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말씀의 제목: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는 교회

본문: 마12:31-37

어떤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지 않았다. 늘 넓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어부가 되기 원하는 그 마음을 어려서부터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몸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었으나 마음은 오직 바다에 가있었다. 언제나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늘 했다. 또한 언제나 어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속마음을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그를 보며 그저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그는 넓은 바다로 나갈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아이들 가르치는 그 일을 그만둘 작정이었다. 어부가 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일을 즉시 벗을 준비가 확실히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전과 후에 아버지께서 세우신 종들이 많이 있다. 이 마지막 때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아버지의 일을 하는 종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앞장서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주의 종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종이라고 하면서 아버지와 타협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히려 사람과 타협하며 또한 세상과 타협을 하며 자기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아버지 외의 것들과 타협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속에 있는 그 마음이 이미 세상의 영광에 가있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와 어부에 마음이 있는 그 선생이 언제든 가르치는 일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하는 종들이 세상과 타협한 그 행위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오직 세상의 영광을 원하는 그들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심판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거짓선지자로서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들을 유황불 못으로 넣으시는 것은 의로우시고 정직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은 썩어질 것이요 세상은 사망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떼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던 자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마음 중심이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에 가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잘 알고 있듯이 마지막에 육은 썩어지고 이 세상은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 결과를 알면서도 육과 세상의 영광을 원하여 다른 영혼들도 그리로 이끈 그들이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자들을 그 유황불 못의 중심에 넣으시는 것이 아니시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원치 않는 것을 주시는 것도 아니시다. 오직 그들이 알았던 것과 그들의 마음이 원했던 것을 그대로 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심판은 의로우시고 정직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당시에도 아버지의 일을 하며 아버지와 타협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타협하지 않는 그들이 마지막에 그들이 어떠한 길을 갈지 알려주신다. 또한 어떠한 심판을 받을지도 알려주신다. 마12:31-32을 보자.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보고 바알세불과 함께 하는 자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원했다. 그러므로 한 가족들을 명해서 귀신들린 자를 그리스도 앞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쳐놓은 그 덫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바알세불을 힘입어 흑암을 쫓지 않는다는 해명을 하셔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해명을 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들이 랍비에게 말씀을 배울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는지를 지적하셨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 밑에 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귀신 쫓는 일을 했는지를 지적하셨다. 그리고 성전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바로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영혼들을 인도하고 있는지 지적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성전을 지키는 자들에게서 육과 세상의 영광을 원하는 그 마음을 드러내셨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거나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돌이키지 않는 그들이 어떤 길을 가며 어떤 심판을 마지막에 받게 될지 알려주신 것이다.

거룩하신 영을 훼방한다는 것은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를 뜻한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의 경우 자기의 목을 베는 그 칼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를 범한 자는 누구든 마지막에 그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은 그리스도 당시에 성전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마지막 때에도 이루어질 일이다.

거룩하신 영을 훼방하는 죄에 대하여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두 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 마지막 때에 원수는 깨끗한 자들을 사망으로 이끌고자 한다. 마지막 때에 깨끗하지 못한 자들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된다. 깨끗하지 못하니 스스로 알아서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이미 사망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인 그 깨끗하지 못한 자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원수는 깨끗한 자들을 공식적으로 사망으로 이끌기 원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일을 이미 꾸며놓았다.

원수는 우선 믿는 다는 자들 가운데 자기사람들을 몇 명 데리고 온다. 가라지를 데리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를 믿느냐?’하며 공식적으로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육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수는 오히려 그들을 높이 올려준다.

이때 세상에 거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을 보고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외친다. 그리하여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한자들을 보며 그것이 지혜롭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짐승의 수를 받지 않기 위해 숨어있는 자들이 이 소식을 보고 듣게 된다. 그러므로 그 중에 살기 원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보 나와서 자신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한 그들도 육의 생명을 좀더 유지하게 된다.

원수는 이렇게 하여 마지막 때에 죽음이 두려워 숨어있는 자들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끄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두 번째 비밀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원수에 대해 이미 세 번이나 사망의 선포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원수의 육적인 말을 늘 듣고 따랐다. 그리고 육적인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도 그럴 것이다.

