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공동체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이집트로 팔려갔다. 하지만 그는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흉년의 때에 그 형제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12지파는 흉년이 왔을 때 굶어죽지 않고 오히려 이집트에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요셉의 지혜와 계획이 아니요 오로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또한 그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지혜와 계획을 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믿는 자들을 끝까지 이집트라는 세상에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때가 되었을 때 여호와삼마와 이레의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세상에서 건져 내신다. 그 이유는 첫째 세상은 불의하고 죄악 되기에 그들이 만일 세상가운데 그대로 거하고 있으면 그들도 불의와 죄에 물들어 심판당해 사망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둘째 원수는 평소에는 세상을 아름답고 즐길만한 곳으로 이끌어가다 마지막에는 환난을 일으켜 그 안에 거하고 있는 자들을 추수하니 그들도 칼에 엎드러져 이방인들과 함께 사망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애굽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던 이집트는 비록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참으로 편리했으나 사람들은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욕심과 자리를 위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밥 먹듯이 한 몸을 이루며 오히려 자랑했으며 돈과 권세가 있는 자들은 죄를 범해도 옥에 갇히지 않고 갇힌다 해도 금방 나왔다. 또한 원수는 자신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을 다른 자들을 눌러야 강해져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으니 앗시리아도 반드시 이집트를 멸망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모세를 통해 광야에다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유대민족을 이끌어내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그리스도를 예비케 하심이었다. 즉 믿는 자들을 세상과 구별하시므로 그 의로운 혈통을 통해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함이요 그리고 그 아들로 인하여 의롭고 거룩한 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하심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떤 혈통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누가 함께 부활했는지 말씀에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세상에 환난이 올 때 아버지께서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생명의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서 건져내시는 것은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나온 자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하시므로 오직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예비케 하신다. 그리하여 구약의 그리스도의 몸이 광야에서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시며 거룩에 애썼던 것처럼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도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거룩에 애쓰므로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하게 되어 공중으로 들림을 얻고 또한 환난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전하고 마지막 때에 아버지께로 그 살과 피를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약의 믿는 자들이 광야생활을 보며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은 육의 한계로 인해 사막에서 하루도 견디지 못한다. 물과 음식이 부족하며 또한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역사하시면 한 달이 아니라 40년도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믿는 자들도 이 땅에 환난이 왔을 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아버지의 그 지혜와 능력으로 인하여 영과 육이 조금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광야의 피난처에 거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므로 역시 그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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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당신은 저주보다는 복을 얻기 원하는가? 또한 당신의 가족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복을 전해주기 원하는가? 복이 있는 사람은 늘 아버지와 아들께로 나오신 거룩하신 영의 인도를 받아 그의 삶 가운데서 한 말씀을 순종할 때 또 다른 말씀에도 순종하게 되며 계속적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 앞에 서는 날 아버지께 큰 기쁨이 되며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영광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이런 복을 얻도록 산에서 가르치셨으니 그 산상수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당신은 심령이 가난한가? 아니면 육이 가난한가?

사람은 누구나 육이 가난하다. 그래서 육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돈보다 더 벌고자 한다. 자신의 아내와 남편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에 음행을 품기도 하며 실제로도 간음한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육적인 욕심과 육적인 요구를 버린 자다. 이러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의 아버지 계신 곳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2. 당신은 애통함이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기뻐하며 즐기는가?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죄의 뿌리가 있다. 그래서 마음 생각 말 행위로 죄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악과 싸우는 사람은 애통하는 영혼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심히 슬퍼하며 울지만 하늘의 아버지께 위로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3. 당신은 온유한가? 아니면 참고 기다리지를 못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무엇이든 이루어가길 원한다. 그러나 온유한 자는 항상 아버지의 때를 기다린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이 여려서 참으로 한 가지나 두 가지 만이라도 충실히 하며 즉 아버지의 말씀 하나나 두 가지만이라도 충실히 순종하며 아버지의 때를 기다린다. 이러한 사람은 천년왕국과 그 마지막에 셋째 하늘에 들어갔을 때 주님께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4. 당신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가? 아니면 불의를 받아들이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나 사람과 환경에 따라 자신의 의와 기준이 변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의롭지 않다. 하지만 아들의 살과 피는 사람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아들의 살과 핏잔을 먹고 마시기 원한다.

5. 당신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가? 아니면 자신만을 생각해 그냥 지나치는가?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모르며 부족하다. 하지만 부족해도 늘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아버지의 말씀을 나누어주길 원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그 사람에게 아버지의 나라에서 더 풍성히 주실 것이다?

6. 당신은 청결함을 원하는가? 아니면 더러움이 좋은가?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다. 하지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마음이 깨끗하기에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을 뵙는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영광 중에 계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갔을 때 그 빛을 받아도 두렵지 않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그 깨끗한 자를 영화롭게 하신다.사람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만 지켜도 마음이 깨끗하게 될 수 있다. 첫째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이 순수하고 솔직해야 한다. 둘째 항상 첫 마음을 지켜야 한다. 셋째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7. 당신은 다른 사람을 아버지와 화평케 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목숨을 얻기 원하는가?

은혜를 받은 후 끝까지 아들을 따라간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다. 그런데 아들께서는 아버지와 사람들 사이를 오직 십자가로 화평케 하셨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놓는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사람을 아들로 받아주신다.

당신은 영원히 가는 영적인 복을 원하는가? 아님 잠시 후 썩어져 없어질 육적인 복을 원하는가? 영원한 하늘의 복을 원하는가? 아님 불의와 죄악으로 인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복을 원하는가? 당신이 만일 진심으로 영과 하늘의 복을 원한다면 21세기은혜교회는 당신이 그리스도께서 내신 그 복된 길을 따라가며 그 복을 얻을 수 있도록 그 길과 복을 보여주는 ‘말씀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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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째 하늘의 모든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들은 각기 그 길이가 틀리다. 또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새치기하는 차를 보면 ‘저거 뭐야!’라고 하며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드러낸다.하지만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면 사실 자신도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의 도로에서는 그 누구도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고 모두가 공평하게 다니도록 예비해두셨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의 모든 도로들은 그 길이가 똑같다. 그리고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서로가 뒤로 물러서며 다른 차를 먼저 가라고 한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리 조그만 욕심이라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천년왕국의 끝에 모든 심판을 마치신 후에는 시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을 이루셨으니 시간을 없애신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끝에 셋째 하늘로 올라갔을 때는 시간을 초월하는 때이니 시간의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영원하니 당연히 서두를 필요도 없다.

아버지께서 영원한 셋째 하늘에 준비해두신 도로의 구조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둥그런 도시가 있다. 이때 그 도시의 외곽을 둘러싼 둥근 원형의 도로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둥근 모양의 도로가 그 도시의 중간에도 있으며 가장 안쪽에도 있다. 또한 그 세 겹의 도로안쪽에 여러 도로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으니 그 모양은 바둑판과 같다.

이 바둑판모양 도로들의 가운데에는 좌우뿐만이 아니라 아래위로 다니는 길이 입체적으로 나있다. 그러므로 그 도로들을 통하여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연결되어 계속해 뻗어나갈 수 있다.

또한 한도시의 외곽을 둘러싼 그 도로 안에 둥근 삼각형 모양의 도로가 하나 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그 셋째 하늘의 다른 지역(State 道)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도로를 이용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다른 지역으로 질러가니 이 첫째 하늘의 예로 말하면 고속도로와 비슷한 것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는 이 땅에서는 도로의 끝에서는 둥그렇게 돌면서 다른 곳으로 가는 도로로 연결된다. 하지만 셋째 하늘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입체적인 것들이니 도로의 끝에서 아무것도 없이 그냥 한 칸 위나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한편 재료는 이와 같으니 이 첫째 하늘에서는 도로의 바닥이 아스팔트나 시멘트지만 셋째 하늘에서는 은으로 깔려있으며 모든 차선들은 동으로 그어져있다. 또한 이 땅에서는 쇠에다 시멘트를 입혀 도로의 기둥을 세우지만 셋째 하늘에 있는 그 입체적인 모든 도로들의 기둥은 순금으로 세워져 있다.

