도 그 교만의 선악으로 인하여 끝까지 돌이키지 못한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26일 약한 영혼

육신이 자주 아프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보고 허약하다고 한다. 또한 혼적인 부분이 건전하지 못하거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심약하거나 마음에 병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에도 ‘약한 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 각 부분에 정확히 뼈의 마디마디에 혼을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요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요 그것이 뼈를 움직이니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을 미워하는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육신의 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의 혼은 단지 그의 마음이 그것을 결정하면 그 미움의 혼을 받아 그저 말과 행위로 옮기는 것뿐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무엇이든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그 혼을 사람의 마음에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으로 결정하면 자신의 육신을 그 결정대로 얼마든지 움직이거나 혹은 멈출 수도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마지막으로 사람의 머리에 있는 혼은 단지 육체와 마음에서 나온 생각을 받아들여 자신의 육체를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이로 보건대 생명을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을 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사람의 이러한 육과 혼의 관계와 더불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영에도 생각을 함께 두셨다. 그리고 그 영의 생각은 사람의 거룩한 영안에 있으며 영은 거룩한 것이니 그 생각도 의롭고 거룩한 것이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는 순간 그 거룩한 생각을 사람의 영안으로부터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혼 안으로 옮겨주신다. 즉 마음으로 영의 생각이 들어갔으니 이제 비로소 그 생명을 위해 자기의 육과 혼을 움직일 수 있도록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거룩한 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흔히 영이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영은 원래 죽어있는 것이 아니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니 그렇지 않고 거듭남이라는 은혜를 통해 드디어 거룩한 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바로 그 거듭남의 순간부터 이제는 영적전쟁을 시작한다. 즉 자신의 거룩한 생각과 그 육신의 생각이 서로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려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영의 생각은 아버지의 셋째하늘과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향해 육신의 생각은 욕심을 품고 아버지와 원수 되는 생각을 따라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육신을 이끌고자 한다.

 

이때 누구든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사모하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늘 그 거룩한 영의 생각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진 자는 말씀으로 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니 육신을 쳐서 복종시킬 수 있고 육신이 순종하니 몸도 거룩에 이르는 것이다.

 

반면 거듭났으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거룩한 살과 피를 얻지 못한다. 그러니 늘 말씀을 읽고 듣고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니 이러한 사람의 영을 곧 ‘약한 영’이라고 한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9일 불쌍한 영혼

사람들은 말하길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보고 운다. 또한 육적인 삶의 처지가 딱하고 가여운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하루 세끼를 먹고 있는 사람이 굶어서 배고파하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따르며 나쁜 것을 배우면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따르며 좋은 것을 본받아 행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나쁜 사람을 따르는 사람도 불쌍하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도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나 그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오직 그들의 영원한 영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께서는 한 사람을 보실 때 그의 외모가 왕이든 백성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지식이 있든 없든 상관치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오직 세 종류의 영혼을 불쌍히 보신다.

     첫째 아버지께서는 아직 영에 생명이 없는 사람을 불쌍하게 보신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선악의 죄의 뿌리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신의 욕심과 유익만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그 뿌리를 통해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범죄한다. 마치 뿌리가 살아있는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그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이 영원히 사는 영의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욕심을 구하고자 발한 죄들이 있지만 그 속죄의 피를 믿고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그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반면 그 죄를 끝까지 회개치 않고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한 자들은 영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 자신이 범한 그 불의와 죄악들에 맞는 고통과 형벌의 심판을 영원히 자신이 받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혼의 마지막을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오직 영에 생명이 없는 사람을 불쌍하게 보신다.

     그런데 사람도 인격체이니 영의 생명을 얻은 자는 아직 영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의 외모와 상관없이 그들의 영을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죄를 사함 받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으라는 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나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끼리는 불쌍히 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생명이 없이 아버지의 앞에 나오는 자는 영이 아닌 육의 말을 전하니 예수 믿고 부자 되고 건강하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자식이 잘되라는 말을 하며 자기교회로 나오라고 한다. 자신이 처음에 자신의 발로 그곳을 찾은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닌 육과 세상의 복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리하여 그 거짓된 말의 전도를 참된 전도로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갈급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신다.

가난한 나라의 많은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몸이 바싹 말라있었다. 또한 부모도 잃었으니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길거리에 떨어져 흙이 묻은 음식을 주워먹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더러운 음식으로 인하여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부자가 그 아이들을 불쌍히 여겼다. 그러므로 자기의 집안에 왕들이 먹는 음식을 넓은 식탁에 가득 차려놓고 대문을 활짝 열어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그 고아들에게 가서 말하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면 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어떤 아이는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 그 부자를 따라 갔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그 집에 들어가 그 좋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마셨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 그냥 자기가 먹던 것을 먹으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병에 걸려 죽었다. 한편 어떤 아이는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으니 그 부자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아이도 역시 병에 걸려 죽어갔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인격체이시니 모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지만 아무에게나 혹은 강제로 진리를 주시지 않으시고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이제는 오직 영의 말씀에 갈급한 영혼들에게 아들을 통하여 진리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갈급하되 육과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을 따라오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에게 진리를 허락하신다. 그리하여 그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에 순종하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긴 후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인격체이니 진리를 얻은 자는 아직 진리를 얻지 못한 자들의 외모와 상관없이 그들의 영을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이 세상을 따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진리에 순종하라는 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자들끼리는 불쌍히 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는 자들이 무엇을 전하리요? 그리하여 진리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그것을 통해 자신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리가 없어 의와 거룩의 열매가 없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비진리를 진리라고 하며 전하니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말들의 뜻도 확증하지 못한다.

     셋째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인도받는 사람을 불쌍히 보신다.

     모든 사람들의 영혼은 선한 영과 악한 영으로 인하여 선이나 혹은 악으로 이끌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영혼의 이끌림에 의하여 자신에게서 나온 말과 행위가 들리며 나타나는 것이요 그 이끌린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영에게 이끌리는 영혼은 늘 불의와 죄로 또한 세상으로 이끌린다. 이때 그가 그 죄와 세상에서 나오길 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도 그를 그 웅덩이에서 건져주시지만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또한 세상을 원한다면 구원해주시지 않으신다.

