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공동체

아버지께서는 남자가 한번에 뿌린 그 씨앗들 가운데 오직 하나의 씨를 택하신다. 하지만 원수가 택하는 씨도 있고 일반적으로 생명을 얻는 씨들도 있다. 그것을 비율로 본다면 한번에 나오는 그 씨앗들 가운데 일반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씨앗들이 90%가 들어있으며 원수에게로 택함을 받을 수 있는 악한 씨들은 9% 아버지께로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씨앗들은 1%가 있다.

 

아버지께서 그 씨앗을 택하시는 기준은 이것이니 아버지께서 그 많은 씨들을 한눈으로 보실 때 그 가운데 연약할 때 참으로 그 연약함을 인정하는 씨가 있다. 그리고 그 씨는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살고자 헤엄을 치니 아버지께서는 그 씨를 택하신다.

 

그러므로 그때에 아버지께서는 다른 씨들은 그 남자의 성기에서 나왔을 때 옆으로 움직이시고 오로지 그 연약한 씨앗만 그 어미의 아궁 속으로 가는 물결로 놓으신다. 그러면 그 어미의 영혼이 그 씨앗을 알고 그 씨를 이끄니 그 씨앗이 어미의 밭에 들어가 육을 입은 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태에서 택함을 받은 그 씨는 그 어미와 아비의 위에 계신 아버지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씨는 처음부터 인도를 받은 씨와 밭이니 그가 택함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것을 깨달은 자는 그 살고자하는 마음조차도 내가 가졌다거나 어떠한 일도 내가 했다거나 하지 아니한다.

 

반면 원수가 택하는 것은 이러하니 아버지께서 택하신 씨는 오로지 하나이지만 원수는 그 악한 씨앗들 가운데 여섯을 골라 그 물결에 둔다. 그리고 그 씨들 가운데 욕심을 가지고 서로가 경쟁해서 이기는 자가 가장 먼저 들어가게 한다. 그러므로 그 씨가 육을 입었을 때는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90%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생명을 허용하시니 그 일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그 90%의 씨앗들 가운데서 가장 살고자하는 씨가 육을 얻어 이 세상에 나온다.

 

그러므로 모태에서 나와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90%는 남자가 평생 동안 계속해 뿌린 그 수많은 씨들 가운데서 오직 그날 나온 그 수많은 씨들 가운데서 일반의 은혜를 입고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그리고 1%의 사람들은 아버지께로 9%는 원수에게로 택함을 얻어 그 90%의 사람들을 각각 아버지께로 혹은 이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원수에게 택함을 받은 자는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은 원수가 잡은 그 씨앗이 들어가도 아버지께서 역사하시면 그가 일반은혜로 바뀌어질 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이 세 부류의 은혜를 받아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선한 것을 공평하게 항상 베풀어 놓으신다. 동시에 원수도 자기의 그 악한 것을 모든 자들의 앞에 놓고 유혹한다.

 

이때 그 어린생명이 어떠한 은혜를 받고 태어났든 지간에 선한 것을 좇으면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푸시어 그를 그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 그러나 어린생명이 어린시절부터 악한 것을 좇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니 오히려 원수에게 얻은 그 육과 세상의 영광을 놓으려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도 자기의 욕심을 이루고자 거짓말하며 다른 자들을 이 사망의 세상으로 이끄는 그들에게서 아버지의 종들을 거두시는 것이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밭을 만드는 세 가지 도구가 하는 일

        아버지께서는 여자에게 밭을 만드는 도구를 한달에 세 개가 나오도록 계획하셨다. 하지만 그 세 개가 각각 세 개의 밭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씨를 위하여 오직 하나의 밭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 세 개는 남자에게서 나온 씨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한다.

 

우선 신령한 물결을 헤치고 물결을 따라 가장 먼저 올라온 씨가 밭을 만드는 그 세 개의 도구의 근처까지 온다. 이때 밭을 만드는 그 세 개의 도구가운데 제일 앞에 있는 두개는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고 막기도 한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온 그 씨가 정확하게 마지막 도구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또한 밭을 만드는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도구는 그 밭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씨앗이 마지막 도구와 붙었을 때에는 그들도 잠시 후 그 밭과 합해진다. 그리하여 그 씨앗을 보호하고 또한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이 없으면 씨앗이 그 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두개가 그 물결을 비켜내는 일도 하는데 그들이 없으면 그 물결이 씨와 밭을 막으니 씨앗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세 번째의 도구를 보호하는 그 두개의 도구가 없는 여자들은 그 씨앗이 올라와도 그 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어린생명을 얻지 못한다. 한편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이 있으나 세 번째 것이 없는 여자는 씨가 올라와도 심길 곳이 없으니 역시 어린생명을 얻지 못한다.

 

생명을 얻지 못하는 또 하나의 경우는 우선 여자의 밭에 남자로부터 씨앗이 들어와 붙는다. 그리고 한 기간을 둔 후 밭을 보호하는 그 두개가 씨를 받은 그 한 개와 붙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것을 보호하며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이 없는 밭은 씨가 세 번째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자라나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밭으로 들어가는 씨의 수와 질서도 정해놓으셨으니 밭을 만드는 그 두개 혹은 세 개의 도구에 각각 씨가 들어가도록 허용치 않으셨다. 하지만 그 마지막 도구에 두개의 씨가 동시에 들어갈 수는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씨와 하나의 밭이 만나 한 생명으로 자라나며 드물게는 두 생명 또한 아주 드물게는 세 생명까지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하나의 밭에 세 개 이상의 씨가 붙지는 못하도록 정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세 쌍둥이 이상이 나온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경우는 사람들은 그것을 꺼내어 여러 개를 하나에 넣으므로 더 많이 가지려한다. 게다가 그 가운데 원하는 것만 선택을 하되 겉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선택하니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중요한 생명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때를 기다린다.

 

둘째 아버지께서 씨앗을 셋 이상을 허용치 아니하심은 여자의 밭이 그 이상의 것을 감당치 못하니 여자를 위하심이다. 그러나 원수는 감당치 못하는 것을 자기에게서 나오는 생명은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생명을 통해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취하고자하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허용한다.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농부는 가을에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씨를 뿌린다. 그러므로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모두다 싹이 터 건강하게 자라나기 원하며 싹이 트는 것을 보며 그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많은 씨들 가운데 싹이 트지 않는 것들도 조금은 있다.

 

그런데 반대로 만일 농부가 뿌린 그 많은 씨들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이 싹이 터서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면 농부에게 그 하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또한 만일 어떤 농부는 6억의 씨를 어떤 농부는 12억의 씨를 평생을 뿌렸으나 그중에 오직 하나나 두개의 열매만을 얻는다면 그 한둘의 열매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과연 어떠할지 당신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 농부의 마음을 깨닫고 자신과 가족과 다른 자들의 생명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동시에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씨 뿌림과 생명의 잉태과정을 계획해두셨다.

 

우선 남자가 씨를 뿌린 후 그 모든 씨앗들이 여자의 그 딸의 권세에 들어간다. 그러나 만일 여자의 그 신령한 물기에 거하지 못한 씨들은 50분 안에 그 씨앗의 생명을 잃고 다시금 흙과 물로 돌아간다. 또한 그 물기와 싸우며 그 물기를 따라 올라가다 포기하는 씨들도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는 씨들이 죽는 기간은 씨를 뿌린 후 오직 세 시간 내지 여섯 시간으로 정해놓으셨다.

 

이렇게 중간에 생명을 잃은 씨앗들 외에 나머지 씨들은 모두다 끝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씨들 가운데서 오직 어느 한 씨만이 가장 먼저 밭을 만드는 그 도구와 만나니 그것이 바로 편히 안식하는 7일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곳까지 올라왔으나 밭으로 들어가는 그 도구와 만나지 못한 씨들은 제7일째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서 7일째에 그 도구와 만난 씨는 씨를 팔일 만에 그 아궁 속의 밭에 심겨진다.

 

그러므로 팔일 째에 심긴 그는 영혼과 육체가 있는 둘째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요 그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질 때 자신에게 부모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참으로 귀하고 귀하고 귀한 유일하고 영원한 생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그 마음을 평생 동안 한번도 가지지 않는 자는 차라리 긴 여행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한 개의 도시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수가 1억을 넘지는 못하며 마지막 때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수도 69억을 넘지 못하니 아버지께서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몸 안에 계획하신 70-130조의 세포가 얼마나 많은 수인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130을 넘지는 못한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든 70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그 육은 사망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한 개의 세포 안에 50개의 염색체를 계획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숨기신 그 4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1개의 염색체 안에다 정확히 5천개의 유전자를 넣어두셨다. 그리고 1개의 유전자는 4만4천5백 개의 염기벽돌로 만들어놓으셨다.

 

한편 이방인들이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들 가운데 맞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아미노산의 종류는 20개로 정하셨으니 3개의 염기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정한다. 하지만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의 수는 정해지는 수가 없으니 정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가 섞여질 수도 없기에 정하지 않으셨다.

 

또한 사람의 유전자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며 지나가는 기차를 보았지만 그 기차는 너무나 빠르니 그것을 보고도 기차가 몇 개로 연결되어있는지를 몰랐다. 하지만 평생 보니 그 기차가 세 칸으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기차의 안에 있는 기계와 작은 나사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또한 그 기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영원히 깨닫지 못했다.