아버지께서는 택하심을 얻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것들을 이미 태초에 창조하여 준비해두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거룩한 육체를 입은 자녀들에게 이 좋은 도로와 더불어 다른 모든 좋은 것들도 다 주시려고 기다리시고 계신다.

하지만 사람은 그 원수가 뿌린 가라지로 인하여 마음 안에 선악이라는 죄의 뿌리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버지의 그 뜻에 이르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오직 한 길을 내어주셨으니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거듭남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과 의 혹은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면 그 선악의 뿌리를 뽑아내므로 거룩에 이를 수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긴 자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니 그는 아버지의 영광스런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서 셋째 하늘에 준비해두신 그 모든 것들을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이 육신의 죽음을 당할 때 어떤 영혼들은 원수의 종들이 그의 영혼을 육에서 빼내고 어떤 영혼들은 아버지의 거룩한 종들이 그 일을 행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의하여 죽음의 사자나 혹은 생명의 종이 그 일을 행하는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걸어갈 때 한쪽에는 하얀 모래사장이 있고 왼쪽에는 질퍽질퍽한 진흙으로 되어있다. 이때 성장한 어른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하얀 모래사장 위로 걸어가되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진흙이 재미있으니 그쪽으로 걸어가거나 그 속에서 재미있게 논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여유롭게 그 산책길을 즐기되 아이들은 그 길을 걷기는커녕 온몸에 진흙을 가득 묻히게 된다.

     이와 같이 한 사람에게 만일 조금이라도 더러움이 있으면 아버지의 종들이 그 더러움을 통하여 만지지 못하기에 원수와 그의 종들이 그의 영혼을 뽑아내어 아버지의 종들에게 넘겨준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더러움이 없는 자는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께로 은혜를 받고 보호를 받는 자이니 마지막에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종들을 통해 그 영혼을 꺼내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원수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그 더럽고 악한 자가 조금도 한 순간도 그의 영혼을 만지지 못했다. 또한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보시고 그의 영혼이 그 육에서 나오시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원수가 그의 영혼을 만지지 못하는 것은 거듭난 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길을 걷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스도와 동일하되 출발은 다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가 거듭남의 전에도 또한 후에도 그가 선악의 죄를 따라 생각하며 말하며 행할 때는 원수가 그의 영혼을 만진다. 그러나 십자가로 은혜를 받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 거룩의 길을 걷는 자들은 결국에는 아버지께로 의롭다 함과 거룩케 하심을 얻게 되니 그들은 그 죄에서 해방된 후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원수가 그의 영혼을 만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도 이와 같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스데반과 바울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하여 휴거 받는 자들과 목베임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자들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그의 영혼이 심장에서 손을 뗀 후 육체에서 나오는 길을 모른다. 또한 나온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가는 길도 모른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치니 사람의 영이 올라와 그의 거룩한 혼과 합쳐 나오되 나오게 하는 것은 흔히 죽음의 사자로 불리는 원수와 그의 종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영혼을 육에서 빼낸 후에는 아버지의 종에게 주니 아버지의 종은 그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으로 데려간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 선악의 죄를 이기지 못한 자는 과정을 거쳐야 할 자이니 온전케 되는 과정의 길을 걷게 하시고 거듭남이 없는 영혼은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해야 할 자이니 원수에게 넘겨주신다.

     한편 이방인이 겪는 죽음은 이것이니 그들은 육신이 죽었어도 그들의 영혼을 꺼내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서 영혼이 울고 있을 때 원수와 그의 종들이 찾아와 그 영혼을 달랜다.또한 어느 한적한 곳에 갖다 두어 그들의 불의와 죄와 사망을 위로하며 눈물을 그치게 한다. 또한 그 영혼이 세상에 있을 때 좋아하던 것을 계속해서 마음껏 보여준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들은 그리스도께 사망의 심판을 받은 후에도 원수와 그의 종들의 말을 듣고 따르되 그들을 다 이용한 후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을 때는 자기들이 거하는 그 거처에 집어넣는다.

     반면 은혜를 받은 자들이 겪는 경험이 있으니 그들의 영혼은 더럽고 악한 그 죽음의 사자들이 조금도 만지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첫사랑을 기억하므로 세상과 간음치 않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주님과 동행하며 거룩에 애썼기에 그들의 영도 거룩하고 그들의 생각도 깨끗하고 그들의 육신도 정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신의 사망이 이르기 전에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종들을 통해 그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데리고 와 심판 후 거룩한 육체의 상급을 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들이 입었던 육신을 둘째 하늘에서 보여주시니 그들은 첫째 하늘에 있는 자신의 썩어질 육이 땅 아래에로 들어가는 장면도 보게 된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육신이 땅속에 묻히는 것을 보되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자신에게 입혀주신 그 거룩한 육체도 본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육신이 참으로 거룩한 것임을 깨닫고 또한 자신이 귀한 상급을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므로 구약의 에녹도 그리스도의 부활 후 일곱 교회시대의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자들도 다 이 과정을 겪었으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셨을 때에도 이 은혜를 받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육신의 사망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에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살겠노라는 약속이 있으니 그 말씀의 이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거듭남의 말씀과 더불어 다른 말씀들에도 순종하였기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따르며 아들의 말에 순종한 것을 보시고 그 말씀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서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하는 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이렇게 행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사람이 계속 불장난을 하다 결국 불이 나서 집이 불에 타며 연기로 뒤덮였다. 그러므로 그 집의 주인은 더 이상 그 집에 있지 못하고 집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연기로 인하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문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빛을 비추며 이쪽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정신 없이 문밖으로 나가서 가장 먼저 밝은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그 동안 자기가 살던 집이 불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영혼이 육신에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오로지 두 가지니 첫째는 육에 있을 때는 보지 못하던 밝은 빛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서는 빛이 어둠을 이기며 또한 선이 결국 악을 이기도록 의롭게 계획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계획에 충성하는 종들에게 빛을 주셨다. 물론 원수도 거짓된 빛을 가지고 있으나 원수의 빛이 희미한 촛불과 같다면 아버지의 종들의 광명한 빛은 태양보다 열 배가 밝으니 그 어두움은 빛에 가려진다. 또한 그 눈부신 빛으로 인하여 원수의 종들은 사람의 영혼을 꺼내자마자 저 깊은 곳으로 숨는다. 또한 빛이 너무 밝기에 그 빛에서 소리가 나오니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도 복종해야 한다. 고로 원수와 그의 종들은 오로지 자기의 영혼들을 기뻐하며 꺼내되 다른 영혼들은 두려움으로 꺼낸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종들이 육에서 나온 그 영혼들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에서 나오는 길을 모르며 행여 안다 하여도 스스로는 나올 수도 없다. 하물며 이 넓은 첫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는 그 둘째 하늘까지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홀로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 길을 알고 있는 아버지의 종들이 육신의 죽음을 당한 그 영혼들을 죄와 거룩의 상급이 주어질 그 심판대로 데리고 간다.