     하지만 선하신 목자께 이끌림을 받지 아니하고 불의한 자신과 이 세상을 따르는 사람이 어찌 그 온전한 생명에 이르리요? 그러므로 영의 생명을 얻은 자에게 거룩한 육체의 생명도 주시길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이끌리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자녀의 약속에서 멀어져 가는 그 영혼을 보시고 향하여 ‘불쌍한 영혼아!’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사람도 인격체이니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인도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순종하므로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만을 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인도받는 사람들끼리는 불쌍히 여기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과 상대가 누구에게 이끌림을 받는지도 모르고 서로가 서로를 따른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12일 안정한 영혼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수학은 기초가 없으면 전혀 손댈 수 없다. 수학 공식을 외우지 못하거나 응용을 하지 못하면 기초가 없으니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학문제의 주관식 답을 어떻게 쓸까하여 0 1 -1을 번갈아 쓰곤 했던 것을 학창시절 수학을 못했던 사람은 누구나 경험했다. 또한 수학시간이 얼마나 싫고 지겨웠는지 그리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킬까봐 얼마나 불안했던 지도 기억한다.

 

반면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오히려 선생님이 자신에게 시켜주지 않나 하는 여유로움을 즐긴다. 그리고 수학시간에 앞에 나가서든 혼자 문제를 풀든 시험지 앞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푸는 재미를 즐긴다.

 

사람의 영에도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기초적인 성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안정하고 고요한 영’의 성품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적세력이 있으니 하나는 아버지와 그리스도께로 나오신 거룩하신 영이시며 다른 하나는 원수에게로 나온 거짓된 영이다. 그런데 원수는 아버지의 뜻을 대적하는 자이니 그 거짓된 영은 사람을 거룩케 하시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그 뜻을 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항하며 대적한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을 거룩한 육체로의 부활로 이끄는 그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신다. 하지만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거짓된 영은 그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바꾼다.

 

거짓된 영이 거룩한 육체와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가장 쉽게 이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육적인 현실이다. 즉 육을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늘 육적인 생활과 현실을 바라보며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영들에게 이끌리는 사람은 그의 생각과 마음에는 늘 육적인 염려들이 떠나지 않는다. 또한 육적인 즐거움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얻을까하는 생각도 많다. 그리하여 그는 그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마음이 있으니 그로인하여 진리와 복음을 듣지 못한다. 설령 들어서 알아도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고난과 영광의 그 십자가 길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의 기초가 있는 사람은 그 악하고 거짓된 영의 세력들이 아무리 육적인 현실로 짓눌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단 그 말씀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거기에 흠뻑 빠진다. 그리하여 그는 항상 자기의 생각을 돌이키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의 기초가 있기 때문에 육적인 생활과 이 세상의 현실가운데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그리스도만을 따라가는 사람의 영의 성품을 ‘안정한 영혼’이라고 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6월 5일 불붙는 영혼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들을 얻기 원하셨기에 태초에 이 세상과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흙으로 빚으시어 그것을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실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으시다. 그리고 아버지의 품에서 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지혜와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아버지의 손에서는 구름(물)과 바람과 빛과 흙 이 네 가지 물질이 무한하게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하고 거룩한 것들로 아버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빚어서 만드셨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종들을 통해 그 네 가지 물질을 빚어 말리신 것이 바로 사람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태양이다. 또한 아버지의 그 12별들이요 지구의 생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사람의 육체와 종들이 입고 있는 형체도 그것들로 창조하셨다. 종이 입은 하늘에 속한 그 형체와 둘째사람이 입은 육체도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처럼 빚어서 말리신 것이다.

사람과 종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아버지께로 거룩하고 영원한 영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누구나 아버지께 나가 자신이 얻은 그 영원한 생명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께로 최고의 은혜를 받은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낙원이 있는 그 둘째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시어 이 첫째하늘과 합하신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 첫째하늘은 큰소리로 떠나가며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임하시므로 원수가 더럽힌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공의와 사랑으로 이 땅을 천년동안 다스리신다.

하지만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그 천년왕국이 마쳐질 때 불로 태워 멸망하실 것도 태초에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때에 아버지께서는 종들을 통해 원수와 원수의 사자들과 거짓선지자들과 아들의 피가 없는 악한 자들과 심판대에서 그리스도를 거부한 모든 이방인들도 죄의 형벌이 있는 그 태양의 유황불로 넣으신다.

그 마지막 때에는 도적 같이 임하는 그리스도의 날과는 달리 영혼을 가진 모든 자들은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의 만물이 태양의 뜨거운 불로 들어가며 녹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종들을 통해 어떤 자들은 태양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어떤 자들은 그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던지시므로 그 심판을 의롭고 정직하게 마치신다.

이와 같이 불은 마지막 심판 때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모든 영혼이 있는 존재들을 의롭고 거룩하게 심판하시어 그 심판에 맞는 형벌의 상급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불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의로우시고 정직하신 불이다.

그런데 사람의 영에도 심판에 쓰이는 그 불과 같은 성품이 있는데 이를 ‘불붙는 영’ 혹은 ‘불타는 영’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의 영혼은 아버지의 선하신 창조와 구원의 계획과 그리고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경륜의 뜻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과 상급과 멸망의 모든 심판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성품을 닮아 그 마지막의 심판에서 더 많은 자들이 구원 얻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불타는 영혼은 오직 아버지의 그 마지막의 심판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9일 교만한 영혼

사람들은 흔히 외적으로 잘난체하며 건방진 태도를 가진 사람에 대해 교만하다고 여긴다. 반면 경우에 맞게 존댓말을 잘 사용하거나 인사를 할 때 고개를 많이 숙이거나 그의 입술로 늘 ‘예 예’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본다.

교만한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늘 거부한다. 물론 그의 입술과 태도는 상대방의 말을 받는 것 같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으며 자신이 상대방보다 위에 있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낮추지 않고 상대방을 판단하며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위에 있다는 마음을 품으면 교만해질 수 있다. 그러나 겸손해지기 원한다면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와 모습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어떠한 마음에서 나오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하신 겸손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교만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깨닫기 보다는 아버지의 말씀과의 관계에서 깨달아야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씀과 관계할 때 말씀을 판단하면 그는 아버지보다 더 위에 있는 자이니 ‘교만한 영혼’이다. 교만한 자는 아버지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순종치 않고 게다가 불의와 죄로 가득한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는 말씀을 보고 듣고는 쓰레기 같은 글로 여긴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는 여자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가장 큰 계명을 주셨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끝까지 자신의 마음과 생각대로 남편을 움직인다. 한편 남자에게는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큰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어떤 남자는 끝까지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두고 헛된 이 세상을 따라간다.

