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어떤 여자가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으니 그 여자는 자기의 몸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며 기쁨을 얻었다. 그 남자는 또한 그 여자가 고민하는 것을 들어주며 이런저런 말로 위로해주었다. 심지어 그 여자가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신을 이해한다며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먼저 그 여자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처음에는 잘해주다 자기의 욕정을 채운 후 마지막에는 그 여자를 물에 빠뜨려 죽인 후 보험금을 챙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유창한 말과 또한 이것저것 잘해주는 모습에 넘어가 그 남자를 사랑하며 따라갔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한동안 자기의 몸이 원하는 것들은 얻으며 육신이 기뻤으나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을 얻지 못했다. 마음의 만족은 돈이나 물질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요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을 통해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여자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와 불안과 슬픔과 두려움가운데 살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에 바르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키 크고 잘생긴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으며 또한 그 남자가 자신에게 비록 육적인 만족은 주지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어느 날 키가 작고 못생긴 한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옛날남자에게 벗어나 키 작고 못생긴 남자를 사랑하며 따라갔다. 그런데 키 작고 못생긴 그 남자는 포도과수원의 주인이었기에 금요일에 해야 할 일이 가장 많고 또한 제일 바빴다. 그리고 그 여자도 자기를 사랑해준 그 남자의 포도원에서 일하며 풍성한 열매를 얻고 싶었다. 이에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자 금요일마다 온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곳에 그 여자를 초대해 함께 외식을 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식사를 마친 후 그 남자와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과수원 일을 했다. 그리고 다른 날에는 금요일에 필요한 것들을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 일을 하며 이전에 얻지 못하던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었으며 또한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키 크고 잘생긴 그 남자가 한번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어리석게도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갔으니 그 악한 남자는 자신의 잘생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예전처럼 그 여자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육신의 기쁨을 위하여 그 옛날남자를 계속 만났다. 그러면서 자기의 남자와 함께 하는 그 과수원 일에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키 작고 못생긴 남자는 그 여자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육의 기쁨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을 더럽힌다오. 하지만 당신의 몸을 이용해 과수원 일을 하면 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다 나중에는 당신이 원하는 포도열매를 풍성히 얻게 된다오.그러니 육의 기쁨을 따라가기 보다는 나와 함께 외식을 한 후 과수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또한 당신의 마음에도 갈등이 없을 것이요.” 그 남자는 이러한 말을 한 번 두 번 세 번 해주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으니 육신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과수원이 가장 바쁜 금요일에도 옛날남자를 만났다. 심지어 그 남자와 함께 밤을 지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의 남자와 외식하는 시간에 늘 늦었다. 또한 자기의 남자와 함께 과수원 일을 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았다. 이에 키 작고 못생긴 남자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나와 그 남자 중에 오직 한 사람만 택해야 당신의 마음과 몸이 함께 기뻐할 것이요.” 그러자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마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또한 가을에 풍성한 포도열매를 얻을 것을 믿어요.” 그러나 그 여자는 옛날 남자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또한 그가 주는 돈을 얻기 위해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인 거룩한 공동체에 거하는 모든 지체들이 오직 한길을 정해 자기의 마음과 몸이 함께 그 길을 걷기 원하신다. 즉 십자가의 길과 세상의 영광스러운 길 사이에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영혼들에게 둘 중에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인지 결단하라는 의미가 이 말씀에 담겨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은 그리스도께 있다 하고 또한 그 믿음이 있다라고 하는 자들이 그의 육은 세상에 있으면 마음도 믿음도 오로지 세상에 함께 가 그 길로 가는 것이 그에게는 갈등이 없다. 그리하여 그는 오로지 육이 기뻐하며 또한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땅에 살면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도 그리스도 앞에 있고 또한 자신의 믿음도 십자가 앞에 있는 자는 그 거룩의 길에서 비록 시험을 당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그 몸을 세상에 팽개치지 아니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몰아치는 그 시험가운데서 늘 말씀의 기초로 돌아가 그 시험을 참고 기뻐하며 오직 자신의 그 몸을 통하여 홀로 있을 때에도 또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에도 다른 영혼들의 거룩을 위하여 섬긴다. 또한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있으니 그 몸을 통하여 자신이 믿음에 더 이르도록 이용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의 몸을 거룩한 병기로 쓰는 자의 마음과 영혼은 그리스도의 그 평화를 얻고 또한 아버지께로 은혜를 얻는다.

     한편 거룩하신 영께서 바울을 통하여 이 말씀 안에 담아놓으신 비밀의 말이 있으니 그것은 곧 거룩한 공동체에서 품을 자와 끊어낼 자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로지 교회를 거룩하게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목사와 장로와 성도에게 해주는 말씀이다. 사람은 모든 자들이 불의하며 죄인이니 교회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다 품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다. 그러나 품지 말아할 자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실수로 죄짓는 것은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할 것이요 알고 짓는 죄는 그 자를 감독에게 넘기어 감독이 그를 자르라고 그들에게 부탁하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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