심지어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라!’하시며 그의 마음에 큰소리로 외치신다. 그러나 그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가득한 영혼은 육이 살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는 육의 귀를 기울여 오히려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도 육의 귀를 가진 자들은 모두다 원수의 말을 듣게 된다. 그러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그 영혼들을 살리지 못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는 그 생명과 사망은 그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이루어져 간 것이 그때에 비로소 확증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한 말씀에라도 순종하는 자들은 다른 한 말씀에도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다른 말씀들에도 순종하게 된다. 그러다 그들은 그 마지막 때에도 순종하여 죽음을 통해 그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 말씀에도 순종치 않는 자는 그때도 순종치 못하고 사망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한번 순종한자는 끝까지 순종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불순종한자는 끝까지 불순종하게 되어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비밀의 말씀을 성전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육과 세상을 향한 눈과 귀는 밝고 컸으나 마음의 눈과 귀는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전하던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 길을 끝까지 걸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무저갱에서 가장 뜨거운 유황불 못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된다는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도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도 종이라고 하면서 그 성전을 지키는 자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즉 칼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은 자들은 모두 성전을 지키는 자들처럼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를 안다고 하며 말씀을 전하던 자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사망으로 들어갔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은 자들은 그 썩어질 사망의 욕심과 죄를 회개하고 그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 사망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룩을 거역했다. 그런데 그들이 마음에 이루기 원하는 뜻은 육의 욕심과 세상의 명예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면서도 거역했던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그 찔림도 거부해버렸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외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버지의 영까지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아버지의 영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사망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둘째 그리스도를 핍박하며 아버지를 핍박하는 자들도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길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픈 말과 행위를 하지 않고 늘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 자신을 의롭고 거룩케 하기 위해 또한 생명을 위해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하는 그 순종의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아버지를 안다고 하면서도 아버지께 대한 마음을 품고 행하는 그들을 거부한다. 또한 그들의 선한 생명을 자신이 판단해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 선한 자들을 사망으로 이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오히려 거부하며 핍박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아버지의 의와 거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아들과 아버지의 생명을 따르는 그들을 거부하며 핍박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자들의 마지막 심판도 역시 사망인 것이다.

그리스도 당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핍박하고 죽였다. 또한 그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과 교회도 죽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지막 심판도 역시 사망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훼방하면 사함 받지 못한다는 경고의 말씀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동일한 말씀을 그들의 위에 있는 영혼들에게도 선포하셨다. 성전을 지키는 자들의 위에서 그들을 이끌던 그 악한 영들에게도 앞으로 내려질 그 마지막 심판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주신 후 깨끗한 생명을 가진 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또한 그 깨끗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려주신다. 마12:33을 보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나무라는 것은 생명을 뜻한다. 그리고 실과라는 것은 생명에서 나오는 열매를 의미한다. 그런데 만일 나무가 깨끗하면 그 열매도 가득하며 깨끗하다. 반대로 그 나무의 생명이 더러우면 그 열매도 더럽다. 그리고 사람도 생명을 가졌으니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만일 깨끗한 생명을 가진 자는 깨끗한 열매들을 가득하게 맺는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혀에서 나오는 것들이 모두 의롭고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더러운 생명을 가진 자는 온몸이 더러운 것들을 맺는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혀가 늘 불의하고 더러운 것만 내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깨끗한 나무로 상징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육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며 오직 의롭고 거룩한 말씀만을 내셨다. 또한 그의 마음과 몸이 한 순간도 범죄치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깨끗한 열매를 맺으신 것은 깨끗한 생명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에 과일이 열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따서 먹는다. 반면 사람들은 벌레 먹고 썩은 과일들은 잘 먹지 않는다. 그 더러운 것을 오히려 버려버리고 오직 깨끗한 열매들만을 먹는다. 그러므로 깨끗한 과일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의롭고 거룩한 열매들은 다른 영혼에게도 유익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시므로 열매를 맺으셨다. 또한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셨다. 이때 깨끗한 생명을 원한 영혼들은 그 열매를 따서 먹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열매로 인해 자신도 그 순종의 마음을 품고 행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그 입술에서 오직 의롭고 거룩하신 말씀만을 맺으셨다. 그리고 그 열매를 모든 자들에게 전해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원하는 자들도 그 열매로 인해 자신도 의롭고 거룩한 말씀만은 전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자신의 몸으로 희생의 열매를 맺으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희생을 모든 자들에게 보이셨다. 그러므로 그 영광스런 몸의 생명을 원하는 자들도 그 열매로 인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도 그 희생을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그 희생의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깨끗하시기에 깨끗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으셨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입술과 몸으로 맺은 열매들로 다른 영혼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열매를 맺은 자들도 역시 다른 영혼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친다.