둘 다 아버지 앞에서는 교만한 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와 생명의 근원되시며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로부터 교만하다는 말을 듣기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자신을 낮추지 않고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교만한 영혼은 멀리하신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교만한 자는 그 말씀에 순종치 않는다. 그리고 거룩케 하는 진리는 순종치 않는 그를 씻어주지 못하니 그는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맏아들로서 가까이 하신 것처럼 겸손한 영혼도 가까이 하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의 생명을 얻어 아버지께로 가까이 간다. 그리하여 그는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22일 거짓된 영혼

거짓의 특성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을 속인다는 것이다. 또한 그럴듯한 거짓말에는 누구나 쉽게 속을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요 상대방이 속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S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A는 오히려 S를 철석같이 믿었다. 또한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속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S는 A가 죽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S를 완전한 거짓말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짓된 영적존재들이 있으며 그 거짓된 영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진리의 영을 따르지 않고 거짓된 영을 따르는 것은 그에게 어리석은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안에 이미 그 거짓된 영과 같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버지께서는 욕심과 거짓이 전혀 없으시며 오직 참된 진리만을 내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께로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서도 참되시니 오직 마음이 참된 자를 이끄신다. 또한 마음이 참된 자도 거룩하신 영의 참된 인도하심을 따른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사람을 인치시어 그가 아버지의 뜻인 거룩의 길을 걷도록 하신다. 또한 거듭난 그 영혼을 오직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아버지와 같은 온전하심과 거룩하심을 이루도록 하신다. 이로 보건대 거듭난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거룩에 애쓰고 있다면 그는 거룩하신 영께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반면 그가 만일 거룩에 애쓰지는 않고 자기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면 그는 거짓의 영에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참되지 못한 곳에서 온 거짓된 영을 따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욕심과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마음이 자신의 안에 있기 때문이요 그 거짓된 자는 그런 자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에게로 온 거짓된 영에게 속고 있는 자는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으면서도 사망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은 생명이 있다고 속는다.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행위를 드리며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고 있으나 다른 자들은 행위와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속는다. 또한 말씀에 순종이 없으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한다고 속이거나 사랑을 바랄 수 있다. 또한 모르면서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혹은 진리가 틀리고 오히려 자기의 경험과 지식이 맞다고 속는다.

 

원수와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충분히 속일 수 있다. 오직 자기의 욕심만을 품은 그들은 육과 세상의 욕심을 품은 사람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속여서 이끄는 거짓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된 영에게 속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구하는 죄악된 마음을 회개하고 가만히 말씀을 펴서 맞추어 보면 얼마든지 속지 않을 수 있다. 참되신 아버지께서는 참된 자는 속지 않도록 그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5일 흠 없는 영혼

거듭난 영혼들이 한두 번은 들어본 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휴거 받지 못하면 7년 동안의 큰 고통과 대환난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지 않고 마음과 몸을 거룩에 두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르며 흠이 없어지니 정결한 그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림을 받는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은혜를 주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보다는 그 이유로 인하여 휴거와 재림과 같은 종말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어떤 영혼은 육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며 정작 자신은 늘 육의 염려를 하며산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조금도 취하지 않으셨음을 믿지만 자신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을까라는 생각에 푹 빠져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느 때에 오신다고 말하며 끝까지 육과 세상을 따른다. 그러다 마지막순간에 모든 것을 정리하므로 아버지를 속이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아버지의 눈에 참으로 악한 자들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하심을 믿고 자신을 거룩하게 드리기 원한다. 즉 그리스도의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가 되고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끊어내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듭나므로 거룩의 첫발을 떼고 거룩한 생각이 육신의 생각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고난을 받는다. 그리고 그 거룩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른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이들도 역시 그 악하고 거짓된 자들처럼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에 온 마음이 가있다. 그러나 마음과 목적이 다르다. 즉 아버지와 아들께서 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바꾸어 이루지 않고 자신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 거룩하신 신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목적이지 휴거가 목적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이렇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첫사랑을 잊지 않고 깨어있는 영혼에게는 진리를 허락해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자를 자신의 거룩한 몸으로 받아 주시는지 알고 있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자에게 그 거룩한 육체를 주시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받아주시는 기준은 이것이니 그가 거듭난 후에 생각의 구원까지 이룬 자이다. 즉 그는 아버지와 원수가 되는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그를 의롭다 칭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구원을 이룬 자도 육신은 있으나 그의 혼에서는 늘 거룩한 생각이 나온다.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썼으니 아들께서 자신의 살과 피로 그들의 살과 피로 거룩케 하신 것이다. 그리고 육이 거룩해졌으니 혼도 거룩한 생각만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의 구원을 이루어 거룩한 생각만을 하는 사람의 영을 ‘흠 없는 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흠 없는 영혼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깨끗한 영혼을 흠 없는 영이라고 한다.

남자는 누구나 자신에게만 마음과 몸을 주는 여자를 원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 그 거룩하고 흠 없는 영혼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원하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8일 거룩한 영혼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며 의와 거룩의 빛으로 충만하시니 오직 거룩하시다. 또한 낙원이 있는 그 둘째하늘의 심판대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거룩하시다. 그리고 그 두 분으로부터 나오시어 이 첫째하늘에 충만히 거하시며 또한 거듭난 자들의 마음 안에 계신 거룩하신 영께서도 거룩하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에도 ‘거룩한 영’의 성품이 있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람의 혼의 구조를 깨달아야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사람의 육신을 창조하실 때 그 안에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혼(魂)을 넣으시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첫째 뼈의 마디마디에는 육신이 하기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혼들이 있다. 둘째 육신의 생각의 결정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혼에서 일어난다. 셋째 흔히 머리(두되)라는 것은 단지 육신이 말한 것을 받아들이며 오직 입을 열어 말하게 한다.

그런데 욕심과 교만으로 죄를 창조한 원수와 동일한 마음을 품은 흑암의 세력들은 가장 먼저 사람의 뼈의 마디마디에 있는 혼들을 잡는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의 마음을 결정을 하는 혼을 잡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완전하게 잡은 후에는 세 번째로 잡는 것이 바로 머리에 있는 그 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보는 신체불구는 뼈에 흑암의 세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순종과 거룩을 향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그 결정을 번복하는 자는 뼈와 또한 마음에 흑암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가 다 잡힌 자는 나이가 많아도 어린애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세 가지 혼이 다 흑암에 감싸여있기 때문이다.

