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는 자기의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 그리고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서 집으로 갈 때 즐겁고 자식은 그 선물을 뜯어보고는 기뻐하며 가지고 놀면서도 기뻐한다. 그리고 부모는 그 기뻐하는 그 자식을 보며 자신도 기쁘고 흐뭇하니 그 선물로 인하여 부모와 자식이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자식이 선물을 준 부모는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선물만을 보고 좋아한다면 그러한 아이가 나중에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의 아비와 어미에게 어떻게 하는 자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니 오히려 그 선물보다는 선물을 들고 있는 아빠를 반기며 그 선물을 뜯어 들고는 아빠의 품에 안기어 감사하다고 하며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도 아빠가 오면 아빠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 옳다. 또한 자식은 그 선물을 보며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 선물을 준 사람과 자신이 어떠한 관계인지를 늘 마음에서 잊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이와 같으시니 아들인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은사를 내려주신 이유와 목적을 깨닫고 그것에 맞게 그 선물을 이용하기 원하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지해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의 그 마음에 늘 아버지와 아들을 품고 있기를 그리고 그 선물을 이용하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요 그것을 주신 분이 자신의 주님이라는 것도 늘 잊지 않기 원하신다.

     그러나 자기만의 욕심과 유익만을 품은 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어리석음을 취한다. 즉 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사랑과 은혜를 베푼 부모가 아닌 부모가 가진 것에 그의 마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을 주님으로 믿는다 하며 어리석음을 취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어떤 여자가 자기의 남편을 보고 말하길 당신은 저의 주인이라고 하며 그 남편의 아비를 보고는 자기의 아버지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을 보니 눈과 귀와 입과 몸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너무나 많았으니 거기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날마다 세상을 향하여 나갔으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 와서 다시금 말로 그것을 시인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저 두 사람이 당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맞냐고 물을 때도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 그렇다고 시인했다.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했으니 끝까지 세상을 향하여 나갔으며 게다가 세상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집에 와서 역시 말로 그것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이 물을 때도 시인했다. 그러나 그의 시아버지는 그 여자를 딸로 그의 남자는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그의 행위는 끝까지 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자들은 그 입이 주라 시인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인정을 안 하신다.

     그런데 이 입술의 시인과는 다른 그 마음과 몸의 행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자들은 그 시인을 하고 자신을 돌이켜 보았을 때 세상으로 나가는 자는 오로지 그 순간만을 넘기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 영혼은 아직 그 빛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라는 시인을 그의 영이 하는 자들은 그들도 역시 그 육의 입에서 주라 시인한 후에 그 육적인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모든 육을 내려놓는 자는 그 영혼이 살아있기에 그 빛이 그 마음과 또한 그 생각과 육을 지배하므로 거룩해진다.

     그런데 영의 시인과 동일한 그 마음과 몸의 행위를 통해 역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 입술의 시인은 그저 그 순간만을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과 은혜로 그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겠다는 시인과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만이 아버지와 아들의 그 신령한 생명과 그 거룩한 피를 얻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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