그러나 더러운 열매는 반대로 다른 영혼들에게 해로움을 끼친다. 마치 사람들이 그 썩고 벌레 먹은 과일들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 더러운 열매를 맺는 자들에 대한 말씀을 주신다. 마12:34을 보자.

이 말씀에서 독사라는 것은 태초에 욕심을 품고 타락한 원수를 뜻한다. 그리고 독사의 자식이라는 것은 그 원수와 똑같은 길을 걷는 모든 자들을 뜻한다.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모든 종들을 선하게 창조해주셨다. 그러나 원수는 욕심을 품고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욕심을 얻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입을 열기만 하면 다른 자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했다. 또한 꼬이는 말로서 다른 종들을 악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원수가 이렇게 입으로 거짓과 꼬이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혀에 독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혀에 독을 품은 그가 거짓과 꼬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수는 그 욕심과 죄악을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를 다른 타락한 종들과 함께 이 첫째 하늘로 쫓아내셨다. 그리고 생명을 주신 아버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바로 사망이니 원수는 그때 이미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그가 사망에 이른 것은 자신의 혀에 있는 독으로 인한 것이었다. 또한 그 혀의 독으로 자신과 다른 종들도 사망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나서도 그 독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혀에 있는 그 독을 더욱더 독하게 품었다. 이제는 사람의 사망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이제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그 영혼이 있는 둘째 사람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원수는 둘째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든 선한 짐승들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 그리고 뱀은 자신의 혼을 원수에게 내어주고 그 원수의 거짓과 꼬이는 말을 따랐다. 이에 원수는 이제 뱀에게 임했으며 뱀은 아버지께 받은 선을 빼앗겼다.

이처럼 뱀은 원수가 임하기 전에는 순했으나 원수가 임한 후로는 악해졌다. 그러므로 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혀에 독을 담고 이곳 저곳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혀의 독으로 다른 짐승들을 늘 삼킨다. 마치 원수가 혀에 독을 품고 다른 영혼들을 거짓으로 꼬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원수는 이렇게 뱀의 혀를 빌려 사람을 유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역시 그 혀의 독을 이용해 거짓으로 꼬였다.

그런데 선하게 창조된 그 둘째 사람도 원수처럼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품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있기보다 아버지보다 더 높이 있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 사람은 아버지보다 더 높아질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리하여 둘째 사람도 역시 그 욕심의 죄로 인해 사망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다른 영혼을 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독 묻은 자신의 혀가 칼이 되어 다른 영혼들을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결국 독사라는 것은 혀에 독을 품은 그 원수를 가리킨다. 맨 처음 자신의 혀로서 다른 종들과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혀로 다른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자들은 모두 그 독사의 자식인 것이다.

이처럼 원수는 거짓말과 말의 꼬임으로 많은 영혼들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과 꼬임은 오직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당시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백성들에게 말을 전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전 지키는 자들의 말을 따른 자들은 모두 사망으로 들어갔다. 즉 백성들을 사망으로 이끌되 자신들의 혀에서 나오는 말로 사망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마지막 때에도 많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혀를 굴려 말을 낸다. 그리고 많은 영혼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먹는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영혼들이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독사의 자식들은 동일하게 말로써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모인 자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원하셨다. 즉 성전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이라는 것을 하지만 오히려 그 말로서 사망으로 이끌고 있음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그들이 그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걸어가길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 의롭고 거룩한 생명을 얻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마음과 함께 선을 쌓으면 선을 낸다는 말씀을 주신다. 마12:35을 보자.

