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씨(정자)와 밭(난자)의 크기와 숫자

옛날에 의롭고 거룩한 한 농부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는 있었으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되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주지 않고 오직 의롭고 거룩하게 된 사람에게만 입혀주려는 계획을 세훈 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충분하게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자기자식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농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낳았으니 아들농부는 봄과 여름에는 사람의 골격만 갖추고 농사를 짓다 여름이 끝날 무렵 자신의 뼈(하늘의 형체) 모양을 따라 하얀 모래를 가지고 사람의 뼈를 만든 후 그 위에다 작은 알갱이(세포)와 찰흙(단백질)과 물로 덮었다. 그리고 몸 전체를 줄여 직경 0.12밀리미터의 작은 밭으로 만들고 뼈는 0.07밀리미터의 작은 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두 개가 만나면 사람처럼 자라도록 가는 실(염색체)들을 그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그때부터 선한 능력을 소망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 동안에 자기를 의롭고 거룩하게 가꾸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들농부가 자기의 나라로 들어갈 때에는 뼈에 살과 피까지 얻었으니 그곳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아들농부가 바로 아비농부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는 아비농부처럼 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요 나중에 자신도 그 아들농부와 똑같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과 계획대로 지으신 씨와 밭의 크기(용적)는 뼈와 살을 보면 그 비율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의 뼈마디보다 살결이 더 두껍기에 남자의 씨앗이 뼈마디요 여자의 밭을 만드는 그 도구를 살결로 보면 아버지께서 정하신 씨와 밭의 크기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안식 후 첫날에 에덴에서 둘째 사람인 아담의 씨를 0.07mm로 여자의 밭을 만드는 도구는 직경을 0.12mm로 지으시므로 모든 창조를 마치셨으니 그때로부터 마지막 때까지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 중 의로운 자들을 백성으로 거룩한 자들을 자녀들로 추수하시는 시기이다.

또한 남자의 씨는 6억에서 12억 사이로 계획하셨으니 각 사람에 따라 그 수가 다르며 일정하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6억을 만드는 남자는 항상 그 6억의 씨를 뿌리고 12억을 만드는 자는 항상 12억을 뿌린다. 이처럼 한 번을 뿌리건 열 번을 뿌리건 그 수는 그 남자의 수에 달려있으니 만들어서 뿌리는 그 수가 오직 6억과 12억의 사이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계로 보고도 그것을 하나하나 정확히 다 세지 못하니 어떤 남자가 가장 적은 수인 6억을 뿌린다 할 때 어찌 18년 동안 쉬지도 않고 그것을 다 셀 수 있으리요? 게다가 세기 전에 다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들은 이 만큼이 이 만큼이니 이 만큼 일 때 이 정도 될 거라는 짐작의 수를 정한 후 그 틀린 수를 다른 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의 말이니 맞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 교만한 자들의 어둠의 말을 그냥 믿고 있으니 그것은 그들에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남자의 씨들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빠르게 정해두셨으니 예를 들어 9억의 씨를 만들어 9억을 뿌리는 어떤 남자가 자신의 여자의 밭에 그 씨들을 뿌렸다. 그러면 25개(숨기신 2개 포함)의 가는 실(염색체)을 담은 9억의 씨들이 아버지의 계획대로 단 60초 만에 곧바로 동일하게 재생된다.

반면 여자는 누구나 공평하게 세 개다. 그러므로 여자도 여자의 아궁 깊은 속에서 밭을 만드는 그 도구를 육의 죽음 전까지 만들어낸다. 하지만 남자는 하루에 세 번을 만들며 여자는 한 달에 세 번이다. 그러나 자기가 못 본 것은 있어도 없다고 우기는 자들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고치기 두려워하는 자들은 밭을 만드는 그 도구가 한 달에 오직 하나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것은 여자가 느끼는 것(월경)이 오직 한 달에 한 번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남자의 씨가 만들어지는 장소와 재료는 이렇게 계획하셨다. 남자의 씨는 골반 뼈 안쪽의 밑에 있는 물과 또한 성기의 피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후에는 길게 나온 성기(음경)를 중심으로 한쪽에 있는 둥그런 성기(고환)가 보관을 해두고 긴 성기를 통하여 내보낼 때는 다른 한쪽에 있는 둥그런 성기가 그 중에 좋은 것들을 각자에게 정해진 그 수만큼 고르도록 해두셨다.

이와 같이 그 씨의 안에다 아버지께서 하나씩 하나씩 능력과 지혜를 다 입히시는 것이 아니시오 이미 자기의 육신의 아비에게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씨 안에다 일일이 그 남자가 넣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은 한 몸을 이루기전까지는 오직 그의 아비만을 닮되 밭과 만났을 때는 아비와 어미를 함께 닮은 어린 생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씨앗이 악한 것은 그의 자손이 더 악해지며 충성된 것은 더 충성스럽게 된다. 하지만 그 씨앗이 충성된 씨앗이라 하여도 원수의 선악이 그를 누르니 처음에 지음을 받은 둘째 사람보다 더 충성되지는 못하되 그와 동등하게 될 수는 있다. 즉 자기의 마음 안에서 그 죄가 떠나므로 아담이 에덴에서 죄 없이 창조된 상태인 그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우선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을 간절히 가지며 또한 육의 욕심이 헛된 것임을 나중에 죽는 순간에 깨닫는 것이 아니요 지금 내려놓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소망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들을 사망으로 내려가는 세상에서 꺼내어 살과 피 안에 넣어주신다. 그러면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을 가진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죄와 싸우니 결국에는 죄가 떠난 후 더 이상 그 첫 번째 죄를 범하지 아니하며 또한 원수로부터의 눌림에서도 벗어난다. 그리하여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 아버지의 뜻을 이룬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 연약한 육신 안에서도 또한 장막을 벗고 부름의 상을 입은 후에도 계속해 그리스도와 같은 자유와 거룩을 따라 아버지를 영원히 가까이서 섬기게 되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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