     사람의 영혼이 육신에서 나온 후 두 번째로 보는 것은 자신이 평생 거하던 장막이니 인격체인 사람도 죽으면 짐승처럼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그것을 본다. 하지만 자신의 죽은 육신을 보았을 때 기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으로 거룩에 애쓰던 자는 기뻐하되 그것으로 불의와 죄악을 행하던 자는 운다. 이에 아버지의 종이 슬퍼하고 애통하는 자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면 그 영혼이 대답하기를 ‘나는 아직 때가 아닌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종은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그 시간이 단 일초도 틀리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하며 그 영혼을 데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향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나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을 하고 난 후 혹은 보고 난 후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즉 그것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어야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알고 난 후 그것을 행하면 자신이 원하는 일과 보고 싶은 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사람에겐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 있다. 우선 육신의 죽음은 사람들이 흔히 보는 죽음으로서 병이 걸려 죽는다든지 사고로 죽는다든지 늙어서 죽는다든지 자다가 죽는 그 죽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은 짐승과 달리 육체와 혼만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과 영도 있는 인격체다. 그러므로 짐승의 경우 육신의 죽음을 당할 때 그의 혼은 땅속으로 내려간 후 그의 육은 흙으로 돌아가되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그의 영혼이 육신에서 나오며 육의 죽음을 당한다.

     무엇보다 먼저 인격체인 사람이 육신의 죽음을 당하는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병이나 사고나 노화가 아니요 죄와 거룩이다. 즉 어떤 사람이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7가지의 심판에 해당하는 죄와 거룩을 다 채웠다. 그러면 그는 사람들이 흔히 보는 죽음의 모양과 방법은 달라도 언제든 육신의 죽음을 당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그 한계를 다 채웠으되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사람의 경우 평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먼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이 올라와 그의 거룩한 혼과 합쳐진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숨을 쉴 때 그 합쳐진 영혼이 입을 통하여 나온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죽음이되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영이 자신의 심장을 붙들고 돌리도록 계획하셨으니 심장은 이방인들의 말과 같이 스스로 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아직 그의 영이 그의 심장을 붙들고 있는 것이요 더 이상 뛰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영이 이미 그의 심장에서 손을 떼고 혼과 합쳐져 그의 육신 밖으로 나갔다는 뜻이다.그리고 그의 영이 육에서 나간 후부터는 사람의 육도 짐승의 육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흙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사람은 육신의 죽음을 당할 때 그의 영이 자신의 심장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몸 밖으로 나가므로 죽는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영과 혼이 보이지 않고 영이 심장을 붙들고 있는 것도 안보이니 사람들은 영이 심장을 놓으면 죽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자기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죽이기도 한다.

     한편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의 썩어질 육체에서 나온 영혼이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멀어져 더 이상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영원히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연약하니 누구나 범죄할 수 있다. 즉 아담처럼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구하고자 원수의 말을 듣고 불의와 죄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통하여 누구든지 용서해주시니 회개하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는 셋째 하늘에서 기쁨과 평화가운데서 영원히 안식한다. 그러나 그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도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거부한 자는 그의 영혼이 육에서 나와 심판대에 섰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사망으로 보내신다. 그러면 그는 셋째 별의 중심에 있는 무저갱에 거하다 세상의 끝에 태양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서 죄에 대한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는 그가 아무리 악한 죄인이나 창녀라 할지라도 그를 끊임없이 불쌍히 여기시며 계속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주시되 그가 끝까지 은혜를 거부하고 한번 사망의 심판을 받은 후로는 그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아니하시니 이것이 바로 영혼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에서 쫓겨난 원수도 이미 사망으로 들어갔으되 많은 자들이 그의 선악을 따르고 있으니 그것은 오직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의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 있으니 아직 거듭남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요 죽은 것이요? 육신은 살아 있되 영혼의 죽음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며 아직 심장이 뛰며 숨을 쉬고 있으니 아직 영생의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인격체는 오히려 시간이 가며 죄만 쌓는다. 반대로 그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 그는 육신의 죽음 후 자신이 원하는 일과 보고 싶은 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누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1. 썩어질 육체가(肉體)가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靈魂)을 살리고 싶은 사람이 가질 수 있다.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께서는 짐승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코를 통해 생기(영원한 영)를 부어주시므로 그를 인격체로 창조하셨다. 물론 사람에게도 짐승처럼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육체를 주셨으나 나중에 죽음을 보게 되니 그 육은 결국 썩어진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누구나 때가 되면 사람은 반드시 육신의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사람은 생기를 받았으니 그 영을 주신 아버지처럼 영원히 살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다. 돈이나 높은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슬프게 우는 사람은 없으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니 그 슬픈 울음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임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짐승과는 달리 인격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며 또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보다 자신의 영혼이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2. 자신의 안에 비록 가 있으나 그것에서 벗어나 의롭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가질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세상이 참으로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한편 사람의 마음에는 원수가 심은 그 선악의 뿌리가 있으니 각 사람도 역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몸으로 불의와 죄악의 열매를 늘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의 죄는 숨기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큰소리로 드러내며 외치되 자신이 먼저 깨끗해진 후 다른 사람에게 거룩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안에 죄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하게 이끄는 나쁜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뽑아내기 원하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한 이 세상이 아닌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셋째 하늘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은 사람도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한 이 소망 없는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오히려 셋째 하늘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3. 셋째 하늘에서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보며 영원토록 아버지와 함께 거하고 싶은 사람이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살 때도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고 옥에 갇히거나 사형을 당하지만 선을 행하면 상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심판하시니 그렇게 심판 받기 원하는 마음을 각 사람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썩어질 육신에서 나온 후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혹은 불의와 죄악을 심판 받되 오직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심판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말과 행위로 해를 끼치거나 죽이고도 끝까지 회개치 않았으니 유황불 못인 태양으로 들어가 영원한 죄의 형벌을 받는다. 특히 거짓선지자는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그 불 못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수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으로 들어가 육과 세상의 영광을 취하도록 이끌되 아버지의 거룩하신 말씀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사람은 주여 주여 하면서도 한 말씀에라도 순종치 않았으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거듭난 후 한 말씀에라도 순종함이 있는 사람은 육신의 기회 동안 그가 비록 거룩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거룩을 이루고 셋째 하늘의 온전한 백성이 된다.

반면 그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육신의 기회 동안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의 뿌리를 끊어낸 영혼은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이루고자 말씀에 불순종한 그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므로 마지막에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거나 슬피 우는 곳으로 들어가기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원수가 심은 그 죄와 싸워 이기므로 아버지처럼 온전케 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셋째 하늘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녀로 또는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거듭난 자의 산 소망

 

목욕탕에 가면 우선 옷을 벗는다. 하지만 옷을 벗었다고 해서 다 씻은 것은 아니다. 물에 몸을 불린 후에 힘을 주어 이마부터 발끝까지 박박 문질러야 때가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 위하여 옷을 벗은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목욕탕 물은 그리스도의 보혈이요 힘을 다해 때를 미는 것은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향한 자신의 애씀이요 국수처럼 밀려나오는 때는 사람의 마음 안에 원수가 심은 죄의 뿌리이다.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거룩에 이를 수 없으며 때로는 자신이 애써도 안 되는 것은 도움을 받아야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살을 찢고 피를 흘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목욕탕에 가건 가지 않건 옷을 벗건 벗지 않건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또한 힘을 주어 미는 것도 또한 자신의 손이 안가는 곳을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다. 옷을 벗은 후 그저 물만 보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다.