또한 흑암의 세력이 자리 잡은 결과 사람은 균형적인 육체 성장도 저해를 받는다. 그리고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좇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이 흠이 없으면 그 어둠의 세력들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영은 오직 진리의 빛이 들어오고 거룩하신 영께서 임하시므로 그의 흠이 없어진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써 사람의 영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빛과 거룩하신 영의 임재로 흠이 없어져 그 흑암의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을 ‘거룩한 영’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5월 1일 지혜로운 영혼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해서 성공하는 것을 지혜로 본다. 하지만 사물의 도리를 알고 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것이 이방인들이 알고 있는 ‘지혜’의 뜻이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라도 옳고 그름을 안다면 선악으로 인한 죄의 심판은 받지만 혼적으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혼에 이렇게 지혜의 성품이 있듯이 사람의 영에도 지혜로운 성품이 있으니 이를 ‘지혜의 영’이라고 한다.

사람의 경우 그의 영이 지혜로우면 우선 말씀의 깊이를 알게 된다. 또한 마음에 지혜의 감동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이 지혜롭게 되면 첫째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의 뜻과 창조의 계획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창조자이시며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전하신 그 말씀들의 의미와 깊이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사람의 영이 스스로 깨닫는 것도 있으나 그 뜻과 계획의 많고 깊은 부분들을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서 깨닫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영은 두번째로 아버지의 깊은 것까지도 아시는 지혜의 영이신 거룩하신 영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지혜의 감동을 주시거나 계시를 주신다. 그리하여 그가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육은 썩어질 것이요 영은 영원하며 이 세상은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가나 아버지의 나라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결과적으로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왕국과 아버지께서 거룩한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그 영원한 셋째하늘에 소망을 두고 호흡하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 거듭난 사람이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계신 곳만을 소망하며 나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지혜로운 영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거듭나고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육과 세상에 자기의 마음을 둔다. 그리고 썩어져 사망으로 들어갈 그 헛된 것들을 취하고자 호흡하며 점점 이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이방인가운데 지혜롭지 못한 영혼은 잠시동안 육과 세상을 즐기지만 그것을 즐기며 불의와 죄를 쌓는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복음도 거부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그들은 유황불 못에서 그 죄의 대가를 받는다.

사람은 누구든지 지혜를 얻기 원한다면 당연히 아버지께 간구하며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 마음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아버지와 아들께만 두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결국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기 전까지는 거룩하신 영을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며 감동도 얻지 못하니 믿는다 할지라도 이방인처럼 육과 세상을 향해 뻗쳐진 그 넓은 길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길을 달리며 호흡할 수밖에 없으니 어리석은 그는 마지막에 썩어질 것을 얻게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24일 간음한 영혼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육체적으로 성관계 맺는 것을 간음(姦淫)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육신이 간음을 하듯 사람의 영도 간음을 하되 ‘간음한 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육신으로 간음행위를 하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은 간음한 것이다. 또한 그 육신으로 행하는 간음을 끝까지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품는 사람도 역시 간음한 영혼이다.

간음하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는 그 간음한 죄의 대가를 받으니 유황으로 타는 무저갱의 불 못에서 그의 눈썹과 머리털이 공중에 매달려진다. 그리고 그의 간음한 몸은 시뻘건 유황불 못의 강에서 고통을 당한다. 또한 불구덩이 안에서 육체가 타들어가며 그 얼굴은 숯처럼 검게 변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그런데 간음하고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 자는 이런 고통을 잠시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받는다. 물론 그리스도의 피가 거룩하심을 믿는 자가 간음을 저지른다면 그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임이 당연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자신이 신랑이신 그리스도예수가 아닌 이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두고 있을 때 그는 간음하고 있는 영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거룩한 곳에만 있어야할 자신의 몸이 늘 세상과도 함께 하는 것을 보며 알 수 있다.

여기서 거듭난 자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육체적인 간음도 간음이나 자신의 육의 욕심을 채우거나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취하고자 이 세상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두는 것은 영적인 간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것을 믿지만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영적인 간음을 정당화한다. 또한 그렇게 말하며 간음을 부추긴다.

반대로 믿는 자들의 안에는 간음하는 영혼만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숫처녀가 되는 영혼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거룩케 하시어 자녀삼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에게 거룩한 살과 피를 내주신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자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두지 않는다.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에 빠지거나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 믿음과 함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과 몸을 드려 그리스도를 따른 그는 거룩에 이르니 그의 영혼은 숫처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숫처녀가 그리스도를 기다리다 마지막에는 들림을 받거나 혹은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정결함과 거룩함을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그에게 입혀주시니 그는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7일 음란한 영혼

자신의 남편이 있지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나 몸을 주는 여자를 음란한 여자라는 의미에서 음부(淫婦)라고 한다. 물론 자신의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탐하는 남자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첫사랑의 약속을 잊고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른 여자와 남자에게 주는 사람을 보고 음란하다고 한다. 그리고 음란함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오히려 더러운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아내와 남편을 늘 사랑하거나 순종하며 따르지 않고 욕심을 품은 후 다른 육체에 마음과 몸을 주듯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외의 다른 더러운 영들에 의하여 그 마음과 생각이 지배를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영은 ‘음란한 영’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사람의 육체를 빚으시고 깨끗한 마음도 지어 영원히 사는 거룩한 영을 그 마음 안에 불어넣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불의와 죄를 행할 때 그 양심과 거룩한 영으로 인하여 마음이 찔린다. 그리하여 그 찔림을 통해 깨끗한 마음과 거룩한 영을 주신 아버지께서 의로우시며 거룩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수는 사람의 마음에 선악과라는 죄의 뿌리를 심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의를 위하여 자신의 선악을 따르는 자는 불의와 죄를 범하게 되어있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과 관계하기 원한다. 오직 진리를 따르며 순종하므로 원수가 심은 죄의 뿌리를 자신의 마음에서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깨끗한 마음과 거룩한 영혼이 아버지께서 빚어주시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어 부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육의 영과 세상의 영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싸고 있으면 말씀을 듣고도 간직하거나 행하지 못한다. 들어도 그때뿐이요 간직하고자 해도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리고 행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행위와 말과 무관한 오히려 육적인 선행과 사람과 전통이 바꾼 의문의 율법뿐이다. 그러므로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고도 음란한 영들은 빛이 임하기 전까지 또한 자신의 마음이 첫사랑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육의 욕심과 필요를 따라 이 세상을 좇으며 세상과 간음을 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자신이 받은 은혜와 영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은 영혼은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끊어내며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도록 주어진 그 귀한 세월을 다 허송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난 사람은 현재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또한 자신의 몸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보며 자신의 마음과 영이 육의 영과 세상의 영에게 감싸여있는지 아니면 그 흑암과 악한 영들로부터 깨끗하고 정결하게 구별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10일 가난한 영혼

‘사람은 배가 고프면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배가고파 참을 수 없었으면 도둑질을 하겠는가? 또한 사람은 칼에 죽는 것보다 굶어죽는 것을 훨씬 더 고통스러워한다.

