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말씀의 제목: 계속 깨끗이 씻겨져 가야 하는 교회

본문: 마3:1-6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부터는 백성이 아닌 자들로부터 백성을 삼아주신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그 은혜는 오직 교회시대의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십자가를 통해 주어졌다. 또한 백성이 아닌 자들로부터 자녀들이 나오는 그 은혜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신령한 신부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흘리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크신 은혜로 믿고 따르는 목적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의와 거룩에 이르기 위해서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주신 크신 은혜이며 영광의 진리다. 그런데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늦게 예비한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었다. 눅1:5-7을 보자.

당시에 서기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서기관장은 제사장의 직분도 겸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의 육의 아비가 바로 그 서기관중에 가장 높은 자였다. 그러므로 사가랴는 때로 제사장의 일도 감당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아직 제사장의 직분에 공식적으로 올라가 있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의로운 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사가랴를 의롭게 보셨다. 그러므로 비록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나이는 많았지만 2천년 전에 그리스도의 길을 가장 먼저 예비하는 세례요한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아비와 어미는 아버지께로 은혜를 받아 의롭다 함을 입은 자들이었다.

아버지께서 사람을 의롭게 보시는 기준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의롭게 보시지 않으신다. 먼저 깨끗하게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자를 의롭다고 보신다. 그런데 변화되고자 하는 자는 아직 거룩에 이르지 못했어도 바른 행함을 보이고자 애를 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의롭게 보시는 자들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오직 옳은 행위만 택해서 한다.

이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여호와의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그들을 의인으로 보셨던 것이니 이는 노아도 마찬가지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요 모든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요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의롭게 여김을 받는 자들이 온 땅의 곳곳에 거하고 있다.

사람은 율법의 기준에 따라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자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변화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아시니 그런 자를 의롭게 보신다. 그러므로 누구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와 거룩에 이르기 원한다면 아버지께서는 그를 의와 거룩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나 죄의 뿌리로 인하여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악함과 허물들을 보고도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다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그대로 둔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육의 기회가 있을 때 결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어떤 자들은 육신의 정욕과 악함이 마음과 생각에서 나올 때만 십자가를 바라본다. 만일 이들이 깨끗함을 간절히 원하되 십자가의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는 그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그들도 거룩의 길로 인도해주신다. 그러나 죄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하기 원한다면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썩어질 육신적인 욕심과 필요와 염려와 또한 세상의 헛된 영광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십자가로 나가 그곳에 죄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한 거룩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버지께서는 사가랴를 의롭게 보셨으나 그는 당시에 믿음이 없었다. 그는 서기관중에 가장 높은 서기관장이었기에 많은 말씀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보고 날마다 쓰고 날마다 읽고 날마다 봉독하는 그 말씀들을 자신이 믿지는 못했다. 그리고 엘리사벳도 남편의 말을 늘 들었기에 말씀들은 많이 알았지만 믿음은 부족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의 어미는 말씀에 조금씩 조금씩 순종하며 변화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의롭게 보셨으며 그들의 사이에서 세례요한이 태어났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가랴의 씨앗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을 위해 육을 포기할 수 있는 씨앗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 씨앗이 엘리사벳의 밭에서 물기를 타고 올라가도록 도우셨다. 물론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모태에서 택하시는 은혜를 전혀 모르고 한 몸을 이룬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그들의 사이에서 택함 받은 요한이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육의 부모에게 태어난 세례요한이었기에 그는 성장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을 원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아버지의 모든 계명과 신령한 율법을 지키고자 애를 썼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전에 보내심 받은 목적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코자 했다. 그러나 그에게 이렇게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도 연약한 육을 입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가 영혼의 거룩한 구원에 이르기 전에 육신에서 나오는 죄악된 생각이 있었다.

요한은 늘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더 의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른 영혼들이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아니하고 더욱더 죄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육신으로 인해 다른 영혼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며 오직 자신의 의만이 강했었다.