그런데 나무는 뿌리가 잘리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의 죄의 뿌리를 뽑아낸 사람은 이제는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행위로 의롭고 거룩한 열매만을 맺는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가 거룩한 열매를 맺은 만큼의 거룩하고 영원한 육체를 준비해두시고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는 것이 자신과 가족과 이웃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선하고 지혜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왜 거룩을 원하시는가? 사람에게 거룩함을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논다. 그러다 더러운 진흙 같은 것을 묻히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아빠는 밥 먹게 빨리 들어가 씻으라고 한다. 그 씻은 자식에게 새 옷을 입혀주며 자기의 품에 앉아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함께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1. 자신의 썩어져 버릴 육신이 아닌 영원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2. 자신의 마음과 몸의 죄악과 육의 필요와 욕심과 세상의 염려에서 구원받아 의롭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3.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 셋째 하늘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기 원하는 마음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을 주셨으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인격체로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안에 있는 그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간절하게 가질 수도 있다. 반면 그 마음을 포기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자신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한 사람인지 아니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버린 사람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썩어져 버릴 육신이 아닌 영원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말과 질문을 세 사람에게 던졌다. “당신은 살기 위해 하루 세끼 육의 양식을 꼬박꼬박 먹고 살며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혼은 진리를 얻으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육신과 영혼을 위하여 양식을 어떻게 취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사람: 물론 영의 양식도 취해야겠죠! 하지만 육신이 있으니 저는 이 세상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벌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에 여섯 번을 먹거나 죽어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사람: 저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는 싶지만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 풀지 못하니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곳 저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한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용할 양식의 약속을 주셨으니 썩어질 육을 위한 음식은 필요한 세끼의 양식이면 족합니다.

세 번째 사람: 저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을 얻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직 썩어질 것에 있었으니 이 세상에서는 육이 잘되고 나중에 하늘에서는 영이 잘되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짓된 마음을 품은 그는 썩어질 것을 얻고자 기쁨과 평화가 없는 세상을 늘 헤매고 다녔다.

(남이 아닌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죄에서 구원받아 의롭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음란의 죄를 품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들키지 않게 실제의 간음을 행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혈기를 부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그것이 수치스럽고 슬펐으니 그것을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회개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그 마음이 줄어들더니 세 번째부터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네 번째부터는 사람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마음과 행위로 지속했다.

두 번째 사람도 동일한 죄를 마음과 행위로 범했으며 동일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이기고 싶었으며 그 죄에서 더욱더 벗어나고 싶었다.

세 번째 사람도 그와 동일한 것을 자신의 마음과 행위로 했지만 그는 기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 기쁨을 사랑하며 그것을 더해갔으며 그러면서 더 기쁨을 누렸다.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 셋째 하늘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기 원하는 마음)

“자신의 생각이나 의나 이 세상이나 사람을 따르지 아니하고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앞에 설 수 있으니 그는 아버지와 영원토록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따르시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 저는 교회의 일을 잘 따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헌금하라고 시키면 꼬박꼬박하고 전도가면 따라가고 성경공부나 새벽기도나 행사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싶습니다.

두 번째 사람: 저는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살과 피로 첫사랑을 주신 그분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를 사랑해주신 그분만을 따르고 싶습니다.

세 번째 사람: 저를 이끄는 목자의 마음은 육이 잘되고 세상에서 영광을 얻기 원하고 있으니 사람이 많이 모이길 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마음도 그와 동일한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목자를 끝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한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으니 오히려 육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와 같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혼의 양식인 진리를 깨닫고 싶은 사람이요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행위에서 나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모해 비방 완고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거역 어리석음 배약 무정 무자비함의 열매들을 제하고자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기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이요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간절하다면 또한 마음이 가난하다면 그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죄를 애통하는 영혼과 진리에 갈급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진리의 양식을 주시기 때문이요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그 생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을 모태에서 택하시어 그 선하시고 의로우신 손으로 기르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처럼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희생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영혼들도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도록 애쓴다. 마찬가지로 반대로 원수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유익만을 구하는 남자의 씨와 그와 같은 여자의 밭을 통해 택하는 영혼이 있으니 그는 무슨 말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든 심지어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이용해서도 오직 자기의 욕심과 이익만을 구하는 자로 자라난다.

 

원수는 이렇게 자기가 택한 자들을 키우되 그들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악한 뜻과 계획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원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대 학문을 가장 앞에서 이끌어 간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이렇게 불의하고 죄악되며 또한 불공평하고 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이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시험했던 원수가 있으니 그들은 이 세상을 그렇게 이끌어가며 자신의 마음이 원했던 큰 돈과 강한 권세와 높은 명예를 얻는다.

 

원수의 택함을 받아 이 세상을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수는 이러하니 예를 들어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자들을 100으로 볼 때 25%는 이미 모태에서 원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75%는 자신도 원수에게 택함을 받기 원해 이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다. 예를 들어 2천년 전에 유대인들 가운데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종교를 이끌어가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아버지의 일을 하되 그들은 자신이 육과 세상의 이익을 얻고자 그 말과 행위를 했으니 그들도 역시 독사의 자식이었다.

 

독사라는 짐승은 자기의 입으로 다른 짐승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되 그 혀에 고인 침에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독이 있으니 독사에게 물린 짐승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면 독사는 자기의 몸으로 그 짐승을 감은 후 자기의 턱까지 빼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그 짐승을 산채로 한꺼번에 삼키므로 자기의 배를 채운다.

 

이와 같은 마음과 행위를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원수는 셋째 하늘에서 쫓겨났으니 이 세상에서도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독사는 자기의 입으로 무슨 말을 하든 그 몸으로 무슨 행위를 하든 오직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듣게 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자기의 말을 들은 그를 오직 사망으로 이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과 말과 행위는 원수와 마음을 합하여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입과 행위를 보면 자기의 아비인 그 원수의 성품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말과 행위만 보지 그 마음은 보지 못하므로 오히려 그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같은 것이 자기의 마음에도 있기 때문이요 그 욕심과 죄를 버리기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욕심을 위하여 다른 자들의 생명을 사망으로 이끈 그 독사는 마지막에 유황불 못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도록 이미 심판하셨으며 독사의 자식들도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시어 그 독사가 들어간 가장 뜨거운 곳의 그 다음으로 넣으신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되 그 마음의 목적이 오직 자기의 육과 명예를 위한 자들은 많은 영혼들을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으로 이끌었으니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유황불 못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돈이 많거나 높은 곳에 앉아있는 사람의 자녀로 태어나면 그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로 인하여 자기가 원치 않아도 이 세상의 돈과 권세와 영광을 자동으로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원수의 택함을 받은 영혼에게는 그렇지 않은 영혼들보다 더 쉽게 거듭남의 은혜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육과 영광을 모두다 충분히 즐겨본 그들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듭남의 말씀을 믿고 행한다. 그리고 자신이 누렸던 그 세상의 영광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가 없음을 깨닫는 자들은 그것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또한 자기가 누렸던 것들이 참으로 불의하고 악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그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과 손에서 그 썩어질 것들을 놓으면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만을 붙드는 그것을 보시고 새 생명을 얻는 길로서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어 놓으셨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이미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그들이 가졌기에 그것을 버리는 것이 때로는 힘이 들 때도 있다. 그러므로 안타깝게도 원수에게로 택함 받은 많은 자들이 그 생명 없는 것을 끝까지 붙들고 사망으로 들어간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악한 자가 깊은 웅덩이를 파고서 그 안에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수수께끼들을 많이 넣어두었다. 그러나 한 선한 자는 그 웅덩이에다 줄을 내려주었다. 잠시 후 길을 가던 한 사람이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이에 그 악한 자는 저 밑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그 악한 자는 그 웅덩이 안에다 모래를 조금씩 넣기 시작했으니 그곳에 들어간 사람의 발부터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먹고 마시며 수수께끼 풀이를 하며 기뻐하느라 모래도 보이지 않고 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났다. 그러므로 그는 재미가 없어 포기하고 옆을 보니 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악한 자는 그가 혹시 줄을 잡고 나올까 하여 그 수수께끼의 힌트를 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수수께끼를 풀고는 기뻐하며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악한 자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 힌트를 주었으니 그는 결국 숨이 막혀 죽었다.

이와 같이 원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지혜나 육적인 도움을 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아버지께로 가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며 자신에게 나오도록 그것들을 준다.

