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자들은 듣고 본 말씀이 있기에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자 하며 또한 사랑하기 원한다. 하지만 믿는 자라 하여도 형제자매에 대한 우애가 쉽지 않다. 오히려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며 뒤에서 판단한다. 심지어 형제자매를 상대로 마음에 음행을 품기도 한다.

    이렇게 우애의 대상이 죄악의 대상으로 바뀌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돌아보며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그 깨달음을 통하여 마음을 다하는 형제자매의 우애를 나눌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돌아보아야 하니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진리와 목숨을 주셨으니 모든 것을 다 주셨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받은 제자들은 각자 자기 자신을 낮추었기에 서로를 섬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에게 하신 것처럼 비로소 다른 지체들과 거룩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형제자매를 우애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함이요 또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동시에 자신을 낮춘 자만이 가능한 것이 바로 형제우애이다.

    둘째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계명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주셨으니 제일 먼저 아버지와 아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하셨으며 두 번째로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 하셨고 마지막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세 부분의 계명을 순서대로 지킬 수 있게 하셨으니 먼저 1계명과 2계명을 먼저 지킨 자가 그 다음 3계명과 4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그가 마지막에는 비로소 5-10계명도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가 아버지의 뜻에 애쓸 수 있는 것이요 그가 이웃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에 우상으로 섬기며 그것을 얻고자 힘 있는 자들과 것들을 신들로 섬긴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 마음이 있는 자는 그 우상과 신으로 인하여 1계명과 2계명을 마음을 다해 지키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께로 마음이 없으니 3계명과 4계명도 지키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께서 이웃과 관계해 주신 그 마지막 계명들도 마음을 다해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자신의 마음에 진리와 십자가 대신 우상과 신이 있는 자는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와 이웃을 말로는 사랑하나 눈과 마음으로는 늘 미움과 간음의 상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떠한 신들도 다 무너뜨리고 마음에 우상도 계속 무너뜨리며 자기의 마음을 늘 비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비우는 만큼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은혜를 베푸시니 그는 그 안의 죄악과 싸우며 마지막에는 그 죄악이 새 생명가운데서 떠나게 된다. 더불어 그는 마음을 다하여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어려운 계명도 지키게 된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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