셋째하늘의 자녀와 백성에게 가장 기초적인 계명이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사랑하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녀들은 다른 영혼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며 백성들은 이웃을 하나님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셋째하늘의 모든 자녀와 백성에게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가장 기초적인 계명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는 자를 가장 먼저 예비했던 세례요한이라도 처음에는 셋째하늘의 가장 기초적인 그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육신의 죄악된 생각이 있었으나 아버지께서 보신 그의 혼적인 성품도 있었다. 그는 오직 아는 것과 배운 것만을 행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비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해야 하는 것만을 끝까지 행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판단치 않고 오직 알고 들은 것만 순종하며 행하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가장 늦게 예비하는 그 일을 맡기신 것이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육신의 죄악과 연약함 가운데서도 변화되고자 하며 아버지의 의에 이르고자 애썼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예비하며 애쓴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마지막에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다음과 같이 베풀어 주셨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일을 모두 마쳤을 때 헤롯이 그의 동생의 여자를 취한 것에 대해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지적했다. 그런데 바로 이 일로 인하여 그는 헤롯에 의해 옥에 갇혔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찾아가 거룩한 육체의 비밀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말씀들에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살과 피를 버리는 자는 아버지께서 영광스런 살과 피를 허락하신다는 말씀도 주셨다.

이에 그는 비추어진 그 말씀의 빛에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씀에 믿음이 생기니 이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되었다. 또한 목베임 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거룩한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거룩에 이른 상태에서 큰 칼에 목이 베이게 되었으니 그의 머리가 바로 그 쟁반에 올려져 피를 즐긴 악한 헤롯에게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마지막에 목베임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을 얻었으되 그것은 오직 아버지의 은혜였다.

세례요한은 자라면서 계속해 광야에서 생활을 했다. 아버지께서 사람을 택하시며 은혜를 베푸실 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깨끗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예비하게 될 그를 어렸을 때부터 세상과 철저히 구별시켜주셨다. 마3:4을 보자.

세례요한과 창조자인 그리스도의 나이차이는 9개월하고 3주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광야에 머무르며 오직 세상과 구별되어 있었다. 그는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을 수 없었으며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에서 늘 낙타털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광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메뚜기와 꿀로 자신의 육의 깨끗함과 건강을 유지했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광야에 거하면서 세상과 구별된 의식주를 취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예비하는 일을 하며 오래 전부터 이 세상의 어떤 무엇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아버지께서 만드신 것들만 자연에서 취하며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예비했다.

이것은 택하신 교회와 신령한 마찬가지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세상의 이방인과 같은 음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늘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신다.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모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땅과 하늘의 충만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원수의 자식들이 더럽힌 하루 세끼의 음식을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고 믿음으로 먹고 마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종들을 통해 깨끗케 해주시니 교회는 늘 깨끗한 것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세상의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에 이 세상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고 있으며 돈도 쌓아놓지 않는다. 교회는 입술로 들림 받을 것을 말하며 믿는 자들이요 그 믿음대로 사는 자들이다.

교회가 이렇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육과 세상이 자신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언제라도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면 그 어떤 것에도 미련 두지 않고 공중으로 올라갈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믿는 자들도 유혹한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들림 받기를 원해 갑자기 몰려들어 자신의 재산을 다 내놓는다. 이들은 오늘까지 이 세상의 영광을 취하다 내일 거룩하고 영광스런 휴거를 원하는 악한 자들이다. 이들은 1992년뿐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시대에 이렇게 두 마음을 품고 욕심을 부린 악한 자들이 늘 있어왔다.

거룩한 자녀와 신령한 몸의 아버지께서는 의와 거룩을 위한 정직한 땀과 눈물과 피를 원하신다. 또한 모든 것을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주관하신다. 또한 질서 안에서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런 악한 자들은 받으시거나 돌아보시지도 아니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거룩케 하시는 일을 완전히 마치셨다. 하지만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조금도 취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원수에게로부터 오는 것이며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기에 취하시지 않은 것이다. 광야에서 원수에게 받은 시험이 그것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당연히 오늘까지 더러운 이 세상을 즐기다 내일 갑자기 영광을 얻기 원하는 자들을 받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들에게 공평하고 정직한 심판을 엄히 내리신다.

