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네 사람이 함께 길을 걷다 이런 말을 들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배움이 있든 없든 귀하든 천하든 지난날 어떠한 사람이었든 현재 어떠하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진심으로 믿고 또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진심으로 다 회개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진심으로 영접하면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은혜 받은 영혼을 형벌에서 구원해 자신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니다.” 그 말을 듣자 세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세 가지를 진심으로 행하므로 그 은혜를 얻었다. 그러나 네 번째 사람은 그 마음을 가지지 않고 스스로 거부하고 자기가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런데 거듭난 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크고 넓고 깊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어떤 목자를 찾아가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목자의 말에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아버지를 바르게 섬기며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이니 그에게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첫 번째 사람은 평일에는 열심히 돈을 따라다니다 금요일저녁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 번 바늘을 맬지 어떤 미끼를 쓸지 얼마나 무거운 돌을 맬지 이것저것을 보고 준비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잡았다며 두 손으로 들고 있는 물고기사진을 보며 기대에 부풀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제 모든 채비를 갖춘 후 늦게 잠을 청했으나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물에 가있었고 손은 맛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다른 날과 달리 단번에 일어나 새벽공기를 마시며 주중에 정해놓은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급한 마음으로 물을 바라보며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고는 던졌다 거뒀다 반복했다. 그리고 동행과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밤하늘을 보며 집에 돌아와 대충 던져놓고 쓰러져 곤히 잠을 잤다. 이제 주일아침이 되자 교회 가라고 시계가 계속 울렸다. 하지만 온 마음과 힘을 다한 관계로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목자에게 늘 들은 말이 있으니 억지로 가서 헌금하고 설교시간에는 어제 즐긴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다 마치자 목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왔다. 그러므로 생명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 목자는 그가 자기의 말을 듣고 나와 헌금하는 것을 보며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자 이젠 그 쉬운 일조차 싫어지다 나중에는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여행을 다니며 세 번째 사람은 술 마시고 즐기며 그렇게 섬겼다. 하지만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은 ‘과연 이것이 주님을 섬기며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과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며 또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그 뜻을 이루고 싶었다. 그러다 어떤 목자를 만나 이런 말을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안에 거하시길 원하시니 당신이 거룩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향한 아버지의 뜻은 바로 거룩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세상에서 나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거룩해집니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서는 아버지께로 자신의 생명을 드리니 그는 그리스도처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를 섬기며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입니다.” 그들을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씀과 기도에 애썼다. 그러나 잘 안되었다. 그래서 문제가 뭔가를 생각해보니 사람은 마음도 몸도 각각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전에 즐기던 것을 포기하고 오직 거룩의 일에 마음과 몸을 두었다. 그랬더니 예전에 마음을 다해 술과 여행을 즐기듯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은 자기의 마음과 모든 것은 드릴 수 있으나 목숨을 바치는 것은 두렵고 자신이 없었고 세 번째 사람은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를 섬기기 원했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며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을 이룬 두 번째 사람은 마지막 때가 되자 들림 받았고 세 번째 사람은 거룩을 이루고 성전이 된 후 아버지께 살과 피를 드렸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그런 신앙생활이 괜찮았으니 계속 그 목자의 말을 듣고 행하다 그런 목자와 양들이 가야 할 곳으로 그 목자를 따라 들어갔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어리석기에 하라는 것은 하되 그가 참으로 마음을 다해 하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만약 말씀에 ‘너희가 매일 몸을 씻고 하루에 세 번씩 손을 씻으라 그리하면 너희 몸이 거룩해지리라.’기록되어 있으면 매일같이 몸을 씻지 않고 손을 세 번 씻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하는 것과 같고 마음 없이 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런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또한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거룩케 하시어 성전을 삼으실 수 없으시다.

이처럼 발람은 아버지의 백성들을 오직 마음 없는 행위로 이끄는 자이되 그가 그렇게 믿는 자들을 이끄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먼저 거룩이 아닌 육과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을 거룩케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그런 자는 자신과 가족들부터 거룩을 이루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룩한 행위들을 하니 아침에도 기도하고 찬양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 말씀도 전하고 찾아 다니면서도 전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이 눈먼 희생을 드리며 간음한다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섬기며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의롭게 여기니 그는 그 행위들로서 점점 더 자신을 묶게 된다.

그런데 그 올무에 묶인 목자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런 행위를 보여주고 지난 일을 간증하며 이렇게 하면 여러분에게도 복과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어리석은 자들은 아버지의 앞에 나와 그 인도자를 보며 거룩한 행위들을 따라 하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그리하여 그 양들도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처럼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새로운 생명에 이르지 못하니 그들도 자기의 목자들처럼 자신의 안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발람에 속한 양들과 니골라당에 속한 목자들의 영적인 관계도 있으니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발람의 양들은 반드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목자들을 따르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발람에 속한 자들은 니골라의 목회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께 나가려 하되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닌 행위로 나가는 것이 된다. 또한 자신과 같이 행하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는 자라 꾸중을 한다. 또한 ‘내가 이 사람보다 낫고 저 사람보다 낫다. 나는 매일 열 개의 계명을 지킨다. 내일은 열한개의 개명을 지킬 것이니 내가 그리스도 앞에 더욱 가까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러면서 그들의 영혼은 십자가 앞에서는 매우 떨림으로 서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가리니 자신이 발람의 올무에 묶여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행위를 통해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갈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오히려 그 행위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발람을 따르는 자들은 말씀을 모르기에 그 올무에 묶여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니 그들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믿는 자는 거룩해야 함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는 돈을 따라다니고 주말에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즐기다 주일에는 아버지의 앞에 나가 거룩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육의 기쁨과 세상의 영광에서 돌이키길 원치 않기 때문이요 또한 그 마음 없는 행위를 통해 얻을 헛된 복과 상급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도 없다. 그리하여 말씀은 알되 지키지 않는 그들은 오직 마음 없는 행위만 보이며 그 마지막 심판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의 말씀에 기록되기를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 하셨으되 사람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고 힘은 오직 정욕을 위해 쓰고 정성은 오직 자기의 육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로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시대에 아버지께로 마음이 있는 자들이 몇 안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이 있되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마음이 있되 행위가 있는 자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셨으니 이 마지막 때에도 불쌍한 자들을 기다리시고 계신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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