 

이와 같이 원수의 일을 이루기위해 각 나라에서 지혜 있다는 수많은 자들이 모여 게놈을 해독했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어떤 순서로 놓여있는지를 본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는 자들은 그 하나하나가 하는 일을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순서가 옳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옳지 않을 때에는 아버지께서 그 뜻대로 막으시는 때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그 수가 동일하지 아니하게 된다. 하지만 동일하지 않아도 불구는 아니로되 다른 생명에 비해서 연약할 뿐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그 안에다 질병을 넣지 않으셨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몸과 혼에 생기는 질병은 유전자의 문제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염기나 단백질이 잘못 놓여있어 생기는 것도 아니요 돌연변이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그 하얀 피와 세포가 모자라며 또한 그것들이 자기의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의 영혼이 죄로 인하여 이렇게 된다. 그러므로 우선 한 영혼이 죄와 세상과 함께 할 때 아버지께서는 그 손을 그 영혼에게서 떼신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도 그 범죄한 영혼에게 그에 맞는 심판을 내리신다. 그가 그 심판의 흔적인 질병을 보고 자신을 돌이키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때 원수는 그 영혼을 자신이 붙든다. 또한 원수는 오직 남을 해치며 사망으로 이끄는 자이니 자신과 같은 그 악한 단세포를 만들어 그 영혼이 입고 있는 몸에 넣는다. 그러므로 그 병원균들이 하얀 피와 싸워 이기며 세포를 죽이고 돌아다닌다. 또한 몸의 한곳에 모여 그 부분을 썩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영혼은 자기의 몸이 이렇게 서서히 사망으로 들어가도 하얀 피와 건강한 세포들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망의 원수에게 영혼이 붙들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욕심을 회개하고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키니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을 강건케 하시며 또한 붙드신다. 그리하여 질병에서 놓인 그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니 그 육체도 영혼도 점점 더 거룩해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원수가 주는 생각에 따라 병이 유전으로 돌연변이로 염기가 잘못되어 생긴다고 생각하며 즉시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의 생명을 유지하는 그 작은 것들을 창조하신 아버지와 아들을 찾거나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죄와 함께 영원히 살고자하는 어리석은 욕심을 가지고 그저 그것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많은 씨들 가운데 복음을 위하여 택하시는 씨가 있으시나 특별히 만드시거나 정하시지는 아니하신다. 그리고 사람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씨앗을 만들어 밭에 뿌리므로 자신이 정한 그 씨앗에 생명을 얻게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남자는 오직 자신의 그 성기에 그 씨앗들을 늘 만들어 둔다.

 

반면 여자는 밭과 밭을 만드는 도구를 만들어두지 못한다. 하지만 여자도 자신이 원하는 밭을 정하지 못하는 것은 동일하니 자신의 아궁 속에서 그 밭과 밭을 준비하는 것을 늘 만들어 낸다. 하지만 남자는 하루에 세 번이요 여자는 한달에 세 번이다. 그러나 여자가 느끼는 것은 오직 한번이다. 그것은 한달에 한번 그 안에 세 개가 나와서 함께 사라져 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그 밭에 들어가는 도구가 첫날에 하나 둘째 날에 하나 셋째 날에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그 세 개의 도구가 다 나온 후 삼일동안을 함께 거한다. 하지만 밭이 씨와 만나지 못하면 삼일 째가 저물어들 때 그들이 하나로 합쳐져 물처럼 변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그것이 피와 함께 흘러 내려오니 그것이 바로 생리이다.

 

이처럼 그때에는 육의 눈으로 피와 물이 그의 밑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려오는 5일의 기간 중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오로지 물과 피요 넷째 날에는 그 합쳐진 도구가 물과 피와 함께 나온다. 그러므로 그 넷째 날까지 내려오는 것은 신령한 물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5일째부터는 여자의 배에서 신령한 물이 솟아나 내려오며 그 통로를 닦도록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여자의 그 통로가 늘 깨끗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는 자신의 그 깨끗한 아궁을 보며 또한 자신의 남자에게 기쁨을 얻으며 아버지께로 늘 감사드린다. 그러나 아버지를 버린 여자는 그 신령한 것을 늘 음란하게 사용한다.

 

한편 남자의 영혼은 성기에 있지 아니하고 가슴에 있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이 사망에 들어가기 전까지 씨 만드는 일을 한다. 반면 여자는 그의 영혼이 그 아궁 속에 있으니 그곳에 있다 시간이 되어 아버지께로 갈 때가 되면 여자도 그 일을 멈춘다. 즉 아버지를 맞이할 준비를 하므로 남자도 여자도 더 이상 그 씨와 밭과 밭을 준비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밭에 들어가는 도구는 여자의 영혼이 나올 때까지 만들어지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여자는 죽을 때까지 그 피와 물이 나와야 하며 또한 그것을 한달에 한번 육의 눈으로 볼 수있어야한다. 그러나 여자는 나이가 들면 그 피와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 여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흘러내려오는 것이 멈추고 그것이 오로지 피로 들어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그 물과 피를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 밭과 밭에 들어가는 도구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신령한 물이 솟아나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씨와 밭을 만드는 도구

 

한그루의 나무를 볼 때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와 열매는 눈에 보이지만 그 뿌리는 땅위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한 나무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씨앗에 모두다 담아놓으셨다. 그리고 그 씨앗이 밭에 떨어져 필요한 열과 물과 양분을 받아 그렇게 자라도록 해놓으셨다.

 

이러한 생명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영광인 둘째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을 창조하려면 그리고 그 생명이 또다시 생명을 전하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어야한다. 또한 그 과정을 어미의 태안에서도 그대로 거쳐야한다.

 

첫째 흙과 물로 섞은 그 진흙으로 사람의 몸에 있는 각 부분과 혼을 빚어야하며 다섯 단계의 세포들을 만들어 그 다섯 곳에다 넣어야한다. 그래야 사람의 몸이 머리로부터 발까지 흘러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뭉쳐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 사람을 이룰 수 있는 모든 몸의 각 부분과 다섯 단계의 세포를 줄이되 2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가려서 남자의 씨에 넣어 두어야한다. 마찬가지로 이 셋째별의 위에 있는 물과 섞은 몸의 재료도 그와 같이 하여 여자의 밭을 만드는 도구에 넣은 후 그것이 육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만들어지도록 해야한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말하는 그 성염색체는 씨를 만들거나 밭을 만드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요 단지 남자와 여자의 그 성기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영을 넣어 주어야한다. 그래야 그 영이 들어갈 때 사람의 몸에 하얀 피를 만들도록 하며 또한 그 다섯 단계의 세포들을 계속해 새롭게 만들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 만드는 그 하얀 피가 그 세포들을 필요한곳으로 옮기도록 계획해 놓아야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 가운데 이 셋째별의 아래에 있는 물과 섞은 재료를 작게 줄여서 남자의 씨에다 이 셋째별의 위에 있는 물과 섞은 몸의 재료는 여자의 밭을 만드는 도구에다 넣어두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로 붙어 있을 때에 아랫물의 것들은 씨에서 만들어지며 위의 물의 것들은 밭에서 만들어져 한 사람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태라는 것은 밭이 아니요 오로지 함께 만나 그 씨와 밭이 자라날 수 있도록 필요한 열과 물과 또한 그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는 영이 있어야하니 3개월이 되었을 때 그 어미의 영이 그 아기에게 들어가며 그 아기가 커져 나올 때가 되면 어미의 영이 한 부분은 아기에게 남아있고 영의 다른 나머지 부분은 다시 어미의 자궁 깊은 곳으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출산할 때 그 아기가 엄마의 영을 가지고 태어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이 기억해야할 것이 있으니 여자의 영은 처음엔 남자에게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어미의 모태에서 빚어졌음을 믿는 자는 그 영이 나온 순서에 따라 아버지께서 한 가정에 두신 그 순종의 질서를 깨달을 수 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의 뿌리 세 가지

 

큰 나무를 보면 그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와 열매가 튼튼해서가 아니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무의 뿌리가 깊이 들어가 박혀 그 흙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뿌리의 모양이 옆으로 무성하게 퍼져있으면 나무의 가지도 옆으로 무성하게 퍼지며 뿌리가 깊으면 나무도 키가 크고 뿌리가 얕으면 나무도 작다. 그리고 땅속에 있는 그 나무의 뿌리가 포도면 포도나무로 뿌리가 무화과면 무화과나무로 자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의 몸 안에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을 넣어두셨으니 그것이 바로 세포와 그 안에 있는 염색체와 유전자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사람이 되는 뿌리이다.

 

그러므로 세포는 살이 아니요 모래가 벽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시멘트가 잡고 있듯이 그 살 속을 두루 다니며 더러움을 씻어내므로 그 진흙이 늘 뭉쳐있도록 하는 것이 세포다. 그리고 뼈와 물주머니와 머리와 몸과 성기와 팔다리를 가진 사람의 육체를 만드는 것이 염색체요 육의 아비와 어미가 자기의 후손들에게 외모와 성품을 물려주는 것이 유전자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뿌리를 그의 영혼이 계속해 붙들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첫째사람과 둘째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첫째사람에게는 영을 주시지 않으셨으니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을 넣어두지 아니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포를 만들지 못했으며 하얀 피도 없었으나 영혼이 만들지 않는 것으로 대신 넣어두셨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둘째사람에게는 이 뿌리를 넣으셨으니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들의 창조자가 있음을 깨닫기 위함이셨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치 거대한 도시와 같이 정밀하게 계획되어져 그 안에 생명 있는 수많은 것들이 각각 하는 일들이 다 정해져있는 그 하나의 세포만 보아도 창조자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으니 믿는 자는 창조자의 뜻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자는 자기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를 영원한 시간에 거쳐 하나하나 다 보고도 거부한다.