또한 교회는 거룩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과 행함을 드리며 오랫동안 땀과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다. 교회는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평생을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구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정직한 믿음을 보시고 약속들을 이루어주신다. 교회는 이렇게 세례요한이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만을 취했듯이 지금도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는 일용할 양식만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는 지금도 이렇게 세상과 철저히 구별되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대환난에서 가장 늦게 예비하게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이처럼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 이 세상과 철저하게 구별되어 광야에서 자라났다. 또한 그의 나이 열여섯이 되었을 때부터 광야에서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 두 살부터는 자신에게 오는 자들에게 요단강의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푼 것은 그의 나이 27세하고 4개월이 되던 때였다. 그리고 창조자와는 9개월의 차이가 나므로 그리스도께서는 26세하고 7개월에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풀고 2년 후인 29세하고 4개월이 되었을 때 옥에서 피의 제사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세례요한이 광야에 있을 때 그에게 계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의 길을 가장 먼저 예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풀고 난 후에는 아버지께서 그 선물을 거두셨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해야 할 일을 다 했기에 더 이상 그 선물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광야에서 구별되어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한 후 비로소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예비하기 시작했다. 마3:1-2을 보자.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며 제일 처음 선포한 것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회개와 천국이었다. 여기서 회개라는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을 뜻하고 천국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다가오는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자 한다면 회개하고 반석으로 올라가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는 의미다. 거룩하지 못한 자가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대로 당연한 것을 외쳤다.

아버지께서 합당하게 받으시는 자의 기준 중 하나는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자는 절대로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돌이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의는 다른 사람을 해치고 다른 사람의 죄를 더욱더 드러내는 의다. 즉 자신이 불의가운데 거하면서 의를 드러내니 그것은 참으로 불의한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의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의로우신 아버지 앞에서 시시때때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런 자들을 모두 가인과 같이 보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이니 그것이 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이요 회개하고 돌이켜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자신이 걷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만을 아버지와 아들의 그 나라로 받아주신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켜 거룩에 이른 자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다.

이 썩어질 육신에서는 자유함이 없다. 현재 입고 있는 몸은 연약하고 아프고 병들고 슬프며 죄도 있다. 또한 모든 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거룩한 몸은 무엇이든 한번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완전한 자유의 몸을 죄에서 자유케 되기 원하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에 이른 자들에게 허락해주신다.

세례요한은 또한 아버지의 거룩한 셋째하늘로 갈 때 오직 한 길로 가야 함을 외쳤다. 그 한 길이 바로 천국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고난의 길을 걸은 자들은 거룩한 몸을 얻어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계신 셋째하늘의 지성소 앞 성소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그리고 그 후에 거룩에 애쓰는 것에는 이처럼 큰 복과 영광이 있다.

세례요한은 이처럼 천국과 회개를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는데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전에 약속된 것이었다. 마3:3을 보자.

이 말씀은 이사야의 예언을 마태가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40:3을 보자.

이 말씀에서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 알리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길을 가장 늦게 예비한 자는 세례요한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자들은 바로 ‘너희’다. 너희에는 세 부류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너희는 바로 온 유대민족이다. 둘째 모든 이방민족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이방민족들을 위해서도 오셨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친 것이다. 이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이방인은 그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었다.