예를 들어 원수는 항체와 병균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더욱더 음행과 음란으로 이끌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병균을 먼저 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에이즈니 백혈병이니 하는 불치병들에 걸린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불의와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아버지께로 나가기보다는 그저 육신이 더 살고 싶어 원수에게 나가니 그때야 비로서 그것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잠시 생명을 연장하거나 죽지만 죽지 않은 자도 잠시 후 죽는다.

원수는 에이즈의 경우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었다.

원수는 우선 의학적인 실험할 자들을 선택한다. 그가 사람을 택하는 기준은 이것이니 오직 자신과 그 마음이 같은 자를 택한다. 즉 이런 일에는 항상 세상적인 명예욕과 물질욕이 강한 자들을 택한다. 그리하여 원수에게 택함 받은 자는 오직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기쁘게 마시며 원수는 자기의 지혜를 그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 사람의 피와 짐승의 피를 섞는다. 짐승의 피를 섞는 이유는 그 안에 정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 섞은 것에 손가락 끝의 마디만한 식물의 알맹이에서 나온 물을 섞고 그 색깔을 가리기 위해 다시 다른 색소들을 넣어 처리했다.

그 손가락 마디만한 식물의 알맹이는 아프리카대륙 오른쪽에 위치한 한 섬에서 얻었으니 그 섬의 이름은 Madagascar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처음에 바로 그곳에서 에이즈의 병원균을 만들어 퍼뜨린 것이다.

그들은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물을 가장 먼저 원숭이에게 주입했다. 그런데 보통 자그마한 원숭이는 숲 속에 살지만 당시 실험된 사용된 원숭이는 높은 산에 살았으며 크기도 상당히 큰 것이었다.

이제 그 원숭이가 오줌을 싸면 그것을 받아 그 오줌을 다시금 다른 짐승들에게 주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그 주사를 맞은 소 같은 동물들을 잡아먹되 잘못된 방법으로 먹는다. 예를 들어 소의 앞다리 겨드랑이에서 피를 받아 마시거나 소가 쓰러지면 그 고기를 잘라서 먹는다. 또한 새도 익혀 먹는 게 아니라 목을 따서 피를 마신다.그러므로 맨 처음 에이즈는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이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은 주로 혈액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사람들은 가끔 헌혈이라는 것을 행한다. 하지만 원수는 그 헌혈한 사람의 영혼에 악한 피를 넣어서 보내는 것이다.

또한 피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원수는 그 보관된 피들을 악하게 더럽혀 놓는다. 그러므로 피가 필요한 사람들이 왔을 때 그곳 사람들은 그 악한 피를 좋은 피라고 속여 제공한다. 그리하여 가끔 어린 아기들이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은 것은 약을 통한 에이즈 감염이다. 우선 원수는 사람들에게 성관계를 통해 에이즈가 옮겨진다는 생각을 준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성 자체로서는 아무런 해가 없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깨끗한 성관계를 통해서는 그 어떠한 질병도 거하지 못한다. 또한 이방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창조의 비밀이 있으니 거룩한 자들의 부부관계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더욱더 기쁨과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원수는 사람들을 오직 돈과 자신을 사랑하게 하며 동시에 더욱더 음행과 음란으로 이끈다. 그리하여 성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전혀 없다. 그러다 나중에는 결국 약의 힘에 의존해 성관계를 맺는다. 이처럼 그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한 더러운 성에 깊이 빠져있으면 에이즈가 많이 발생한다.

여기서의 약이라는 것은 오늘도 수없이 들어오는 그 이 메일 광고들에서 선전하는 그 약들을 뜻 한다. ‘여자는 흥분하고 남자는 힘이 넘치고’ ‘여성을 녹이는 최음제’ ‘여자든 남자든 즐겁다’ ‘남성을 강화시키는 발기제’

원수는 바로 이 약들에다 그 악한 피를 합법적으로 섞는다. 합법적으로 섞었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마음으로 더러운 죄악을 택하는 자들에게 원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수가 가지고 있는 권세는 괴로움이요 불안이요 고통이요 질병이니 마지막에는 오직 사망이다. 즉 에이즈를 일으키는 악한 피를 그곳에 넣어 죄악을 택한 자들을 사망으로 데려가되 그것은 합법적이라는 뜻이다.

결국 에이즈는 콘돔 같은 것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성에 깊이 빠져 그런 약들을 복용하고 콘돔을 열 개를 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아무리 콘돔을 사용해도 에이즈는 모든 나라에서 점점 더 늘어만 가고 있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에이즈에 감염되는 두 가지 경로를 살펴보았으니 그 예방법을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다른 질병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에이즈로부터도 자유케 될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이미 에이즈에 걸린 사람도 다음과 같이 그 악한 질병에서 완치될 수 있다.

사람의 육체를 계획하시고 창조하신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포도주 생수 우유로 사람의 육체 안에 있는 피와 뼈마디에 묻어있는 더러움들이 깨끗이 씻겨나가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그 악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세 가지 물밖에 없다.

아버지께서 준비해두신 물을 취하는 법은 이러하니 우선 에이즈도 다른 모든 질병들처럼 원수가 사람의 몸을 더럽혀 사망으로 이끌고자 만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원수의 숫자만큼 복용하므로 이길 수 있으니 14개월 동안 꾸준히 그 세 가지 물을 밤낮으로 마셔야 한다. 그리고 하루에 네 번이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에이즈에 걸려 사망으로 다가가는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거듭남의 은혜와 함께 원수가 허락한 그 악한 질병에서도 자유를 얻게 될 수 있다.

한편 에이즈의 두 가지 감염경로를 보며 자신이 그 악한 질병에 어떻게 감염되었는지는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두 번째 경로라면 세 가지 물을 복용하며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비정상적인 성의 사용을 마음의 중심으로 회개하고 자신을 그 음행과 음란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옳은 순서이자 결단이 아니겠는가?

이 말씀을 본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하여 14개월 후에 에이즈가 완치된 영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어 그 육체의 생명을 더 연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주는 바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깨끗케 하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에게 아들의 그 거룩한 피의 은혜를 주시어 그의 육체의 생명을 연장해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경우에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덤으로 사는 인생은 불의와 죄악을 행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남은 인생을 살려는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선행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주신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그 피의 은혜를 주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게 도리일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은혜를 주신 분을 따라가야 할 소중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따르는 자에게는 잠시동안 연장해주신 그 육체의 생명이 끝난 후에는 다시는 질병과 고통과 외로움과 이별과 사망이 없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영원히 주신다. 대신 사람은 아들을 따르려면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르고는 싶어도 자신은 두 번째 경로의 에이즈감염자라서 혹은 지은 죄가 많아서 자신은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가운데는 의인이 없음을 아시니 그 불의하고 죄악된 사람들 가운데 오직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진심으로 깊이 뉘우치는 자들을 오히려 의롭게 보신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신이 비록 죄인이요 불의하나 다시는 그 선악의 죄와 관계하지 않고 오히려 이기기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는 은혜를 얻는다.

반대로 아버지께서는 스스로를 의롭다 하는 자는 쳐다보지도 아니하시되 멀리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에는 늘 그 선악의 죄를 품고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죄악을 내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깨끗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생명으로부터 멀어진다.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며 또한 믿는다 하며 이러한 자는 얼마나 더하리요?

이 세상에는 이렇게 아버지의 눈에 의로운 자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자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는 의인을 죄인으로부터 구별해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눈에 의로운 자는 이 세상이 사망으로 들어갈 때 구원을 받지만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자는 이 세상과 함께 심판을 받아 세상이 사망으로 들어갈 때 함께 내려간다.

이와 같이 전자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이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모두다 구원을 얻을 것이요 후자의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거하는 자들은 모두다 심판을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체요 마음은 자신의 것이니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택한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해두셨으니 마지막 때의 그 생명과 사망의 선택은 바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멀지 않은 어제 쓰나미가 있었다. 하지만 원수는 앞으로도 그러한 물의 기근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삼킬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은 언제 어디서도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멀어져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하여 불의와 죄악을 행하는 영혼들만 거둘 수 있다.