이처럼 사람의 육체는 굶어죽지 않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또한 더러운 것 보다 깨끗한 것을 맛없는 것보다 맛있는 것을 먹기 원하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굶으면 참으로 고통스럽듯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하면 그의 영은 갈급하고 그의 마음은 공허하다. 그러므로 배고픈 육신이 음식을 취하기 원하듯 사람의 영도 말씀을 원하니 이를 ‘가난한 영혼’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의 육체가 음식을 원하는 것은 굶어 죽지 않기 원함이니 사람의 영혼이 배고파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즉 진리를 얻어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야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육체의 배고픔이라는 것은 하루에 세 번 저절로 느낀다. 그러나 영혼의 가난함은 사람의 육체나 혼이 느끼지 못한다.

만일 사람의 육체나 생각이 자기의 영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영혼이 굶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니 진리를 찾아 헤매고 다닐 것이다. 또한 아버지와 원수 되는 육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자 애쓸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자기 영혼이 진리를 원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가 구분되어있는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면 영혼의 가난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 스스로 아버지께 소망으로 받은 그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또한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에서 돌이켜 아버지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마음의 깨끗함과 의로움에 굶주려 있는 그에게 진리를 주신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과 육체가 받은 진리로 인하여 깨끗하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말씀은 동일하게 거룩하나 진리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깨끗이 씻는 것은 아니다. 오직 순종하는 자를 깨끗하는 능력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후에 이렇게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진리에 갈급하며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약속을 지키신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에 거하는 동안 그리스도께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는다. 또한 천년왕국과 그 후 셋째하늘에서도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것들을 풍성히 얻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4월 3일 더러운 영혼

 “아이고 그래 네가 가져라. 더럽다. 더러워!” “그래 더럽다 너 다 가져라” 아이들이 놀면서 하는 이 말에는 욕심을 부린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또한 사람은 똥같이 냄새 나고 지저분한 것을 더럽게 여긴다. 그러므로 그것을 밟거나 옆으로 지나가지 않고 둘러서 간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에도 더러운 성품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좇으며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불의와 죄로 더럽히는 영혼을 더러운 영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십자가의 피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도록 또한 그 후에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러나 더러운 영혼은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의 불의와 죄악들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러운 영혼은 하나님과 반대하는 영이요 아버지께서는 더러운 영혼은 가까이 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각 사람의 더러움과 그 불의와 죄의 열매에 정확히 맞는 고통의 형벌을 준비해두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그 더러운 영혼에게 사망의 심판을 내리신다. 그리하여 그 심판 후에 교만하고 욕심 많은 그 원수의 악한 종들이 더럽다는 심판을 받은 그 영혼을 유황불로 타는 이 땅속의 무저갱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자기의 욕심에서 나온 불의와 죄를 회개치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그 뜻을 끝까지 거부하므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 더러운 영혼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종류로 구별된다.

     첫째 영혼들을 거룩으로 이끄는 일을 하는 목사와 감독 같은 교회의 인도자들이 정작 자신의 죄를 회개치 않거나 자신이 육적인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해 영혼들을 이 세상으로 이끄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원한대로 원수에게 더러운 몸을 받아 무저갱의 가장 고통스럽고 뜨거운 곳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이끌던 그 수많은 영혼들의 생명에 대해 피 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거룩하신 영)이 없다고 하며 복음을 멸시하며 자신과 다른 영혼에게 불의와 죄악을 마음껏 저지른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도 원수에게 더러운 육신을 받아 두 번째로 뜨거운 고통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세상 끝에 있을 그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을 기다리는 것이다.

     셋째 이방인의 심판으로서 이들은 이 땅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니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주어지는 그 마지막 은혜의 기회를 버리고 복음에 불순종하는 이방인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 번째 뜨거운 곳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더러운 영혼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의롭고 정직한 심판을 인정치 않고 스스로 원수의 자식이 되어 끝까지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안으로 들어가 그가 그 선악의 죄를 따르며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 머물도록 마음과 혼과 몸에 악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하여 그들을 보고 흔히 더러운 귀신 혹은 흑암의 세력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사람은 그 피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할 때 유황불 못의 그 영원한 사망에서 건짐을 받는다. 그러므로 더러운 영혼들은 그가 그 피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치 못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인격과 마음이 있으니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이 아니요 그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한편 사람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때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가진다. 또한 아버지의 자녀 됨의 약속을 얻는다. 그러나 그 약속과 소망을 이루고자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과 싸워 이기고자 애쓰지는 않고 거듭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따른다. 또한 이방인처럼 육의 욕심을 가지고 이 세상으로 들어가 헛된 영광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 더러운 영들의 영향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어가는 자들도 바로 그 더러운 영혼들이다.

     이와 같이 더러운 영은 하나님과 반대되어 원수의 편에 서서 일하니 그것은 오직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얻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볼 때 불의한 죄가 있음에도 십자가의 피를 거부하고 있다면 혹은 거듭난 자가 이 세상을 따르고 있다면 혹은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고자 육과 이 세상을 따르며 어떠한 불의와 죄악도 다 범하고 있다면 그는 그 더러운 영들로 둘러 쌓여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과 영혼의 더러움은 사람의 피부에 묻는 더러움과 달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육신의 코로도 냄새 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불의한 생각을 따르는 자를 소신이 있다고 하며 생명의 아버지께로부터 사망의 원수에게로 시선을 빼앗기 위해 그 더러운 영혼이 입고 있는 몸을 노출한 것을 예쁘다고 본다. 그리고 육의 욕심과 죄를 통해 얻어지는 이 세상의 영광을 얻은 자를 오히려 훌륭한 성공 자로 여긴다. 심지어 자신도 그 더러운 영혼들이 되고자 그 더러움들을 따라가기도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7일 자비한 영혼

   거룩한 자들의 아버지께는 자비라는 성품이 있으시다. 자비라는 것은 ‘아버지는 구원을 베푸시는 도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선악과라는 죄의 뿌리가 있으니 그 결과로 죄의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불의하기에 불의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며 불의한 열매들을 맺는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될 수 없다. 