셋째 원수다. 그리스도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원수에 의하여 결박 당해있었다. 그러므로 마음속 죄를 가지고도 오직 육의 원함과 세상의 영광만을 따라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원수의 결박을 십자가로 끊으시고 살고자하는 자들을 아버지께로 묶어주셨다. 원수도 아버지의 말씀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살과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육신의 죽음을 당하시는 순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는 자들의 영혼에서 그의 손을 떼어야 한다. 결국 원수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는 세례요한의 선포로 인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준비한 자도 있고 듣고도 준비하지 않은 자들도 있다. 우선 원수는 믿음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에게 그 손을 떼므로 그가 원치 않을지라도 그리스도의 길을 철저히 예비했다. 거룩에 애쓰는 자들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못하므로 예비했다. 그리고 거룩에 이른 영혼들에게 그 더러운 손도 대지 못하므로 예비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민족가운데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자들은 예루살렘교회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은 자들의 약속을 성취했다. 그러나 남은 자들 외의 다른 모든 유대인은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시대 동안 아버지께서 정하신 모든 유대인교회의 뿌리가 되었다.

당시 이방인들 가운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자들은 안디옥교회를 이루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는 다른 이방지역으로 뻗어갔다. 그리고 그 이방인교회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얻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시대 동안 모든 택함 받은 이방인교회들의 뿌리가 되었다.

세례요한은 회개와 천국의 선포만 아니요 세례를 통해서도 백성들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게 했다. 당시에 그는 백성들 가운데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저 물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었다. 먼저 세례를 베풀기 전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즉 ‘너희들이 이렇게 물로 씻겨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성전의 물로 씻겨지는 것이 아니요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에 씻어져야 하는도다.’라고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자기의 영혼이 죄와 원수로부터 해방되고 피가 깨끗해지고 몸까지 깨끗해짐을 깨달은 자들은 자신들의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그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때 모두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예루살렘교회로 모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례요한이 만일 요단강의 물로 세례를 주며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죄에서 돌이키는 자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정작 그 영광과 풍성의 피를 흘리셨을 때에도 죄의 씻음을 받고자 하는 자가 없었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사람들이 ‘물의 씻음’을 ‘십자가의 피의 씻음’을 믿도록 그리스도를 예비했던 것이다.

이렇게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통해 피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마3:5-6에 기록되어있다. 당시 그가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던 곳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요단강이었다. 정확히는 에브라임 동쪽의 유대지역에 속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이때 그가 물로 세례를 준 숫자는 여자와 12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을 빼고 남자성인만 5234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우선 세례요한의 앞에 와서 자신의 모든 허물들과 죄의 성품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면 요한은 회개한 자를 물속으로 넣고 3초 후에 물위로 올렸다. 그리고 물위로 올라온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영혼과 육체가 깨끗해지는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 행한 물세례였다.

교회는 세례요한이 행한 물세례가 어디서 나왔는지 또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불의한 죄인이 이제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되기 위해 물세례를 행하기 때문이다. 죄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후 필요한 것은 거룩하신 영의 세례다. 거룩하신 영의 세례란 자신이 자신에게 이끌리지 않고 거룩하신 영께 책망과 훈계와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거룩하신 영의 세례를 받는 자는 결국 거룩에 이른다. 그리고 거룩에 이른 자는 부활하여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는다. 그런데 바로 그 거룩하신 영의 세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물세례이다. 그러므로 의와 거룩을 이루어가며 아버지의 자녀 됨을 바라보는 교회는 아버지께서 세례에 담아주신 의미들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세례는 그리스도전의 제사의식에서 왔다. 그리스도전의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성소로 들어가기 전 반드시 손과 발을 깨끗한 물로 씻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아버지께서 임하실 수 있는 지성소로 들어갈 때 한 번 더 손과 발을 씻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임하시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반드시 깨끗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세례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세례요한이 광야에 있을 때 물의 깨끗함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깨끗한 물로 씻음 받은 자만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분명히 깨끗한 물로 씻고 들어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수없이 죽어 나온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세례요한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셨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나오는 대제사장을 보며 사람이 겉만 깨끗하다고 거룩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즉 속 사람이 깨끗해지고 겉 사람도 깨끗해져야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세례요한에게 주시고는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아닌 이제는 모든 일반백성에게도 물로 씻는 그 의식을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전에는 오직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만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두멍에서 깨끗한 물로 씻음 받는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백성들에게도 깨끗한 물로 씻는 그 은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이제는 백성들도 누구나 성전의 뜰에서부터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성소와 지성소가 어떤 장소인지를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도 오직 제사장과 대제사장만이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며 깨달음을 얻어 속 사람을 깨끗케 한 유대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미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해있다.