 

그런데 나무는 땅속에 있는 그 뿌리가 죽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위에 있는 나무와 가지와 잎이 말라가며 죽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죄로 인해 그 뿌리가 병들어 죽으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몸도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원수에게 영혼이 붙들려 육과 이 세상에 들어가 있는 자는 이미 그 뿌리가 죽어가고 있으니 그의 사망이 오직 시간의 문제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모든 게 형통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늘 진리를 따르며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영혼은 거룩의 열매가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에서 풍성히 맺힐 것이요 그의 몸도 늘 깨끗하고 강건할 것이다.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남자가 키가 작고 성격이 급했으나 외모는 좋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기의 자식이 외모는 안 좋아도 좋으니 성격이 느긋하고 키가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또한 자신이 한 인물 하니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키가 크고 성격이 느긋했으나 외모가 별로인 한 여자와 결혼해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런데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니 성격이 자기처럼 급했다. 하지만 외모는 좋았다. 그러나 키는 잘 먹어서 그런지 자기보다 아주 조금 더 컸다. 즉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 달리 엄마를 닮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쏙 빼닮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둘째사람에게는 그 몸 안에 다니는 세포 안에다 육신의 아비와 어미의 외모와 성품을 자기의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전자를 넣어주셨다. 그러므로 육의 아비와 어미가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외모와 성품을 일일이 태어날 후손에게 넣어주는 것이요 모든 사람의 유전자를 다르게 하셨으니 아담부터 마지막사람까지 같은 사람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외모와 성품을 넣는 일이 오직 밭갈이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 씨앗이 밭을 만드는 도구를 만났을 때는 그 하나 된 세포가 나누어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씨앗의 밭이 많이 갈아지고 밭을 만드는 도구의 밭은 적게 갈아질 수 있으니 그러한 경우에는 그 후손이 아비의 외모와 성품을 닮은 아이가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100%의 밭갈이에서 씨앗의 밭에 90%로 갈리고 밭을 만드는 도구의 밭이 10%만 밭에 갈리면 위의 비유에서처럼 그 아이는 외모나 성품이 어미보다는 아비를 많이 닮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갈아지면 어미의 외모와 성품을 닮게 되며 반반정도로 갈아지면 둘 다 닮는다.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밭갈이를 씨와 밭을 만드는 그 도구가 만나서 처음 삼일 안에 완전히 결정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말하는 그 세포분열이 시작된 삼일 후에는 그 새로운 생명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할지라도 이미 그 새로운 생명의 외모와 성품이 결정되어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그 삼일 후에는 어미의 태에서 자랄 때나 아궁에서 나와서 자랄 때는 더 이상 자기의 외모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수의 일을 이루어가는 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그것이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하며 점점 일찍 세포를 꺼내어 사람을 만들고자한다.

 

이렇게 삼일 안에 결정되는 것은 성품도 마차가지이니 새로운 생명은 자신이 자기의 아비와 어미에게 받은 그 기본 성품을 가지고 자란다. 하지만 그 어린생명이 자신의 마음에 의해 그가 아버지의 말씀을 듣느냐 원수의 선악을 듣느냐에 따라 그 성품이 더 선하거나 더 악하게 변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자기의 아비와 어미에게 어떠한 안 좋은 외모와 성품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를 낳고 기른 육의 부모의 그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한다. 자기를 낳은 육의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할지라도 그들이 갈라섰다할지라도 오히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지한다. 그리하여 그가 은혜를 받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요 자기의 후손들에게도 그 생명의 성품을 풍성히 물려주게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자는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자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니 그와 같은 원수에게 붙들려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진흙을 뭉쳐 50개의 덩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50개 가운데 46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줄였으며 4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작게 줄였다. 그리고 그것을 반씩 나누어 두개의 조그만 봉지에다 각각 25개씩 담았다. 그런데 그 두개의 봉지를 합치자 그것이 10개월 동안 자라더니 50개의 부분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50개의 염색체를 만드시어 25개는 남자의 씨에 25개는 여자의 밭을 만드는 그 도구에다 넣어두셨다. 하지만 그중에 남자에게 있는 23개와 여자에게 있는 23개는 인간의 도구를 통해 보이도록 하셨으나 남자에게 있는 2개와 여자에게 있는 2개는 어떠한 도구로도 보지 못하도록 더욱더 작게 만드셔서 숨기셨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니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염색체는 모두46개로 구성되어있다고 말하며 가르친다. 그리고 이 어리석음은 원수의 일을 이루어가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23개의 염색체가 한 세트를 이루어 게놈을 형성한다고 하며 사람 만드는 일을 지금까지 열심히 해오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숨기신 남자의 것은 씨앗을 의미하며 여자의 것은 밭을 의미한다. 게다가 사람의 영은 오직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요 영이 하얀 피와 세포를 만들어 하얀 피로 세포를 필요한곳에 보낸다. 하지만 원수와 원수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세포와 그 안의 것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모르며 만들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세포를 꺼내어 사람을 만드니 온전치 못해 항상 실패한다. 또한 그들이 이 마지막 때에 만든 사람은 당연히 후손을 내어 놓지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원수에게 지혜를 받아 원수의 일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이렇게 할 것을 이미 태초에 아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두 가지를 사람의 그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처음에 그 욕심으로 범한 죄와 동일하여 늘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다. 비유를 통해 그 악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자가 마음과 몸으로 늘 음행의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두 다리에 병이 와서 그 죄를 범하는 곳으로 가지를 못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니 돈을 주고 두 다리를 붙이고가서 그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리가 굳어져 그 일을 못했다. 그러므로 자기의 허리를 빼내고 돈을 주고 허리를 사서 붙였다. 그러다 그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완전한 사람을 만들면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겠노라.” 그러므로 그때부터 그는 자기 아비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그 악한 소원을 풀어줄 자가 무저갱에서 이 땅으로 올라와 사람들이 늘 실패하던 그 원하던 것을 육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완성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치료하거나 낳게 하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사람들을 영원한 사망으로 이끄는 원수의 군사가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사람이 아니요 그저 짐승으로 보신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이 있으니 썩어질 육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과 함께 그것을 거룩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그 썩어질 도구조차도 깨끗하게 해주신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그들이 그 썩어질 것을 벗고 들림 받는 것이요 짐승에게 목을 베이나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A는 전혀 무감각한 사람이며 B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A는 누구에겐가 아주 슬픈 글을 받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A가 동일한 그 글을 B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B는 그 글을 잃고는 매우 슬퍼했다.

 

이와 같이 세포는 A와 같고 사람의 혼은 B와 같다. 그러므로 사람의 진흙이나 세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혼이 그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무엇인가가 몸에 아프게 맞았을 때 그 부분에 있는 세포는 그것을 가장 가까운 뼈마디와 물주머니에 있는 혼에게 전달한다. 그리하여 그 맞은 부분에 있는 그 혼이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혼이 아프다고 하지 아니하고 흔한 말로 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영혼이 떠난 사람의 몸과 혼이 떠난 짐승의 몸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둘째사람의 몸을 진흙으로 빚으시고 그 안에 필요한 세포를 넣어두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세포들로 하여금 사람의 몸을 깨끗케 하도록 오직 한 가지 일을 하게하셨으니 세포들은 진흙이 늘 뭉쳐있도록 그 안을 두루 다닌다. 그러면서 그 진흙에 끼는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는 것이다. 또한 그 진흙에 어떤 변경이 있더라도 그 세포는 변경 되는대로 자신들을 바꾸어 그 진흙이 더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일을 하는 세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해두셨다. 그러므로 첫째는 뼈마디속의 세포이니 그 세포는 오로지 하루 동안 위와 같은 일을 하도록 정해두셨다. 둘째 뼈마디와 뼈마디 사이에 겉에 있는 세포로서 그 세포는 여섯 시간에 한번씩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진다. 셋째 세포를 피안에도 넣어두셨으니 그것은 하루에 세 시간 자기의 일을 하고나서 바뀐다. 넷째 진흙의 밑에 있는 세포는 오직 한 시간동안 그 일을 하고 바뀐다. 마지막으로 흙과 마른 물 사이에도 세포가 있으니 그것은 단 12분만에 바뀌도록 해놓으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주신 그 두 가지의 물을 꾸준히 마시는 자는 자기의 일을 하고 바뀐 그 세포들을 씻어서 몸 밖으로 내보낸다. 또한 종들을 통하여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죽은 세포들을 그 사람이 밤에 안식을 취할 때 꺼내신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육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세포가 나뉘는 것을 도구로 보고는 사람도 짐승과 같이 세포가 저절로 나뉘어져 생기는 것처럼 말한다. 또한 세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사람의 몸 안에서 세포가 자기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영이 있으니 혼만 있는 동물과는 다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진흙을 닦아내는 그 세포를 그 사람의 영혼이 깨끗하고 새롭게 만들어 내도록 계획하셨다. 또한 그 하얀 피도 역시 그의 영혼이 만들어 내도록 해두셨다. 그리고 그 하얀 피가 온몸을 두루 다니며 그 필요한 곳에다 계속해서 그 새로운 세포들을 넣도록 하셨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자기의 몸을 스스로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시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의 몸을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몸을 깨끗케 하고자 하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진리를 통해 거룩케 하시는 그 은혜와 소망에 감사드리며 그 거룩해진 몸을 아들처럼 다시금 아들과 아버지께로 드리고자함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심장