   

        하지만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아버지의 의와 거룩한 셋째하늘을 구하며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가꾸기 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버지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자는 그 죄의 뿌리를 심은 원수로 인하여 또한 자기의 의를 이루기 원하는 악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되어있다. 

   

        원수는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원치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모든 죄와 불의들로부터 자비를 베푸신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예수와 같은 장자로 구원을 베푸시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으로도 구원을 베푸시고 온전케 된 의인의 영인 백성으로도 구원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에서 나온 행위들을 오직 말씀에 따라 불같은 심판을 의롭고 정직하게 하시더라도 사람이 육체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끝까지 참으신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동안 십자가로 나오는 모든 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니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자비이다. 

   

        그런데 사람의 영에도 자비한 성품이 있다. 

   

        사람의 영은 이렇게 아버지와 같이 자비해지고자 자비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사모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것을 원치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썩어질 육과 세상을 구할 때가 더 많다. 바로 이때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말씀에 결단하려는 단계에 있는 영을 ‘자비한 영’이라고 한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20일 온유한 영혼

사람들은 국어사전을 따라 ‘온유’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온화함이나 부드러움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만약 말씀을 세상의 사전적 정의에 그대로 적용하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를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이 온유하다는 것은 한두 가지라도 아버지의 말씀에 다스림 받는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오직 한두 가지의 말씀에도 순종하는 사람이 온유한 영의 성품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정의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아무리 온화하고 부드러워도 그가 만일 아버지의 한두 말씀에라도 마음을 다해 순종치 않는 다면 그 사람의 영은 온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영이 온유한 것처럼 사람의 혼과 육도 온유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혼과 육이 온유한 사람은 아들의 살과 피를 얻을 때까지 한두 가지의 말씀에라도 죽기까지 순종하며 그때를 기다리는 자이다. 그리고 그가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자 기다리는 것은 자신이 의롭거나 깨끗하지 못함을 알기에 그리스도를 의지해 의와 거룩에 이르고자 함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온유한 사람에게는 아들을 통하여 기업을 나누어주시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령이 가난해지는 자에게 진리를 주신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시기 원하시니 그가 이제는 온유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버지께서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기업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 천국에서 아버지와 아들께로 다스릴 땅과 백성들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리고 셋째하늘에서도 끝이 없는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온전케 된 의로운 백성까지 받게 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13일 고요한 영혼

엄마의 품에 잠든 아기를 보면 마음이 포근해지며 보는 사람도 편안함을 느낀다. 그 누구도 감히 엄마 품에 안겨 잠자는 그 아기에게 걱정과 근심이 있다고 하지 못한다.

아기들은 그저 엄마가 해주는 대로 순종할 뿐이다. 아니 순종이 아니라 그들은 아무런 의지도 없는 것처럼 그저 엄마가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안함과 고요함을 즐긴다.

사람의 영에도 바로 이런 성품이 있으니 그는 ‘고요한 영혼’이다. 비교를 한다면 아기는 한 사람의 영혼이고 엄마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영혼이 자신의 육의 생각과 의를 완전히 꺾고 그저 말씀이 시키는 대로 또한 지시하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대꾸하지 않고 이끌려가는 영이 고요한 영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고요함을 얻는 것이다.

 

사람의 영은 대부분 간절하게 고요함을 원한다. 하지만 사람의 혼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매우 흔하다. 그러므로 거듭나 거룩의 길을 가는 자들은 영의 생각은 말씀을 따르고자 하나 육의 생각은 오히려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저 아버지의 말씀에 고요하게 따라야함을 깨달아야한다.

그 이유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므로 의와 거룩에 이르러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에 늘 평안과 기쁨을 누리니 그의 마음에는 천국도 임한다.

 

그러나 자기의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마음에 있는 욕심을 이루고자 불의와 죄를 행하다 마지막에는 사망에 이른다. 그러니 그의 마음에는 천국이 임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이 항상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이 없는 비인격체인 만물들도 자신이 받은 생명에 감사하여 고요하게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 하물며 영이 있는 인격체로서 모든 것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생명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주신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를 그 모든 만물들을 보며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3월 6일 슬피우는 영혼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깨끗한 물이 먹지 못할 더러운 물과 섞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 마지막 때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는 말씀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과 아버지의 영원한 셋째하늘에 소망을 두며 그것을 위하여 회개하고 아버지의 의와 거룩함을 먼저 구하라는 영혼의 양식도 있고 이 세상의 삶과 육의 형통이 복이요 아버지의 뜻이라는 거짓된 말씀도 있다.

그런데 거짓된 자들은 육과 세상의 이익을 육으로 끼치는 게 아니요 영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에 대한 분별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수많은 말씀들이 가짜복음인지 아니면 아버지께 가는 진리인지 자신에게 맺히는 열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그 말씀을 들은 자가 육과 세상을 취하며 이 세상에서 열심히 뒹군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그 말씀이 썩어질 것들을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하는 자의 양손에 육의 풍성함과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열매가 있다면 그는 거짓선지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이 마지막 때의 거듭난 많은 자들이 먼저 아들의 천국과 그 후에 아버지의 영원하신 셋째하늘을 구하지 않고 그러니 당연히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것도 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믿는 다고하면서 땅과 하늘의 것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거짓된 자들의 말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인 문제도 있지만 각 사람의 영혼에 더 직접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귀와 혼을 즐겁게 해주는 자들을 쫓아다니는 것은 정작 자신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자신 스스로의 마음이 그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주일이 되면 수많은 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게 되는 그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구름처럼 한곳으로 모이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슬피 우는 영’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영혼은 거짓복음이 아닌 진리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므로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져야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마음은 육과 세상에 있으니 그리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자기의 생각을 따르니 진리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빛 되신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거부하거나 버려버린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 사람의 영은 그의 혼이 깨닫거나 깨닫지 못하거나 계속해 이 세상의 어둠 속에 거해야 하니 또한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엄중함을 아니 슬피 울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갈급한 영혼에게 긍휼을 베푸시니 그는 아버지의 때와 계획안에서 진리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과 마음은 진리로 인하여 오히려 늘 기뻐하게 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27일 애통하는 영혼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 안의 혼(魂) 안에다 쉽게 더럽혀지지 않는 것을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의 깨끗한 마음인 ‘양심’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그곳에다 또한 자신의 거룩하신 영(靈)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런데 사람의 그 거룩한 영은 사람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함께 더러워진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 죄악을 저지르면 함께 죄악된 영혼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아버지께서는 더럽고 죄악된 영혼은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만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고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교만으로 인하여 불의와 죄악을 범한다. 그러므로 욕심과 교만을 품은 사람은 원수와 같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죄로 더럽히게 되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는 영혼은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가게 된다.

