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영이 거듭난 후의 영적 전쟁

아버지께서는 생명의 물 안에서 흙으로 둘째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아담의 심장 뒤에다 깨끗한 마음을 허락하신 후 그 깨끗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어주셨다. 그리고 그 거룩한 영의 한 부분에 거룩한 혼이 붙어있으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믿고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자의 그 거룩한 혼을 일으켜 세워주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거룩한 혼이 깨어났다는 표현이 바로 거듭남 혹은 중생이다.

결국 거듭난 사람의 육체에서는 그 깨어난 거룩한 혼으로 인해 그의 영에서는 이제 영의 생각이 나오되 아직까지 육신을 입고 있으니 당연히 육신의 혼도 나온다. 그런데 육신의 혼이라는 것은 오직 육신의 생각이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늘 자신의 의를 드러낸다. 또한 썩어질 육의 욕심과 필요를 얻기 위하여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을 따르는 것도 바로 이 육신의 생각으로 인함이다. 반면 영의 혼은 거룩한 생각으로서 오직 진리를 따르며 또한 아버지의 생명을 전해주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의와 거룩에 이르고자 애쓴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이 거듭난 순간부터 그 사람의 영과 함께 하시며 그가 십자가의 피를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도와주신다. 예를 들어 거듭난 자의 거룩한 혼은 영과 함께하시는 거룩하신 영의 책망에 순종하며 도움을 받게 되니 자신의 생기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에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그의 육체에게 ‘더 즐기자. 더 편안하자.’라고 하며 자신의 안에서 두 인격이 싸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인격체이니 육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따를 수도 있고 생기에서 나오는 영의 생각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의 판단이 썩어질 육과 소망 없는 이 세상을 원한다면 그의 육의 혼이 그의 거룩한 혼을 눌러 이기게 된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원하면 그의 거룩한 혼이 그의 육의 혼을 눌러 이기게 된다.

그런데 거듭난 자가 이렇게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하여 거듭남이 없는 자에게 깨끗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주셨으니 거듭나기 전의 사람에게도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피가 없는 후회나 자책이나 반성이나 결단은 받으시지 아니하신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므로 회개나 돌이킴이 아니요 그리하여 죄들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또한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따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거듭나므로 거룩한 혼이 일으켜진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어 놓고 회개할 수 있다. 자신의 영이 과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었고 보았고 기억하고 있기에 또한 거룩하신 영께서 그의 영을 통해 기억나도록 도우시기에 거룩한 혼이 생각나는 그 허물들을 낱낱이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난 영혼은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거룩한 생각이 육의 혼을 이기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의 일 즉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에 이르러 자녀가 되는 그 일을 원치 않으면 그의 육신의 혼이 그의 거룩한 혼은 누르니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한 푼 두 푼 썩어질 육을 거두기 위해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을 헤엄쳐 다니게 되는 것이다.

반면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의를 마음으로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이젠 의를 따르겠노라 결단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자가 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그가 아직은 의로운 말과 행함이 없어도 그를 의롭게 여기시니 그의 믿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을 행하면 그를 비로소 의인이라 칭하신다. 또한 인자를 의지해 거룩에 이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죄와 싸우면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그의 마음에서 그 선악의 뿌리를 제해주시니 그가 바로 말씀에서 성도라 불리는 거룩한 자이다. 그리하여 성도는 그 육신의 장막을 벗어났을 때 자신이 맺었던 옳은 행실만큼의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버지의 그 약속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거룩하게 되어 거룩하신 영의 이끄심을 따라 순종하며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는 자가 바로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이른 자요 또한 믿음의 결국인 그 영혼의 구원을 입을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로소 그 정결하고 거룩한 몸의 생명을 소망할 수 있는 영혼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난 영혼들이 온전한 구원의 길에서 벌이는 그 영적인 싸움에서의 승리는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사모하는 자와 마음이 깨끗한 자는 마음이 육신의 요구를 이긴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를 좋아하는 자와 쾌락을 즐기는 자는 육신의 생각이 늘 자신의 영과 자신의 거룩한 혼과 자신의 살고자하는 마음까지 누르며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까지 벗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사망으로 들어가 사망권세를 가지고 있는 원수에게 결박되기 위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정결한 몸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하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전쟁

허리를 숙여 돌을 주워라

혼의 자유와 육의 자유를 향한 영의 자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태그 구름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