심장은 깨끗하고 따뜻한 피를 온 몸의 구석구석으로 보낸다. 그리고 피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한 후에는 다시금 그 피를 내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의 몸은 항상 그 따뜻한 온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심장이 서서히 멈추며 힘을 잃으니 심장에서부터 멀리 있는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차가와지고 딱딱해지며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하길 사람의 심장이 그렇게 눌렸다 부풀려졌다하는 일을 심장 스스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신장이나 야채가 피를 깨끗하게 한다는 어리석은 말을 듣고 믿는다. 그러므로 달팽이를 고아먹거나 당근을 갈아 마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의 심장의 경우 그의 영혼이 자기의 심장을 붙들고 그렇게 쉬지 않고 뛰게 하셨으며 또한 그 깨끗하고 하얀 피를 계속해 만들도록 하시고 사람의 영혼을 늘 지켜보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의를 따른 영혼은 그 깨끗한 피로 인하여 늘 건강한 몸을 유지하다 마지막에는 그 들림이나 피의 제사를 맞이하는 것이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첫째사람이나 짐승에게는 훈청이라는 것을 주시므로 그것이 그들의 심장을 뛰도록 계획하셨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가운데 태엽을 돌렸다가 놓으면 앞으로 가다 태엽이 다 풀리면 멈추는 것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첫째사람과 짐승들에게는 바로 그와 같은 것을 주셨으니 그 훈청이 아버지께서 주신 수명만큼 심장을 뛰게 한 후에는 다시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들의 심장도 저절로 뛴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심장을 붙들고 있는 영을 남자에게는 가슴의 깊은 곳에 여자의 영은 자궁의 깊은 곳에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깨끗한 첫 마음을 지켜야함이요 여자는 한 남자를 위한 행실을 지켜야한다. 또한 여자는 자궁의 깊은 곳에 영이 있기에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남자는 가슴 깊은 곳에 영이 있기에 목숨을 내어 놓고 사랑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든다.

 

남자도 여자도 이렇게 그의 심장을 영혼이 작동하지만 남자의 심장은 강하고 여자의 심장은 강하지 아니하다. 그것은 남자의 영혼은 심장 바로 뒤에 있기 때문이요 여자는 그 심장 뒤의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는 그 영혼이 그 심장을 늘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심장이 찔림을 당할 때에 시간이 다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영혼은 시간이 다되었으니 자기의 손을 심장에서 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되지 아니하였으면 찔려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이 나오거나 그대로 있으므로 그가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아직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에 따라 영혼이 심장에서 손을 놓거나 놓지 않는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 영을 주신 생명의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에게 ‘시간이 다 되었도다. 또한 아직 시간이 남았도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하여 그 영혼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육의 죽음이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아들을 통하여 둘째사람의 몸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있는 피와 물이 깨끗함을 유지해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네 가지의 물을 계획해 사람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는 둘째사람의 몸이 깨끗함과 건강함을 얻을 수 있도록 그 네 가지 물이 흘렀으며 아담과 하와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 생명의 물들을 마음껏 마셨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의 몸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 물을 의지하면 언제든 건강을 얻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뜻을 대항하는 원수는 사람의 건강을 원치 않고 오히려 더러움을 가지고 추한모습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그러므로 그는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질병의 균을 만들어 사람에게 주며 동시에 그것을 잠시동안 덮어씌울 수 있는 약과 치료기술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우선 욕심과 죄로 인해 아버지께로 심판을 받는다. 그러면 원수는 범죄한 그에게서 하얀 피를 빼앗으며 또한 피가 다니지 못하게 막으면서 자기가 만든 질병의 균을 준다. 이때 죄를 돌이키지 않는 자는 아버지의 그 네 가지 물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욕심을 그대로 가지고 이러 저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방인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환경이 적절해 병원균이 번식했다고 말한다. 반면 욕심을 돌이키는 영혼은 그 심판의 표를 보고 골방으로 들어가 아버지께로 자기의 죄를 내놓으니 그는 다시금 건강을 회복한다.

 

아버지께서는 그 네 가지 물 가운데 깨끗한 물을 79%로 계획하시어 사람 몸에 넣어놓으셨다. 하지만 그 사람이 성장할 때에 그 물이 점점 줄어들며 그 물의 양이 77%에서 더 내려오면 속에 있는 내장들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물들과 살결사이에 있는 물이 메마르니 위의 살결도 마른다. 그러므로 그 물이 77%이하로 내려가면 육이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요 그리하여 물 없는 자는 이미 죽은 자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영혼이 물 안에서 활동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목이 타게 하시어 계속해 물을 마시므로 그 정해놓으신 양을 채우도록 하셨다. 하지만 만일 그 물을 채우지 못하면 사망으로 들어가니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은 더워서 죽는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죽는 것이다.

 

한편 사람에게 사망을 주기 원하는 원수는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물을 마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만든 독물을 마시기 원한다. 그러므로 콜라 커피 술 죽은 물(가게에서 병에 넣어 파는 물)같이 몸에 좋은 물이 아닌 혀가 좋아하는 물들을 만들어 사람에게 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욕심과 함께 그 원수의 물을 마시며 세상으로 들어가니 더 빨리 육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원수가 만든 독물가운데서 사람에게 가장 해가 되는 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의 혼을 잠들게 하는 마취약물이다. 우유가 뼈마디 속과 물주머니 속에 껴있는 그 더러움을 씻어내므로 뼈에 깨끗함을 주듯 그 악한물약이 그곳에 들어가므로 사람의 혼이 잠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게 오직 생명 없는 찬 기운을 실제로 갖다주니 사람에게 가장 해가되는 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이 사람들의 몸에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인다. 사람의 몸을 창조하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 물을 의지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요 아버지께로 나가서 회개하기보다 피조물인 사람을 찾아가 몸만 고쳐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악한 물 안에서 참된 질병이 나와 그 질병이 마지막에는 그 사람을 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욕심과 죄를 늘 돌이키며 거부한다. 또한 사람의 몸을 창조하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 물만을 의지한다. 그리하여 육신도 깨끗하고 건강하게 보존된 그가 마지막 때에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는 것이요 아버지께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의 혼의 기능과 존재

 

그리스도께서는 둘째사람의 육신을 이 세상의 흙으로 빚어 만드셨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생각도 그 흙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 혼을 뼈와 물주머니의 사이에 넣으시고 온몸에 흩어진 그 혼을 하나로 연결해주셨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은 그 혼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도하고 무엇에 맞으면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어서 혼이 떠난 사람의 육은 더 이상 그것이 없다. 이것은 첫째사람과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혼을 가진 존재는 또한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것을 배우기도하며 그 말에 따라 자기의 몸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짐승도 원수의 말을 듣게 되면 다른 짐승들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므로 자기의 육적인 욕심을 채우게 된다. 심지어 자기를 보살피며 길러주는 자기의 주인을 물어뜯기까지 한다.

 

그런데 혼은 첫째사람과 짐승만이 있는 것이 아니요 둘째사람도 있으니 혼이 있는 자가 이렇게 원수의 말을 듣고 행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즉 육에서 나오는 그 혼이 원수의 말을 듣고 늘 범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형상인 둘째사람에게는 거룩한 영을 주셨으며 그 거룩한 영의 한 부분에 거룩한 혼이 있다. 그리고 혼은 말을 듣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의 혼을 죽이는 자는 그 육신도 죽여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되 반대로 자기의 육의 혼을 살리는 자는 거룩한 영을 죽이며 그 거룩한 혼도 죽여 자신을 죄와 사망으로 이끌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생명의 나무와 선악의 나무이다.

 

둘째사람에게 있는 생명의 나무와 선악의 나무의 싸움은 구체적으로 이러하다. 아버지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되 그 안에 거룩한 것만 넣으셨으나 아담이 범죄할 때 원수가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이요 혼이 있기 때문에 그 통로가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는 음식을 먹고 코로는 숨을 쉬는 것을 볼 때는 이미 그 사람의 입이나 코로 원수가 다니고 있는 것이다. 즉 흑암의 세력들은 바로 그 통로를 통해 들어가 사람의 몸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또한 그 사람의 혼에 원수의 말을 전하여 그를 아버지께로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 원수들은 또한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세상의 좋은 것을 보여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취하게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주시며 선택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내어 놓으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생명과 사망은 그의 그 거룩한 것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의 입과 코로 들어온 그 더러운 것이 이길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원수의 칼에 맞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반면 첫째사람은 거룩한 영이 없으니 거룩한 혼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이 땅으로 내려갈 때 그들의 혼도 함께 땅으로 내려가므로 그들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영이 없는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둘째사람은 그의 혼이 그의 영원한 영과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그러므로 그의 혼은 흙으로 돌아가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둘째사람의 존재는 영원히 가는 것이요 자기의 기억을 영원이 가지고 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사람은 또한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을 수 있으며 아버지께서는 갈급한자들에게는 생명을 허락하신다. 게다가 그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원수의 칼을 거부하고 거룩에 이른 자에게는 아버지의 기억과 그의 기억에서도 모든 죄를 다 지워주신다.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너무 어려도 자기의 모습이 아니며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 늙어서 쭈글쭈글해져도 역시 자기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 삼십대가 그 사람의 가장 적당한 모습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께서는 태초부터 아들에게 삼십의 외모로 허락하셨다. 그리고 십자가후에 주신 그 거룩한 육체역시 그 나이와 모습으로 빚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영원토록 늙지 않고 그 삼십 세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며 그와 같은 형제자매와 그리스도의 몸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아담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나이와 모습을 허락하길 원하셨다. 아버지의 둘째사람에 대한 계획은 아들과 동일한 모습의 창조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그리스도의 명을 받은 종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형상과 모양을 보고 그대로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와도 마찬가지이니 하와를 아이처럼 혹은 할머니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자기의 모습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그 나이로 빚으셨다.