 

원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대규모 자연재해를 그 가짜 평화의 때까지 앞으로도 6번 더 일으킬 것이요 카트리나같이 작은 규모의 재해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이러한 물의 기근만이 아니요 땅을 흔들어서도 사람들을 삼킨다. 원수가 지진을 일으키는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설계라는 것은 반드시 건물을 짓기 전에 한다. 그리고 설계가 끝나면 땅속 깊이 기초를 판다. 또한 땅을 파 내려가며 어디에는 진흙과 모래가 어디에는 자갈과 바위가 어디에는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홍길동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건물의 설계부터 완공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으나 동길홍이라는 사람은 오직 완공된 건물만을 보았다. 하지만 완성된 것만 본 그는 보이지 않는 곳을 탐지하는 도구라고 하며 조잡한 기계를 하나 들고 왔다. 그리고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나는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이 기계로 땅속에 무엇들이 어디쯤 어떻게 묻혀있는지를 정확히 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해양지각 판이 서로 충돌해 해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한다. 또한 지구의 구조에 대해서도 그 조잡한 기계와 교만한 자들의 상상을 믿고 지각 상부맨틀 하부맨틀 외핵 내핵 그리고 한둘의 전이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 아닌 확신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먼저 이 셋째 별에 대해 정확한 설계를 하셨다. 그리고 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그 창조의 수인 파이를 이용해 다음과 같이 땅속의 모든 곳을 공평하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도록 명하셨다. 지금부터의 말씀은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가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지구의 가장 중심에는 태양에서부터 나온 뜨거운 돌(작은 태양)이 있다. 그것의 반지름은 정확히 900킬로미터이다. 그리고 나서 그 뜨거운 돌이 꺼지지 않도록 거대한 물이 이 작은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의 둘레의 그 사이도 역시 정확히 900킬로미터이다.

 

그 다음에 그 물을 다시 둘러싼 것이 있는데 그것은 흙이다. 물론 그것도 둘레의 한쪽이 900킬로미터이다. 그 다음으로 그 흙을 둘러싼 것이 철분이요 역시 900킬로미터이다. 또한 그 철분을 다시 둘러싼 것이 모래알(뭉친 상태가 자갈이나 암반임)이니 역시 900킬로미터이다.

 

그리고 그 모래알을 둘러싼 것이 물이며 그 물위에 있는 것이 사람들이 보는 흙이다. 그러므로 바닷물을 모두 합쳐서 그 모래알을 둘러싼 후 한쪽 둘레 사이의 넓이를 재면 그것이 900킬로미터요 모든 산과 바다 속의 산들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어 가장 바깥쪽에 두고 그 흙의 둘레 사이를 재면 그것도 역시 900킬로미터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계산할 것이 있다. 우선 이 셋째 별의 중심에 있는 그 작은 태양의 돌을 둘러싼 물뿐만 아니라 철분과 모래를 둘러싸고 있는 물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땅의 속에 있는 그 세 가지의 물로 하여금 태양과 철분과 모래를 둘러싸셔서 그 성분들이 더 이상 위로나 밑으로 오르내리지 않게 하신 것이다. 또한 작은 태양을 둘러싼 그 물이 육지까지 올라올 수 있는 길도 내셨다.

 

참고로 이 땅속에 자신의 죄를 끝까지 회개치 않으므로 거듭남이 없는 그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을 가둔 무저갱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그곳을 ‘지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무저갱은 지구의 가장 중심에서부터 있는 그 태양의 돌과 그것을 둘러싼 물과 그 물을 둘러싼 흙까지가 그 한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셋째 별을 둘러싼 대기권의 물이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은 그것을 측정하려는 엄두를 가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공중(대기권)의 물과 땅의 물(바다 호수 강)과 땅속의 그 물을 삼분의 일씩으로 똑같이 정하셨으니 그리고 사람들은 바닷물의 양만도 많다는 것을 아니 그 세가지를 합친 물의 양은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양의 물이 적당히 모든 곳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의 돌을 둘러싼 물과 철분을 둘러싼 물과 그리고 모래를 둘러싼 물(지하수)의 양을 모두 합치면 그것이 땅속에 있는 모든 물의 합이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지구전체의 물 가운데 정확히 삼분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이 셋째 별을 모두 만드신 후 아버지의 그 계획대로 용암이 올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작은 태양을 둘러싼 물이 데워진 후 그 길을 따라 흙과 함께 육지까지 올라오는 것이 바로 화산의 용암이요 그것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흘러나온 용암이 죽은 흙들을 땅속으로 떠민다. 그러면 또 다른 통로를 통해 그 흙들이 지구의 속으로 들어가 불과 물에 의해 정제된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하시므로 다시 흙으로서의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바깥에 있는 흙을 그 흙 가운데로 떠다밀며 또한 생명의 흙을 고르기 위하여 만드신 용암은 사람을 해치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수는 때로는 그 선한 것을 이용해 자신과 같은 자들을 추수하기도 한다.

 

원수는 또한 처음에 아버지께로 대항하며 불법을 저지를 때 철분을 둘러싼 모래부분을 갈랐다. 물론 철분지대도 가르려고 했으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만일 철분지대에 이상이 생기면 이 셋째 별의 자전과 공전이 아버지의 계획과 달라져 이 셋째 별은 스스로 태양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철분을 둘러싼 그 모래의 기초가 아주 조금 흔들릴 때 제일위의 육지가 심하게 흔들리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거두는 지진이다. 또한 깨달아야 할 것은 육지가 흔들릴 때 물도 흔들린다. 그리하여 원수는 그 순간에 그 과도한 물의 작용을 일으키니 그것이 바로 해일이며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모두다 ‘기근’이라고 명하신다.

 

원수는 이와 같이 땅 아래와 그리고 바다에서 그리고 하늘의 물을 통해 늘 사람들의 영혼을 추수한다. 하지만 자신이 사망으로 이끌고도 어리석은 과학적인 상상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불완전한 창조를 원망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원수는 기근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 사람의 수를 부풀린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너무 많기에 우선 눈으로 대충 정한다. 그런 후 자신이 정한 숫자가 정확하지 못한 것을 알기에 그 수를 배로 기록한다. 이런 식으로 나온 집계가 바로 뉴스에 나오는 그 사망자수이다.

 

그런데 원수는 온 세계 사람들에게 그 엄청난 수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렇게 해놓고서 뻔뻔스럽게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사망에 이른 사람들의 수가 1200미만이면 작은 기근으로 넘으면 큰 기근으로 보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그 3년 6개월의 전 세계적인 평화의 기간까지 거룩과 죄의 한계가 차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니 1200명 이상의 사람이 기근으로 죽는 것을 6번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원수는 그 숫자를 불려서 더욱더 아버지를 원망하게 만든다.

 

또한 누군가 만일 이 세상을 즐기고자 지금부터 그 평화의 기간까지 원수가 하나로 만든 이 세상나라의 백성이라는 표인 그 짐승의 수를 자신의 몸 안에 넣으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 둘째 하늘에 있는 유황불 못의 형벌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유황불 못이 되는 그 둘째 하늘의 태양은 현재의 태양보다 10배가 크다.

 

결국 사람은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거룩과 죄의 한계가 차지 않으면 그러한 것으로도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원수가 일으키는 그러한 기근이나 전쟁을 두려워하기보다 죽음 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고 오히려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선악의 죄를 미워하며 원수가 심은 그 죄의 뿌리를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뽑아내고자 거룩에 애쓰는 것이 옳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질병가운데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 있으니 그것에 한번 걸리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도 죽는다. 이러한 것이 옛날에도 있었으나 지금도 있으니 에이즈나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가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서 그것들이 더욱더 많아지니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두려움이 커진다.