한 농부가 밭에다 많은 씨앗들을 뿌리고 여러 번 애써서 물을 주었다. 그런데 어떤 씨는 싹이 나고 어떤 씨는 싹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싹이 난 것은 가을에 많은 열매들을 맺었다. 그 농부는 궁금해서 싹이 난 것과 싹이 나지 않은 것을 하나씩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싹이 튼 씨는 물을 먹고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싹이 트지 않는 씨는 물을 먹고도 갈라지지 않고 그대로 딱딱하게 있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자들에게 아버지의 그 영광스런 생명을 주시고자 스스로 희생하셨다.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음을 당하시므로 선을 행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통해 많은 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그 영광스런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이 첫째 하늘에는 지금도 그 생명의 진리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전과 후에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당하는 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죽는 자들에 의해 진리가 유지되는 것은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선하신 씨앗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씨앗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같은 선한 씨앗들이다.

하지만 그 선한 자들은 단지 그리스도와 같이 죽음만 당한 것이 아니요 열매를 얻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당한 자들도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럽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얻었다. 즉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 후에는 그들도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의 열매를 얻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보다 다른 영혼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주는 자는 선한 자이다. 그리고 그 선한 자는 자신과 다른 영혼에게도 함께 많은 생명을 미치게 된다. 마치 갈라져 죽은 씨앗이 나중에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선한 자들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간다. 다른 자들을 죽이되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자들을 죽인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의 생명과 육의 욕심을 조금 더 얻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사망의 심판을 주신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한편 물을 먹고도 갈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거듭남의 씨를 통해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하지만 영의 생명만 얻고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는 길을 걷지 않는다. 게다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다른 것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혼과 육에 불의와 더러움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신의 혼과 육에 더러움이 있는 자들은 육의 죽음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 육을 벗어났을 때 혼과 육의 더러움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자들이 설령 살과 피를 바친다 해도 받지 못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살과 피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거룩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다른 자들에게 생명을 미치지 못한다. 다른 자들을 말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그 영광스런 생명을 얻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선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선한 자요 선한 자는 생명을 끼친다는 진리를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므로 선을 쌓는 것은 큰일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반대로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들은 사소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모든 말 하나 하나에도 심판이 있음을 알려주신다. 마12:36-37을 보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무익한 말이라는 것은 그 가장 중요한 자신의 생명과 관계없는 말들을 뜻한다. 이방인들은 늘 자신의 생명과 관계없는 것들을 마음에 둔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을 따른다. 그리고 늘 육과 세상을 얻고자 하는 말들만을 내뱉는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하는 그 육적이고 세상적인 말들이 곧 무익한 말이다.

예를 들어 흔히 여자들은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하고 혼자 말을 한다. 또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하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과 이리저리 다니며 입을 벌려 생명에 관계없는 말들을 계속한다. 스스로도 그 말들이 생명과 관계없음을 깨달아 알지만 그래도 그 무익한 말들을 계속 내뱉는다.

그러나 믿는 자가 만일 이런 이방인들의 말을 하면 그 말에 심판이 있게 된다. 또한 그 무익한 말을 들으며 함께 동참해 말한 자들에게도 그에 따른 심판이 주어진다.

이처럼 이방인의 모든 말들은 자신의 영혼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또한 다른 영혼들에게도 생명을 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무익한 말들은 거룩에 애쓰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한 셋째 하늘에 대한 소망을 품지도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익한 말을 하는 자들은 습관처럼 그 이방인의 말들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룩에 애쓰지도 않고 셋째 하늘에 소망을 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내뱉은 그 무익한 말로 인해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생명에 무익한 그 말들을 심판하신다. 심판하시되 그 말들을 한 가지 한 가지씩 정확하게 심판하신다. 그리고 그가 무익한 말을 한 만큼 더 낮은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은 모든 자들에게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것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태그 구름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