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간에 민족과 민족 간에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좋게 하는 사람을 보고 평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며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구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요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는 거짓평화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3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유사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한꺼번에 마셨던 원수는 그 전쟁이 끝나고 3년 반 동안이나 세계적인 거짓평화를 이룬다. 그리고 누구든지 만일 이 거짓평화에 속아 짐승의 수를 받으면 그는 그 거짓된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들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 거짓평화안에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는 불의와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육과 세상의 욕심을 얻고자 죄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 짐승의 수를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죄인이요라는 증명을 그 짐승의 수로 받아 그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 둘 중 하나를 따를 수 있다. 그리고 둘 중에 무엇을 따르느냐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즉 자신의 마음이 참되면 참된 것을 따르고 거짓되면 거짓된 것을 따르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안에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끝까지 자기 자신의 불의함과 죄를 따르겠다는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된 평화이신 아버지와 아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원수와 함께 모두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참되고 영원한 평화와 일시적이고 거짓된 인간의 평화는 그 안에 의로움과 거룩함이 있느냐 아니면 불의함과 더러움이 있느냐로 구별된다. 그리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참된 평화인지 거짓된 평화인지를 구별할줄 안다. 또한 사람가운데 참 평화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한분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사람사이에 평화를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어 이루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시어 맏아들로 인정하셨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화평케 하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지하는 자는 마음속에 있는 선악의 죄를 끊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로 받은 그 거룩한 살과 피를 아버지께로 드린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화평케 한 그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시어 아들로 인정해주신다.

    그리하여 화평케 한 그 아들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가니 그들이 아버지와 평화를 누리는 사이가 되는 것이요 성소에서 맏형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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