 

그런데 이렇게 옮기는 질병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질병들도 오직 피에서부터 나온다. 하지만 모든 질병은 사람의 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짐승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원래 짐승의 피가 사람의 피로 들어갈 수 없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질병이 많이 생긴다. 그러므로 처음에 원수와 그와 함께 타락한 종들은 짐승의 피를 뽑아 그것을 사람에게 바른다. 하지만 오직 그 사람의 죄악의 분량만큼 바를 수 있다. 그러면 짐승의 피가 묻은 사람은 아버지와 사람보다 짐승을 더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다 마지막에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짐승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원수는 사람의 피안에 때로는 자신의 악한 것을 때로는 자신의 더러운 것을 그 안에 넣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그 귀한 영혼과 피가 점점 오염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오늘은 감기요 내일은 배탈이요 나중에는 암이요 나중에는 백혈병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질병은 피에서 시작되었으니 치료도 다른 그 무엇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병을 피로써 나을 수 있으니 그 피가 바로 그리스도의 피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그 아들의 피를 상징하는 것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 첫째 하늘의 포도주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피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포도주로 그 피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 이때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사람은 작은 양으로 어떤 사람은 많은 양으로 회복된다.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이 비록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아들에 대해 아직까지 몰라도 골방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하여 원수의 모든 악하고 더러운 질병에서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 그리고 저의 육체를 창조하신 그리스도(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모든 권위를 받아 이 세상의 창조와 심판과 멸망과 구원을 행하시는 분)시여 어떤 사람의 글에 아버지께서는 포도주를 아들의 피로 상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러워진 피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깨끗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피도 깨끗해지길 원합니다!”

이렇게 아버지께 구하되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해야 된다. 즉 자신의 죄와 허물들을 회개하고 행해야 하니 가장 좋은 것은 거듭남의 말씀을 진심으로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포도주를 마시되 한달 정도를 이렇게 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조류독감과 신종플루로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질병도 깨끗케 해주신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더 빠른 시간 안에 깨끗케 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빠른 사람은 하루 이틀 후부터 30일안에 피가 맑아진다. 그리고 피가 맑아지니 그의 육체의 건강도 다시 되찾게 된다.

당신의 피는 이제 깨끗해져서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그 불치병에서 구원받았다. 게다가 건강하고 깨끗한 육체를 새롭게 얻었다. 하지만 그 깨끗한 몸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제 건강해졌으니 다시금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가 썩어질 것들을 구하려는가? 혹은 육의 죄를 즐기며 또다시 당신의 몸을 더럽히려는가? 혹은 돈과 행위로 보답을 하려는가?

 

그러나 사람이 만일 그 포도주를 통해 은혜를 입었다면 이제는 그 포도주의 상징이시며 장본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지 않는가? 그분을 통하여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듭남의 은혜를 받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진심으로 약속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며 따르겠다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인격적인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땅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그가 어떠한 처지와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그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오직 은혜 안에 거하며 말씀을 알기 원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니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오직 마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을 드린 그는 진리와 아들의 피로 의와 거룩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께서 사람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시려는 이유는 그래야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에게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시어 부활시키실 수 있기 때문이요 그 거룩한 육체를 얻은 자들을 아들과 딸로 삼아 셋째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상속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시어 인격체로 창조하셨으며 생명과 사망을 모든 사람들의 앞에 두셨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은혜를 구하든 구하지 않든 말씀을 알고자 하든 알고자 하지 않든 그 선택은 자신의 인격과 마음에 달려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 생명과 사망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믿는 습성이 있다. 물론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의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원수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가 무언가 악한 일을 저질러도 누가 했는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과학은 어떠한 힘이 있다는 것은 말하지만 자연재해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한다.

 

아버지는 완전하시니 창조도 이 첫째 하늘의 창조도 완전하다. 그리고 그 창조가 완전하다면 자연재해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어나되 이 마지막 때에는 더 자주 크게 일어난다. 도대체 자연재해가 왜 일어나는지를 알려면 우선 마음과 인격을 가진 종의 능력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종들을 창조하실 때 아버지의 계획대로 그들에게 큰 지혜와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육을 입은 사람들은 엄청나고 거대한 태양을 눈뜨고 바로 쳐다보는 것도 어렵지만 어떤 종들은 그 태양을 단 4시간 만에 아버지의 계획대로 만들었다. 우주에 떠있는 별들을 공놀이 하듯 던지는 능력이 있는 종들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또한 한꺼번에 보는 지혜와 능력이 있는 종들도 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지혜와 능력만이 아니요 종을 창조하실 때 깨끗한 마음과 함께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셨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각자에게 마음과 인격을 주시므로 로봇이 되도록 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든 종은 사람과 같이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할 때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자신을 더럽힐 수 있고 반대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원수는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고자 하면 말씀에 불순종해야 하니 그것은 인격체를 죄와 불의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 불순종하며 대항하며 가장 먼저 그 선악의 죄를 창조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기 위해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의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주신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더불어 당시 다른 수많은 종들 가운데 그 원수와 같은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도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원수의 말을 듣고 함께 타락했다. 원수와 같이 오직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구하는 마음을 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자 어떤 일도 다한다. 또한 사람을 거룩케 하시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대적하며 방해하기 원한다. 그러므로 바로 그 타락한 자들이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수의 존재와 악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연적인 재해들을 보며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창조를 불완전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창조자는 마음대로 만들고 마음대로 파괴한다고 하면서 선하신 그리스도를 악한 비 인격자로 여기기도 한다.

 

원수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를 다음과 같은 원리로 일으킨다. 그리고 그 추수한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죄와 거룩의 심판을 받은 후 사망으로 들어갈 자들은 무저갱의 유황불로 데려간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종들을 통해 모두 12개의 별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질서가 있으시니 그 별들은 자전을 하며 동시에 태양을 중심으로 자기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돌되 해마다 6도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세차운동)을 반복한다.

 

아버지께서 이것을 계획하신 이유는 그 6도의 차이를 통해 각 별들의 내부에 있는 더러움들을 밖으로 보내어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명이 살고 있는 이 셋째 별에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원수는 그 완전한 창조와 깨끗함의 유지를 위한 그 적당한 움직임을 과도하게 일으킨다. 그러므로 원수가 과도하게 힘을 작용할 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들이다.

 

그러나 현상은 보이되 원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으로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또한 전혀 설명하지도 못하니 이말 저 말을 하기도 한다. 그저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원수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이러한 일을 행하니 첫째 자기가 택한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자들을 택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욕심이 강하고 교만하여 그것을 위해 어떤 일도 다하는 자를 택한다. 둘째 사람이 성인인 12세가 되기 전에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즉 원수는 자연재해를 통해 자신이 추수할 자들을 추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오는 것(죽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니 첫째 일정한 수준의 거룩에 이르면 아버지께서 거두시며 둘째 일정한 죄악의 수준을 넘으면 원수가 그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죽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엄청난 자연재해나 큰 사고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는 종들을 통해 아직 아버지의 때가 이르지 않은 그들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아직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거룩과 죄악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원수처럼 욕심을 품고 욕심을 이루고자 불의와 죄를 택하여 이루어가는 자라도 그가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신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말씀에 순종해 의와 거룩을 이루어가는 자도 그가 더욱더 의롭고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시며 끝까지 기다리신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인 판단과 책임을 완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12세이다. 예를 들어 12세가 되면 죄가 나쁜 것이요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선을 베풀어야 함을 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성인의 나이를 12세로 보시며 그때가 되어야 추수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원수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택하니 그들은 오직 자기의 욕심과 유익만을 구하며 얻기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되 다른 자들에게 불의와 죄악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원수가 택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니 그들이 이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킬 기회를 계속해서 허락하신다.