그 어떤 사람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를 속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는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목욕한 자신의 몸이 아무리 깨끗해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더럽다면 당연히 아버지께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의 상식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물로 눈에 보이는 육신의 더러움만 씻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과 생각의 모든 죄들도 깨끗이 씻겨져야 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피로 온전히 죄의 씻음을 받고 깨끗해지면 비로소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행한 세례는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갈 때 물로 깨끗이 씻는 의식에서 온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세례에는 계속해서 깨끗이 씻겨져 간다는 의미가 있다. 세례요한이 다른 영혼들을 세례 준 것은 물을 머리에 뿌리는 것이 아니요 발끝서부터 머리끝까지 물속으로 담근 것이었다. 또한 물을 가둔 욕조에서 행하는 것도 아니니 반드시 흘러내려가는 깨끗한 물에서 베풀었다. 왜냐하면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온몸의 죄를 흐르는 그 깨끗한 물이 깨끗하게 씻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바르게 세례를 행하고 받았을 때의 유익이 있다. 그런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 반드시 거룩하신 영의 인도를 따르게 된다. 즉 거룩하신 영의 세례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속해 거룩하신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둘째사람에게 처음에 주셨던 그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원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져서 아담의 타락전과 같이 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원수는 종교인들을 통해 이 세례를 더욱 쉽고 편안하게 또한 매우 가벼운 행위로 바꾸었다. 또한 뿌리든 잠그든 의미는 같다고 하며 실제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세례의식을 주고받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지금도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아버지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자가 물에서 나올 때 그 몸과 마음과 생각을 한 순간에 회복시키실 수 있으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의와 거룩을 이루는데 정직하고 성실한 땀과 눈물과 피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세례를 받고 나오는 영혼에게 깨끗함을 목표를 주시는 것이다. 이때 아버지께서 주신 깨끗함의 목표를 붙드는 자들은 자신이 계속해서 깨끗이 씻겨져 가야 함을 깨닫고 인정하며 땀과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육체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깨끗함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세례를 받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만을 붙들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그가 거룩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주신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깨끗해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거룩하신 영의 세례를 받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어떤 사람이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고 있다면 거룩하신 영으로 충만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거듭남이 거룩하신 영의 세례로 이해한다. 또한 큰 수가 모이고 눈에 보이는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거룩하신 영의 충만으로 이해한다. 그런 자들이 만일 아버지의 뜻을 역행하는 그런 태도와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거룩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구약과 달리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은혜를 얻은 자이다. 교회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특권을 가진 자들이다. 아버지께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오래 참고 기다리며 계속 깨끗이 씻겨져 거룩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거룩에 이른 자들만이 둘째사람이 범죄치 않았을 때의 그 깨끗한 마음과 영혼으로 회복되고 아버지께서 아들의 한 몸에 거하는 그 깨끗한 영혼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버지와 약속을 하자. 제가 만일 거듭난 후에 마음과 영혼이 완전히 씻음 받는 것을 중간에 멈추면 저의 더러운 마음과 죄악된 육체는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와 성소에서 그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합니다. 이를 위해 저에게 깨끗함의 목표인 세례를 주셨사오니 그 의미와 목표를 한 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육의 한계를 지닌 저의 힘과 노력으로 그 목표를 이룰 수 없으니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만을 붙들고 계속 깨끗이 씻도록 애쓰겠습니다. 아버지시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의 살과 피를 깨끗케 하시고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저를 책망하시고 훈계하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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