 

한편 둘째사람이 처음에 창조되었을 때의 키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면 우선 아버지께서 상체와 하체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를 깨달아야한다.

 

사람들은 발로부터 허리까지를 하체로 허리부터 머리까지는 상체로 여긴다. 하지만 하체라는 것은 오로지 그 몸의 한부분만을 뜻하는 바요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발과 다리이니 하체는 몸의 전체가 아니다. 하지만 상체라는 것은 사람의 발끝서부터 머리끝을 뜻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몸의 전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아담을 삼십 세의 모습으로 또한 상체크기는 120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첫째사람들의 후손은 그 상체의 크기가 각기 다 달랐으며 둘째사람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컸다. 예를 들어 첫째사람의 다리는 둘째사람보다 다섯 배내지 여섯 배가 컸으며 몸의 윗부분도 그와 같았다. 그러므로 첫째사람의 남자는 둘째사람의 남자보다 모든 것이 평균적으로 5-6배가 컸으며 첫째사람의 여자는 둘째사람의 여자보다 모든 것이 3-4배가 컸다. 물론 첫째사람가운데는 그보다 더 크거나 좀더 작은 자들도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아버지의 자녀 될 둘째사람들 가운데 남자가 첫째사람의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 그 육적인 사람들과 한 몸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사이에서 나오는 후손인 네피림들은 처음에 태어날 때는 둘째사람의 상체보다 오히려 작았으되 그가 성장하면서 크기가 그의 어미보다 더 장대해졌다.

사람은 자신보다 상대방이 수십 센티만 커도 상대방을 상당히 크게 본다. 예를 들어 상체가 170인 사람이 자기보다 불과 30이 큰 사람을 볼 때 그를 마치 거인처럼 본다. 그러므로 당시 둘째사람이 코끼리처럼 큰 짐승들을 마치 작은 강아지처럼 다루는 그 첫째사람을 어떻게 여겼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첫째사람과 둘째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계획은 그들에게 각각 허락하신 복을 통해 깨달을 수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여섯째 날 지으신 첫째사람에게는 이 땅의 육적인 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허락하셨으나 영은 허락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거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한편 안식 후 팔일 째 지으신 둘째사람에게는 거룩한 영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땀과 고난이 있으며 그로인해 이 땅에 있는 동안 썩어질 육과 원수가 이끄는 이 불의한 세상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대신 거룩을 이룬 그들에게는 셋째하늘의 영원한 약속들을 허락하셨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것을 의롭게 또한 공평하게 계획하셨다. 그러나 원수는 당시 첫째사람들에게 둘째사람에 대한 시기를 마음에 심어주었다. 즉 너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린들 무슨 소용이 있느뇨? 하지만 둘째사람은 이 땅에서도 모든 것을 누리다가 죽은 후에는 영원히 사니 아버지는 불공평하시다고하며 첫째사람들로 하여금 둘째사람을 미워하며 핍박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거짓말과 시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생명과 사망에 이르는 자를 태어날 때부터 정하신다고 말한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영의 복과 육의 복 하늘의 복과 이 세상의 복을 겸하여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수를 따르는 자들은 당시의 첫째사람들처럼 오늘도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 또한 자신을 믿는 자라하며 첫째사람처럼 세상을 따르며 육을 취하고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붙드는 자에게는 거듭남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는 영광을 주신다. 그리고 홍수심판 이후로는 첫째사람이 없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창조에 걸린 시간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만물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창조하도록 종들에게 명하셨다. 예를 들어 산을 창조하실 때는 제일 밑에 가장 큰 돌을 그 위로는 중간정도의 돌을 그리고 제일 위에는 가장 작은 돌을 넣으셨기에 그 많은 산들이 비바람에도 요동치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나무의 경우에도 가장 먼저 뿌리를 만드시고 줄기와 가지와 잎의 순서로 창조하셨다.

 

이렇게 밑에서부터 위로 간 것은 여섯째 날 창조하신 육적인 첫째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첫째사람도 발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머리를 만드시므로 그들의 육체를 완성하셨다.

 

그러나 일곱째 날 안식하신 후 팔 일째 창조하신 영적인 둘째사람은 영이 없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는 창조의 시작이 달랐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왔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남자와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면 아기의 머리로부터 아래로 생기는 것이 바로 그 원리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오직 아담과 하와만 위에서부터 아래로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영이 있는 둘째사람이 셋째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이 땅에 내려왔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사람의 시간으로 해가 떴을 때 시작하여 그 해가 질 때 첫째사람을 완성하셨으니 첫째사람들의 창조에는 모두 열두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땅에 거하는 짐승들이 창조된 시간을 알면 아버지께서 첫째사람을 어느 정도로 정성껏 빚으셨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늘 보고 있는 모든 짐승들 가운데 물에 있는 짐승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사람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아버지의 뜻대로 그들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살이 많고 적건 상관이 없으니 고래도 눈 깜빡할 시간이요 조그만 피라미도 그 시간이 걸렸다. 한편 육지에 다니는 짐승들도 크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시간으로 오직 눈을 크게 감았다 뜨는 순간에 창조가 되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짐승들은 물이 적은 곳에서 헤엄을 쳐야하는 그 날개로 인하여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십분 만에 창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태양은 오직 네 시간 만에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광인 아담의 창조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처음부터 관찰하셨으며 첫째사람보다 두 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므로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시작하여 그 다음날 다시 해가 뜰 때에 완성되었다.

 

첫째사람과 둘째사람이 이렇게 시간상으로 두 배의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의 육적인 모양과 기능으로 인한 것이 아니요 오직 둘째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시고 넣어주신 시간과 또한 영원히 사는 그 거룩한 영을 코를 통해 부어주시는 그 시간으로 인해 열두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첫째사람들에게는 오직 종과 같은 지혜만을 넣어주시므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첫째사람들은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그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죽는 그 순간까지 순종해 정복하고 다스리고 다녔다.

 

그러나 둘째사람에게는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를 동시에 넣어주셨으므로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하늘의 지혜를 위해 땅의 지혜를 사용했다. 그러나 아담이 욕심을 품고 타락한 후로는 하늘의 지혜가 내려가고 오로지 땅의 지혜가 그의 위에 있는 마음과 육체와 모든 행위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오늘도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을 따르고 있는 것이요 그 마음이 있는 자는 하늘의 지혜를 깨우침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태초에 첫째사람들에게는 수명을 정해주시지 않으셨으나 범죄한자의 수명은 단축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약 범죄치 않는 한 노아 때까지 살 수 있었으나 죄악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자녀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 네피림들과 함께 그 물로 모두다 사망으로 내려갔다.

 

반면 둘째사람에게는 오직 하루의 수명을 주셨으니 그들은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노아후로는 그 하루를 120년으로 줄여주셨으니 그때로부터 지금까지는 그 짧은 세월 거룩에 애쓴 후 구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는 다시금 천년으로 수명을 늘려주시니 그가 어느 시대에 거하든 오직 하루 동안 거룩에 애쓴 자에게는 그 하루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주신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몸의 털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식물들을 창조하실 때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자라도록 잎사귀들과 뿌리들을 주셨다. 그러므로 식물의 잎은 낮에 태양의 빛을 받고 밤이 지나며 하늘에서 물기를 얻으며 늘 공기를 얻는다. 그리고 뿌리는 땅에서 양분을 받아 나무로 올려주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식물의 가지에 돋아있는 그 파란 잎사귀들을 볼 때 그 식물이 살아있다. 반면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말라버린 것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것이요 그와 같이 변해가고 있는 것은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식물은 자기의 생명과 그 생명을 유지하며 키우는 것들이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과 같이 인격과 영원한 생명을 받지는 못했다할지라도 사람과 달리 살아있는 동안 쉬지 않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그 가지와 줄기가 잘려 사람들이 가져가 아궁이에 넣는 그 순간까지 감사한다.