     육체가 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생각이 육을 이끌되 그 육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의 영은 자신의 거룩한 혼에게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거룩한 혼이 그의 육체도 거룩한 곳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죄를 이루어갈 수도 있고 거룩을 이루어 갈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을 이루는가는 그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썩어질 육도 아니요 영원한 영도 아닌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도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혼은 아무리 우수해도 한계가 있기에 부지불식간 지은 죄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아버지의 뜻에 마음을 두지 않고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드리는 예배 전도 교육 봉사 선교 구제 친교 같은 행위들은 아버지께 가증함과 더러운 똥이다. 그것들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죄와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능력의 한계가 있는 혼과는 달리 사람의 영은 무한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과 실수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신은 이러한 죄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의 영은 그의 혼이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회개치 않은 그 수많은 죄들 때문에 날마다 쉬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애통하고 있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영혼의 애통함이 그의 마음에도 있고 혼으로도 진심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애통하는 자를 반드시 위로해주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를 애통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영혼은 거듭남 후에 아버지께 더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는다. 그리하여 거룩하신 영의 인도를 따르며 이 세상에서 벗어나 비록 고난스럽지만 영광과 권세의 약속이 있는 그 십자가라는 거룩의 길을 가므로 그 죄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20일-2 어리석은 영혼

사람은 누구나 영(靈)과 혼(魂:생각)과 육신(肉體:살과 피)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육체와 혼의 기능이나 그 활동들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무병장수(無病長壽)같은 말이나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에서 육신의 건강의 중요함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입에 맛있는 것보다 육에 유익한 것을 먹어야한다.

한편 사람의 혼은 지식을 습득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을 그 혼으로 판단하여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결정한 것에 대한 결과는 자신(영과 혼과 육)이 책임을 진다.

사람들은 이처럼 혼과 육체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으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영에 대하여도 알아야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생명이신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게 바로 그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의 혼과 육체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성품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회복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 거룩에 이른 자의 안에 거하시니 그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인격체이신 아버지와 인격체이신 아들께로부터 나오셨으니 인격체이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거룩하신 영을 사람의 코를 통하여 사람의 깨끗한 마음에 넣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에 받은 그 거룩한 영도 인격체이다. 그리고 인격체는 여러 가지 성품들이 있으니 사람의 영도 여러 가지 성품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영이 가진 성품들 가운데 ‘어리석음’이 있다.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에 이르고 그리하여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른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의 영혼은 어리석게도 생명을 원치 않으니 말씀을 원치 않는다. 또한 어리석게도 아무리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도 순종치 않는다. 그리고 생명 없는 그 길로 계속 걸어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로지 의롭고 깨끗한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의롭거나 깨끗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의롭고 죄가 없다고 여기며 자기의 생각을 따라 걷는 그 길은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지 않는 한 아버지께서 보실 때 사망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망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돌이키지 않는 그 사람의 영혼을 ‘어리석은 영혼’이라고 하신다.

결국 그리스도께 심판을 받고 책망을 받고 상급을 받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마음이 생명을 원치 않거나 자신의 혼이 그것을 거부하면 얻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늘 진리를 허락하시어 그를 거룩한 길로 이끄신다. 그리하여 그는 그 거룩한 육체를 얻으니 생명을 얻은 그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리고 그가 지혜로운 것은 생각에서 돌이켜 지혜로운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20일-1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의 상태를 깨달으려면

     사람은 생각이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혼(魂)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자신에게 있는 몸과 그 몸으로 피의 길이 나있는 것을 보고 때로는 몸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몸(살과 피)이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과는 달리 육체와 혼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靈)도 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영이 있으니 인격체라고 불리며 그리하여 오직 육체와 혼만 있는 짐승과는 다른 존재이다. 결국 자신이 짐승과는 달리 마음과 영이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 안에 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영도 혼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자신의 영을 오직 영(아버지의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영혼의 상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신의 영혼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알기 원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비추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사람의 영혼에 대한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이것이다.

     첫째 자신이 짐승과는 달리 육체와 혼과 더불어 마음과 영도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록했다.

     둘째 그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깨끗한 마음 안에 영을 부어주신 그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기 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는 그 발걸음의 순서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사람의 안에 함께 거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13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영과 혼을 주시므로 인격체로 계획하시어 창조하셨다. 또한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마음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늘 자신의 기준 생각 경험 느낌으로 주장하고 판단한다. 즉 자신의 선악과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옳았다고 옳다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주셨으니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의를 따르므로 의로움과 깨끗함을 이루어 갈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의와 거룩을 이룬 영혼은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거룩하신 아버지께서는 셋째하늘의 지성소에서 각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듣고 계신다. 이것은 창조자이시며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예수께서도 마찬가지시며 둘째하늘에 있는 자신의 심판대 옆에 각 사람의 양심 마음 생각 말과 행위를 하나도 놓치지 않은 정확한 기록도 가지고 계신다.

    게다가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각 사람의 마음 안팎에서 직접 그의 마음과 행위를 관찰하신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종들은 자신이 보호하며 섬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일일이 기록하여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하루에 두 번씩 그리스도께로 보고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일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마음과 행위의 죄와 허물들을 진심으로 애통하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다시금 기억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회개나 돌이킴이 없었던 것들은 아버지의 기억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예수의 심판 때 심판의 근거들로 남는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은 자신의 온전치 못한 의를 가지고 말하고 행한 모든 것들과 그 선악과를 그대로 둔 채로 행위에 열심을 내었던 것들이 오히려 책망의 대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또한 과연 어떻게 해야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시는 내 자신이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저마다 육적인 능력의 차이가 있기에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서 그가 얼마나 많은 능력이 있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일과 행위를 했는지는 보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것이 만일 선악과라는 죄가 있는 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행위들을 더럽게 여기신다.

