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사람들은 흔히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범죄자나 죄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가 법을 통해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며 그 형벌을 마땅히 여긴다.그러나 그 사람과 동일한 죄가 그것을 마땅히 여기는 자신의 마음 안에도 동일하게 있으니 형벌 받은 사람은 그 죄를 밖으로 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마음에 있는 그것을 돌이키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것이 밖으로 나와 그와 동일한 형벌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은 죄로 보지 않고 오직 밖으로 나온 것만 허물로 여긴다. 물론 밖으로 나온 것도 더 이상 허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들도 있으니 그들은 이미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의 죄는 금방 눈치채지만 자신의 죄는 알고도 지나치거나 숨기거나 관대하다. 자신의 불의와 죄를 감추고 오히려 의롭게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위가 바로 그 선악의 죄로 인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가 만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도 이렇게 선악의 죄에 이끌린다면 그 죄는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를 따라 말하며 죄를 따라 행한 그는 나중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반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오히려 자신의 안에서 그 죄를 끊어내기 원하니 그는 겸손히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한다. 그리하여 결국 죄에서 벗어나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한 그가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택함의 은혜를 받은 유대인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은 이방인가운데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 죄나 혹은 은혜가 믿는 자의 안에서는 어떻게 역사하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유대인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그 마음을 다하여 지키므로 은혜를 얻어 아버지의 앞에 가까이 간다. 그러나 이방인은 은혜를 먼저 입은 후 역시 마음을 다해 그 율법을 지키므로 아버지 앞에 선다. 이처럼 유대인도 이방인도 은혜를 받는 그 순서가 다를 뿐 둘 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바치니 마음이 되는 자는 이러한 은혜를 얻을 것이되 마음이 없는 자는 이 생명의 은혜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선 아버지의 뜻에 먼저 마음을 바치지 못한 유대인의 경우는 자신이 ‘나는 율법을 지켰소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하늘높이 올리고 그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신령하고 영원한 그 율법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행한 것에 있으니 그는 그 행한 것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함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자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원치 아니하고 자신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함께 말하게 된다. 또한 누구의 말도 듣지 아니하니 자신의 속 안에서 애통하는 그 말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 얽매이게 한다. 그리하여 이런 자는 그의 육이 쇠사슬에 묶인 후 물 아래 깊은 곳에 빠짐과 같다.

한편 첫사랑을 잊으므로 거룩에 마음이 없는 이방인의 경우는 ‘나는 그리스도를 믿소.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도다.’라고 외치며 또한 ‘나는 십의 일을 매일같이 드리는 도다. 나는 하루에 세 시간 아버지께 구하는 도다.’라고 하는 자는 자신의 얼굴이 하늘로 솟아나며 그 두 팔을 휘두르고 길거리를 다니되 그는 오히려 다른 영혼들에게 거스름 돌이 된다. 결국 이런 자도 그리스도를 알고 또한 율법을 행한다고 하며 행하였으되 그의 마음은 그가 처음 받은 은혜에서부터 떠났기에 그는 오직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고 그것을 남들에게도 퍼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강력한 원자폭탄과 같이 자기의 영혼과 그 주변의 모든 영혼들을 사망으로 이끄니 ‘저 영혼을 보아라. 또한 나를 보아라. 나와 같이 하는 것은 의로운 것이요 또한 구원받은 아들로서 하는 행위로 도다.’라고 하되 자신은 그 율법을 지킴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말하니 그는 스스로 자신이 그 깊은 물에 뛰어들어가 그 물아래로 계속 들어가는 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을 얻은 자는 이러하니 유대인가운데 아버지와 그 뜻에 마음을 둔 자는 그 율법을 지키기에 애쓰되 지키지 못함을 보고 날마다 날마다 애통하며 날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하나 하나 기록하여 묵상하고 행하고 그것이 자신의 몸에 배기도록 말씀과 함께 뒹군다. 이런 자는 아버지도 아들도 사랑하시니 그에게 은혜를 주시되 그 자가 오로지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그 연약함에서 일어난다. 또한 자신에게 의로움이 없음을 인정하여 늘 고개가 숙여져 있고 그 입에서는 ‘나’라는 말이 없으며 ‘모든 것이 오로지 아버지의 은혜로 도다. 아버지의 은혜로 도다.’라고 외치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그 말씀을 심는다. 결국 이런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오른손으로 그 발을 들어올려 이 세상의 더러운 땅에 그의 발이 닿지 않도록 하시니 그에게는 생명이 충만하게 거하게 된다.

한편 이방인가운데서 아버지의 생명을 얻은 자는 이러하니 늘 첫사랑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날마다 그 눈에서 눈물이 날것이요 날마다 날마다 자신의 것을 십의 일이 아닌 십의 십을 다 드리고 또한 더 드릴 것이 없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안으시며 일으키시니 그는 오로지 그 머리를 그리스도의 어깨에 대고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대로 좇아가되 조심스럽게 그 뒤를 좇아가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간다. 또한 다 드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저는 부족합니다. 제가 드릴 것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니 땅의 흙이 그 발을 더럽히지 못하며 그리하여 그가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게 된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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