 

이렇게 하늘과 땅의 은혜를 받아 생명이 유지되며 자라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음식만을 통해 그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며 유지되는 것이 아니요 태양의 빛과 깨끗한 물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게 갈증을 주시어 늘 깨끗한 물을 마시도록 살결이 태양의 빛을 골고루 받도록 또한 온몸에 털을 심어주시어 공기가 사람의 몸 안으로 충분히 들어가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종들에게 두 손으로 비벼서 두 종류의 가는 털을 만들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되 그 털들의 안에다 공기가 다니는 통로를 일일이 뚫으셨다. 그리하여 털끝에 있는 그 조그만 구멍들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몸에서 다 쓴 공기가 다시금 그 털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두 종류의 털을 준비하신 후 사람의 진흙을 덮을 그 온몸의 살결가운데 머리의 살결과 남자의 턱에 있는 살결은 두껍게 만드셨다. 반대로 눈의 바로 위에 있는 살결과 성기에 있는 살결과 겨드랑이에 있는 살결들은 얇게 만드셨다. 그리고 한 종류는 살결이 두꺼운 곳에 다른 한 종류는 살결이 얇은 곳에 모내기를 하듯 일일이 심으셨다. 그러므로 머리의 털과 남자의 수염은 길지만 다른 곳은 길지 아니하는 것이다.

 

한편 그 털이 길면 길수록 그 살결에 공기가 더 쉽게 들어가고 나온다. 그러므로 머리털이 짧은 것보다는 길 때 몸에는 더 좋다. 하지만 살결이 얇아 털이 짧다하여 조금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꼭 필요한 만큼 공기가 충만케 들어가도록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그 세포들이 더욱더 그의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식물이 살아있는 것은 그 가지의 파란 잎사귀를 보며 알 수 있으니 사람도 그 털을 보며 그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의 머리털을 민다면 그것은 나는 죽은 자요 죽은 자를 따른다는 의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머리털과 수염을 미는 것이 아니요 깎는다면 이발을 한다는 뜻이 아니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에게 마음을 준 자는 늘 머리를 밀고 민자들과 함께 다니며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간 것을 다른 자들에게 자랑한다. 그리고 다른 자들도 그리로 인도하는 일을 불 못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생명이 있는 동안 감사와 찬양을 늘 드리며 또한 마지막에 그 털이 다시 티끌로 돌아가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노라하며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다.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아담의 몸을 영광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혼은 뼈와 물주머니의 사이에 있으며 온 몸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가 아들과 같은 모양임을 확인하시고 자신의 거룩하신 생기를 코를 통해 가슴에 있는 마음에 넣어주셨다.

 

이처럼 아담은 창조를 받았을 때 몸과 혼과 영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형상과 모양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하와에게는 코를 통해 영을 넣어주시지 않으셨다. 오직 몸과 혼과 영을 가진 아담과 몸과 혼만 가진 하와에게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한 몸을 이룰 때 그것을 아름답게 보셨으니 무엇을 아름답게 보셨는지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말을 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을 준다.” “마음을 주면 하나가 된다.” 당신은 이 말들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의 몸과 혼과 영을 다 주어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일 그 안에 사랑이 없거나 마음이 쉬 변한다면 그 하나 됨은 깨끗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명예를 원하는 어떤 여자가 돈을 주면 언제든 씨를 받겠다고 했으며 어떤 남자는 약속대로 돈을 건네고 그 여자의 밭에 씨를 뿌리며 늘 한 몸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하거나 마음을 주지 않았으며 돈 받고 씨를 받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마음은 오히려 그 육의 느낌만을 원하니 돈에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그 느낌과 명예를 사랑하니 많은 종류의 씨를 받는데 마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깨끗한 영광을 더럽히고도 돌이키지 않은 자들이 타는 불 못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를 다가지고 있던 아담은 오직 육과 혼밖에 없는 하와에게 자신의 온 마음을 다주어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와와 한 몸을 이루었다. 아담이 하와를 사랑했다는 것은 그가 하와를 보고 나의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될 때 자기의 몸과 혼과 영을 다주게 되어있다. 즉 아버지께서는 영을 많이 내실 수 있으시나 생명과 순종의 질서를 세우시고자 오직 아담에게만 영을 주셨으며 여자는 남자와 한 몸이 되었을 때 남자에게로부터 영이 임하도록 계획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은 자기의 마음을 여자에게 주었기에 그 영이 그 여자에게 임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남자가 여자와 하나가되었을 때 남자의 그 깨끗한 영이 사랑을 받은 그 여자에게도 들어가는 것을 아름답게 보신 것이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는 자기의 남편에게 마음을 다해 끝까지 순종한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생명의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있는 남자는 오직 자기의 여자와만 몸과 혼과 영으로 하나를 이룬다. 자기의 몸처럼 사랑해야할 생명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을 돕고자 배필을 지으시고자 하셨다. 그러나 곧바로 하와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짐승들을 창조하시어 에덴동산의 밖에 있는 첫째사람들에게 주시어 다스리도록 하신 것처럼 주인을 알게 하며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도록 둘째사람에게도 다스릴 짐승들을 하와보다 먼저 창조해 아담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아담이 에덴의 짐승들을 아버지의 뜻대로 다스리며 각각의 이름을 다 정해준 후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종을 통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밤에 자는 잠이 아니라 그의 영과 혼을 잠들게 하시므로 잠든 아담으로 하여금 깨지 않도록 또한 아무것도 느끼지 않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와의 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뼈를 창조하시고자 아담의 깨끗한 마음과 영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 하나를 떼고 뗀 자리를 자라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가 마음을 다해 자기의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이유요 그 마음이 있는 여자는 방과 부엌과 밖에서 오직 자기의 남편만을 위해 움직이는 이유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수에게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남자와 여자는 반대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하와의 가슴을 아담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하얀 물이 담긴 부드러운 주머니로 만들고자하셨다. 하얀 물이라는 것은 사람의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니 그 물이 다 없어지면 사람은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물이 담긴 주머니를 반으로 줄 인후 그 반을 여자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여자의 유방이 그렇게 부드러운 것이요 여자는 남자의 씨를 받아 자손을 낳은 후 그곳에서 영양분을 내어 전달하므로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것이요 자녀들은 아버지의 그 섭리를 깨닫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부모에게 나왔음을 믿지 못하는 자식들도 반대다.

 

이와 같이 하와는 아담에게로부터 뼈와 가슴의 살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나머지 몸의 재료들은 아담과 같으니 이 첫째하늘과 둘째하늘의 깨끗한 물과 흙에서 왔다. 그리고 그 빚으신 순서와 방법도 아담과 똑같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하와를 창조하신 후 둘째사람에게 데리고 오시자 아담은 자신의 뼈와 또한 뼈 사이에 있는 그 물주머니가 여자에게도 있음을 보았으며 그것은 자신의 뼈와 살을 그 여자에게 준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아담은 자기의 앞으로 걸어오는 하와를 보고 그 고백을 한 것이요 마음을 다해 한 몸을 이루었던 것이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대로 자신의 종에게 명하시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흙을 빚어 사람의 몸을 창조하셨다.

 

우선 이미 만들어놓으신 그 서른 세 개의 뼈마디들을 서른 일곱 개의 물 주머니와 함께 묶으셨다. 그리고 진흙을 납작하게 빚어 그 살결을 만들어 덮어씌우셨다. 하지만 한곳을 덮지 아니하시고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그 열린 곳으로 그 안의 모든 기능들을 빚어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집어넣으셨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자신의 종들을 통해 가장 먼저 머리의 생각할 수 있는 그 기능을 넣으셨다. 그리고 눈하고 연결되는 혼과 숨을 마시고 내뱉는 코의 혼도 넣으셨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 맛을 깨닫게 하는 혀와 그 혼을 넣으셨다. 그리고 나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와 혼을 넣으신 후 목소리를 내는 목청과 혼을 넣으셨다. 또한 심장과 위와 간과 폐와 배와 같은 내부적인 그 기관들을 넣으셨다. 그리고 남자의 성기를 영광스럽게 빚어 넣어 그것이 불룩 뛰어나오게 하셨다. 여자의 성기도 이 순서와 같다. 그 후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그 피가 다닐 수 있는 길을 트신 후에 그 안에 빨간 피(적혈구)만을 넣으셨으며 모든 것이 다되었을 때에 그 열어놓은 한곳을 덮으셨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덮은 그곳이 바로 지금까지도 증거로서 볼 수 있는 배꼽이다.

 

그 후에 사람의 눈과 손톱과 발톱과 이빨을 끼워 넣으셨으며 그 모든 혼을 하나로 연결하셨다. 그리고 나서 모든 몸을 그 마른 물로 감싸 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되었을 때에 아버지께서는 그가 아들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형상인 것을 확인하셨다. 그리하여 제일 마지막에 아버지께서는 그 둘째 사람에게는 영원히 사는 그 생기를 불어넣어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한 영이 사람의 코를 통해 가슴으로 들어가며 그에게 생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얀 피였다. 그러므로 그가 그때서야 산사람이 되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둘째 사람은 생기가 없이도 첫째 사람처럼 그 육이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가 깨어나지 않게 붙들고 계셨으니 그것은 그의 육에서 가 임할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처음에 선하고 거룩하게 창조를 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죄가 있으니 죄가 밖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원수가 그 가라지를 사람의 마음에 심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을 거룩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선악의 죄가 없이 창조된 그때처럼 새롭게 변화될 것을 믿고 오늘도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말씀에 순종해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육체가 티끌로 돌아갈 때 그는 이미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기쁨과 영광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버린 자는 더욱더 죄와 세상가운데서 자신과 다른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육체가 똑같이 티끌로 돌아갈 때 그는 이미 원수와 함께 그 사망과 형벌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초에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의 육을 이렇게 빚으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그때와 같이 모태에서 빚어 넣으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어미의 밭과 씨에 위와 같은 모든 것들을 미리 준비해놓으시고 그 태의 줄을 통해 위와 같은 순서대로 넣으셔서 자라게 하신다. 그리하여 지금도 그때와 같은 사람의 몸을 이루게 하시되 배꼽까지 똑같게 뭉쳐서 만들고 계신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이까”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이 흙과 물을 합하여 그 진흙으로 사람의 몸을 빚어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창조의 재료들은 참으로 깨끗한 것들이었으니 사람의 육체는 처음에 깨끗하게 지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사람의 뼈마디는 둘째하늘의 깨끗하고 하얀 모래로 만드셨다. 둘째로 사람의 온 몸을 밝히는 눈은 이 첫째하늘에 있는 바다아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깨끗한 흙으로 뭉쳐 만드셨다. 셋째로 사람의 심장과 또한 배의 내부적인 기관들은 이 첫째하늘의 위에 있는 그 깨끗한 궁창의 물로 만드셨다.

