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어떤 엄마가 자기의 아이를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주었다. 또한 때로는 단것도 주었으니 그 아이는 단 것을 웃으면서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배를 잡고 울면서 아프다고 했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에게 약을 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맛을 보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이에 엄마는 이 약은 쓰지만 너의 아픈 배를 낫게 해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쓴 것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단 것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금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가 만일 지금 단 것을 먹으면 배가 더 아파져서 큰 병에 걸릴 수 있단다. 그러니 먼저 이것을 먹고 나은 후에 네가 원하는 것을 줄게. 그러면 그것이 더 맛있을 거야.” 하지만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계속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아이가 나을 때까지 단 것을 주지 않았으며 손에 오직 약을 들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단 것은 좋아하여 계속 취하지만 쓴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단 것도 쓴 것도 짠 것도 모두다 조금씩 필요하다. 또한 단 것이 더욱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쓴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단 맛의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쓴 맛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어리석다.

     사람은 또한 자기가 뿌리지 않은 것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때로는 비바람을 맞으며 때로는 내려 쪼이는 태양의 밑에서 땀을 흘리며 밭을 가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땅에서 애쓸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거나 애쓰지 않고도 열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게으른 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리석음과 게으름은 아버지를 모르는 이방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믿는 자들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영혼은 말씀가운데서 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의 눈과 귀가 좋아하며 그것을 취해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동일한 말씀에서 책망을 보게 되면 그것을 피하거나 혹은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나친다. 그러나 사람은 책망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애씀이 있을 때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로워지며 거룩해지는 복을 얻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니 그 영광스럽고 복된 생명이 영원히 간다. 그러므로 책망은 원치 않고 오직 복만을 원하는 영혼은 참으로 어리석다.

     또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죽음의 이야기는 하지 아니하고 오직 부활의 이야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은 싫어하되 부활은 그가 영원히 사는 삶이기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 가운데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취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오로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었도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죽지 않은 사람에게 어찌 부활의 생명이 있으리요? 즉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이니 그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후에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은 가운데서 받는 세례는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새로운 영생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가 이제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원히 사는 그 부활을 소망할 수 있는 영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와 혈기와 또한 마지막에 육의 그 죽음은 원치 않고 오직 부활만을 원하는 영혼이 적지 않으니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며 새 영생과 부활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지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죽어야 자신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죽지 않고 한 몸에 두 인격이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든지 자신도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의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그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여야 한다.

     그는 우선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을 위해 물과 피를 흘리셨으니 사람은 자신의 몸과 혼을 내어놓아야 하되 육과 혼은 사망이요 그를 그 죄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과 생각이 비로소 그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겠고 그의 피도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 그 육까지 깨끗하게 또한 거룩하게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이후에는 부활을 맞이할 수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태그 구름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