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엡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6)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육체적으로 성관계 맺는 것을 간음(姦淫)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육신이 간음을 하듯 사람의 영도 간음을 하되 ‘간음한 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육신으로 간음행위를 하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은 간음한 것이다. 또한 그 육신으로 행하는 간음을 끝까지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품는 사람도 역시 간음한 영혼이다.

간음하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는 그 간음한 죄의 대가를 받으니 유황으로 타는 무저갱의 불 못에서 그의 눈썹과 머리털이 공중에 매달려진다. 그리고 그의 간음한 몸은 시뻘건 유황불 못의 강에서 고통을 당한다. 또한 불구덩이 안에서 육체가 타들어가며 그 얼굴은 숯처럼 검게 변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그런데 간음하고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 자는 이런 고통을 잠시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받는다. 물론 그리스도의 피가 거룩하심을 믿는 자가 간음을 저지른다면 그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임이 당연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자신이 신랑이신 그리스도예수가 아닌 이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두고 있을 때 그는 간음하고 있는 영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거룩한 곳에만 있어야할 자신의 몸이 늘 세상과도 함께 하는 것을 보며 알 수 있다.

여기서 거듭난 자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육체적인 간음도 간음이나 자신의 육의 욕심을 채우거나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취하고자 이 세상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두는 것은 영적인 간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것을 믿지만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영적인 간음을 정당화한다. 또한 그렇게 말하며 간음을 부추긴다.

반대로 믿는 자들의 안에는 간음하는 영혼만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숫처녀가 되는 영혼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거룩케 하시어 자녀삼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에게 거룩한 살과 피를 내주신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자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두지 않는다.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에 빠지거나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 믿음과 함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과 몸을 드려 그리스도를 따른 그는 거룩에 이르니 그의 영혼은 숫처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숫처녀가 그리스도를 기다리다 마지막에는 들림을 받거나 혹은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정결함과 거룩함을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그에게 입혀주시니 그는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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