 

하지만 이 첫째하늘의 위에 있는 궁창까지 도달하려면 빛의 속도로 달려도 이 태양계의 끝에 있는 아버지의 별까지 빛의 속도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약 1273배나 더 걸린다. 그러나 사람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도구를 만들 수 없으며 이 셋째별의 가장 깊은 바다 속을 뚫고 들어가 그 흙을 찾을 수도 없으니 이 세 가지는 사람이 만들 수 없다. 혹시 만든다하여도 그 기능이 사람의 원래기능보다 못하게 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종들에게 명하시어 그 둘째하늘의 하얀 모래와 이 첫째하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흙과 이 첫째하늘의 위에 있는 물벽의 물로 다시 만들어 주셔야 처음과 같은 그 깨끗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리하여 육체의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모든 육체가 다 완성된 후에는 마른 물로 그 흙을 덮어 뭉쳐지고 빚어진 그 흙이 흩어지지 않게 하셨다. 사람들은 그 마른 물을 보고 흔히 비늘껍질이라고 하는데 그 마른 물로 인하여 그 진흙이 계속적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는 것이요 흐트러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른 물이라는 것은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물에서 사는 짐승들의 미끌미끌한 비늘을 통해 늘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의 몸이 물 안에 오래있으면 그 몸이 불게 되나 물밖에 있으면 짧은 시간에 물로 인해 불었던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때 그 마른 물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육체에 흰색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살결을 바로 이 마른 물로 덮어 놓으셨으니 자신의 살결을 만질 때 그것은 진흙을 만지는 것이 아니요 마른 물이다.

 

사람은 이 마른 물도 만들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첫째하늘에 태양으로 그것을 말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빛으로 말려 그것을 사람과 짐승들에게 씌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 그 마른 물을 첫째사람과 둘째사람에게 주셨다. 그리하여 종이 그것을 얻어 그 사람에게 씌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미의 아궁 속에서 그 아궁을 뚫고 나올 때에 그것을 얻는다. 그리하여 지금도 아버지 종들이 그것을 준비한 후에 아이가 마른 물로 씌움을 받으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바로 이 마른 물과 깨끗한 흙을 합쳐 만들어진 것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손톱과 발톱이다. 그리고 마른 물을 그 위에다 다시 덮으셨으니 사람의 살결에서 오직 그것만이 느끼기에 단단하며 다른 곳과 달리 더 하얗고 투명하게 보인다. 이처럼 둘째하늘의 하얀 모래로 만든 뼈와 그 마른 물을 함께 뭉쳐 만든 것이 바로 사람의 이빨이다.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육신의 부모는 늘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음식을 잘 먹는지를 염려스럽게 물으면서 항상 좋은 것을 해주고자한다. 그리고 자식들은 건강한 몸을 부모에게 보이고 싶어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는 모습을 아버지께로 보이고자하며 아버지께서도 그의 영혼과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도 거룩하게 빚어 자녀로 맞이하신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에 있는 욕심과 의를 이루기 원하는 자는 그 부모의 마음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이용해 불의와 죄악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것에서 돌이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가 없으니 죄로 인해 사망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라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람의 몸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뼈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 뼈마디 마디마다를 붙들고 있는 물주머니를 창조하셨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관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서 그 물주머니들로 뼈마디들을 하나로 연결해 지금과 같이 묶으셨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골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사람의 가장 중심이라고 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뼈와 물주머니를 다 연결하신 후 그 위로 사람의 피가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 위에 진흙으로 튼튼한 줄을 빚어 걸어서 연결하셨으니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보고 근육이나 힘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육체의 힘이라고 보신다.

 

그 후 사람의 그 가장 중심과 피가 다니는 통로와 육체의 힘을 온전케 하기위하여 진흙을 빚어 채워 넣으셨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속살이라 말한다. 그리고 가장 겉에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살결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피부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의 가장 중심으로부터 시작해 살결까지가 곧 사람 몸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이 기초로부터 시작해 사람의 다른 모든 몸의 부분들과 또한 작은 세포와 유전자까지도 아버지께서 어떻게 계획하시고 창조하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머리뼈와 골반 뼈를 제외하고는 모든 뼈마디들이 늘 길게 뻗어있도록 만드셨다. 그러므로 손가락이 세 겹으로 굽혀진다 하여도 그 뼈마디는 하나이며 또한 중간 중간에 아버지께서 구부러지도록 계획을 하셨기에 그곳이 그렇게 구부러지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뼈와 물주머니의 수를 셀 때 아버지의 이 계획을 깨닫지 못하면 이방인처럼 아버지의 계획보다 몇 배가 많은 수로 세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한 사람에게 있는 모든 뼈는 그 수를 서른셋으로 그리고 물주머니의 수는 모두 서른일곱으로 계획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것을 다 합쳤을 때 그 가장 중심이 칠십을 이루도록 계획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보통수명과 같은 것이요 사람은 그 육신의 생명의 기간동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기회를 누구나 동일하게 얻는다.

 