 

하지만 원수가 택한 자 중에서 누가 돌이킬 수 있겠는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돌이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이 세상을 마음껏 즐겨보았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자신의 소유보다 생명을 귀히 여겨 불의와 죄로 쌓은 것들을 쉽게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육과 이 세상 즐거움의 죄악을 버리고 생명을 택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생명의 기회를 늘 주시는 것과 달리 원수는 늘 추수할 기회를 엿본다. 그러므로 원수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심과 죄와 이 세상으로부터 돌이킬까 봐 매우 불안해한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원수는 12세가 되기 전에 추수해 버리는 것이다.

 

원수는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창조자인 그 아들이 사람들의 영혼들을 데려갔다고 원망하게 한다. 또한 마음대로 창조하고 마음대로 심판해서 불덩이에 던졌다고 거짓말 하며 아버지는 미워하고 대신 자기를 사랑하며 따르게 한다.

 

이렇게 교활한 자가 바로 아버지의 원수요 사람들의 원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그 가운데서도 원수의 성품이 충만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왜?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자동으로 구원하시지 않으시는가?” “그가 유황불 못이 좋다고 하며 죄를 지어도 또한 회개하기 싫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구원하시면 되지 않는가?” “왜 인격체인 원수에게 그렇게 못하게 하시지 않으시는가?” “그 마지막이 되기 전이라도 그를 당장 잡아서 유황불 못에 넣으시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짐승 같은 대접을 받거나 로봇처럼 누군가가 시키는 것만 하는 존재로 대우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즉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하고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깊은 곳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아버지께서 사람을 짐승과 로봇처럼 창조하셨다면 그것을 원하거나 좋아하거나 인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비인격적이고 강제적인 질문보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깊이 깨닫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지혜로운 것이다. 또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바르고 정직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

첫째 나는 나의 마음에 욕심을 품고 이미 욕심과 교만과 불순종의 죄악으로 인해 셋째 하늘에서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나 유황불 못의 영원한 형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사망한 원수를 따를 것인가 아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의롭고 거룩한 생명을 영원히 주시는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하는가를 냉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마음에 물어보아야 한다.

 

둘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는 항상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불법을 행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택해 때가 되면 갑자기 그 사람을 추수한다. 자신이 가진 그 사망을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며 원수를 따르고 있는 자는 그가 돌이키지 않는 한 언제라도 그 사망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돌이키지 못하고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일로 미룬다. 원수가 육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이 세상의 좋아 보이는 것들을 통해 마음을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요 자신도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원하는 사람은 무엇을 돌이켜야 할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셋째 원수의 불법으로 사망에 이르는 영혼들은 보며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사람의 피를 좋아하며 그것을 이루고자 거짓말하며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어가는 원수는 미워하며 오직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손만을 붙드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선택들은 각자의 몫으로서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 누구도 그 선택과 판단에 개입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원해서 걷는 길을 그 누구도 강제로 되돌릴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생명과 사망에 관한 모든 선택과 결정을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 주셨기 때문이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말씀의 기초(그리스도 도의 초보,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있는 사람은 첨부한 MS 워드 파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당신은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간절한 마음과 눈물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그러므로 눈이 감겨서 나온 사람은 자기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의 그 은혜로운 얼굴을 보지 못하며 입이 닫혀서 나온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과 말하지 못하며 귀가 닫혀서 나온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불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며 팔다리가 굽혀져 나온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뛰며 달리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영혼들에게는 깨끗함의 소망을 공평히 주셨으니 그들이 그 간절한 마음을 품고 기다리길 원하신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원수에게 마음을 빼앗기니 가장 먼저 그들의 영혼은 크신 은혜를 베풀어두신 하늘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한후 마지막으로는 가까이 거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말과 행위로 아프게 한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듣는 영혼은 그 간절한 마음과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회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 영광을 예비하신 아버지께 눈물로 감사하며 자기를 그렇게 낳아주신 부모의 은혜에도 눈물로 감사하며 가까이 거하는 가족들과 함께 기쁨과 소망가운데서 아버지의 그 때를 기다리게 된다.

 

남자의 씨에 어딘가에 이상이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막으시니 오직 완벽한 씨앗들만 여자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밭을 만드는 세 가지 도구도 오직 완벽한 것들만 나오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만났을 때는 그 아비와 어미의 마음도 합하게 되는 것이니 그 후손이 거룩하거나 아니면 아주 더럽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을 때 12주 동안은 흑암이 그 새로운 생명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또한 엄마의 영도 그때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로지 그 바깥에 거하는 종이 그 새로운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 후 12주가 되면서 엄마의 영이 아기에게로 내려가니 그 아기는 그 시점부터 엄마의 영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자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아기의 생명을 위해서 늘 거룩하고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 아기가 거룩하게 태어나느냐 더럽게 태어나느냐의 판단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때가 되면 이제는 흑암도 그 엄마의 영을 틈타 죄와 어두운 마음으로 인하여 그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지켜주시면 그 영향을 줄 수없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육신의 불구자를 택하신다. 그 이유는 그 택하신 자들을 통하여 그의 자녀와 그의 부모에게 하늘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이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늘 깨끗하며 청결하기 원하며 참으로 그 거룩한 몸에 대하여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들을 볼 때 불쌍하다 불쌍하다하니 원수는 그 생각을 틈타 육이 온전한 자신들을 보며 교만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나는 저들보다 더 못났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그들의 마음의 깨끗함을 아버지께서 늘 받으시되 육이 온전한 자들의 마음은 항상 어둠에 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의 마음이 온전한 자들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아버지께서 실수하신 것이 아니시요 그들을 택하사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그 영광을 소망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놓으신 것이니 그것은 아버지께서 특별하게 베풀어놓으신 은혜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공평하게 계획하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선택하시어 은혜를 베푸시는 자가 있으시다. 그런가하면 아버지께서 일반의 은혜를 주시어 태어나게 하시는 자도 있다. 또한 많은 자들은 온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무엇을 알고나면 그리고 그것이 바른 것일 때 알았으니 바른 그것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사람은 무엇을 알고나면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일 때 알았으니 이제는 자신을 그것에서 돌이킬 수 있다. 물론 무엇을 알고난 후 그리고 그것이 바르다할지라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는 그 바른 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것을 계속 따르기도 한다.

 

사람은 또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알고도 잘못된 것을 따르며 모르고도 바른 것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사람이 아는 것이 유익이요 때로는 모르는 것이 유익이다.

 

이와 같이 말씀가운데도 사람에게 아는 것이 유익이 될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이 유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이 아비의 씨와 어미의 밭이 만난 후 어미의 배속에서 그가 품는 마음에 따라 이미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되어지며 그에 따라 생명과 사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남자가 믿지 아니하는 자요 여자는 믿는 자로서 그 두사람가운데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믿지 않는 씨앗이 믿는 밭에 심기게 되면 그 아이는 일반은혜를 통해서 아버지께로 올 수 있다.

 

둘째 남자도 믿지 않는 자요 여자도 믿지 않는 자는 원수가 택해 자기의 사람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교만하고 욕심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이루고자 원수를 따라간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택하시어 그 영혼과 부모의 영혼을 돌이키게 하실 수도 있으시다.

 

셋째 믿는 남자와 믿는 여자가운데서 태어나는 아이는 씨앗과 밭이 모두 믿는 것이기에 그가 아버지께로 쓰임을 받는다. 하지만 부모가 믿는다하여 그 후손이 다 아버지께 쓰임 받는 것이 아니요 그들이 어떤 진리를 따르느냐에 따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도하고 아버지를 배반해 원수에게로 갈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라. 아비나 어미가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의 자녀는 그와 같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니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아비나 어미가 교만한자가 있으면 그 아이도 교만할 것이요 부모가 아무것도 모르고 주저앉아있으면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원수의 밥이 되고 만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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