    반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니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보신다.

    사람은 누구나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은 의롭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의롭고 거룩하시며 아버지의 말씀도 그러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러므로 힘이 들고 고난이 있다해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한 말씀에라도 마음을 다해 순종하면 아버지께서는 그런 사람을 의인으로 받으신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2월 6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셋째하늘과 둘째하늘을 그리고 사람이 볼 수 있는 이 첫째하늘을 창조하셨다. 또한 영과 혼과 하늘의 형체를 입고 있는 종과 영과 혼과 땅의 육체가 있는 사람도 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창조하셨다.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그 창조된 사람의 형상과 모양이 아들 그리스도와 같음을 확인하시고는 그 사람의 육체의 가장 깊은 마음 안에 영원히 사는 그 거룩하신 영(靈)을 넣어주셨다. 그러므로 그 유일신인 아버지는 창조자의 아버지요 동시에 사람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것이며 사람은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와 형제자매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며 부르되 왕은 다스리는 자이니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평화로 다스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의 마음에는 늘 변함없는 천국과 평화가 임한다. 또한 그의 생각과 행위와 마음과 입술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른 자도 나중에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요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서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을 다스리는 영원한 왕과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아버지와 아들의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버지처럼 영원히 살게 되는 생명을 주신 자신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닮아가려고 할 것이다.

    아버지께는 여러 가지 성품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거룩’이다. 거룩이란 자신이 한번 품은 마음과 말을 변치 않고 지키는 것을 뜻하니 아버지께서는 한번 품으신 마음과 하신 말씀을 변치 않으시고 이루시되 그것을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영원토록 이루어가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며 자신이 한 말도 바꾼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이든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지 못하다. 그러나 사람도 거룩에 이를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이 품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또한 거룩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하나씩 마음을 다해 순종하므로 자신도 거룩에 이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는 자를 아버지께로 인도해주시니 누구든지 거듭난 후에 자신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거룩에 이르므로 아버지의 거룩에 이를수있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자신의 의를 따르거나 아버지의 말씀에 마음을 다해 순종치 않는다면 그는 이미 거룩한 사람이 아니요 오히려 창조자와 아버지보다 위에 있으려는 교만한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선하고 옳고 바른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버지와 아들을 의지하지 않고는 자신의 마음과 말을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영원토록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의를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만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셨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가 마지막에 그리스도와 같은 의와 거룩을 이르므로 아버지의 의롭고 거룩한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30일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람이 어두운 곳에 갇혀있으면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등이나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둠가운데 있는 사람은 등이 자신의 발 앞을 비출 때 그 빛을 따라가면 어둠을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등이나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첫째하늘이 바로 그 어두운 곳이요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그 평화의 왕국과 아버지의 셋째하늘로 가는 길을 보지 못하는 이유이다.

    말씀이 빛인 이유는 아버지의 성품 안에 신성한 빛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빛된 성품으로 인하여 쉽게 표현한다면 해와 달 같은 것이 없이도 아버지께서는 더 밝게 빛을 비출 수 있음을 뜻한다.

    교회는 지금 곧 없어지게 될 이 첫째하늘에서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지만 그 교회시대의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그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니 사람들은 그 천년왕국의 시대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하신 나라인 그 셋째하늘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빛의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하셨으니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밝고 밝은 빛으로 새예루살렘성과 셋째하늘의 모든 도시들을 비추신다. 또한 아버지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밝은 빛으로 비추신다. 또한 아버지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인 그 거룩한 자들도 비춘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자녀를 삼으신다는 약속을 교회에게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자들에게 자신의 빛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자녀들도 그 셋째하늘을 비추며 다니는 것이요 그리하여 의로운 백성들이 그 빛을 보고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영광으로 그 빛을 내시고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자녀들인 교회와 함께 공간과 시간에 제한이 없는 그 영원한 셋째하늘의 구석구석을 비추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에는 해나 달이 없다.

    사람이 만일 이 첫째하늘의 어둠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뿌리를 완전히 끊어내고자 한다면 그리고 아버지의 뜻인 거룩의 길을 찾기 원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의 비췸을 사모하는 것이요 그 빛이 비취어질 때 자신의 생각을 돌이켜 순종하는 것이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1월 23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생각과 몸이 따로 논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혹은 마음먹은 대로 자신의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그러한 경우가 있으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여기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간 표현을 이해해야 생명의 아버지와 바른 영적교제를 이룰 수 있다.

    영이신 아버지와 직접 교제하는 기관은 육도 아니요 혼의 생각도 아니다. 오직 사람의 영이다. 그러므로 ‘영과 혼이 따로 논다.’는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혼과 입술은 아멘해도 자신의 마음과 영은 아멘하지 않는 경우와 반대로 자신의 마음속 영은 아멘해도 자신의 혼과 입술은 꽉 다물고 있는 경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영은 말씀으로서 영이신 아버지와 직접교제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아버지의 말씀이 자신의 영을 살리는 영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영이신 말씀이 사람의 영안으로 들어오며 또한 그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영과 아버지의 영이 교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존재가 있다. 그러므로 바로 그는 사람의 육과 육신의 혼을 건드릴 수 있는 원수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속 영을 건드리지 못하나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영을 원수에게 줄때는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

    원수는 사람과 아버지의 영적교제를 막기 위해 자신의 은밀한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사람의 육과 육신의 혼을 건드릴 수 있다고 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의 경험과 육신의 생각(혼)과 육신의 행위와 사람들의 전통들이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과 영이 원수의 건드림이 있을지라도 영이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기(순종)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원수의 도구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곧 자기를 부인하라는 뜻이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를 의롭고 거룩하게 해주시니 아버지와 아들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야한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영을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셨다. 그리고 사람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이 마음을 어디에 드리고 있는지 그 영혼이 얼마나 갈급한지를 보시며 아신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고자 자신의 마음과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하는 자에게 그의 행위와 생각과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영원한 축복을 베푸신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한 축복인 것은 아버지께서는 오직 거룩에 이른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입으셨던 그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시어 부활시켜 주시기 때문이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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