하지만 그 보통 수명의 기간동안 누가 그 완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그 보통의 수명이 다했을 때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자는 그 보통수명의 몇 배를 살아도 생명을 원치 아니하니 그는 그 보통의 수명이 다했을 때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자기의 나라를 의롭게 또한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참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녀들이 없었으니 자기의 나라를 다스릴 후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녀들을 낳아서 키운 후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왕은 의로우니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에게서 태어났다는 그 단 한가지의 이유만으로 그 높은 권세를 그저 얻게 되는 것이 아니요 그들이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맞는 인격과 자질을 땀과 눈물을 통해 얻은 후에 물려주고 싶었다. 그 왕은 이러한 의로운 계획을 가지고 아들과 딸을 낳아 그 자녀들을 기르되 의롭게 또한 목숨까지 내어주는 한없는 사랑을 공평하게 베풀었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은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의로운지를 커가면서 깨달았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모든 말에 순종하며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의롭게 되는 그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자 그 자녀들은 이제 자기가 말한 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반드시 지키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공의와 사랑을 갖추었다. 이에 그 왕은 자녀들이 말과 행위를 의롭게 하며 사랑으로 다스릴 준비가 되자 왕자가 입는 옷과 공주가 입는 곳을 각각에게 입혀준 후 자기나라의 구석구석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다. 그러므로 그 왕과 자녀들은 의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형상인 둘째 사람에게 아들과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주시려는 선하시고 기뻐하신 계획을 세우시고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아담을 통해 하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육체를 입은 아버지의 자녀들은 그 거룩한 곳에서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뵈며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진다. 또한 자신들이 받은 아버지의 그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말씀으로 셋째 하늘과 모든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영원토록 다스린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이러한 영광과 권세를 영원히 주시되 오직 거룩한 자에게 주신다. 만일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않은 자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앉아 다스리는 그 권세를 가질 때 그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 세상의 권세 자들을 보며 충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는 원수에게 마음을 내어준 자들은 오늘도 자기의 욕심과 의를 위하여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인체의 신비를 읽는 자는 나를 창조하신 분이 계신다는 믿음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된 그 목적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주신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함이 마땅하다. 피조물로서 자기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창조자의 그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품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독사가 독 묻은 이빨로 사람을 물고 목을 감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한 후 입을 크게 벌려 서서히 한꺼번에 삼켰다. 호랑이가 사람의 목을 물어 죽인 후 몇 번을 뜯어먹으니 뼈만 남았다. 당신은 이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낳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독사나 호랑이와 친하게 지내도록 애완동물로 선물해주겠는가? 또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포악한 공룡들이 약하고 순한 다른 짐승들의 온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잡아먹었으며 용이 하늘을 날며 불을 뿜어 사람들을 태워 죽였다. 그렇다면 자기의 자녀들에게 그러한 악한 짐승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고 가까이 가지도 말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의 소중한 자식들에게 그런 짐승들의 장난감을 선물해주거나 그런 짐승들의 모형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함께 즐긴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만화영화에서 공룡이나 용을 귀엽게 그려서 보여주니 아이들은 이제 그러한 악한 짐승들과 친구가 되어 그것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도 한다. “의로우시고 선하신 아버지께서는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의 피를 흘리는 약육강식으로 창조하셨다.” “완전한 신이신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적인 재해로 죽도록 이 셋째 별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셨다.” “조금도 불의와 죄가 없으시기에 죄와 상관하시거나 악을 이용하실 수도 없으신 아버지께서는 원수와 사람이 타락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이렇게 원수의 선악을 따르는 자들은 공룡과 용같이 처음부터 악한 짐승들도 당연히 아버지께서 창조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전히 의로우시고 선하시니 아버지의 피조물들은 처음에 모두다 선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악했던 공룡과 용은 오직 원수에게서 나온 것이다. 물론 아버지께서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나중에 악하게 변한 인격체와 짐승과 식물도 있다. 예를 들어 원수도 처음에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그는 오직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스스로 죄를 창조하고 타락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은 아버지께로 심판 받고 쫓겨난 그 원수를 보며 아버지께로 받은 그 의롭고 선한 인격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 그 의로움과 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옳겠는가? 아님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며 불의하고 악하게 변해가는 것이 옳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원수의 말을 듣고 타락했으니 그것은 오직 자기의 욕심과 교만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원수가 심어놓은 그 죄악된 인격과 싸워 이기려 하기보다 원수의 말을 듣고 불의와 죄악을 행하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속죄의 피를 주신 그리스도께서 그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리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을 죄에서 구원코자 하시는 그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으시되 그가 만일 말씀을 듣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을 때는 종이든 사람이든 공의롭고 정직하고 자비롭게 심판하신다. 마찬가지로 짐승과 식물들에게도 끝까지 말씀하시되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불의와 죄악을 행하면 그들에게 정해주신 수명보다 빨리 거두시므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원수와 그의 사자들은 아버지께서 세우신 그 선하신 육지의 기초를 자신들이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불의하고 악하게 새로 세웠다는 의미로 땅으로 다니는 것은 다섯 종류로 하늘에서부터 너희들에게 사망이 오니 자신들이 하늘 위의 공중권세를 잡았다는 의미로 하늘을 나는 것은 네 종류로 사람들이 물속으로 피난을 가서 그들이 그곳에서 살까 하되 원수는 그곳에서도 사람을 먹을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물속으로 다니는 것은 세 종류를 5일째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총 359마리의 공룡을 6일째가 시작될 때 완성시켰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대항해 싸우고자 공룡들을 통해서는 오로지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짐승들을 삼키며 용을 통해서는 네피림의 조상들인 첫째 사람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원수가 만든 그 포악한 용과 공룡을 이틀에 멸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첫날에 아프리카와 남미와 인도 세 곳의 땅을 벌려 땅 아래로 넣으시고 흔적이 남거나 셋째 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그대로 다시 덮으셨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사막으로 내어 던지시므로 그 육이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용의 머리를 붙들어 저 깊은 바다 아래 물속의 밑에 있는 땅을 여시어 그곳에 집어 넣으신 후 역시 그대로 다시 덮으셨다. 그러나 원수는 자기가 땅속에서 올라올 그 마지막 때를 위하여 심판 받은 그 뼈마디들을 이곳 저곳에다 흩어두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원수가 나올 때가 가까웠으니 자신이 나오기 전에 그 뼈마디들에 살을 붙여 먼저 여덟 가지의 종류로 444마리의 공룡을 이 땅에 보낸 후 자신을 예비할 적그리스도를 준비시킨다. 그리고 나서 큰 용이 나타난 후 적그리스도가 나오되 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비로소 자신이 나타나리니 그가 이 땅의 모든 영광을 얻고 또한 그 영광의 힘으로 아버지께로 대항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용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내일 용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 어린 아이들이 용과 공룡의 모양을 가지고 얼마나 친구처럼 놀고 있는지를 보라. 또한 많은 영화들이 용이 나오는 그날을 기다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원수가 다시 나오는 그 마지막 날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니 곧 나올 자신을 기다리며 자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원수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두고 육과 세상을 좇던 자들이 어찌 원수가 나왔을 때 그 사람의 수를 받지 아니하리요?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과 갈급한 자들은 말씀의 기초를 통해 진리의 깨달음을 얻어 공룡과 용이 나오는 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더 거룩에 애쓴다.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가꾸므로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지해 그 죄를 이기므로 산 제사의 준비를 마치고 환난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정결한 그들이 들림을 받고 죄와 세상을 이긴 그들이 환난복음을 전한 후 살과 피를 드리므로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으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셋째 별의 창조

     사람들은 자기의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면서 그것이 왜 그러한 모습으로 있으며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자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여러 가지 이론들을 내어놓고 이래서 혹은 저래서 그렇다며 추측을 한다. 그러면 어리석은 자들은 증명되지 않은 그 말을 몇 번 듣고 난 후 그것을 믿고 자신은 이제 무엇을 좀 알게 되었다고 교만한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셋째 별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 셋째 별은 사람들의 눈에 동그랗게 보여도 완전한 구가 아니다. 즉 북극과 남극의 지름이 동에서 서의 거리보다 아주 조금 짧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왜 그러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로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셋째 별을 빚은 후 어떻게 마무리 하셨는지를 깨달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에 있는 자신의 종들 가운데 가장 밑에 있는 종에게 아버지의 창조계획을 질서 있게 알리시고 그대로 창조하라고 명하셨다.그러므로 그 종은 우선 파이의 끝까지 완전하게 계산하여 셋째 별 이외의 다른 별들은 태양에서부터 불로된 돌을 꺼내어 동그랗게 빚은 후 그 뜨거운 돌을 중심으로 삼아 그 위에 돌과 모래와 흙으로 덮었다. 하지만 이 셋째 별은 진흙과 돌과 모래와 물로 6겹을 동일한 두께로 둘러싼 후 태양에서 꺼낸 그 뜨거운 불 돌의 반지름을 900km로 만들어 남극을 통해 다른 별들이 다 완성된 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미리 남겨두었던 진흙과 돌과 모래와 물로 그 핵을 넣은 그 남극의 길을 채웠으니 6겹의 각각의 두께와 중심에 있는 그 핵의 반지름이 정확하게 900km로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이 셋째 별이 완전한 구였다. 하지만 그 종은 북극과 남극의 통로를 큰 얼음으로 막은 후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마무리했다. 이것이 바로 이 셋째 별은 북극과 남극의 거리가 조금 짧지만 아버지의 다른 11별들은 완전한 구인 이유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직접 낙원이 있는 그 둘째 하늘의 아래물벽에 발을 담그고 이 첫째 하늘을 내려다 보시며 참으로 그의 자비하심과 또한 그 아버지의 계획에 맞추어 종들에게 지시하며 또한 모든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셨다.

     이와 같이 이 첫째 하늘도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 둘째 하늘도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창조하셨으니 완벽하다. 원수가 순간순간 이곳 저곳을 거스려 더럽히며 깨려 해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 그러므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도 영원히 갈 수 있되 아버지의 뜻과 계획은 아버지의 뜻을 이룬 거룩한 자들로 하여금 천년왕국이 끝난 후 영원한 셋째 하늘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모두 마쳐진 그 마지막 날에는 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의 모든 것을 태양으로 넣으시므로 파하신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창조의 기초 숫자 파이(∏)

 

아버지께서는 창조를 계획하시고 그것이 완벽한 창조가 되도록 먼저 창조의 기초가 되는 숫자를 정하셨다. 그리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창조의 기초가 되는 수를 창조의 역사를 이룰 종에게 알리셨기에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수를 모르니 완벽한 창조를 이루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지구를 만든다면 정확한 원주율을 알아야하지만 그 수를 모르니 그것을 만든다하여도 불완전한 것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수의 끝을 정해놓으셨으며 그 마지막자리까지 아시고 기억하시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한 것이요 아버지께서 멸하시기 전까지는 영원히 갈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원수와 사람에게는 그 창조의 기초가 되는 수를 가리셨다. 그들이 불법적이고도 악한 것들을 만드는데 그 완전한 숫자를 이용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은 다른 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알려주지 못하며 자기가 모르는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누구에겐가 배워서 얻는다. 그러므로 원수는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하며 여러 가지 헛되고 거짓된 세상의 학문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사망으로 이끌고 있지만 그 수는 지금까지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처음에 사람들은 무엇을 계산하며 만들고자 그 수를 구했으나 소수점 두자리정도만 이용해서 만들어도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완벽하게 보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무엇을 만드는데 여섯 자리 이상의 수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없으며 심지어 계산만 하는데도 두 자리 이상을 잘 넘기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다 이용하지 못한다하여도 그것의 끝이 있나 없나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므로 처음에 두 자리로 시작했던 것이 잠시 후 몇 백 자리까지 구하더니 요즘에는 1조자리까지 구하고 그보다 더 구하고자 오늘도 컴퓨터를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기계를 만들어도 인간으로서는 그 숫자를 구하지 못하도록 태초에 이미 정해놓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본향인 셋째하늘로 돌아가 그 수를 이용해 선하고 거룩한 창조를 영원토록 이루어가기 전까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수를 구하는 기계를 의지하거나 그 수를 구하려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초월수를 창조하신 아버지를 의지하며 아버지의 뜻을 구한다. 그리고 그 뜻을 깨달았을 때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게 되니 아버지께서는 거룩을 이룬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혀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그들이 본향인 아버지의 나라에 갔을 때는 그 수를 아버지께로 얻어 백성들로 하여금 완전한 구를 만들게 한다. 또한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삼각 사각 오각 육각 모양의 피조물들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해 그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는 셋째하늘을 영원토록 선하고 거룩하게 발전시켜가는 왕과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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