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한 의로운 왕이 자기의 아들에게 자신의 온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의 아들이라고 그 영광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요 먼저 그 영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에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의로운 계획에 따라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나의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아!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산에다 길을 만들기 원하는 도다. 그러면 나는 너에게 온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영광을 줄 것이요 네가 만든 길로 올라오는 자들에게도 그들이 올라오며 고난 받은 만큼의 영광을 주겠노라.” 그 아들은 이제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올라가지 않은 곳에다 산길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므로 두 개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나오자 더 힘들지 않고 쉬운 쪽에다 길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표지판에 이렇게 써있었다. “왕의 뜻을 이루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하지만 그 길은 더 힘들고 어렵겠노라.” 그 아들은 그것을 읽고 오직 자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었으니 오른쪽에다 길을 내며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 길은 더 힘들고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항상 더 힘들고 어려운 쪽에다 길을 내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그 왕은 자기의 뜻을 위해 더 힘들고 더 어려온 길을 내며 올라온 그 아들에게 더 좋은 영광을 주며 안아주었다. 이때 그 주위에 모여있던 그 나라의 모든 종들은 그 아들이 영광 받는 모습을 보며 그 왕을 보고 의롭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 나라의 온 백성들은 다 함께 박수를 쳐주며 저 아들은 영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외쳤다. 잠시 후 백성가운데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그 아들이 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의 뜻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내면서 올라가지 않고 그저 그 아들이 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지만 그 산이 너무나 험하고 높아서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다 그 첫 번째 표지판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왕의 아들이 더 힘들고 어려운 쪽에다 길을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표지판을 읽은 후 깨달음을 얻고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그 아들이 낸 길로만 따라 올라갔다. 이제 드디어 그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 나라의 모든 종들과 백성들이 그를 환영하기 위하여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왕은 나의 뜻을 위해 더 힘들고 더 어려온 길로 올라왔으니 너에게도 더 좋은 영광을 주노라고 하며 안아주었다. 이때 그 사람이 영광 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 주위에 모여있던 종들과 백성들은 처음과 동일한 말을 다 함께 외치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 그 길을 올라온 자들이 한 명 한 명 다 영광을 받은 후 모든 자들이 다 함께 왕이 궁전에다 준비한 큰 만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아들과 그 길을 따라온 자들이 왕의 뜻을 위하여 고난 받으며 산을 올라오는 모습을 다시금 큰 화면에다 그대로 비추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자들이 고난 받은 모습을 보며 서로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또한 함께 고난 받은 것에 대한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위로도 해주었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고난스럽다. 그러나 그 길이 고난스러워도 그가 그리스도를 따라 끝까지 그 길을 걷는 것은 그 길이 바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는 새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즉 그 길에 비록 고난이 있지만 그는 그 길에서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십자가의 길에서 새 생명가운데 행하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아들을 따르며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영혼에게는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때에 따라 내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은 비록 고난에 거하지만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그 길에서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쁨과 평화가 그의 영혼과 마음에 늘 임한다.

또한 그 길은 매우 고난스럽지만 그 길의 끝에는 새 생명가운데 행한 자를 위한 새 생명이 실제로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육신의 고난을 받지만 육신의 장막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것과 같은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그리하여 부활에 연합한 뒤로는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원히 새 생명가운데 행하며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새 생명가운데 행하고 있는 지체들에게 거룩하신 영께서 주신 그 말씀의 의미는 이것이다. “그리스도도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할 때에 고난이 더 험하였노라. 마찬가지로 그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자에게는 고난이 더하리니 마지막에 그 부활의 영광이 더 하겠도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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